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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9182
2008.12.29 (21:53:21)
Ratings: 
 
ARTIST:  De De Lind 
ALBUM TITLE:  Io No So Da Dove Vengo E Non So Dove Mai Andro'. Uomo E'll Nome Che Mi Han Dato 
YEAR:  1973 
COUNTRY:  Italy 
GENRE:  Italian Symphonic Prog 
LABEL:  Mercury 
TRACKS:  1. Fuga e Morte
2. Indietro nel Tempo
3. Paura del Niente
4. Smarrimento
5. Cimitero di Guerra
6. Voglia di Rivivere
7. E poi 
MUSICIANS:  - Vito Paradiso / vocals, acoustic guitar
- Gilberto Trama / flute, saxophone, keyboards
- Matteo Vitolli / guitar, percussion, piano, flute
- Eddy Lorigiola / bass
- Ricky Rebajoli / drums, percussion 
원본출처:  http://koreanrock.com/wiki.pl?DeDeLind 


Brian Eno의 본명처럼 긴 이름을 지닌 뮤지션이 없듯이 아마도 이렇게 긴 제목의 앨범 타이틀을 내걸은 그룹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흔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앞의 이태리 Rock백과사전에서도 다루고 있는 그룹이지만, De De Lind의 유일한 그리고 긴 제목의 앨범을 조심스럽게 AR Review에 올려본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노동절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들은 데뷔무대에서 Jazz Rock을 접목한 독특한 음악을 들려주고자 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기간동안, 첫 앨범이 발표되기 이전까지 이들은 그저 평범한 밀라노 청년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의 화제작 “Io No So Da Dove Vengo E Non So Dove Mai Andro'. Uomo E'll Nome Che Mi Han Dato.(어디로부터 오고, 어디로 가야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름을 부여했다.)”가 발표된 후 그들에 대한 주위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첫곡 ‘Fuga e Morte(도피와 죽음)’는 뛰어난 기타리스트 Matteo Vitolli의 활약이 가장 돋보이는 곡이다. 그의 연주로 인하여 레코드취입의 첫관문인 레코드사측의 오디션을 De De Lind는 통과할 수 있었다. 이 곡은 멤버들 간에 “천국에서의 삶”이라는 부제로써 불리우기도 했을만큼 그룹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곡이다. 상큼한 플륫연주와 티없는 보컬파트도 이 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안정감 있게 전개되는 평범한 Rock넘버 ‘Indietro nel Tempo'가 끝나면 이 앨범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아름다운 곡 ’Paura Del Niente(무상의 마음)sms 이태리 Rock의 전형적인 서정미와 긴장감을 주는 엑센트를 겸비한 훌륭한 곡이다. 곡구성이 매우 뛰어나 낭만적인 멋 박력감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신선함등을 차례대로 들려주고 있다 앞곡에서 아름다움을 선사했던 Giberto Trama의 플륫솔로가 ’Smarrimento(분실)‘에서는 그 고상한 멋을 잃어버리고 거칠은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Cimitero Di Guerra(전쟁의 슬픔)dptjsms 중후한 연주와 슬픔에 잠긴 보컬에 의해서 매우 진지한 분위기를 유지시키고 있다.

첫곡 ‘Fuga e Morte(도피와 죽음)dptjdml 갈등에 대한 부제를 다시 도입하고 있다. 가장 Progressive Rock적인 요소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다음곡인 ‘Voglia Di Rivivere'도 앞곡들의 곡들과 같은 분위기로 전개되어, 우리들이 식상하게 될 무렵 마지막 곡 ’E Poi'는 우리의 허를 찌르는 명쾌하고 짧은곡이다. 그들은 “이런 곡도 있지!”라고 우리들을 비웃는다. (성시완)

 

 

 

이탈리안 록의 멋과 여유 - 데 데 린드의 유일작 한 때 이탈리안 록이 아트 록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저먼 록이나 프렌치 록은커녕 브리티쉬 록 음반들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을 때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저먼 록의 경우 전자 음악 계열의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렌치 록은 재즈 록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지금 생각해도 ‘록’의 개념에 충실했던 아트 록 작품이라면 역시 브리티쉬 록과 이탈리안 록인 셈이다.
특이할만한 점은 이태리의 경우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대부분의 아트 록 작품들이 1970년으로부터 약 5년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태리에서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록 음악을 지원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스웨덴 같은 북유럽의 경우는 정부에서 록 음악인들을 자국의 문화 진흥책의 일환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지만 이태리의 경우도 과연 그러했을까.

70년 초기 이태리 아트 록 씬 60년대 중반기만 하더라도 이태리의 젊은 대중음악을 주도하고 있었던 것은 비트 그룹들이었다. 그들은 롤링 스톤즈나 비틀즈와 같은 영국의 록 음악에서 영향받은 단순하면서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연주했으며 되도록 그들이 모델로 삼았던 그룹들과 비슷하게 들리고 보여지도록 노력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우드스톡 페스티발과 플라워 무브먼트의 물결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그들은 대중음악도 진지한 사회성을 담을 수 있으며 젊은이들을 고양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소비 상품이나 유흥을 위한 것이 아닌 작가의 창조성이 담겨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네시스나 VDGG, 젠틀 자이언트와 같은 영국의 선구적 아트 록 그룹들의 이태리 공연은 젊은이들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 수많은 신생 그룹들이 탄생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진보적 젊은이들의 정직한 문화가 보수적 세력 그리고 정부에게 그다지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이 그들을 이해하기는 아직 시기 상조였다. 그들이 공연할 장소를 쉽사리 찾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들이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 기폭제가 된 것은 좌익 정당의 호응에 힘입어 열리기 시작한 페스티벌이었다. 좌익 정당은 페스티벌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통로로서 가능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일 발레토 디 브론조, 오잔나, QVL, 뉴 트롤스 같은 그룹들이 비로소 대중들의 관심 대상이 되기 시작했으며 그 밖에도 수많은 아트 록 그룹들이 생겨났다.
이들이 이전 비트 그룹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영국의 록 음악에서 나타난 새로운 양식과 실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자국의 감성과 전통을 접목시킨 독자적 음악 세계를 구축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의지 속에서 재즈와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 그리고 록을 교배한 수많은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자신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영국의 아트 록 작품들과 이들의 차이는 영국의 것이 하드한 비트에 기초하면서도 때때로 냉철하게 계산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 반해 보다 감성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상투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이탈리안 록에는 그들 특유의 다혈질적인 열정에 기초한 멋과 여유가 듬뿍 배어있다. 그 대표적 예 중 하나가 바로 본 작인 그룹 데 데 린드(De De Lind)의 유일 작이다. 데 데 린드 프랑스의 트래드 포크 록 그룹 마리코르느(Maricorne)의 여섯 번째 앨범과 함께 긴 제목으로도 유명한 본 작 「Io Non So Da Dove Vengo. E Non So Dove Mai Andro. Uomo E'Il Nome Che Mi Han Dato(나는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다. 인간은 그들이 내게 부여해준 이름이다.)」를 발표한 데 데 린드는 이태리 아트 록의 황금기였던 1969년부터 1973년까지 활동한 밀라노 출신의 5인조 밴드이다. 1969년 (Anche Se Sei Qui/Come Si Fa), 1970년 (Mille Anni/Ti Devo Lasciare), 1971년 (Signore, Dove Va?/Torneremo Ancora) 등의 싱글을 발표하며 주로 페스티벌 참가 등 라이브 활동에 주력한 이들은 1973년 유일한 앨범인 본 작 「Io Non So…」를 머큐리(Mercury) 레이블을 통해 발표한다. 어떤 의미에서인지 입을 잔뜩 틀어막고 있는 석상의 가슴에 붉은 색의 하트가 새겨져 있는, 마리오 콘베르티노(Mario Convertino)의 인상적인 커버 아트에 포장된 일곱 곡들을 이제 차례로 들어보자.

긴장감이 감도는 팀파니 연주로 시작하는 (Fuga E Morte)는 첫 곡치고는 매우 정연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교도적인 감상과 클래식의 웅장함을 혼합한 도입부와 어딘지 허술하게 느껴지는,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여백이 담겨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하드 록을 연주하는 중반부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와 플루트 연주에 의한 마무리. 비슷한 시기의 이탈리안 록 예컨대 오잔나나 라테 에 미엘레의 곡들을 이미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매우 친숙하게 다가오는 전형적인 전개 방식이다. 끊임없이 계속 이어지는 (Indietro Nel Tempo)는 단순한 비트와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소박한 곡으로 다음 곡을 준비하는 인터메조 정도로 생각하면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들으면 실력 미달의 연주인들이 싸구려 악기로 연주하는 하드 록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곡 중간에 제법 출중한 부분들이 삽입되어 있어 이들이 의도적으로 기교를 감추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역시 이후 담겨진 곡들을 들어보면 이러한 의심이 사실이었음을 쉽게 알게 된다.

만약 본 앨범에 담겨진 곡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을 하나 고르라면 필자는 세 번째 곡인 (Paura Del Niente)를 꼽을 것이다. 한 곡으로 되어있지만 실은 성격이 다른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어 짧은 조곡으로 볼 수도 있을 이 곡은 그들 특유의 부드러움과 여유 그리고 격정을 7분 여의 시간 속에 매우 경제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각 파트의 연결 부분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 한가지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매력적인 곡임에는 틀림없다.
이안 앤더슨에게서 영향받았음직한, 클래식과 록 사이를 오가는 플루트 연주가 인상적인 (Smarrimento), 연이어지는 (Cimitero Di Guerra)는 이전의 곡들에 비해 복잡하고 극적인 구성을 담고 있어 이들의 음반이 아트 록으로 분류되는 데 크게 한 몫하고 있는 곡이다. 음악적으로는 본 앨범 중 가장 뛰어난 곡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곡 「Voglia Di Rivivere」와 「E Poi」에서의 어쿠스틱 기타와 강렬한 비트에 의한 마무리는 여운과 아쉬움을 남긴다.

무제오 로젠바하의 「Zarathustra」와 같은 강렬한 속도감이나 꽉 짜여진 긴장감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데 데 린드는 소박하면서도 빛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유와 멋의 아트 록을 선사하고 있다. 이 앨범 이후 그룹은 해산되었고 보컬리스트였던 비토 파라디조만이 몇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뿐이다. 아쉬운 일이다.
글 / 전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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