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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9 (22:34:55)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2회 - ART SCHOOL
 
영국 ART SCHOOL의 성격
“1960년대 영국의 문화총체는 Art School에서 비롯되었다”라고 말했던 그래픽 디자이너 Marchbank의 말처럼 1966년경 Sketch_Club_Art_Centre_1953.jpgArt School학생들과 졸업생들에 의해 ART ROCK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고, 1960년대말과 1970년대 초에 황금기를 맞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1940년대와 1950년대 당시, 단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던 예술학교 학생들은 대학가의 주를 이루고 있었던 종합대학의 학생들과는 달리 학사, 석사, 박사등의 학위(Degree)가 아닌 기술과 능력을 인정받은 졸업장(Diploma)가 아닌 기술과 능력을 인정받음 졸업장(Diploma)하나만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있었다. 이들의 대부분이 중하층의 집안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이었고 고상한 Classic을 즐길 수 없었던 반면 Jazz나 Blues는 그들의 상황과 정서에 가장 걸맞는 대중음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Rock'n'Roll이 탄생했고 젊은이들의 상징적인 음악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나, 영국 예술학교의 젊은이들은 Rock'n'Roll보다는 Jazz나, Blues에 더욱 심취해 있었다.
1950년대말, Traditional Jazz붐이 영국을 강타했을 때 Art School의 재학생들이 가장 열심이었음은 두말할 것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Art School주변에는 Jazz와 Blues를 연주하는 클럽과 연주인들로 들끓고 있었다. 대모를 벌이는 경우에도 Art School학생들은 Rock'n'Roll이 아니라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부르며 거리를 행진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음악에 있어서는 Jazz와 Blues를, 정신적으로는 프랑스의 실천주의 철학을 문학에 있어서는 미국의 Beat문학을 추종하고 있었다. 또한 1950년대 대부분의 진보적인 Art과목들은 2차세계대전 이전의 독일 “Bauhaus"학파의 이론과 강의를 따르고 있었다.
1960ss대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Art School에 대한 열기는 절정에 이른다. Art School의 설립이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기존 학교에서도 많은 새로운 과목들이 증설되기 시작했다.19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29개의 대규모 Art School과 56개의 소규모 학교가 존재햇었던 것에 반하여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런던과 그 외곽지역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많은 Art School이 건립되었다.
학생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Hornesy와 같은 Art School의 경우 1957년에는 단지 200명의 학생들이 있었던 반면 1960년대에는 약 4배에 달하는 860명이 이 학교를 드나들게 되었다. Art School의 확장으로 졸업생 수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고 시대가 요구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각계층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를 만끽하고 기술을 익혔던 반면, 학구적인 것에는 강한 적대심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부유층들이나 귀족들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전형적인 환경에 만족하는 낙천주의 성격과 젊은 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성격을 결정지워 주는데에는 역시 Art School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상적인 배움터 ART SCHOOL
머리가 우수하거나 훌륭한 예술적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노동자계급과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Art School이야말로 그들의 뜻을 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장이었다. 대부분 예술학교 초년생들은 기초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훈cream.jpg련과 실험을 거친다. 특히 독특한 여러 실험들과 프로젝트들을 통해서 “무엇이 예술인가?”를 배운다. 여기에서 폭넓은 재료들과 기술들이 제공되어지며 그들은 머리로써 예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마음 그리고 느낌(잠재된 예술적인 능력을 끌어냄)으로써 무엇인가(예술)를 창출하는 것이다. Art School의 기초과정은 학생들의 능력을 분석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써 그들이 무엇에 관심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 판단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자마자 Art School로부터 대중음악계로 진출한 뮤지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즉, 이 과정속에서 그들은 Rock음악이 그들에게 가장 커다란 관시미사이며, 자신이 그 어떤 것 보다도 Rock음악에 능력이 있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구적인 과정이나 과목들과는 달리 Fine Art는 이론이나 구조적인 과정에 없매이는 것이 아니라 방법과 기술을 익히면 곧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분야이다. 즉, 그들은 도서관이나 강의실이나 세미나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나 작업실에서 탐구의 실험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특히, 음악학교 출신들의 몇몇 젊은이들은 이때부터 정통적인 음악적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양상을 보였다. 연주실에서 악보에 그려진 기존선율, 고전음악을 연주하려하기 보다는 Club과 Cafe에서 들었던 Jazz, Blues의 즉흥성에 더욱 매료되었고, 젊음에 불타는 Rock Music에 혼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ART SCHOOL학생들의 사고와 관심사 - Liberalism(자유주의)
1977년 Jam의 데뷔앨범 “In The City"에 첫 곡으로 수록된 ‘Art School'이라는 곡은 1960년대말의 영국 Art School의 ”문langleyweb1.gif화적인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Jam의 멤버들은 Art School출신들은 아니었다.
The art college was the flaw in the British Education system, a space where both middle and working class youth could deny the implications of pass and future and live out, however briefly, a fantasy of cultural freedum.
이곡에서 Fantasy라는 단어는 자유가 예술학도들에 의해서 착각속에 즐겨지고 있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아무튼, 예술학도들에게 자유가 흘러 넘쳤음은 여러 ART ROCK그룹들의 멤버들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규율이 엄격한 다른 학교들에 비하여 예술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잇는 특권을 부여해주었다. 이러한 자유는 심리적 자유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낮에는 학교에서 면학을, 밤에는 클럽등지에서 젊음을 즐겼다. 또한, Rock이라는 젊음의 음악은 예술학교 학생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주었다. 용돈을 벌기위하여, 재료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식의 아마추어 뮤지션으로써 출발한 뮤지션들이 어느덧 Rock Star로 변신해버린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장난삼아 그렸던 음반커버가 그후 그의 직업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Egoism(자유주의) + Politics(정치)
"표현적인 자유“를 만끽하게된 1960년대의 영국 Art School의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이외에는 다른 것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의구심과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것을 배워왔던 그들에게는 너무나 팽배하게 커져버린 사회를 부정하게 되었고, 기존의 규칙과 전통에 의구심을 갖는등 위험한길, 남들이 꺼리는 다른 길을 택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러한 것은 지나친 이기주의를 유발시켜 때로는 사회에 반감을 가지며 저항적인 자세, 반항아적인 기질을 싹트게 했다. 특히, Art School출신의 뮤지션들은 당시 젊은이들을 위하여 연주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즐기기위해, 자신들을 만족시키기위해 연주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분야와 전혀 관계가 없는 정당활동에 가담하는 특이한 양상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1960년대말에 들어와서는, 정치 캠페인에 참가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정치정당을 설립하는등의 활발한 정치활동도 벌였다. 1968년에는 급기야, 이념적인 Art School학생들이 학교를 점령하는 사태(Guildford 예술대학과 Hornesey 예술대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New Media(새로운 매체)
1960년대말 미술, 조각, 인쇄 분야에서 활약하던 예술학도들은 새로운 기술과 혁신의 힘을 얻어 사진, 영화 비디오 컴퓨터 그12800w_summeroflove5.jpg래픽등의 첨단기술을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야에서 활약하다가 Rock Musican으로 전향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무대와 Cover Arts 셰계에 새로운 Media를 수용하게 되었다. 특히 Art School출신으로써 ART ROCK, Psychedelic Rock그룹들 그리고 Punk그룹들과 함께 활약하게 되는 이들이 일명 Light Show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며 조명과 Dress Style을 포함한 모든 무대예술에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Media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Hornesey Collage Of Art의 “Light/Sound Workshop(1962년 설립)”에서 연구원으로 활약하던 Mike Leonard는 초창기 Pink Floyd의 360도 원형사운드와 무대영상의 개발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다.
 
DaDaism(허무주의)
1960년대 독일의 ART ROCK그룹들은 European Avant-Garde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Berlin, Hanover, Paris, Zurich등에서 유행처럼 번져갔던 허무주의는 대중들에게 자극을 주거나 쇼크로써 일깨워주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럽의 많은 Avant-Garde Rock그룹들이 이러한 허무주의를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무주의는 영국 ART ROCK그룹들 속으로 쉽게 파고들지는 못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서 비로서 Punk Rock이라는 새로운 Rock장르에 이르러 뒤늦게 정착된다. 여기에서 허무주의는 기형적으로 발전, 확산되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Shock Rock, Theater Rock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심리학자 Arthur Brown도 이러한 DaDaism에 다소 영향을 받았음이 사실이다.
 
Surrealism(초현실주의)
영국의 ART ROCK 그룹들은 DaDaism의 성향이 결여된 반면, 초현실주의 (Surrealism)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다. 실제로, 20세기 모든 Avant-Garde운동의 초현실주의는 대중음악과 광고분야에서 일하던 많은 디자이너들속에서 크게 일기dali-poster.jpg 시작했다. 스페인을 대표했던 화가 Salvador Dali의 재치가 넘치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Soft Watch Dreamscapes는 많은 레코드 커버 아티스트들과 삽화 아티스트들을 매료시켰고 Airbrush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이것은 1960년대말, 1970년대초의 수많은 Cover 아티스트들에 의해 도입된다. 허무주의처럼, 초현실주의도 그들의 청중들을 격분케 하거나 아연실색케 하는 것을 원했다. 또한 그들을 사회가 점차적으로 변화되기를 갈망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초현실주의 아티스트들은 예술적 혁명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당시로써는 매우 충격적이고 비상업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이었지만 현시점에서는 그렇게 놀라울 것 없는 “이색적인 것의 하나”로 그 느낌이 반감된 것이 사실이며, 예상밖으로 지금까지 상업적으로도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다.
또한 초현실주의는 세계를 이상하게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는데, 그중에 Erotic, Fantastic Art가 두드러졌으며 몽환적인 작품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Art School출신의 젊은 화가들, 디자이너들은 Erotic Cover, Fantastic Cover, Psychedelic Cover, Dreamy Cover등을 1960년대말부터 ART ROCK 그룹들을 위해, ART ROCK 그룹들이 행하는 음악과 걸맞는 앨범커버를 그리기 시작한다. ART ROCK을 행하는 대부분의 초현실주의 뮤지션들도 무모한 모험을 즐겼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위해서라면 커다란 희생을 결코 아끼지 않았다. 예술성이 뛰어난 반면 상업적으로는 매우 눈이 어두웠던 그들은 오직 자신들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순수 자신들의 경비로 레코드를 제작, 그것에 만족하며 즐겼던 것이다.

Art School출신의 대표적인 뮤지션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뮤지션들중에는 Art School출신들이 의외로 많다. Daevid Allen(Gong), Syd Barrett(Pink Floyd), Jeff Beck, Eric Burdon(Animals), Brian Eno, Bryan Ferry(Roxy Music), John Foxx(Ultravox), John Lennon(Beatles), Lene Lovich, Freddie Mercury(Queen), hazel O'Conner, Jimmy Page(Led Zeppelin), keith Richard(Rolling Stones), Sade, Pete 쌔주노둥(Who) 등등...
biggrunt.jpgPete Townshend의 경우, 그는 Art School로부터 배웠던 것을 적절하게 표현해내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1960년대초반 Earling College Of Arts에서 그래픽을 전공했는데, 그의 스승은 나찌 독일에서 탈출한 Gustav Metzger로써 Auto-Creative와 Auto-Destructive Art의 대가였다. Pete 쌔주노둥sms 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고 그룹 Who의 공격적인 Sound와 기타를 부수는등의, 무대위에서의 난폭한 행위는 바로 그의 스승이 가르쳐준 Auto-Destructive Art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Pink Floyd의 경우, 멤버 전원이 예술학교와 건축학교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Syd Barrett은 Camberwell College Of Art에서 미술을 전공햇었고 Roger Waters와 Nick Mason은 Regent Street Polytechnic에서 건축을 배웠다. 후에 그들의 무대 공연이 Visual Art의 최첨단을 걷게 된다는 것이 매우 당연하게 여겨진다.
멤버들이 Art School과 강한 연결고리를 형성했던 그룹은 Bonzo Dog Doo Dah Band였다. Bonzo Dog은 1920년대 만화에 등장하는 동물이었으며 Doo Dah는 Dadaism(허무주의)를 변형시킨 단어로써 사용했는데 멤버 전원 모두 삽화(Illustration)를 전공한 Central School Of Art를 비롯한 런던 근교의 Art School출신들이었다. Brain Ferry는 1964년부터 1968년까지 New Castle대학에서 그 유명한 Pop Artist인 Richard Hamilton에게 Visual Arts를 사사받았다. 그의 예술적인 감각은 Roxy Music의 커버아트와 독특한 음악세계에서 잘 표출된다.
Brain Eno는 1971년 Roxy Music에 가담했을 때 전혀 악기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오직 Via Synthesizer와 Tape Recorder였다. 그는 원래 화가 지망생으로 John Cage와 Terry Riley등의 전위음악에 심취하면서 음악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의 은사는 화가겸 뮤지션이었던 Tom Phillips였다. Brain Eno의 솔로앨범 “Another Green World"는 바로 그의 스승 Tom Phillips의 그림 ”After Raphael"을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후 그는 음악과 미술계에서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The Quiet Man"으로 알려진 John Foxx는 Royal College Of Art에서 삽화, 미술, College를 전공하면서 디자인 그룹이자 진보적인 음악 그룹 Ultravox를 결성했다. 그는 영국의 북부 공업도시 Lancashire에서 성장, 기게와 기술세대로서의 운명을 지녔다. 그의 음악과 디자인은 바로 기계와 기술혁신을 표출하고 있는데 그의 대표작 ‘I Want To Be A Machine'이라는 곡에서 충분히 그러한 성향이 반영되고 있다.
그 외에 많은 ART ROCK그룹들이 Art School주변에서 결성되었는데 그만큼 Art School은 ART ROCK그룹들이 형서되는데 가장 이상적인 장소였다. 당시, 젊음의 음악을 사랑하고, 자유를 갈구하며 학교에서 배워왔던 순수예술과 모든 과정들이 결함되어 수많은 ART ROCK그룹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뜻을 지닌 젊은이들이 의기투합될 수 있는 장소 Art School...! Gong의 창시자 Daevid Allen도 Canterbury College Of Art를 다니며 Rober Wyatt을 만날 수 있었고 Soft Machine을 결성할 수 있었다.
-편집자 주

Art Rock Magazine No. 6 (1994년 발행)
(원문에는 1967년 The Year Of Flower Power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곳에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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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풍경
1915 2009-01-20
Selected 영국 ART ROCK의 역사 No.2 첨부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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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7 2009-01-19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2회 - ART SCHOOL 영국 ART SCHOOL의 성격 “1960년대 영국의 문화총체는 Art School에서 비롯되었다”라고 말했던 그래픽 디자이너 Marchbank의 말처럼 1966년경 Art School학생들과 졸업생들에 의해 ART ROCK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고, 1960년대말과 1970년대 초에 황금기를 맞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1940년대와 1950년대 당시, 단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던 예술학교 학생들은 대학가의 주를 이루고 있었던 종합대학의 학생들과는 달리 학사, 석사, 박사등의 학위(Degree)가 아닌 기술과 능력을 인정받은 졸업장(Diploma)가 아닌 기술과 능력을 인정받음 졸업장(Diploma)하나만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있었다. 이들의 대부분이 중하층의 집안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이었고 고상한 Classic을 즐길 수 없었던 반면 Jazz나 Blues는 그들의 상황과 정서에 가장 걸맞는 대중음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Rock'n'Roll이 탄생했고 젊은이들의 상징적인 음악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나, 영국 예술학교의 젊은이들은 Rock'n'Roll보다는 Jazz나, Blues에 더욱 심취해 있었다. 1950년대말, Traditional Jazz붐이 영국을 강타했을 때 Art School의 재학생들이 가장 열심이었음은 두말할 것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Art School주변에는 Jazz와 Blues를 연주하는 클럽과 연주인들로 들끓고 있었다. 대모를 벌이는 경우에도 Art School학생들은 Rock'n'Roll이 아니라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부르며 거리를 행진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음악에 있어서는 Jazz와 Blues를, 정신적으로는 프랑스의 실천주의 철학을 문학에 있어서는 미국의 Beat문학을 추종하고 있었다. 또한 1950년대 대부분의 진보적인 Art과목들은 2차세계대전 이전의 독일 “Bauhaus"학파의 이론과 강의를 따르고 있었다. 1960ss대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Art School에 대한 열기는 절정에 이른다. Art School의 설립이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기존 학교에서도 많은 새로운 과목들이 증설되기 시작했다.19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29개의 대규모 Art School과 56개의 소규모 학교가 존재햇었던 것에 반하여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런던과 그 외곽지역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많은 Art School이 건립되었다. 학생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Hornesy와 같은 Art School의 경우 1957년에는 단지 200명의 학생들이 있었던 반면 1960년대에는 약 4배에 달하는 860명이 이 학교를 드나들게 되었다. Art School의 확장으로 졸업생 수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고 시대가 요구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각계층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를 만끽하고 기술을 익혔던 반면, 학구적인 것에는 강한 적대심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부유층들이나 귀족들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전형적인 환경에 만족하는 낙천주의 성격과 젊은 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성격을 결정지워 주는데에는 역시 Art School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상적인 배움터 ART SCHOOL 머리가 우수하거나 훌륭한 예술적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노동자계급과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Art School이야말로 그들의 뜻을 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장이었다. 대부분 예술학교 초년생들은 기초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훈련과 실험을 거친다. 특히 독특한 여러 실험들과 프로젝트들을 통해서 “무엇이 예술인가?”를 배운다. 여기에서 폭넓은 재료들과 기술들이 제공되어지며 그들은 머리로써 예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마음 그리고 느낌(잠재된 예술적인 능력을 끌어냄)으로써 무엇인가(예술)를 창출하는 것이다. Art School의 기초과정은 학생들의 능력을 분석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써 그들이 무엇에 관심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 판단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자마자 Art School로부터 대중음악계로 진출한 뮤지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즉, 이 과정속에서 그들은 Rock음악이 그들에게 가장 커다란 관시미사이며, 자신이 그 어떤 것 보다도 Rock음악에 능력이 있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구적인 과정이나 과목들과는 달리 Fine Art는 이론이나 구조적인 과정에 없매이는 것이 아니라 방법과 기술을 익히면 곧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분야이다. 즉, 그들은 도서관이나 강의실이나 세미나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나 작업실에서 탐구의 실험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특히, 음악학교 출신들의 몇몇 젊은이들은 이때부터 정통적인 음악적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양상을 보였다. 연주실에서 악보에 그려진 기존선율, 고전음악을 연주하려하기 보다는 Club과 Cafe에서 들었던 Jazz, Blues의 즉흥성에 더욱 매료되었고, 젊음에 불타는 Rock Music에 혼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ART SCHOOL학생들의 사고와 관심사 - Liberalism(자유주의) 1977년 Jam의 데뷔앨범 “In The City"에 첫 곡으로 수록된 ‘Art School'이라는 곡은 1960년대말의 영국 Art School의 ”문화적인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Jam의 멤버들은 Art School출신들은 아니었다. The art college was the flaw in the British Education system, a space where both middle and working class youth could deny the implications of pass and future and live out, however briefly, a fantasy of cultural freedum. 이곡에서 Fantasy라는 단어는 자유가 예술학도들에 의해서 착각속에 즐겨지고 있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아무튼, 예술학도들에게 자유가 흘러 넘쳤음은 여러 ART ROCK그룹들의 멤버들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규율이 엄격한 다른 학교들에 비하여 예술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잇는 특권을 부여해주었다. 이러한 자유는 심리적 자유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낮에는 학교에서 면학을, 밤에는 클럽등지에서 젊음을 즐겼다. 또한, Rock이라는 젊음의 음악은 예술학교 학생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주었다. 용돈을 벌기위하여, 재료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식의 아마추어 뮤지션으로써 출발한 뮤지션들이 어느덧 Rock Star로 변신해버린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장난삼아 그렸던 음반커버가 그후 그의 직업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Egoism(자유주의) + Politics(정치) "표현적인 자유“를 만끽하게된 1960년대의 영국 Art School의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이외에는 다른 것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의구심과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것을 배워왔던 그들에게는 너무나 팽배하게 커져버린 사회를 부정하게 되었고, 기존의 규칙과 전통에 의구심을 갖는등 위험한길, 남들이 꺼리는 다른 길을 택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러한 것은 지나친 이기주의를 유발시켜 때로는 사회에 반감을 가지며 저항적인 자세, 반항아적인 기질을 싹트게 했다. 특히, Art School출신의 뮤지션들은 당시 젊은이들을 위하여 연주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즐기기위해, 자신들을 만족시키기위해 연주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분야와 전혀 관계가 없는 정당활동에 가담하는 특이한 양상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1960년대말에 들어와서는, 정치 캠페인에 참가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정치정당을 설립하는등의 활발한 정치활동도 벌였다. 1968년에는 급기야, 이념적인 Art School학생들이 학교를 점령하는 사태(Guildford 예술대학과 Hornesey 예술대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New Media(새로운 매체) 1960년대말 미술, 조각, 인쇄 분야에서 활약하던 예술학도들은 새로운 기술과 혁신의 힘을 얻어 사진, 영화 비디오 컴퓨터 그래픽등의 첨단기술을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야에서 활약하다가 Rock Musican으로 전향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무대와 Cover Arts 셰계에 새로운 Media를 수용하게 되었다. 특히 Art School출신으로써 ART ROCK, Psychedelic Rock그룹들 그리고 Punk그룹들과 함께 활약하게 되는 이들이 일명 Light Show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며 조명과 Dress Style을 포함한 모든 무대예술에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Media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Hornesey Collage Of Art의 “Light/Sound Workshop(1962년 설립)”에서 연구원으로 활약하던 Mike Leonard는 초창기 Pink Floyd의 360도 원형사운드와 무대영상의 개발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다. DaDaism(허무주의) 1960년대 독일의 ART ROCK그룹들은 European Avant-Garde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Berlin, Hanover, Paris, Zurich등에서 유행처럼 번져갔던 허무주의는 대중들에게 자극을 주거나 쇼크로써 일깨워주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럽의 많은 Avant-Garde Rock그룹들이 이러한 허무주의를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무주의는 영국 ART ROCK그룹들 속으로 쉽게 파고들지는 못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서 비로서 Punk Rock이라는 새로운 Rock장르에 이르러 뒤늦게 정착된다. 여기에서 허무주의는 기형적으로 발전, 확산되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Shock Rock, Theater Rock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심리학자 Arthur Brown도 이러한 DaDaism에 다소 영향을 받았음이 사실이다. Surrealism(초현실주의) 영국의 ART ROCK 그룹들은 DaDaism의 성향이 결여된 반면, 초현실주의 (Surrealism)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다. 실제로, 20세기 모든 Avant-Garde운동의 초현실주의는 대중음악과 광고분야에서 일하던 많은 디자이너들속에서 크게 일기 시작했다. 스페인을 대표했던 화가 Salvador Dali의 재치가 넘치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Soft Watch Dreamscapes는 많은 레코드 커버 아티스트들과 삽화 아티스트들을 매료시켰고 Airbrush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이것은 1960년대말, 1970년대초의 수많은 Cover 아티스트들에 의해 도입된다. 허무주의처럼, 초현실주의도 그들의 청중들을 격분케 하거나 아연실색케 하는 것을 원했다. 또한 그들을 사회가 점차적으로 변화되기를 갈망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초현실주의 아티스트들은 예술적 혁명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당시로써는 매우 충격적이고 비상업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이었지만 현시점에서는 그렇게 놀라울 것 없는 “이색적인 것의 하나”로 그 느낌이 반감된 것이 사실이며, 예상밖으로 지금까지 상업적으로도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다. 또한 초현실주의는 세계를 이상하게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는데, 그중에 Erotic, Fantastic Art가 두드러졌으며 몽환적인 작품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Art School출신의 젊은 화가들, 디자이너들은 Erotic Cover, Fantastic Cover, Psychedelic Cover, Dreamy Cover등을 1960년대말부터 ART ROCK 그룹들을 위해, ART ROCK 그룹들이 행하는 음악과 걸맞는 앨범커버를 그리기 시작한다. ART ROCK을 행하는 대부분의 초현실주의 뮤지션들도 무모한 모험을 즐겼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위해서라면 커다란 희생을 결코 아끼지 않았다. 예술성이 뛰어난 반면 상업적으로는 매우 눈이 어두웠던 그들은 오직 자신들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순수 자신들의 경비로 레코드를 제작, 그것에 만족하며 즐겼던 것이다. Art School출신의 대표적인 뮤지션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뮤지션들중에는 Art School출신들이 의외로 많다. Daevid Allen(Gong), Syd Barrett(Pink Floyd), Jeff Beck, Eric Burdon(Animals), Brian Eno, Bryan Ferry(Roxy Music), John Foxx(Ultravox), John Lennon(Beatles), Lene Lovich, Freddie Mercury(Queen), hazel O'Conner, Jimmy Page(Led Zeppelin), keith Richard(Rolling Stones), Sade, Pete 쌔주노둥(Who) 등등... Pete Townshend의 경우, 그는 Art School로부터 배웠던 것을 적절하게 표현해내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1960년대초반 Earling College Of Arts에서 그래픽을 전공했는데, 그의 스승은 나찌 독일에서 탈출한 Gustav Metzger로써 Auto-Creative와 Auto-Destructive Art의 대가였다. Pete 쌔주노둥sms 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고 그룹 Who의 공격적인 Sound와 기타를 부수는등의, 무대위에서의 난폭한 행위는 바로 그의 스승이 가르쳐준 Auto-Destructive Art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Pink Floyd의 경우, 멤버 전원이 예술학교와 건축학교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Syd Barrett은 Camberwell College Of Art에서 미술을 전공햇었고 Roger Waters와 Nick Mason은 Regent Street Polytechnic에서 건축을 배웠다. 후에 그들의 무대 공연이 Visual Art의 최첨단을 걷게 된다는 것이 매우 당연하게 여겨진다. 멤버들이 Art School과 강한 연결고리를 형성했던 그룹은 Bonzo Dog Doo Dah Band였다. Bonzo Dog은 1920년대 만화에 등장하는 동물이었으며 Doo Dah는 Dadaism(허무주의)를 변형시킨 단어로써 사용했는데 멤버 전원 모두 삽화(Illustration)를 전공한 Central School Of Art를 비롯한 런던 근교의 Art School출신들이었다. Brain Ferry는 1964년부터 1968년까지 New Castle대학에서 그 유명한 Pop Artist인 Richard Hamilton에게 Visual Arts를 사사받았다. 그의 예술적인 감각은 Roxy Music의 커버아트와 독특한 음악세계에서 잘 표출된다. Brain Eno는 1971년 Roxy Music에 가담했을 때 전혀 악기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오직 Via Synthesizer와 Tape Recorder였다. 그는 원래 화가 지망생으로 John Cage와 Terry Riley등의 전위음악에 심취하면서 음악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의 은사는 화가겸 뮤지션이었던 Tom Phillips였다. Brain Eno의 솔로앨범 “Another Green World"는 바로 그의 스승 Tom Phillips의 그림 ”After Raphael"을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후 그는 음악과 미술계에서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The Quiet Man"으로 알려진 John Foxx는 Royal College Of Art에서 삽화, 미술, College를 전공하면서 디자인 그룹이자 진보적인 음악 그룹 Ultravox를 결성했다. 그는 영국의 북부 공업도시 Lancashire에서 성장, 기게와 기술세대로서의 운명을 지녔다. 그의 음악과 디자인은 바로 기계와 기술혁신을 표출하고 있는데 그의 대표작 ‘I Want To Be A Machine'이라는 곡에서 충분히 그러한 성향이 반영되고 있다. 그 외에 많은 ART ROCK그룹들이 Art School주변에서 결성되었는데 그만큼 Art School은 ART ROCK그룹들이 형서되는데 가장 이상적인 장소였다. 당시, 젊음의 음악을 사랑하고, 자유를 갈구하며 학교에서 배워왔던 순수예술과 모든 과정들이 결함되어 수많은 ART ROCK그룹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뜻을 지닌 젊은이들이 의기투합될 수 있는 장소 Art School...! Gong의 창시자 Daevid Allen도 Canterbury College Of Art를 다니며 Rober Wyatt을 만날 수 있었고 Soft Machine을 결성할 수 있었다. -편집자 주 Art Rock Magazine No. 6 (1994년 발행) (원문에는 1967년 The Year Of Flower Power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곳에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6 no image 한자
마음풍경
1872 2009-01-19
5 영국 ART ROCK의 역사 No.1 첨부 파일 (1)
마음풍경
5231 2009-01-19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1회 1966년!... ART ROCK의 탄생 ART ROCK은 무엇인가? 본지 “ART ROCK"이 출범하면서 늘 들어왔었던 질문이다. 그것을 간략하게 정의 한다면 ” ART ROCK은 ROCK의 하나의 부류, 장르로써 ROCK에 미학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젊은이들의 음악으로 상징되는 ROCK에 순수예술이 첨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중반 ROCK & ROLL이 탄생했을 당시 사회는 이러한 음악형태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항적이며, 외설적이라는 이유가 지배적이었지만, 새로운 문화에 대한 사회의 거부적인 반응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나 존재해 왔었던 것이다. 그 이후 ROCK & ROLL은 영국에 상륙하면서 ROCK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된다. 1960년대 초반, R & R이 미국에서는 TWIST나 SURFIN’ 또는 HOT ROD 그리고 ELECTRIC SOUND로 변형되고 있는 동안, 영국에서는 영국인 기질에 맞는 형태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공로자들은 Beatles, Rolling Stones, The Who, Yardbirds 등이다. R & R이 미국으로부터 수입된지 10년만인 1966년, 영국의 ROCK은 또다른 변신을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ART ROCK의 출현이다. 당시 Art School(예술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많은 청년들은 학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Rock이나 Jazz, Blues Music에 심취하게 된다. Radio를 통해서, 아니면 학교 주변의 선술집, Club, Cafe등지에서 그들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결국 쉽게 빠질 수 있는 Rock Music에 학교에서 배우고 있던 순수예술을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음악학교 출신들 뿐만 아니라 건축, 디자인, 미술, 문학 등 여러 다른 예술 방면의 젊은이들도 함께 했다. 이들은 보헤미안(Bohemian : 자유분방한 예술가)으로 불리우며 ART ROCK이 탄생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사진작가, 디자이너, 극작가, 문학가 지망생 등 당시, 10여만명으로 추산되었던 Art School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순수예술 보다는 그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현실세계와 환경에 더욱 큰 지배를 받았다. 그들의 관심은 반핵운동, 마약, 비트문학, Jazz, Blues, Rock 등등으로 사회, 문화를 보는 시각이 먹고 살기에 바빴던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당시 옷값과 레코드 가격은 그들 생활수준에 비하여 무척 저렴했고,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표현”에 있어서 Fashion과 Rock Music을 가장 이상적인 도구로 선택하게 된다.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Pearce Marchbank는 영국의 1960년대 문화총체는 Art School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할 정도로 1960년대 대중문화, 예술은 Art School 출신들에 의해서 리드 되었다. LONDON : ART ROCK 발생지 “영국으로부터 ART ROCK이 탄생했다!” 이 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의 탄생이 무작정 1966년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몇몇의 보헤미안 들이나 Art School에 재학중이던 젊은이들은 이미 1960년대 초반부터 ART ROCK에 가까운 창작활동을 구상해 왔기 때문에 1966년이 ART ROCK의 시발점이 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66년 도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러한 구상들이 실현화 되었고 표면화 되었기 때문에 이때 ART ROCK이 탄생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영국의 수도 런던으로 밀집되기 시작한 해도 1966년 이라는 접에서 ART ROCK의 시점을 1966년으로, 그 발상지를 런던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1966년 봄, 수많은 뮤지션들, 시인들, 영화 감독들, 화가들 그리고 정치가 지망생들이 수도 런던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이러한 급작스러운 상황에 대하여 Time지는 “런던이 꿈틀거리고 있다”라는 커버스토리를 담기까지 했다. 이러한 문화, 사회적 대이동은 1920년대의 파리 그리고 1950년대의 로마를 방불케하는 것이었다. 또한, 여러 잡지들은 “런던이 불붙기 시작했다”라는 기사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것은 곧 런던이 대중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고 잇음을 암시하는 기사였다. 이와 발맞추어 미국에서는 평화와 사랑을 부르짓는 젊은이들, 일명 Flower People이라고 불리우는 젊은이들이 여러 지역으로부터 Wet Coast, 특히 San Francisco부근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때 발생하게되는 PSYCHEDELIC MUSIC은 영국의 ART ROCK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한편, 미국 서부의 PYSCHEDELIC MUSIC을 ART ROCK의 부류로 보는 평론가들도 상당수 있으며 대체적으로 PSYCHEDELIC MUSIC과 PROGRESSIVE ROCK 전체를 총칭하여 ART ROCK으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대적 배경 1966년, 영국 런던은 문화적으로 매우 넓게 개방되어 있었다. 특히 젊은이들의 음악 ROCK에 있어서는 과거 10년동안 그 어느해 보다도 폭넓은 활동이 보장되어 있었다. 세게 제2차 대전으로 궁핍했었던 경제가 어느 정도 풍요를 되찾았고, Harold Wilson의 진보적인 신 노동정부가 국민들에게 이상적이고 낙천적인 삶을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Rock문화는 더욱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안정된 생활속에서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Beatles, Rolling Stones 그리고 Who와 같은 우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뜻깊은 해에 이러한 우상들은 지금까지 행하지 않았었던실험적이고 좀더 예술적 차원에 가까운 시도를 하게 된다. 인기관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그들의 인기는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그들에게는 새로운 표현의 자유를 시도할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Beatles는 ‘Rubber Soul’의 연장선상에서 그들 최초의 실험작 “Revolver”를 George Harrison의 Sitar와 몇몇 Tape 효과음과 스트링 쿼텟의 도입과 함께 완성시킨다. 이때부터 Beatles의 앨범 커버도 예술적으로 승화되기 시작했다.(앨범 디자인은 Klaus Voorman: 1966년에 결성된 그룹 Paddy, Klaus And Gibson참고) Rolling Stones는 ‘Paint It Black’과 ‘Nineteenth Nervous Breakdown’등과 같은 사이코드라마를 연출시켰고 Who의 기타리스트 Pete Townshend는 Who의 무대에 강렬한 기타코드와 함께 Mod Fashion, Feedback효과 그리고 무정부를 그린 연극 효과와 비디오 효과 그리고 스모그폭탄을 도입했다. 그외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Donovan이 영국의 Bob Dylan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Kinks의 Ray Davis도 영국적인 액센트로 영국적인 노래를 부르는 새로운 우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위에서 언급된 Kinks의 Ray Davis, Beatles의 John Lennon, Who의 Pete Twonshend, Rolling Stones의 Keith Richard 등은 모두 Art School출신들로 1966년을 기점으로 Art School에 재학중이거나 막 졸업했던 많은 후배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1966년 봄, 후에 최고의 ART ROCK그룹으로 부상하게 되는 Pink Floyd의 모체그룹 Pink Floyd Sound가 Spontaneous Underground라는 별칭을 들으며 급성장하고 있었고 그들은 같은해 12월에 문을 열게되는 ART ROCK과 Underground Music의 산실 UFO클럽을 통해 역사적인 데뷰를 하게 된다. 1958년에 문을 연 Marquee Club도 1966년도부터 일요일 오후가 되면 ART ROCK을 행하는 신진 그룹들의 무대(Spontaneous Underground Session)를 만들었고, Royal Albert Hall도 이러한 그룹들처럼 ART ROCK을 행하는 그룹들을 무대에 초청했으며, Hall은 ART ROCK 그룹들의 연주를 지켜보려는 젊은 보헤미안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또한, 규율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국 9대 명문학교 Charterhouse에서는 앞으로 영국 ART ROCK계를 이끌게 되는 새싹이 움트고 있었는데, 그것은 1966년 여름학기말 교정에서 The Anon과 Carden Wall의 Joint Concert로부터 비롯된다 이 두개의 그룹이 합쳐져 그 이듬해 1월 Genesis라는 수퍼그룹이 결성되는 것이다. 변화 ART ROCK이 탄생한 1966년, 영국이 미국을 제치고 Rock의 리더임을 과시하게되는 1966년은 Rock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변환기를 의미하고 있다. Rock계에 이 한해동안 무수히 많은 이변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사건은 Yardbirds의 기타리스트 Eric Clapton이 만든 3인조 그룹 Cream의 결성이다. 지금껏 가장 인상적인 그룹 편성으로 알려져 왔던 4인조 편성의 아성을 깨고 3인조 그룹의 완벽성을 내걸고 등장한 Cream은 이때부터 ART ROCK의 효시로 일컬어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사운드는 ART ROCK이라기 보다는 Hard Rock과 흑인 Blues를 섞은 정통 Blues Rock에 더욱 가까웠다. 1966년말 또 하나의 강력한 3인조 그룹이 단탱했는데 그것은 바로 Jimi Hendrix가 이끄는 Jimi Hendrix Experience였다. Animals의 Chas Chandler에 의해서 뉴욕으로부터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온 흑인 기타리스트 Jimi Hendrix는 런던의 인기 TV프로그램 “Ready Steady Go”에 출연, 하얀 이빨로 기타줄을 뜯는 충격적인 연주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충격적인 행위가 마치 ART ROCK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후 3인조 편성은 초창기 ART ROCK계열의 그룹에 있어서는 가장 표본이되는 기본적인 그룹편성이 되었다. 사실 1965년에 등장하기 시작한 3인조 Rock그룹 편성은 guitar를 내세우는 것이었지만 그 이듬해인 1967년부터는 키보드를 내세우는 3인조 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967년, Keith Emerson에 의해 결성되는 The Nice는 Guitar파트 대신 키보드를 내세우는 이른바 정통 ART ROCK의 그룹 편성을 정립시켰다. 물론, 같은해에 결성된 King Crimson의 모체인 Giles Giles & Fripp은 두개의 형태를 모두 포용한 그룹이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Cream 스타일의 멤버 구성을 고집했으나, Guest Musican으로 키보드 파트를 보강하는 독특한 방법을 채택했다. 역시 이때 등장했던 “Theater Rock”의 창시자 Arthur Brown의 그룹도 리드 보컬리스트인 자신을 배제하면 역시 3인조 ART ROCK그룹 편성을 형성하고 있었다. 1966년에 일어난 또 하나의 커다란 사건은 그해 여름 이후로 Beatles의 콘서트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앨범 “Revolver”이후 더욱 복잡해진사운드를 무대위에서 결코 재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틀즈의 사운드가 복잡해졌다는 것은 바로 영국의 Rock Music이 변화되고 있음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Underground DJ John Peel 디스크 쟈키가 ART ROCK, PROGRESSIVE ROCK, PSYCHEDELIC등등 비상업적인 음악을 대중매체인 Radio에 소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기관리, 청취율과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DJ가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비상업지향의 음악을 방송한다는 것ㅇ느 위험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1980년대초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DJ가 있엇던 것 같다. 그리고 현재 고군분투하고 있는 분도 있다. 그분의 프로그램이 장수하기를... 본명이 John Ravenscroft인 John Peel은 Beatles처럼 Liver Pool출신으로 군복무를 마친뒤 1960년대초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 곳에서 Radio DJ로 일하게 된다 그는 Beatles의 열풍이 전세계에 몰아칠 무렵 고국으로 되돌아 왔고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1966년 그는 Musunderstood(1966년에 결성된 그룹)라는 그룹의 매니저로써 잠시 활동한 후 런던 근교의 배위에서 방송하는 불법, 해적 Radio방송의 DJ가 되었다. 그의 Radio프로그램 “Perfumed Garden"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늦은밤 프로그램으로 당시, 다른 기존 방송이 전혀 취급하지 않았던 영국, 미국의 Underground Music만을 방송해서 기존 방송, 기존 Pop Music에 식상해 있던 청취자들을 모두 끌어 모았다. 그의 Radio프로그램의 인기가 치속을 무렵 해적방송은 문을 닫았고 (1967년 중반, 영국 정보는 Marine Offence Act를 발동, 대부분의 해적 방송국은 이때 해체되었다.) 그는 Radio One에 스카웃되어 계속 방송하게 된다. ”Top Gear"라는 그의 새로운 프로그램은 당시 떠오르는 언더그라운드 그룹들을 수많은 청취자들에게 소개하는 장이 되어 주었는데, 그들중 T.Rex의 Marc Bolan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대표적인 인물이다. 1960년대말 그는 “Dandelion"이라는 조그만 레코드사를 설립하고 Briget ST.Jhon, Medicine Head 등의 앨범을 만들었으며, 그는 직접 Panama Limited, Toe Hat, Orange Bicycle등의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Underground 신문 IT(International Times)에 옛 프로그램명인 ”Perfumed Garden" 이라는 고정 컬럼을 쓰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그는 영국, 미국의 음악 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국가들의 Progressvier Rock그룹들을 영국에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독일의 Tangerine Dream은 그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영국 팬들을 확보, 영국에서 공연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Art Rock Magazine No. 5 (1993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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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풍경
25449 200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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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풍경
18101 2009-01-18
2 no image Joy Unlimited - Schmetterlinge (2)
마음풍경
2288 2009-01-18
Joy Unlimited - Schmetterlinge 독일 Pilz레이블에서 브리티쉬 록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그룹 Joy Unlimited 의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Joy & The Hit Kids라는 그룹 명으로 데뷔한 이들은 데카에서 넉 장의 싱글을 발표했으며, Joy Unlimited로 개명한 것은 1969년이었다. 이듬해 폴리돌을 통해 첫 앨범인 "Overground"를 공개하였는데, 여기에는 팝과 블루스 록 계열의 짤막한 곡들이 12곡 수록되었다. 그러나 Pilz로 이적하면서 비로서 이들은 프로그레시브록의 기품을 지니게 되었고, 여성 보컬리스트 Joy Fleming(vocals)을 주축으로 Han Herkenne(drums, purcussion), Albin Metz(trumpet, bass), Roland Heck(organ, piano, vibes, marimba, purcussion, vocals), Dieter Kindle(bass, guitar, purcussion), Gerd Kothe(saxes, flute), Klaus Nagel(guitar, woodwind, tympani, purcussion, flute)의 7인조 편성으로 1971년 2집 "Schmetterlinge (Butterflies)"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본래 발레를 위한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Contacts, Manifestations, Emotions의 파트로 나뉘어져 총 15곡의 소품을 담고 있는 컨셉트 앨범이다. 커다란 심장 박동 소리로 시작되는 ‘Rudiment'는 정통 프로그레시브록이며 ’For You And Me'에 이르기까지 브라스가 가미된 블루스록적인 요소가 골고루 배어있다. 두 번째 파트인 Manifestations는 ‘전쟁과 성, 자유, 허무주의, 우정’의 모티브로 진행된다. 시위대의 함성과 싸이렌이 이펙트 처리된 ‘Suppression'은 음울한 오르간과 목을 조이듯 울려 퍼지는 섹스폰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대담한 창법을 구사하고 있는 Joy Fleming의 블루스록 ’Rankness', 쾌락주의 뒤의 분열과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Face Of War', 베이스에 브라스 파트와 바이브러폰이 결합된 프리 재즈’Free', 맹렬한 기세의 플릇 연주에 굴복하고 마는 B면 첫곡 ‘Sensual Impressions'등은 압권이다. 마지막 파트인 Emotions는 앞의 곡들에 비해 다소 무기력한 짜임새를 보이고 있으나 승화감을 주는 결말부로서는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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