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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32935
2010.06.20 (20:47:28)
ARTIST:  Samla Mammas Manna(Zamla Mammaz Manna) 
COUNTRY:  Sweden 
GENRE:  RIO/Avant-Prog 
ALBUM:  Samla Mammas Manna (1971)
Maltid (1973)
Klossa Knapitatet (1974)
Snorungarnas symfoni(symphony Of The Brats) (1976)
For Aldre Nybegynnare (1978)
Schlagerns Mystik (1978)
Familjesprickor (1980) 
MEMBER:  Lars Hollmer (keyboards)
Lars Krantz (bass, 1969-80, 1990-present)
Hasse Bruniusson (drums, 1969-80, 1990-99)
Henrik "Bebben" Öberg (percussion, 1969-71)
Coste Apetrea (guitar, 1972-76, 1990-present)
Eino Haapala (guitar, 1977-80)
Vilgot Hansson (drums, 1980)
吉田 達也 (drums, 2002-present) 
원본출처:  http://koreanrock.com/wiki.pl?ZamlaMammazManna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대강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이 잘못된 부분은 고쳐주세요.

  • 초기시절
Samla Mammas Manna 결성의 기원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보드주자인 라스 홀머(lars hollmer)와 퍼커션주자인 베벱 웨ZMMpic.jpg 베르그(bebbeb Öberg)가 만나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시험해 보며, 결국 함께 그래도 좀 제대로된 밴드같은걸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 당시의 유행처럼, samla 사운드는 싹은 전통의 스칸디나비아 포크의 테마속의 현대음악으로 부터 나온것이었다. 웁살라(Uppsala)지역의 변두리에 있는 그들의 자주 스투디오인 "치킨하우스"("Chickenhouse")에 나머지 친구들이 jam을 위해 참가했다, 라스 크란츠(lars krantz)가 1969년 가을에, 하세 브루니우손(hasse bruniusson)이 1970년초에 참가하면서, 마침내 온전한 밴드로의 시작이 구체화되어 갔다. 라스 크란츠와 하세는 60년대 중반부터 락이나 팝밴드에서 연주해왔었던 이미 어느정도 수준에 있는 뮤지션들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라스 홀머의 타락하지 않은 상상력으로부터 발생해 나온 아이디어들을 연주력에 더했다. 포크와 록 그리고 재즈의 구조간 맞지 않을것 같은 조합을 사용하여, 모든종류의 아이디어들 시험해보는, 잼 세션의 격렬한 기간이 그후를 더했다.

samla mammas manna의 이름은, 실제가 어떻든 그냥 봐서는, 스웨덴 아이들의 언어 유희적 말장난으로부터 나온것이었고, 그것은 넌센스를 모아 하나의 집합을 만드는 밴드명으로 적당해 보였다. 1970년 여름 smala mammas manna라는 이름으로 uppsala의 메이져 페스티발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했다. 공연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독립레이블인 silence는 즉시 이후의 앨범계약건을 제안했다. samla는 바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1970년 8월부터 가을까지 그들은 이 보기드물며 매우 충격적인 라인업으로 첫번째 데뷰 LP를 녹음했다. 스웨덴에서의 대규모 투어와 TV 콘서트 참가, 그리고 마침내 1971년 봄, 첫번째 데뷰앨범을 발매했다. 기이하며 약간은 촌스러움이 더해진, 로우파이한 잡동사니의 뒤섞임같은 앨범커버 아트와 마찬가지로 데뷰앨범은 불가사의하며, 정제되지 않은 듯한 향후 samla의 사운드를 정확히 암시한다.
때때로 촌스러운 산타나가 아방가르드밴드에 참가한것 처럼(기타가 없어서), 때로는 불규칙적인 스웨덴 문화(그것을 규정하거나 설명하기 불가능한 포괄적형태로써 그밖에 달리 어는 곳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모든종류의 혼성물같았다. 응집된 전체 만큼이나 짧은트랙들의 모음으로 놀라웁게 엉켜붙어 있다.

-- 장신고 2003-6-10 1:09 am

  • 두번째 시기

1971년 여름, 새롭고 뛰어난 작곡과 몇번의 콘서트 그리고 두번째 앨범에 대한 계획 이 모든 아이디어를 두고 퍼커션과 콩고 주자인 베벤이 밴드를 떠난다. 그러나, 그동안 잠라는 트리오로 TV 콘서트와 Rikskonserter에서 개최하는 공연 투어에 참가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후 네번째 멤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고, 그 네번째 맴버를 계속 찾았다. 1972년 여름 페스티벌 gig동안 재즈 기타리스트인 코스테 아페트레아(coste apetrea)와 함께 jam을 한후, 잠라는 음악적으로도 좋은 공감대를 가질수 있는 그를 초대하여, 투어에 동참하게 한다. 코스테는 투어에 동참을 허락했을 뿐만아니라, 이후 고정맴버로 참여하게 된다.

라스 홀머는 스웨덴 전역에서 그리고 노르웨의 몇몇 지역에서의 수많은 기그들은 매우 창조력이 넘치는 기간이었다고, 1973년의 봄과 여름에 대해 말한다. 기타리스트의 참여는 잠라에게 그들이 필요로하는 자유를 얻게 했으며, 록과 재즈의 요소들을 더욱 강력한 혼성을 통해 뒤섞을 수 있게 했다. 코스테는 매우 화려하고 능숙한 기타리스트였으며, 이로인하여, 음악은 더욱 복잡다단하게, 작곡은 더욱 길게 되었다. 앨범 Måltid을 통해 궁극적인 잠라 맘마스 만나의 사운드가 탄생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에너지(energy)와 활력(dynamics)의 균형적인 조합을 기반으로 한 복잡한 chopping(곡의 진행이 갔다가 섰다가 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잠라 특유의 곡진행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 같다)과 변화로 구성된 음악이며, 포크의 테마와 즐거움, 유머, 때때로는 완전히 괴팍스러우며, 환상적인 코메디로의 전환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가사부분은 스웨덴어와 영어의 횡설수설하는 넌센스의 혼합물이다.(말이 안되는 그냥 뭐 그런거)이다.넌센스 이름을 가진 밴드의 넌센스한 가사의 사용이라! Måltid는 예측하기 힘든(unpredictable), 동시에 매우 매력적인(fascinating)앨범이 되었다.

-- 장신고 2003-6-24 4: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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