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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31 (02:18:55)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7회
IV. Progressive Rock 그룹의 유형

3. 가장 중요한 악기파트는?... Keyboards!!!Progressive Rock그룹들이 사용하는 악기들의 종류는 다른 부류의 음악인들이 사용하는 것에 비하여 매우 광범위하다. 세계의 전통 민속악기로부터 고전악기 그리고 최첨단의 전자악기가지 아무런 제약없이 거의 모든 악기들이 사용된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주로 사용하는 악기 파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역시 Keyboards일 것이다.

지난호에서 우리는 Progressive Rock 그룹들이 다른 악기 파트보다도 키보드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그라나 키보드가 가장 중요한 악기 파트임에도 불구하고 키보드 주자가 리더로 군림했던 팀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앞서 언급한 트리오 형태의 Progressive Rock그룹들은 대부분 키보드 주자가 리더로 팀을 이끌었던 반면, 그 이상의 멤버들을 지닌 그룹들은 리드 기타와 보컬 그리고 작곡, 작사를 담당한 멤버가 주로 리더로 나섰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룹의 결속과 통솔력을 위해 음아과 관계 없이 리더가 결정되기도 한다. 아무튼 키보드 주자가 리더이건 아니건 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Progressive Rock에 있어서 키보드 파트가 압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A. Acoustic Piano
AcousGrandPiano.jpg피아노가 언제 발명된 것인지 정확히 대답해줄 수 있는 역사적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18세기 초 경 개발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Harpsi-chord와 Clavichord를 모체로 개발된Piano의 초기 모델은 이태리의 Harpsi-chord 제작자 Bartolommeo Cristo-fori(1655-1731)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이 지면에서 피아노의 구체적인 역사를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피아노가 Rock에 도입되는 시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피아노가 Rock에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50년대 Rock & Roll의 탄생과 함께 비롯되었다. 피아노는 댄스파티나 Rock & Roll스타들의 무대에 종종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가장 멋지게사용한 뮤지션은 Jerry Lee Lewis일 것이다. Soul에 있어서는 Ray Charles와LittleRichard등이 피아노를 즐겨 사용했던 대표적인 뮤지션들이다. 그들 외에Pop분야에서 Acoustic piano를 크게 활용한 뮤지션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많지만 Randy Newman, Elton John,Eric Carmen, Christian McVie, BillyJoel(C, Bechstein Grand Piano)등등이 대표적 인물들일 것이다. RandyNewman의 경우는 고전음악 평론가들도찬사를 보낼 정도였고, Elton John은 자신만의 독특하고 복잡한 피아노 라인을선보였다. Elton John의 음악 중에는Progressive Rock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은데, 그는 당시 ProgressiveRock 붐에동참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SixtyYears On](1969년)과 [Funeral For aFriend] (1973년)등은 ProgressiveRock이라 단정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 그는 후에 Steinway를 사용하게 되지만,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피아노는 위의 Progressive Rock작품들에 사용되었던 Bosendorfer Imperial 그랜드 피아노였다. Eric Carmen의 경우 Acoustic Piano로 Pop과 Classic의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 내었다. Fleetwood Mac의Christian McVie는 피아노 스트링에 금속막대를 접속, 자신만의 Honky-Tonk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한편, HardRock이나 Heavy Metal과 같은 강렬한음악 장르에 Acoustic Piano가 사용된다는 것은 누구나 상상하기가 어렵다. 물론, 발라드 곡이 아닌, 강렬하고 시끄러운 음 속에서 피아노 선율을 잡아내기란결코 쉽지 않으나 Blue Oyster Cult의키보드 주자 Allen Lanier를 비롯한 여러 Hard Rocker들은 Helpinstall를 설치한 Acoustic Piano를 사용했었다.Frank Zappa는 생전에 피아노를 능숙하게 연주하지는 못했으나, 작곡할 때는주로 피아노를 사용했다. 그는 어쿠스틱피아노를 "하나의 정교한 타악기"로 인식하고 있었다. 얼마전 까지 많은 키보드연주자들이 현대 신디사이저에 커다란 불만을 호소해 왔었다. 신디사이저는 기계적이기 때문에 차갑게 들리고, 좋은 음질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가고 있으나 양질의 음원을 원하는, 연주력이 뛰어난 뮤지션들은 단연코 Acoustic Piano를 선호한다.그렇다면 Progressive Rock에 Acoustic Piano를 최초로 도입한 인물은 누구일까? Pink Floyd의 Pompeii Live에서우리는 Richard Wright가 검은 그랜드피아노를 전위적으로 두드리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가 연주하고 있는 모습은 진지함보다는 너무 즉흥적이다. 또한그의 연주모습과 연주력은 남들보다 뛰어나 보이지도 않으며, 그의 어쿠스틱 피아노 도입은 Keith Emerson보다는 한참후의 일이었다. 즉, 1967년 the Nice의무대에서 Keith Emerson의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는 정교함에 있어서 다른 고전음악가들에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Moog(Modular System) Synthesizer를 Rock에 최초로 도입한 그였지만 Acoustic Piano를 주요 악기로 부각시킨것에 있어서도 역시 그는 선구자였다. 그러나 그가 Acoustic Piano를 사용한 것은 매우 짧은 기간동안이었다. Keith Emerson은 Acoustic Piano의 사용을 중지하고 좀더 강도가 높은 Yamaha Electric Grand Piano CP-7으로 교체했다.Progressive Rock 그룹의 Keyboardist 대부분은 학창시절 고전음악을 전공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Acoustic Piano는 Steinway가 압도적인데, Rick Wakeman, Camel의 Peter Bardens. B.J.H.의 Woolly Wolstenholme, E.L.0.의 Richard Tandy, Illusion의 John Hawken, Greenslade의 Dave Greenslade, Jethro Tull의 John Evan, Traffic의 Stevie Winwood, Session을 주로 행했던 Nicky Hopkins등이 검은색의 거대한 Steinway 그랜드 피아노를 즐겨 사용하던 뮤지션들이다. 하얀색의 Steinway Grand Piano를 연주했던 Supertramp의 Richard Davis도 Steinway의 광적인 애호가이다.



B. Hammond Organ
자동차의 자동 변속기어 시스템과 소음없는 시계 그리고 입체 영화를 개발한 천재 기계공lhammond2.jpg학자 Laurens Hammond에 의해서 창조된 가장 유명한 발명품은 역시 하몬드 오르간일 것이다. 그가 발명한Hammond Tone Wheel 오르간은 1934년 특허를 얻었고, 5년만에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첫번째 모델은 Model A로 명명되었고 이 모델은 발표되자마자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켰다Hammond Organ의 발명은 곧 전기악기의 상업적인 시대를 예고하는 첫 번째 신호탄 이었다.
첫 번째 Hammond Organ인 Model A 이후 수 많은 모델들이 발표되었는데 그중 Rock Musician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모델은 Hammond B-3이다. B-3와 다른 모델들 RT-3, D-152, C-3, 그리고 A-105등은 기본적인 시스템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단지 콘솔과 페달보드의 차이점에 따라 모델명이 붙혀졌다 B-3의가장 커다란 장점은 유럽에서도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며, C-3는 가장 작은 모델로 운반이 간편했다. 그 후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갖고 있는 Hammond Organ Company는 B-3를 현대적으로 개발한 B3000이라는 모델을 발표했다. 1960년대말, 이러한 하몬드 오르간을 세계적으로 알렸던 Progressive Rock 뮤지션은 역시 Keith Emerson이었다 그는 Nice시절, 주로 두 대의 하몬드 오르간을 동반했는데, C-3와 A-100 Hammond Organ이었다. 그후 E.L.P.시절에는 B-3와 L-100을 사용했다. Hammond Organ을 가장 잘 활용한 인물은 의심할 여지없이 Keith Emerson이다. 그러나 Keith Emerson과 함께 1960년대 말 무수히 많은 Keyboard주자들이 Hammond Organ을 즐겨 사용했고 특히, Progressive Rock에 있어서는 Mellotron과 더불어 중요한 키보드로 사랑 받게 된다. 중후한 Hammond Organ을 들려주는 작품들 중 우리는 Nice의 <Americ>와 Procol Harum의 <A White Shade of Pale>을 쉽게 떠 올릴 수 있다. Procol Harum의 Matthew Fisher는B-3와 M-102 Leslie Speaker와 함께 사용했다. Don Leslie의 Organ Speaker System은 Hammond Organ을 위해 개발된 필수적인 부속물이다(예외로 Peter Bardens는 Schaller Rotosound Unit에 B-3를 접속하여 사용). 대부분의 키보드주자가 B-3를 사용하는데 반해 Patrick Moraz, Kerry Minnear(GentleGiant), Manfred Mann, Eddie Job-son 그리고 Rick Wakeman은 C-3,Jon Lord는 Electric Piano를 탑재한 주문제작 특수 C-3, Mike Ratledge(SoftMachine)는 소형의 주문제작 C-3,Dave Greenslade는 L-100, Richal'dWrite(Pink Floyd)와 Michael Pinder(Moody Blues)는 M-102, Tony Banks(Genesis)와 Noel Scott은 L-122을 사용했다. 그 밖의 유럽 Keyboard주자들은 대부분이 B-3나 그것을 개조한 기종을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C. Mellotron
크기변환_14843_0_0_mellotron.jpgMellotron에 대해서는 이미 AR no.4부터 세 차례에 걸쳐 특집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역사나 기능 그리고 멜로트론 음향이 담겨있는 대표적인 앨범들에 대한 소개는 AR Back Number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Mellotron의 마술사로 불리웠던 Ian McDonald는 Mel-lotron Model 400을 King Crimson의 데뷰작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에 사용한 후, 더 이상 Mellotron을 다루지 않았다. 그는 미국 순회공연 후 그룹을 탈퇴하면서 Mellotron을 Robert Fripp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Robert Fripp은 [In the Wake of Poseidon]부터 그 멜로트론을 사용)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구입이 쉬운 보급형 Model 400(AR. no.5 p. 90참고)을 사용했는데, 1970년대초반의 Mellotron 음향이 담긴 음반들의 99%에 Model 400, 400S가 쓰여졌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남달리 Mellotron음향을 즐겼던 Patrick Moraz는 공연무대에서 3대의 M4OO와 Melloton의 일종인 Orchestron(AR. no.6 pp. 89-90참고)을 사용했고, Mellotron을 Rock에 최초로 도입한 Michael Finder(MoodyBlues)와 Rick Wakeman은 옛 모델인MK-3를 사용했다. Michael Pinder는Melloton을 개조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여 Pindertron이라고 불렀고, Rick Wakeman은 Mellotron의 한정된 음원과 용량 때문에 커다란 불만을 갖고 있었으며 8Track Cartridge를 사용한 Birotron이라는 새로운 장치를 개발하는데 적극 협력하기도 했다. 또한 참고적으로 Paul McCartney의 아내 Linda McCartney는 Mellotron ME-5를 사용했다.



D. Electric, Electronic Piano

(1) Electric Piano
waldorf_zarenbourg.jpg원래 Electric Piano라는 용어는 자동적으로 연주되는 Acoustic Piano를 지칭했다. 서부극이나 옛 영화등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피아노를 볼 수 있었는데,이것은 프로그램되어 담겨진 사운드보드종이(Rolls of Paper)에 의해서 연주되는 것이었다. 그후 B.F.Miessner가 이러한 사운드보드를 배제시키고 각 스트링에 픽업 (Pick-Up) 증폭장치를 설치한 최초의 Electronic Piano를 발명했다.B.F.Miessner는 자신의 특허를 EverettPiano Company(현재, HammondOrgan Company 소유)에 빌려주었고,미국 굴지의 오르간 회사인 Wurlitzer가 Everett Piano Company의 주요한 기능을 전수받아 Reed System을 이용한 Electric Piano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2) Wurlitzer
Wurlitzer ElectricPiano.jpg오르간과는 달리 Wurlitzer ElectricPiano는 금속 Reed를 쳐줌으로써 진동을 일으키게 하고, 그 진동음을 전기적시그날로 변환, 증폭시켜 스피커로 음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고안되었다. 각각의 금속 Reed는 서로 다른 길이와 그 끝에는 땜납의 덩어리로 되어 있어 Wurlitaer는 튜닝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1960년대 초반,Wurlitzer EP 200이라는 가정용이 디자인되었다. 그러나 풍부한 사운드 때문에 Rock Musician들도 즐겨 사용하는 키보드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Supertramp의 [Dreamer]와 Queen의 [You're My Best Friend]라는 곡들에서 Wurlitser의 매력적인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ELO의 Richard Tandy 역시 Wurlitzer를 연주했지만 이렇게 영국 뮤지션보다는 Foreigner의 AlGreenwood, Three Dog Night의 Jimmy Greenspoon등과 같은 미국의 뮤지션들이 Wurlitzer Electric Piano를 선호했다.


(3) Rhodes Electric Piano
Rhodes-779976.jpgRock Musician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Electric Piano는 역시 Fender Rhodes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99%의 뮤지션들이 Fender Rhodes를 사용했다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RockMusician뿐만아니라 ,Jazz Field 그리고다른 분야의 뮤지션들까지도 대부분Fender Rodes를 사용해 왔다. Fender Rhodes는 미공군에 복무 중이던 Harold Rhodes에 의해서 개발되었는데, 그는 세계 2차 대전당시 군병원으로부터 환자들의 사기를 드높이는 방안으로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군복무 중 시간을 내어 2-1/2옥타브를 낼 수 있는 조그만 키보드를 개발했고. 이것은 군부대를 통하여 널리 보급되어졌다. 이 조그만 키보드가 바로 Fender Rhodes의 원조였던 것이다. 그후 Fender Rhodes는 네 종류의 기본적인 모델로 정착되었는데, Stage 73, Suitcase 73. Stage 88, 그리고 Suitcase 88이다. 여기에서숫자 73과 88은 키보드의 Notes 수를 의미한다. Stage모델은 반드시 외부 앰프와 스피커가 별도로 요구된다. 하지만 Suitcase모델은 자체 내에 스테레오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Virato Unit이 장착되어 있다. 그러나 Stage모델은 전원 공급없이 마치 Electric Guitar처럼 작동되며 Suiffase모델은 Main전원 공급으로앰프와 스테레오 Vibrata회로를 구동시켜야 된다. Fender Rhodes의 기계적인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수리도 간편하며, 공연장에 가장 어울리는 Electric Piano로 뮤지션들로부터 각광을 받았다.

(4) 그밖의 Electric Piano
Fender Rhodes에 못지않게 뮤지션들 사이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Electric Piano는 Hohner Pianet과 Clavinetol다. Van Der Graaf Ganerator의 Peter Hammill은 Hohneranet이 다른 Electric Piano보다 널리 보급된 가장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Pianet은 본래 Model N으로 등장, 전원공급이 필요없는 Model T로 향상되었다.Keith Emerson과 Rick Wakeman 그리고 Patrick Moraz등 Progressive Rock계의 거물 키보드 주자들은 Hohner Clavinet을 주로 사용했는데 Pianet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반면, D-6라는 모델로 총칭되는 Clavinet은 리듬 기타의 역할처럼 자유자재로 리듬을 구사할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Hohner Pianet과 Clavinet과 더불어널리 알려진 Electric Piano는 일본의 Yamaha이다. Yamaha는 이동이 용이한 두 종류의 Portable Electric Grand Piano를 개발했는데 CP 70B와 88개의Notes로 구성된 CP 80이다. Piano Pick-Up 시스템으로 유명한 Helpinstill도 Portable Electric Grfmd Piano을생산했으며 Keith Emerson은 YamahaCP 70을 사용했다
(5) Electronic Piano
Electronic Piano는 Electronic Organ과 병행하여 각각의 Key당 하나의 Oscillator(진동자)를 갖고 있는 초기Type(예:RMI Electra-Piano)으로부터 12개의 Oscillator Top Octave 시스템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그 후 마이크로 전자공학 시대의 도래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즉, Electronic Piano는 하나의 고주파 진동자만으로도 초당 약200만 번의 진동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는데, Crumar Roadrunr와 Yamaha CP 20등이 이러한 마이크로전자공학으로 개발된 Electronic Piano이다. ARP사는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이용한 단순한 Electronic Piano을 개발한 반면 HH Electronics사는 P73라는 모델을 발표했는데 이 모델은 Cocltney Rebel과 10cc의 키보드 주자였던 Duncan Mckay가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초기 Electronic Piano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우선, 복잡한 사운드를 얻어낼 수 없었고 전통적인 Acoustic Piano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또한 동시에 복잡한 연주와 민감한 연주를 행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여러가지 치명적인 결점 때문에 생산회사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Yamaha CP30의 등장과 함께 이러한 문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Rick Wakeman은 자연적인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Yamaha CP 30를 만족감과 함께 사용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E. Synthesizer
음악계에 있어서 금세기 최고의 혁신적인 발명품은 역시 Synthesizer일 것이다.이러한 대발명품에 대한 역사와 종류 그리고 그것들의 기능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룬다는 것은 지면 관계상 매우 어렵다. 따라서 그러한 작업은 차후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는 종류와 기능을 배제하고 다만, 간략한 역사와 Rock에서 사용된 예를 살펴보도록 한다. 1964년, Robert Moog박사가 최초의 신디사이져를 개발했을 때 비평가들은 “기계적이고 음악적이지 않은 것"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러한 쏟아지는 혹평들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익살스러웠다. "신세사이져는 여러개의 구멍난 F형상을 지닌 상자에 한쪽 면엔 단풍나무를, 다른한쪽면에는 가문비 나무를 붙여놓은 것에 지나지 않지요.. Electronics라는 것은나무나 금속이 작동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운동합니다․ 전통의 어쿠스틱 악기들이 표출해내는 소리를 전자악기가 표현해낼 수 없다라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적어도 1954년까지는 Electronic Synthesizer는 악기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초기의 컴퓨터가 집체만한 크기였던 것처럼, 초창기 Electronic Synthesizer는 사이즈의 제약 때문에 연주 장소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기가 용이하지 못했다.그러나 Harry 01sen 박사팀의 각고의 노력끝에 이러한 취약점을 극복한 RCA Music Synthesizer가 개발되었고 이것은 다시 디자인되어 컬럼비아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에 RCA MKII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신세사이저의 선조이다. 1964년 여름 Theremin Kit(테레민 킷트: 일종의 전자악기 세트)를 팔고있던 Robert Moog에 의하여 새로운 신디사이져가 개발되었다. 이 모델은 전압조정을 이용한 Music Synthesizer의 최초 표준모델이 되었다 1966년,몇 대의 Music Synthesizer가 거물급 뮤지션들에게 판매되었고, 이때 캘리포니아의 Buchla에 Electrocomp라는 회사가 장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8년, Walter Caries가 J.S.Bach의 작품들을 Moog Synthesizer로 연주한 [Switched On Bach]라는 앨범이 전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Robert Moog의 Synthesizer는 세계적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후 Hot Butter의 [Pop Corn]등 수많은 Moog Syrlthesizer를 이용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Synthesizer를 음악적인 악기로 인식한 첫 번째 인물은 Welter Carlos였으며, 이것을 잘 해석한 연주로는 일본의 Isao Tomita를 빼놓을 수 없다. 또한 Live무대에서 Synthesizer를 사용한 선구자는 역시 Keith Emerson이다. Keith Emerson의 Modular System은 Robert Moog에 의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었다. 그는 친구인 Mike Vickers의 커다란 도움으로 재프로그램된 공연장 전용의 Synthesizer를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사실, 초창기 Synthesizer는 튜닝하는데 극도의 어려움과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함과 더불어 이러한 문제점은 해결된다.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Synthesifer는 독일그룹들이 즐겨 사용하는 중요한 장비로 자리잡았다. Tangerine Dream, Kraftwerk를 비롯, Neu, Kluster등등 Synthesizer그룹들, 즉 Electronic그룹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때부터 연주를 하지못해도 감각만 있다면 음악을 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데, 바로 Brian Eno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Synthesizer를 사용하기 이전까지 그는 연주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떤 키보드 주자들 보다도 Synthesizer를 가장 잘 이해하고 다룰줄 아는 연주인이 되었다. 이외에도 Ultravox, Devo, Gary Newman,0.M.D., Human League 등등 차세대Synthesizer그룹들이 상업적인 성공을거두었다.
음악계를 통털어 가장 유명한 Moog Synthesizer는 Keith Emerson의 III-C와 그가 무대를 누비며 들고 다니던 Slide형식의 Moog Ribbon Controller이다.그밖에 Progressive Rock계의 키보드주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무그는 소형 Mini Moog들이다.
                                       
Artrock Magazine No. 11 (1996년)

번호 제목 별명 조회 등록일
36 no image 무역 이론
웹마스터
3536 2013-02-24
말은 거창하지만 별 내용은 없습니다. 무역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때 단순히 만들고 팔고가 아닌 어떤것을 어떻게 어디에 팔것인지에 관한것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일단 요즘 원정대의 주 무역품 생산지인 '초원의 띠'와 '하리하랄라야의 폐허' 이 두곳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곳에서 무역을 준비하시는분들 역시 기본적인 방법은 같으니 참고하셔도 무방합니다. 먼저 무역품에 대해서 알아보 도록하겠습니다. - 초원의 띠 환약 : 모링가 열매(10개) + 특산품 인증서 - 초원의 띠 박하사탕 : 박하(10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땅콩 잼 : 땅콩(4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요리용 잎사귀 : 연꽃(50개) + 특산품 인증서 위의 4가지 품목에 대한 집중 분석을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무역품을 만들기 위해선 재료가 필요한데 재료를 입수하는 방법에는 1. 재배, 2. 구매 이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재배를 하는부분에 있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특산물 재료구매 : 물가의 변동성 때문에 무역을 준비하는 바로 그시기에 구매하는것은 항상 변동하는 물가의 방향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두배가까이 가격이 차이나기도 하니까요. 경매장을 통한 물품 가격 변동폭 박하(100개) : 1.10골드 ~ 1.80골드 모링가나무열매(10개) : 1. 30골드 ~ 2.00골드 땅콩(100개) : 2.00골드 ~ 2.90골드 연꽃(100개) : 1.20골드 ~ 3.50골드 대략적인 경매장가격입니다. 원가기준을 잡을때 무역품 하나의 가격은 절대 2.00골드가 넘지 말아야 한다(이것은 저의 철칙입니다.) 그렇다면 특산품 인증서 가격(50실버)에 특산물의 가격은 절대 1.50골드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되죠. 땅콩과 연꽃은 가격대가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라 운반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특산품 제작에 1.50골드 이하로 까지 낮출수 있어서 나름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재료를 경매장을 통해 싼가격으로 올라올때 구매를 하고 미리 특산물을 제작한뒤 같이 무역을 할 분들을 모집하여 무역을 한다면 한결 수월할것이라 생각됩니다. *무역품 제작은 2골드 이하가 되도록 하라. 어디에 팔것인가... 이제 싼가격에 무역품을 제작하였다면 좋은가격에 팔아야겠지요? 물품을 팔곳은 5곳 정도로 정리가 되는데, 이니스테르(카오노르드), 두왕관(이즈나항구), 십자별평원(시차일드 부두),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자유도 등입니다. 이곳외에도 있습니다만 판매가가 좋지않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 이니스테르(카어 노르드) (초원의 띠) 박하사탕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환약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하리하랄라야 폐허) 땅콩 잼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요리용 잎사귀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 두왕관(이즈나 항구) 박하사탕, 환약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 십자별 평원(시차일드 부두) 박하사탕, 환약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박하사탕, 환약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8g 50s(4g 25s ~ 12g 75s) 100% 기준에 50~150% 이상 4곳의 가격정보입니다. 자유도는 위험한 곳이라 저도 가격 확인 못했습니다 ^^ 하지만 제일 높은 가격을 받을수는 있으나 털릴 확률 80%에 팔수 있는 확률 5%, 15%는 배를 돌려 철수. 자유도는 소규모무역은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한곳(카오 노르드)를 제외한 나머지 3곳은 모두 서대륙에 위치한 판매처입니다. 패치로 인해 가격변동폭이 기존 80~120%에서 현재는 50% ~ 150% 변동이 된 상태입니다. 아마도 대량으로 가지고 가서 팔면 가격 폭락이 우려되오니 원정대 무역에서는 상품군을 다양화하는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설명은 어디까지나 소규모 무역(2~4명)선을 기준으로 한것으로 무역선 한대(무역품 20개)를 판다고 할경우엔 가격변동폭이 크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리없이 마구잡이로 쓰다보니 글내용이 두서가 없긴 합니다만 물품 구입과 판매에 대한 정보만 잘 확인하신다고 해도 도움이 도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캔들무역상회--
35 no image 아답터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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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3 2012-10-19
34 no image Pulsa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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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8 2012-10-18
1970년대 후반 융성의 극을 달리던 프렌치 심포닉계도 1980년대로 들어설 무렵 완전히 동면상태로 들어가 버린다. 태반의 그룹들이 해산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그룹도 사운드를 변화시키고 만다. 그러한 가운데 유일하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들의 사운드를 지켜낸 그룹이 있다. Pulsar의 역사는 오래전인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Lyon의 고등학교 밴드로 활동하고 있던 Free Sound라는 그룹에는 Phillipe Roman(b), Jacques Roman(Key), Gilbert Gandil(g, vo), Victor Bosch(ds)의 4인이 재적하고 있었다. 이 밴드는 당초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하였는데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David Gilmour의 스테이지를 보고서 사운드 정책을 프로그레시브로 전환하게 된다. 1966년 그룹 결성 이해 여러 번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1968년 전술한 4인으로 정착된 것이다 그들은 본고장 Lyon에서 정력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며 1970년 4월 Pulsar라 개명한다. 그리고 Malaval Festival, 이어서 1971년에는 그룹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에 참가한다. 이콘테스트에서 성공을 거둔 그들은 프랑스 투어를 벌이면서 차츰 인기를 모아나갔다. 또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를 수록한 옴니버스 앨범 <Groovy Pop Session>도 1972년 발매되어 Ange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곡 “Pulsar”는 후의 그들의 사운드와는 다소 다르며 약가 헤비하고 혼탁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인기.실력을 한몸에 갖춘 그들은 1974년 12월 드디어 1집<Pollen>을 발매한다. 멤버는 전술한 4인에 플루트의 Roland Richard를 가입시킨 5인 편성이다. 곳곳에 Pink Floyd로부터의 영향을 느끼게 하면서도 상상력을 풍부히 가미한 섬세하고 몽환적인 부유감이 떠도는 사운드는 충분히 독창성을 감지할수 있는 아름답고 뛰어난 것이다. 팬 사이드에서도 이 앨범을 최고작으로 손꼽는 이가 적지 않다. 판매면에서도 일단 성공을 거둔 듯하다(이 앨범은 킹덤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고 영국에서도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1집 발표후 그들은 약 1개월에 걸친 영국 투어를 행하여 호평를 얻고 대형 그룹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1976년 4월, 2월 <The Strands of the Future>를 녹음한다. 이 앨범 제작시 베이스 Phillipe Roman이 탈퇴하고 게스트 형태로 참가하고 있다. Rock’n Folk지로부터 “이것은 풍부한 감성, 정렬로 충만한 대단히 뛰어난 앨범이다. Pulsar는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최상의 완성도를 지닌 그룹이다. 위대한 인상파 작곡가 말러와 같은 서정성을 감지하게 한다”고 호평을 받은 이 앨범은 사운드 퀄리티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SF적 부유감이 있는 A면의 대작, 서정적인 B면의 소품, 모두 그들의 독창성이 십분 발휘된 걸작이다. 판매면에서도 이 앨범은 대성공을 거두어 Ange, Atoll과 나란히 대형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2집 발표후 그들은 영국, 벨기에, 스위스, 포르투갈 등 장기간에 걸친 순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다. 이 인기를 눈으로 지켜본 프랑스 CBS는 좋은 조건을 내걸고 그들과 계약한다. 1977년 12월에 3집 <Halloween>이 발매된다. 베이스로 Michel Masson을 가입시킨 이 앨범은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초한 토탈 컨셉트 앨범이며 플루트와 멜로트론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비교할 바 없는 서정성을 갖춘 최고의 걸작이다. 또 이 앨범에서 홍보용(적어도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레코드에는 Special Promotion이라 명기되어 있다) 싱글 “Sorrow In My Dream/Dawn Over Darkness”가 커트되었다. 이 앨범은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자신넘치는 작품이었는데, 홍보 부족으로 말미암에 판매면에서 실패로 끝나고 만다. 3집 발표후 그들은 CBS를 떠나고 베이스로 탈퇴하여 활동이 부진하게 된다. 록계는 바야흐로 펑크, 뉴웨이브로 이행하고 있었으며그들에게는 겨울과 같은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980~81년에 걸쳐 Le Companie Du Theatre De La Satire라는 극단의 연극 세션을 맡았으며, 그 가운데 한 작품 “Bienvenue au Conseild Administraction”은 1982년 레코드화되고 있다. 컨템포러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데 Pulsar의 사운드는 건재하다. 그리고 이후로도 그들은 산발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는등 활동을 계속하여 186년에는 Jacques Roman의 명의로 카세트 앨범 <Melodie Boreale>를 발매하였다. 릴랙스된 듯한 작품이지만 Pulsar 사운드의 아름다움만큼은 그대로 보존한 키보드워크는 그들의 사운드 정책이 지금도 불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프렌치 심포닉 역사의 정도를 걸어온 그들의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33 no image Art Zoyd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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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7 2012-10-17
프랑스의 록계에 아르 조이라는 이름의 그룹이 등장한 것은 70년대 초두의 일이다. 71년 그들은 마이너 레이블 Opaline에서 싱글 “Sangria/Something in Love”를 발매하였다. 그것은 60년대 록게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한 존재였던 크림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색소폰을 대담히 도입하는 등 독자적인 실험도 행한 의욕작이였다. 당시 그룹의 퍼스넬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상기 레코드에서 판단컨데 기타, 베이스, 드럼, 색소폰으로 구성된 5인조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싱글의 A면은 R.Fernandez의 작품, B면은 R.Frenandez와 J.P. Dulion의 공동작품이고 어레인지는 Alain Loewenguth로 되어있지만 그들의 그룹의 멤버였는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76년 창설기의 멤버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아르 조이의 흐름을 이어받은 아르 조이 트르와(Art Zoyd 3)가 첫번째 앨범 <Symphonie Pour Le Jour Ou Bruleront Les Cites>를 발매하였다. Thierry Zaboitze(b, per, vo), Jean Pierre Soarez(Tp, per), Alain Eckert(g, per, vo), Gerard Hourbette(Vln, fl)의 4인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 독창성 및 이후의 록계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70년대 프렌치 프로그레시브 록 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를 록의 테두리 내로 교묘히 끌어들인 연주를 전개하는 트럼팻과 바이올린, 변박자를 많이 사용한 곡제작 등은 챔버록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를 중심으로 다수의 라이브를 행하였다. 82년 영국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된 싱글 “Manege”는 76년 2월 19일 팔레스 드 스포르트 듀 툴루즈에서 개막된 콘서트의 일부를 수록한 것이다. 그룹명을 다시 아르 조이로 되돌린 그들의 두번째 앨범<Musigue Pour L’Odyssee>는 유니베르 제로의 다니엘 데이스(ds), 미셀 베르그망(oboe, bassoon)을 게스트로 맞아들여 벨기에의 Overjse에서 녹음, 아템 레이블에서 발표되었다. 헨리 카우를 중심으로 하는RIO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들의 앨범은 레코멘디드 레이블을 통해 일본, 미국, 유럽 각국에 소개되어 그들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80년 2월 스위스의 Kirchberg에 있는 Sunrise Studio에서 세번째 앨범 <Generation Sans Futur>를 제작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템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도 다니엘 데니스가 가세한 작품이 1곡 수록되어 있는데 그 사운드는 전작의 아르 조이로서는 다소 클래식한 것에서 재즈적인 요소를 좀더 강조한 실험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 같은 해 7월에는 자주제작 음반인 이유로 프레스 매수가 적어서 이미 입수가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린 첫번째 앨범을 재녹음하여 네번재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오리지널 음반의 멤버에 Frank Cardon(Vln), Patricia Dallio(p), Gilles Renard(sax)가 가세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 오리지널 음반을 월등히 상회하고 있다. 가장 음악적으로 충실한 시기를 맞이한 아르 조이였지만 아템 레이블이 그만 활동을 정지해 버린탓에 다섯번재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영국의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가 결정되어, 82년 4월~5월에 걸쳐서 녹음된 <Phase IV>는 더블앨범으로 재즈적 요소를 훌륭하게 승화시켜서 독자적인 챔버록으로 완성시킨, 아르 조이의 6년에 이르는 활동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작품이다. 83년에는 프랑스이 신흥 레이블 Cryonic에서 6집 <Escape Inquiets>를 발표 작품으로서의 힘이 다소 떨이지고 있지만 서서히 새로운 젙개를 추구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예상하던대로 84년 그들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였다. 우선 멤버의 한 사람인 Thierry Zaboitze가 극단 Le Collectif Theatral Du Hainaut의 <Promethee>를 위한 극장용 곡을 만들고, 그것을 솔로 앨범으로 발표하였다. 이어서 롤랑 프티의 창작 발레 “Le Mariage Du Ciel Et De L’enfant”에 그룹 차원으로 음악을 담당하여 그 일부를 7집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이들 작품은 그 성격상 음악적으로 종래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음악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2년이상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작을 내걸고 부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은 적지 않을 것이다.
32 no image 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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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no image JBL L-15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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