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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0 (03: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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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레시브 메틀에 관하여...
어느 장르의 음악을 듣던지 훌륭한 아티스트와 그렇지 않은 아티스트가 존재하듯이 또한 좋은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이 존재하게 된다. 그것을 않은 음악이 존재하게 된다. 그것을 나름대로 취사선택하는 것은 매니아 나름대로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것을 포기한채 ‘이런 음악은 어떻다. 저런음악은 어떻다’하며 여론을 자신도 모르게 어지럽히는 행위는 가히 무책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이러한 글을 시작하려 하면 본론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음악의 미학에 관한 견해를 장황하게 떠올리게 되는데, 지금은 이정도에서 그만 끝마치려 한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레시브 메틀’(이하 PM으로 약칭)이란 애매한 주제를 고찰해 나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끝끈내 사족을 달고말 수 밖에 없는 것은 음악을 평가하는데 너무 급급한 나머지 그뒤에 가려져있는 뮤지션들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음악이 ‘너무 가볍다.’든가 ‘무게가 있다’는 것은 음악을 다루는 아티스트가 어느면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다른 각도로 반사되기 마련이다. 그 어느 쪽이던 반사 되기전 거울뒤에 숨겨진 그들의 모습은 모두 진지하기 그지없다. 때문에 표면에 나타난 느낌만을 가지고 음악 자체를 단정해 버리는 매몰찬 행위는 모두 삼가토록 하자. 그것만이 우리나라를 하루라도 빨리 문화선진국의 자리로 이끄는 지름길이리라. (각설하고) 현재 유심히 관찰 하려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틀’이라는 모호한 장르의 음악도 프로그레시브 팬들의 욕구를 대리충족 하기에는 미비한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아직까지도 프로그레시브 메틀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는 ‘PM팬’, 즉 하나의 분리된 음악 장르로서의 PM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옳을 것이다. 따라서, 굳이 불필요하게 장르를 갈라놓는 이러한 작업을 시도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남는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이글을 끝까지 읽어나가기조차 힘들게 된다. 부디 여러분은 모두 마음의 편견을 잠시 접어두시기를...
그럼 우선 ‘과연 프로그레시브 메틀이란?’하는 질문을 던져보자. 어원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프로그레시브 락+헤비 메틀’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어휘만을 놓고 살펴본다면 이에 부합되는 밴드들은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된다. 실제로 60년대말, 70년대초부터 본격적인 하드 락의 역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이 두음악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밴드는 쉴새없이 나타나다가 소멸해 갔다. Iron Buterfly(특히 누구나 다 아는 <In A Ga Da-Da-Vida>)나 Vanila Fudge-특히 도노반의 명곡을 리바이벌한 <Season Of The With>와 같은 작품에서 같은 밴드는 유럽의 실질적인 싸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밴드들과는 별개의 독특한 실험성을 표출했고, 딥퍼플이라는 베테랑 하드락커들의 초창기 3매의 앨범들 (특히나 2번째인 [Deep Purple And The Royal Philharmonic Orhestra])이나 레드 제플린의 명반 [Physical Graffiti]에 수록된 명곡 <Kashimir>에 부여된 고도의 실험성이라든가, 쥬다스 프리스트의 초기 작품속에서 엿보이는 헤비함과 복잡기묘함의 공존속에서 우리는 바로 PM이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발견해 낼 수 있다. 반면에 Nice나, EL&P의 [Tarkus]앨범에서 나타나는 파괴력이나 National Health, Colosseum등의 째즈락 밴드나 Marsupilami와 같은 싸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밴드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공격적 특성은 당시의 하드락 밴드들과도 연장선상에 놓을 수 있는 것으로 프로그레시브 밴드들 역시 당시의 여타 밴드들과 함께 헤비함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 두가지 음악의 혼합이란 두 음악의 적절한 융합에 따른 새로운 음악의 창조가 아닌, 양쪽 음악의 적당한 비율의 배합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는 싸이키델릭과 하드락의 구분이 명백하지 않았고 양쪽의 서로 다른 음악을 하는 그룹간의 멤버 교환도 성행했다. 즉, Gary Moore, Neil Murray, Don Airey, Simon Philips등의 뮤지션들은 양쪽 집안을 번갈아 드나들었으며,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여기저기에 명함을 내밀기 보다는 될수 있으면 양쪽중 한 분야에서 자리를 굳히는 모습을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이미 20년 이상이나 지난 현재로서는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기가 쉽진 않지만 아마도 당시는 락의 뿌리가 막 심어지고 있었던 형성기였기 때문에 당시의 음악의 모습 역시 결합보다는 자연스럽게 분열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 된다. 그러므로, 당시의 하드락이나 프로그레시브락 밴드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양면성 (공통점)은 두 장르의 혼합이라는 관점 보다는 한 음악이 두 장르로 갈라지는 분기점에서 나타나는 영감의 상호 교환, 혹은 장르의 혼돈 이라는 시각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이후 계속 이어지는 락 음악계의 상황은 더욱더 분열 일변도로 진행되어 세분화의 길을 걷게 된다. 락 팬은 더욱 더 헤비한 것을 원하고 있었고 프로그레시브 락은 동시에 나름대로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번성하게 된다. 따라서, 쥬다스 프리스트의 앨범에서 <Epitaph>나 <Victim Of Changes>와 같은 드라마틱한 곡은 영영 자취를 감추게 되며 딥 퍼플은 <Machine Head>앨범을 기점으로 해서 헤비사운드의 제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클래식과의 타협을 계속 시도해가던 키스 에머슨의 열정은 [Works Vol. 1]에 수록된 스스로 작곡한 <Piano Concerto No.1>이란 형태로 과다 표출되었으며, 초창기 시드 베리트시절로 대표되는 핑크 플로이드의 싸이키델릭한 광기는 로져 워터스의 가입으로 인해 이지적이고 시니컬한 형상으로 점차 변모되어가기 시작한다. (초창기에 다소 싸이키델릭하였던 데이비드 길모어의 기타 연주가 이후 점차 에릭 클렙튼 못지않은 블루지한 방향으로 진화해 가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또한, 한때 인기를 누리던 영미의 싸이키델릭 밴드들은 그들의 본거지인 언더그라운드로 돌아가거나 대부분 소멸해 버린다.
이후 계속 된 변동 상황은 락 팬이라면 누구나가 익히 알고 있으려니와 몇 년의 세월이 흐른뒤 70년대 말에 접어들면 두 장르(HR/HM과 프로그레시브 락)의 공통점이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게 된다. (당연한 일로 쌍방의 뮤지션들간의 영감의 상호 교환 역시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후 닥치는 세계적인 석유파동에 이어 HR/HM과 프로그레시브 락은 거의 동시에 파국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어느 쪽이나 무기력하게 중흥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 프로그레시브 메틀의 성립과 발전
80년대에 락은 다시 부흥의 기회를 맞는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던 영국 락커들의 미국 재침략(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은 현재 헤비메틀계의 막강한 두줄기가 되는 LA메틀이라는 반향과 슬래쉬 메틀이라는 후신을 탄생시키며, 락의 전국 시대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계기가 된다. 이 두 장르의 출현이 몰고온 파급 효과는 지금까지의 어떤 사조의 출현과도 비교할바가 아니어서, 이후 출현(혹은 데뷔) 하는 수많은 락 밴드들은 이 두 문파의 영향권 아래에서 번성하게 된다. 그리고, 침체의 늪을 걸어온 프로그레시브계 역시 충격적인 현상을 경험한다. 바로 마릴리온이라는 스타의 출현이다. 마치 70년대로 타임슬립을 한듯한 이들의 음악은 제네시스, 예스나, EL&P등에 많은 향수를 느끼고 있던 팬이나 평론가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이들은 중심인물인 Fish의 탈퇴 직전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면서 명반 [Script For A Jester's]를 남겼다. 또한, 6~70년대에 HR/HM과 다양한 영향을 상호 교환했던 싸이키델릭은 80년대의 메틀과는 전혀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기타리스트들은 자연스럽게 퍼즈 박스에서 콤팩트 이팩터로, 이팩터에서 다시 다양한 성능을 지닌 랙 스타일의 멀티 사운드 프로세서를 선화하게 되면서 6~70년대의 싸이키델릭 사운드와는 작별을 고했다. 단지 최근의 포스트 펑크 무브먼트(Post Punk Movement, 한 일본 음악잡지에 실렸던 용어인데, 꽤나 적절한 표현인것 같아서 인용하였다.)의 붐을 타고 새롭게 등장한 Ministry, Sound Garden, God Flesh, Fudge Tunnel등의 밴드들이 일부 과거 싸이키델릭의 면모(낡은 퍼즈 기타사운드)를 지니고 있을뿐이며, 그밖에도 Dukes Of Stratospher와 같이 전형적인 60년대의 사운드로 80년대에 데뷔한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현재는 활동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이야기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제부터는 바햐흐로 프로그레시브메틀이라는 장르의 출현을 지켜볼 차례이다. 이러한 성향을 띄는 밴드들은 찾아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닐지라도 이 같은 스타일의 밴드들이 다른 여타 장르의 뮤지션들처럼 성행해서 서로 영감을 주고 받았으리라고는 전혀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혀 공통점을 갖지 않는 밴드들을 모아 집합을 만든다는 것은 극히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아보아야 할 것은 바로 프로그레시브 메틀이란 음악의 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밴드이다. 여기에 우선적으로 중요시해야 할 것은 헤비메틀밴드가 프로그레시브한 면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상당수의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에게 진보적인 면을 갖추게 됨에 있어서가장 큰 수단으로 이용되어진 클래식의 도입이었다. 그러나, 헤비메틀에 있어서 클래식의 도입은 프로그레시브 메틀의 성립이 아닌, 잉베이 맘스틴이라는 한 젊은 천재에 의해서 전혀 예측되지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났다. 클래식에서 영향받은 대부분의 프로그레시브 락 뮤지션들은 바하, 베토벤,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을 누가 더욱 더 특이하게 표현하느냐에 정력을 소모하고 있었지만, 잉베이는 클래식의 고상함을 자신의 프레이즈에 그대로 자연스럽게 그야말로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방법으로 흡수하였다. 그리하여 이로 인해서 파생된 클래시컬메틀(속칭 바로크 메틀)은 토니 메컬파인과 비니 무어에 의해 계승되어, 조이 태폴라등에 의해 기초가 부실한 확장공사만을 거듭했다. 다시 말하지만 잉베이 맘스틴은 클래시컬 메틀의 창시자임과 동시에 완성자였다. 따라서, 그뒤에 섣불리 이 장르를 섭렵하고 나타난 새로운 기타 영웅들은 너나 할것없이 잉베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해야만 했다. 클래식은 우아한 멋을 가져다 주었지만, 헤비메탈의 작법 전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멋은 헤비메틀밴드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함께 수용될 수 없었으며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헤비 메틀일수가 없었다. (잉베이가 시도한 것도 ‘우아한 프레이즈’였을 뿐이다. 그의 음악은 모두 나름대로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그렇다면 과연 PM이라는 음악을 구사하는 뮤지션들이 프로그레시브 락음악에서 얻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PM 밴드들이 진보적인 면을 갖추기 위해 프로그레시브 락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은 바로 드라마틱한 전개방식이었다. 전혀 예측불허의 다양한 전개는 헤비메틀의 파워를 전혀 갉아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때로는 더욱 박력을 더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PM 많은 밴드들이 있기까지 확고부동한 선구자 역할을 한 밴드는? 여러 밴드들이 우선적으로 떠오르겠지만, 필자가 임의로 선정하고자 하는 밴드는 바로 Rush이다. 혹자는 Hawkwind등과 같은 일련의 스페이스 락 밴드들을 추천할지도 모르겠으나, 이들의 연주는 지금 현재의 헤비메틀 밴드들과 연장선상에 놓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갭이 있다. 이에 반해 [2112], [Moving Pictures], [Pamernent Waves]등 일련의 걸작에서 이들이 연출해 보인 치밀한 구성과 하드한 연주는 바로 지금부터 다루고자 하는 PM의 지표로써 전혀 부족함이 없다. 즉, 이들은 프로그레시브 그룹임과 동시에 헤비메틀 그룹인 최초의 밴드였다. 따라서, 이제부터 이야기는 러쉬의 결성과 함께 시작한다.
하드락과 프로그레시브락이 거의 함께 태동할 즈음인 1969년 고교 동창생인 Geddy Lee(Vo, B. Key), Alex Lifeson(G), John Rutsey(Dr)의 트리오 편성으로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발족된 러쉬는 약 4년간 클럽 생활을 청산하며 74년 데뷔 앨범 [Rush]를 발표한다. 당시의 락씬에서 보았을 때는 거의 전무후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게디의 히스테릭한 보컬을 내세운 러쉬는 재주꾼 게디와 알렉스의 고군분투로 인해서 그들의 이름을 캐나다 락팬들의 머릿속에 아로새기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게디의 강력한 보컬과 변화무쌍한 베이스, 알렉스의 정교한 기타워크에 비해서 존의 드러밍은 너무나도 빈약하기 그지 없었고, 상당히 단순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결국 이러한 부실함은 이들의 데뷔앨범의 평을 그저 단순히 “제플린의 아류”로 일축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존은 결국 데뷔 앨범을 끝으로 그룹을 등지고 만다. 이후 새로이 가입한 드러머 닐 퍼트(Neil Peart)는 러쉬에게 있어서 중대한 음악적 전기를 마련해준 인물이다. 그는 러쉬의 작업 체계에 있어서 가사를 전담함으로서 작곡을 하는 게디와 알렉스와 함께 완벽한 콤비를 이루었으며, 프로그레시브 락 드럼의 선두 주자인 빌 브로포드나 칼 팔머와 비교해서 거의 동일한 선상에 있는 그의 섬세한 드러밍은 트리오라는 최소한의 편성에도 불구하고 그룹의 음악을 매우 폭넓게 감싸주는 역할을 하여, 그룹의 사운드의 폭은 전에 비해 배이상으로 넓어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두들긴다’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수많은 락드러머들에 비해서, 진지하게 ‘연주한다’는 느낌을 주는 그의 드러밍은 초창기 허술해 보였던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들과 비교하여 음의 빈공간을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커버해 냈고, 그의 심오한 가사는 (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겠지만) 캐나다 대학가에 러쉬의 가사를 연구하는 써클까지 탕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닐의 가입후 3번째 앨범(그룹으로서는 4번째)인 [2112]는 러쉬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지닌다. 소위 말하는 ‘걸작’ ‘명반’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 앨범은 최초로 만들어진 프로그레시브락과 헤비메틀의 공존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제풀린의 아류’가 아니었고, 2112년의 상상의 도시 Megadon을 배경으로한 A면의 콘셉트 구성은 그룹의 무한대의 재능을 표출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이들은 22년이 넘는 세월동안 멤버교체없이 무려 18장의 앨범을 공개하는 저력을 보이며 안정된 항해를 계속한다. 그러나, 그후 계속된 음악계의 상황은 결코 안정되고 낙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앨범인 [2112]가 아무리 뛰어나고, 센세이셔널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뒤를 이을만한 이 방면의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곧 PM의 독립된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사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결코 조류를 형성하지 못했으며, 그들에 대한 찬사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에 대해서가 아닌 ‘러쉬만의 독특한 음악스타일’에 관한 것이었다. 더욱더 슬픈사실은 그들의 음악적인 변화였다. 80년대로 들어오면서, 러쉬 스스로가 그들만의 스타일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러쉬의 음악은 점차로 소프트한 방향으로 진행되어갔으며, 90년작인 [Presto]에 도달하게 되면 이들에게 예전과 같은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면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게디의 보컬 역시 예전과는 달리 매우 편안한 느낌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쨌거나, 이러한 인재의 부재가 겨우 끝을 보게 되고, 이 분야에 새로운 스타를 맞이하게 된것은 러쉬의 [2112]앨범 발매이후, 무려 8년만인 1983년이 되어서 이다. 그 새로운 영웅은 바로 Fates Warning이라는 철학적인 이름을 지닌 미국의 코네티컷 출신의 밴드였다. 82년에 결성된 이들은 83년 데뷔 앨범 [Night On Broken]을 발표한 것을 기점으로 해서 91년도 최근작인 [Parallels]에서 Queensryche스타일로 변모하기까지, 당시 한창 떠오르던 슬래쉬 메틀의 사운드와 예측불허의 악곡, 신화적인 가사, 리드 보컬리스트인 존 아크(John Arch)의 서사적인 장엄한 보컬,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청난 스케일을 주무기로 하여 ‘프로그레시브 헤비메틀의 거장’의 위치를 고수한다. 후에 존 아크는 수려한 용모의 보컬리스트 레이 앨더(Ray Alder)와 교체되고 만다. 같은 하이톤이면서도 웅장한 매력을 지닌 존의 목소리와는 달리 상당하 섬세한 부분의 감정표현까지도 자연스럽게 처리해 버리는 레이의 보컬은 그룹의 사운드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연한 귀결로, 밴드의 음악은 팝적인 노선으로 변모한다.
키보드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더군다나 슬래쉬 메틀의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었던)페이츠 워닝의 음악, 즉 Progressive Rock 을 잇는 정통적인 프로그레시브 락의 고전들과 어느정도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냐고 물으려 한다면, ‘전혀 없다’는 대답이 의외로 쉽게 나올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전성기에 폭발시켰던 실험적인 요소는 다른 밴드들에게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것이었고, 이들의 악곡 역시 매우 뛰어난 것이었다. 이들은 90년도 앨범인 [Perpect Symmeetry]에서까지도 훌륭한 작법을 보였고, 최대한의 실험성(즉, 비상업성)이 부여되었던 몇 장의 앨범을 남기고 이들은 이 분야(PM)과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 이후 여러 PM들이 비록 소수지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비록 이들의 출현이 페이츠 워닝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특이할만한 사실이다. Watchtower, Dream Theater, It Bites등 이들의 등장은 주로 메틀 팬들의 눈을 통하여 목격 되어졌지만, 이들의 음악은 실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힘겹게 등장하였다는 느낌이 강하다. 처음, 러쉬의 등장때에는 러쉬 이외에 PM밴드라는 이름을 붙일 마땅한 밴드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생성된지 10년이 훨씬 지난 뒤에야 비로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음악의 존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메틀 앨범들
(이부분은 따로 앨범별로 해서 Album Review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112] RUSH(1976)
[Awaken The Guardiam] FATES WARNING(1986)
[Control And Rsistance] WATCHTOWER(1989)
[Step] SI EGES EVEN(1990)
[Unmaker Of The Worlds] GOLGOTHA(1990)
[Into the Depths of Sorrow] SOLITUDE AETURNUS(1990)
[King Of King] KING OF KING(1991)
[The Key] NOCTURNUS(1990)
[Forest Of Equilibium] CATHEDRAL(1991)
[Unquestionable presence] ATHEIST(1991)

*최후 변론
이글을 변론이라고 구차스럽게 이름붙인 이유는 이글이 나간 뒤 거의 피할길 없을 듯 싶은 수많은 비난에 대비하고자 함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오래전부터 앞의 Fates Warning이나 Siegers Even같은 그룹들의 앨범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 헤비메틀이지만 헤비메틀 이상인 것, 프로그레시브 락은 아니지만 상당히 프로그레시브한 앨범등에 관한 것 등이다. 얼마되지 않는 설명에 이처럼 방대한 양의 앨범 가이드가 첨부된 이유는 순전히 앞의 설명의 완전했다면 이러한 앨범가이드가 필요조차 없을 테지만, 설명만으로 PM의 개념을 도저히 나타낼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구성을 하게 된 것이다. 이미 앞의 글을 통해서 느끼신 분도 계시겠지만, 지금 이글에서는 성행하는 장르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PM의 ‘쟝르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본 것이다. 또한, 앞의 앨범들의 예에서 보았듯이 이글에서 다룬것은 결코 ‘헤비한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가 아닌 ‘프로그레시브한 헤비메틀 밴드’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본잡지의 일부(혹은 대다수의) 독자층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러쉬를 중심으로한 스토리가 필자의 머릿속에 기본노선으로 정해져 있었기에 그대로 밀고 나갈길 밖에는 없었다. 만약 두 부분을 모두 다루려 했다면 훨씬 많은 양의 엄청나게 거대한 지면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이점 양해 바란다. 그리고, 이 글에서 미흡했던 부분(즉, 헤비메틀적인 특성을 지닌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에 대해서는 향후 필자보다 휠씬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자료를 가진 분에 의해서 다시 한번 다뤄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비록 러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가기는 했지만, 만약 앞서 소개한 그룹들을 모두 러쉬와 동일한 연장선상에 놓고, 대할수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필자 역시 고개를 갸우뚱할 도리밖에 없다. 앞의 밴드들은 모두 필자가 한동안 생각한 끝에 힘들여 선정한 밴드들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료의 부족으로 Dream Theater나 It Bites와 같은 주요 밴드가 빠져 있음을 본인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와 같은 실책을 감추려는 것은 아니나 앞에 소개된 밴드들은 모두가 예전의 그 어느 그룹과도 비교하기가 힘든 독특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팀들이다. 모두가 가지각색의 작법을 지닌 팀들이니만큼, 각각의 음악성 역시 상당히 둘쑥날쑥하기는 해도 이들이 앞으로 계속 음악성을 키워 나간다고 가정했을 때, 수년뒤에는 훨씬 더 다양한 기사거리가 되어 있을줄로 믿는다. PM은 이제 결코 러쉬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금만 주위에 귀를 기울여보라. 강력함과 고상함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글 : 이  원
                                                                                        1992년 Artrock 제2호

(글을 쓴 시점이 현재가 아닌 1992년이다보니 지금의 시점에서 봤을때와 다른시각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글은 당시의 시점에서 쓴것이고, 아트락지에 소개된 내용을 읽어 본다는 의미로만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2008.12.16 (00:05:24)
프럽
좋은정보 감사합니다..제블로그에 퍼갑니다.  hunchuri.tistory.com      좋은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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