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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1 (00:08:34)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3회

British Psychedelia - 1부


미국-Sanfrancisco
1967년과 1968년은 미국과 더불어 영국에서도 사이키델릭 문화가 창작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미국의 경우,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The Door, The Great Society Jefferson Airplane, Big Brother & 800wi.jpgThe Holdig Company, The Greatful Dead, Country Joe & The Fish, Quick Silver Messenger Service, The Electric Flag, It's A Beautiful Day, Blue Cheer, Sly And The Family Stone 등이 미국 서해안지방 특히,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배경으로 대활약을 했었다.
물론 그 외 지역에도 이러한 사이키델릭 요소를 지닌 그룹들이 존재했었다. 그들중 아마 텍사스 어스틴 출신의 13th Floor Elevator를 결코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당시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가 꽃을 피우는 문화, 에술의 도시로서 세계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1940년대, 1950년대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미동부지역에서 확산되었던 문화, 예술들이 1960년대 중반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미서부 지역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들(예술인들과 짚시들, 히피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사랑, 평화를 위해 - Flower Movements의 돌풍을 일으키며) 이 샌프란시스코로 집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대열속에서는 영국에서 Animals의 신화를 이룩했던 Eric Burdon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 Eric Burdon & Animals도 있었으며 우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룹들도 상당수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Moby Grape, Chicago에서 내려온 Charlie Musselwhite의 Blues Band와 5인조 그룹 Linn County, New York에서의 Blues Project를 그만두고 대륙횡단을 감행한 Sea Train, 역시 머나먼 뉴욕에서 달려온 The Youngbloods, Seattle에서 온 Salvation, Berkeley출신의 Notes From The Underground와 Mad River, 샌프란시스코의 초기 언더그라운드 밴드 The Charlatans,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The Mystery Trend와 Chocolate Watch Band, 스튜디오 그룹 Fifty Foot Hose, Jefferson Airplane 스타일의 Neighborhood Children, 기억속에서 어렴풋이 존재하는 Pacific Gas And Electric, 어느정도 대중적 성공을 이끌었던 Sopwith Camel, 이름이 거창한 West Coast Pop Art Experimental Band 등등...


영국-London
ad.jpg위와같이 미국 사이키델릭의 발상지, 중심지가 샌프란시스코였다면 영국의 경우는 확실히 런던이었다. 런던의 중심지를 기점으로 전유럽에서 밀려들어오는 젊은이들 히피들은 런던의 Carnaby Street에 모여 들었다. 그들은 런던의 중심가를 배회하며 Boutique와 Shop에 전시되어 있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화려한 의상, 환상적인 그림들을 즐겼으며, 밤에는 클럽에서 개최되는 신비로운 Psychedelic Rock을 체험하였다. 비틀즈는 이러한 새로운 사조에 편승, Baker Street에 Apple 브띠끄를 개장했고 Tottenham Court Road에 위치한 UFO클럽은 이상한 복장을 한 히피들의 모임장소가 되었다.
Marquee Club과 Middle Earth Club도 UFO클럽과 다를 바 없었다. 1967년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동안 Alexandra Place에서 펼쳐진 14-Hours Technicolour Dream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펼쳐졌던 Be-In(히피들의 모임)과 유사한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는 이 행사의 타이틀 곡을 작곡했던 그룹 The Syn을 비롯, Pink Floyd, The Soft Machine, The Crazy World Of Arthur Brown, John's Children, Tomorrow, The Flies등등 모두 41개 팀들이 참가했었다.


British Psychedelic
영국 사이키델릭의 출발을 역시 비틀즈의 ‘Strawberry Fields Forever'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물론 이곡이 사이키델릭 성격을 띤 첫 번째 성곡작, 대중에게 zaj다란 호응을 얻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LSD를 상징)‘와 ’A Day In The Life'등은 비틀즈가 남긴 사이키델릭 명곡으로 알려져 왔다.
물론, 두곡 모두 BBC방송으로부터 금지곡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만 했었다. 비틀즈는 인도의 UFO.jpgMaharishi Mahesh를 방문했고, Geoge Harrison은 동양의 철학과 음악을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표햇으며, John Lennon은 이때부터 인류의 평화를 부르짖는다.
하지만 비틀즈 다음으로 영국음악계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Rolling Stones는 사이키델릭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게 주목을 받을만한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의 사이키델릭 앨범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보다는 멤버들의 약무루복용과 체포 그리고 법정시비등등 항상 좋지못한 화제만 뿌리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경우처럼 Modern Folk, Folk Rock등은 Psychedelic Rock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영국의 Folk계를 이끌었던 Donovan의 경우 사랑, 평화, 그리고 행복을 노래한, 당시 이슈에 걸맞는 많은 작품들을 히트시켰다. Folk Rock, Art Rock그룹 Traffic도 여러 사이키델릭 싱글들을, 운이 좋게도 금지곡 없이 히트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Psychedelic Rock과 영국의 Psychedelic Rock이 크게 다른 점은 미국의 것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중요시 여겼던 반면, 영국의 것은 이러한 이슈보다는 정신적, 예술적인 자유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당시 젊은이들이 가장 커다란 이슈로 내걸었던 평화와 사랑이 바로 베트남 전쟁과 직결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사이키델릭은 가사의 전달 메시지 보다는 사운드의 전달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다. British Psychelic에 영향을 준 또하나의 부류는 역시 블루스였다. Art Rock의 시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Cream도 초창기 영국의 사이키델릭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그룹이었다.
그러면 영국 사이키델릭 시대의 중요한 Art Rock 그룹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British Art Rock Groups Guide(Psychedelic Era : 1967~1970)
A-Austr 

Aardvark
AMM

Andwellas's Dream

Apple

Arcadium

ART
The Attack


Birds

Thunderbirds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Essex 출신의 5인조그룹은 미국 Motown스타일의 R&B를 연주하다가 그룹명을 Birds로 개칭하고 Psychedelic Rock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Decca를 통해 3매의 싱글과 Reaction을 통해 Birds Birds라는 그룹명으로 한매의 싱글을 남겼다. 이들은 미국의 Folk그룹 Byrds와 그룹명에 대한 논쟁을 벌여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Alistair McKenzie (vocal)

Ronnie Wood (guitar)

Tony Monroe (guitar)

Kim Gardner (bass)

Pete McDaniels (drum)

 

Black Widow


Chords Five

The Smoke 라는 그룹명으로도 활약했던 Psychedelic Group으로 오직 3매의 싱글들을 남겼다.

Mick Rowley (vocals)

Mal Luker (lead guitar)

John "Zeke" Lund (bass)

Geoff Gill (drums)

 

The Crazy World Of Arthur Brown

 

The Creation


Dantalian's Chariot

1960년대말부터 1970년대초까지 폭넓은 세션맨으로 각광을 받게되는 Zoot Money The Big Roll Band를 해산시키고 결성한 Psychedelic Band이다 이 그룹은 런던의 Middle Earth Club의 무대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 그룹에서 기타파트를 맡았던 인물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Police Andy Summers였다. 그러나 이들은 오직 한 장의 싱글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 한매의 싱글은 아직까지도 영국의 뛰어난 사이키델릭 음반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Andy Summers (guitar)

Pat Donaldson (bass)

Colin Allen (drums)

Zoot Money (keyboards, vocals)

 

The Deviants
Simon Dupree And The Big Sound

Velvet Opera

The End


Fairytale

생명력이 매우 짧았던 Lancaster출신의 사이키델릭 밴드이다. 이들은 Decca로부터 단 2매의 싱글을 남겼다.


Fat Mattress

Fire


The Fleur De Lys

"Fleur De Lys라는 이국적인 매우 독특한 그룹명으로 등장한 Southampton 지역출신의 4인조그룹이다. 이들은 사이키델릭 시대에 여러 런던 클럽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던 그룹으로 레코딩 경력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앨범은 단 한 장도 발매되지 않았으나 총 10장의 싱글을 남긴 그룹이다. 특히 Brian Haworth의 훌륭한 사이키델릭 기타 사운드가 담겨있는 이들의 초창기 싱글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초메가급 희귀음반들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Rupert People이라는 또다른 그룹명으로도 3장의 싱글을 남기기도 했다. Second Guitar 파트를 담당했던 Pete Sears는 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Stoneground라는 그룹과 Jefferson Starship의 세션주자로 참가했던 인물이다.


The Files

스테이지에서의 무대활약이 매우 뛰어났던 그룹 The Files The monkees의 ‘I'm Not Your Stepping Stone'을 사이키델릭으로 변주하여 1966년 주목을 끌기시작했다. 이들 역시 앨범은 발매하지 못했으나 영국의 사이키델릭 시대에 3장의 훌륭한 싱글들을 남겼다.


 

The Game

Surrey Micham 출신의 젊은이들로 결성된 전설적인 사이키델릭 그룹이다. 이들은 런던의 토박이 흑인 흥행가 Kenny Lynch가 메니저로 나섰던 그룹이기도 하다. 이들은 영국 사이키델릭 역사에 남을 4장의 싱글을 남겼다. 물론 이 싱글들은 현재 레코드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Terry Boyes (vocals, harmonica)

Reg Charsley (vocals)

Terry Spencer (lead guitar)

Tony Bird (rhythm guitar)

Allan Janaway (bass)

Jimmy Nelson (drums)

Terry Goodself (drums)

 

Gnidrolog


Grapefruit



Art Rock Magazine No. 7 (1994년 발행)

번호 제목 별명 조회 등록일
36 no image 무역 이론
웹마스터
3536 2013-02-24
말은 거창하지만 별 내용은 없습니다. 무역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때 단순히 만들고 팔고가 아닌 어떤것을 어떻게 어디에 팔것인지에 관한것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일단 요즘 원정대의 주 무역품 생산지인 '초원의 띠'와 '하리하랄라야의 폐허' 이 두곳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곳에서 무역을 준비하시는분들 역시 기본적인 방법은 같으니 참고하셔도 무방합니다. 먼저 무역품에 대해서 알아보 도록하겠습니다. - 초원의 띠 환약 : 모링가 열매(10개) + 특산품 인증서 - 초원의 띠 박하사탕 : 박하(10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땅콩 잼 : 땅콩(4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요리용 잎사귀 : 연꽃(50개) + 특산품 인증서 위의 4가지 품목에 대한 집중 분석을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무역품을 만들기 위해선 재료가 필요한데 재료를 입수하는 방법에는 1. 재배, 2. 구매 이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재배를 하는부분에 있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특산물 재료구매 : 물가의 변동성 때문에 무역을 준비하는 바로 그시기에 구매하는것은 항상 변동하는 물가의 방향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두배가까이 가격이 차이나기도 하니까요. 경매장을 통한 물품 가격 변동폭 박하(100개) : 1.10골드 ~ 1.80골드 모링가나무열매(10개) : 1. 30골드 ~ 2.00골드 땅콩(100개) : 2.00골드 ~ 2.90골드 연꽃(100개) : 1.20골드 ~ 3.50골드 대략적인 경매장가격입니다. 원가기준을 잡을때 무역품 하나의 가격은 절대 2.00골드가 넘지 말아야 한다(이것은 저의 철칙입니다.) 그렇다면 특산품 인증서 가격(50실버)에 특산물의 가격은 절대 1.50골드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되죠. 땅콩과 연꽃은 가격대가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라 운반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특산품 제작에 1.50골드 이하로 까지 낮출수 있어서 나름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재료를 경매장을 통해 싼가격으로 올라올때 구매를 하고 미리 특산물을 제작한뒤 같이 무역을 할 분들을 모집하여 무역을 한다면 한결 수월할것이라 생각됩니다. *무역품 제작은 2골드 이하가 되도록 하라. 어디에 팔것인가... 이제 싼가격에 무역품을 제작하였다면 좋은가격에 팔아야겠지요? 물품을 팔곳은 5곳 정도로 정리가 되는데, 이니스테르(카오노르드), 두왕관(이즈나항구), 십자별평원(시차일드 부두),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자유도 등입니다. 이곳외에도 있습니다만 판매가가 좋지않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 이니스테르(카어 노르드) (초원의 띠) 박하사탕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환약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하리하랄라야 폐허) 땅콩 잼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요리용 잎사귀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 두왕관(이즈나 항구) 박하사탕, 환약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 십자별 평원(시차일드 부두) 박하사탕, 환약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박하사탕, 환약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8g 50s(4g 25s ~ 12g 75s) 100% 기준에 50~150% 이상 4곳의 가격정보입니다. 자유도는 위험한 곳이라 저도 가격 확인 못했습니다 ^^ 하지만 제일 높은 가격을 받을수는 있으나 털릴 확률 80%에 팔수 있는 확률 5%, 15%는 배를 돌려 철수. 자유도는 소규모무역은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한곳(카오 노르드)를 제외한 나머지 3곳은 모두 서대륙에 위치한 판매처입니다. 패치로 인해 가격변동폭이 기존 80~120%에서 현재는 50% ~ 150% 변동이 된 상태입니다. 아마도 대량으로 가지고 가서 팔면 가격 폭락이 우려되오니 원정대 무역에서는 상품군을 다양화하는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설명은 어디까지나 소규모 무역(2~4명)선을 기준으로 한것으로 무역선 한대(무역품 20개)를 판다고 할경우엔 가격변동폭이 크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리없이 마구잡이로 쓰다보니 글내용이 두서가 없긴 합니다만 물품 구입과 판매에 대한 정보만 잘 확인하신다고 해도 도움이 도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캔들무역상회--
35 no image 아답터주문
웹마스터
3223 2012-10-19
34 no image Pulsar (4)
웹마스터
4218 2012-10-18
1970년대 후반 융성의 극을 달리던 프렌치 심포닉계도 1980년대로 들어설 무렵 완전히 동면상태로 들어가 버린다. 태반의 그룹들이 해산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그룹도 사운드를 변화시키고 만다. 그러한 가운데 유일하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들의 사운드를 지켜낸 그룹이 있다. Pulsar의 역사는 오래전인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Lyon의 고등학교 밴드로 활동하고 있던 Free Sound라는 그룹에는 Phillipe Roman(b), Jacques Roman(Key), Gilbert Gandil(g, vo), Victor Bosch(ds)의 4인이 재적하고 있었다. 이 밴드는 당초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하였는데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David Gilmour의 스테이지를 보고서 사운드 정책을 프로그레시브로 전환하게 된다. 1966년 그룹 결성 이해 여러 번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1968년 전술한 4인으로 정착된 것이다 그들은 본고장 Lyon에서 정력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며 1970년 4월 Pulsar라 개명한다. 그리고 Malaval Festival, 이어서 1971년에는 그룹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에 참가한다. 이콘테스트에서 성공을 거둔 그들은 프랑스 투어를 벌이면서 차츰 인기를 모아나갔다. 또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를 수록한 옴니버스 앨범 <Groovy Pop Session>도 1972년 발매되어 Ange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곡 “Pulsar”는 후의 그들의 사운드와는 다소 다르며 약가 헤비하고 혼탁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인기.실력을 한몸에 갖춘 그들은 1974년 12월 드디어 1집<Pollen>을 발매한다. 멤버는 전술한 4인에 플루트의 Roland Richard를 가입시킨 5인 편성이다. 곳곳에 Pink Floyd로부터의 영향을 느끼게 하면서도 상상력을 풍부히 가미한 섬세하고 몽환적인 부유감이 떠도는 사운드는 충분히 독창성을 감지할수 있는 아름답고 뛰어난 것이다. 팬 사이드에서도 이 앨범을 최고작으로 손꼽는 이가 적지 않다. 판매면에서도 일단 성공을 거둔 듯하다(이 앨범은 킹덤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고 영국에서도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1집 발표후 그들은 약 1개월에 걸친 영국 투어를 행하여 호평를 얻고 대형 그룹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1976년 4월, 2월 <The Strands of the Future>를 녹음한다. 이 앨범 제작시 베이스 Phillipe Roman이 탈퇴하고 게스트 형태로 참가하고 있다. Rock’n Folk지로부터 “이것은 풍부한 감성, 정렬로 충만한 대단히 뛰어난 앨범이다. Pulsar는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최상의 완성도를 지닌 그룹이다. 위대한 인상파 작곡가 말러와 같은 서정성을 감지하게 한다”고 호평을 받은 이 앨범은 사운드 퀄리티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SF적 부유감이 있는 A면의 대작, 서정적인 B면의 소품, 모두 그들의 독창성이 십분 발휘된 걸작이다. 판매면에서도 이 앨범은 대성공을 거두어 Ange, Atoll과 나란히 대형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2집 발표후 그들은 영국, 벨기에, 스위스, 포르투갈 등 장기간에 걸친 순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다. 이 인기를 눈으로 지켜본 프랑스 CBS는 좋은 조건을 내걸고 그들과 계약한다. 1977년 12월에 3집 <Halloween>이 발매된다. 베이스로 Michel Masson을 가입시킨 이 앨범은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초한 토탈 컨셉트 앨범이며 플루트와 멜로트론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비교할 바 없는 서정성을 갖춘 최고의 걸작이다. 또 이 앨범에서 홍보용(적어도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레코드에는 Special Promotion이라 명기되어 있다) 싱글 “Sorrow In My Dream/Dawn Over Darkness”가 커트되었다. 이 앨범은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자신넘치는 작품이었는데, 홍보 부족으로 말미암에 판매면에서 실패로 끝나고 만다. 3집 발표후 그들은 CBS를 떠나고 베이스로 탈퇴하여 활동이 부진하게 된다. 록계는 바야흐로 펑크, 뉴웨이브로 이행하고 있었으며그들에게는 겨울과 같은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980~81년에 걸쳐 Le Companie Du Theatre De La Satire라는 극단의 연극 세션을 맡았으며, 그 가운데 한 작품 “Bienvenue au Conseild Administraction”은 1982년 레코드화되고 있다. 컨템포러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데 Pulsar의 사운드는 건재하다. 그리고 이후로도 그들은 산발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는등 활동을 계속하여 186년에는 Jacques Roman의 명의로 카세트 앨범 <Melodie Boreale>를 발매하였다. 릴랙스된 듯한 작품이지만 Pulsar 사운드의 아름다움만큼은 그대로 보존한 키보드워크는 그들의 사운드 정책이 지금도 불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프렌치 심포닉 역사의 정도를 걸어온 그들의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33 no image Art Zoyd (44)
웹마스터
4497 2012-10-17
프랑스의 록계에 아르 조이라는 이름의 그룹이 등장한 것은 70년대 초두의 일이다. 71년 그들은 마이너 레이블 Opaline에서 싱글 “Sangria/Something in Love”를 발매하였다. 그것은 60년대 록게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한 존재였던 크림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색소폰을 대담히 도입하는 등 독자적인 실험도 행한 의욕작이였다. 당시 그룹의 퍼스넬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상기 레코드에서 판단컨데 기타, 베이스, 드럼, 색소폰으로 구성된 5인조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싱글의 A면은 R.Fernandez의 작품, B면은 R.Frenandez와 J.P. Dulion의 공동작품이고 어레인지는 Alain Loewenguth로 되어있지만 그들의 그룹의 멤버였는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76년 창설기의 멤버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아르 조이의 흐름을 이어받은 아르 조이 트르와(Art Zoyd 3)가 첫번째 앨범 <Symphonie Pour Le Jour Ou Bruleront Les Cites>를 발매하였다. Thierry Zaboitze(b, per, vo), Jean Pierre Soarez(Tp, per), Alain Eckert(g, per, vo), Gerard Hourbette(Vln, fl)의 4인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 독창성 및 이후의 록계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70년대 프렌치 프로그레시브 록 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를 록의 테두리 내로 교묘히 끌어들인 연주를 전개하는 트럼팻과 바이올린, 변박자를 많이 사용한 곡제작 등은 챔버록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를 중심으로 다수의 라이브를 행하였다. 82년 영국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된 싱글 “Manege”는 76년 2월 19일 팔레스 드 스포르트 듀 툴루즈에서 개막된 콘서트의 일부를 수록한 것이다. 그룹명을 다시 아르 조이로 되돌린 그들의 두번째 앨범<Musigue Pour L’Odyssee>는 유니베르 제로의 다니엘 데이스(ds), 미셀 베르그망(oboe, bassoon)을 게스트로 맞아들여 벨기에의 Overjse에서 녹음, 아템 레이블에서 발표되었다. 헨리 카우를 중심으로 하는RIO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들의 앨범은 레코멘디드 레이블을 통해 일본, 미국, 유럽 각국에 소개되어 그들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80년 2월 스위스의 Kirchberg에 있는 Sunrise Studio에서 세번째 앨범 <Generation Sans Futur>를 제작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템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도 다니엘 데니스가 가세한 작품이 1곡 수록되어 있는데 그 사운드는 전작의 아르 조이로서는 다소 클래식한 것에서 재즈적인 요소를 좀더 강조한 실험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 같은 해 7월에는 자주제작 음반인 이유로 프레스 매수가 적어서 이미 입수가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린 첫번째 앨범을 재녹음하여 네번재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오리지널 음반의 멤버에 Frank Cardon(Vln), Patricia Dallio(p), Gilles Renard(sax)가 가세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 오리지널 음반을 월등히 상회하고 있다. 가장 음악적으로 충실한 시기를 맞이한 아르 조이였지만 아템 레이블이 그만 활동을 정지해 버린탓에 다섯번재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영국의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가 결정되어, 82년 4월~5월에 걸쳐서 녹음된 <Phase IV>는 더블앨범으로 재즈적 요소를 훌륭하게 승화시켜서 독자적인 챔버록으로 완성시킨, 아르 조이의 6년에 이르는 활동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작품이다. 83년에는 프랑스이 신흥 레이블 Cryonic에서 6집 <Escape Inquiets>를 발표 작품으로서의 힘이 다소 떨이지고 있지만 서서히 새로운 젙개를 추구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예상하던대로 84년 그들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였다. 우선 멤버의 한 사람인 Thierry Zaboitze가 극단 Le Collectif Theatral Du Hainaut의 <Promethee>를 위한 극장용 곡을 만들고, 그것을 솔로 앨범으로 발표하였다. 이어서 롤랑 프티의 창작 발레 “Le Mariage Du Ciel Et De L’enfant”에 그룹 차원으로 음악을 담당하여 그 일부를 7집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이들 작품은 그 성격상 음악적으로 종래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음악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2년이상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작을 내걸고 부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은 적지 않을 것이다.
32 no image 약관
마음풍경
3681 201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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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3 201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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