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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5 (01:50:50)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4회
British Psychedelia - 2부

Psychedelic Culture의 근원 Bohemians - The Lost Generation
640wi.gifBohemia로부터 서구유럽으로 짚시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이었으며 이들은 Bohemian으로 불리웠다. 1848년, Thackeray의 소설 "Vanity Fair"를 통해 보헤미안이라는 단어의 뜻은 순수한 짚시라는 뜻에서 “현대사회속의 짚시”를 지칭하게 되었고 1949년 Henri Murger의 작품 “Scenes De Vie De Boheme"에서 보헤미안의 뜻은 파리에서 살아가는 가난하고 정열적인 예술가들을 일컬었다. 이 단어는 1910년 들어서면서 가난하며 고집이 세고 행실이 좋지 못한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을 지칭하는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후 전위예술가도 그 범주안에 넣어 부르곤 했다. 유럽의 보헤미안들은 주로 값싼 학교 기숙사에 머물면서 생활했다.
1890년, 미국 뉴욕의 보헤미안들의 경우는 유럽의 보헤미안들이 값싼 학교 기숙사에 머물렀던 것처럼 생활비가 적게들었던 Greenwich Village에 모여 살았다. 그러나 Greenwich Village에서 생활했던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1차 세계대전후 그 곳을 떠났다.
1926년, Ernest Hemingway는 소설 “The Sun Also Rises"에서 1차 세계대전동안 젊은 성인으로 자라난,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미래가 없어 보이던 세대들을 The Lost Generation으로 표현했다. 그후 Lost Generation은 Beat Generation으로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

Hep, Hip, Hipster, Beat 그리고 Hippie
1900년초 Jazz Musicans들 사이에서 hep이라는 단어의 뜻은 “세련된”이라는 의미였단. 그러난 1931년372.jpg에 들어서면서 이단어는 종종 hip으로 발음되면서 결국 1945년경에 hip으로 정착되었고 당시 hipster라는 뜻은 미국 서부지역에서 탄생하기 시작했던 Progressive Jazz를 행하는 뮤지션들을 가르켰다.
1957년 새로운 타입의 젊은이들을 가르키는 말로 대문자 B로 시작되는 Beat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단어는 멋진 젊은 대학생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범위가 크게 확장되어 전후세대, 원자폭탄 세대, 그리고 부와 명예를 등지고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주장했던 젊은이들을 총칭하게 된다.
1960년대 중반에 서서히 불붙기 시작하여 1960년대말에 대폭발을 일으키게되는 사이키델릭 문화는 Beats작가들과 시인들에 의해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Jack Kerouac(1922~1969), Allen Ginsberg(1926~1997) 그리고 Gregory Corso(1930~2001)등이 Psychedelic Culture의 근원이라할 수 있는 Beats의 대표적인 문학가들이다.
그들의 추종자들은 Beatniks라고 불리웠으며, 이 단어는 1958년 4월 2일 샌프란시스코의 코로니클지 Herb Caen의 시사컬럼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1957년 10월에 발사되었던 인류최초의 러시아 인공위성 “Spuntnik"과 최고의 행복감을 뜻하는 ”Beatific"으로부터 유래되었다. Allen Ginsberg는 1955년 자신의 시 “Howl"에서, Jack Kerouac은 1957년 소설 ”On The Road"에서 Beat에 대한 언급을 시작했다.
allen_ginsberg.jpgBeats작가들은 인간 내면의 평화는 사회의 인위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자신들의 작품들을 놓고 토론하거나 관심을 갖는 청중들에게 시를 낭송하거나,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등 대중들과 잦은 접촉을 가졌다. 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할때는 줄곧 Cool Jazz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Cool Jazz가 분위기를 맞추는데 가장 적절한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Cool Jazz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그들의 Beat 문화작품에 가장 걸맞는 배경음악이었다.
같은해 Beats계는 엄청나게 불어나는 수요로 Hipster들의 지지를 받게되었고, 이ㅣ러한 Hipster들은 처음으로 Hippies라고 불리우기 시작했다. 1960년대초, 모든 사람들은 사회와 결별한 문제아들을 히피라고 불렀다. 생활이 자유분방하고, 누더기 옷이나 낡은 청바지를 입고 샌달을 신고 다니며 간이 침랑속에서 잠을 자는 이른바 1960년대 길거리의 젊은이들이 바로 히피였다. 당시 기성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히피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과 신경을 곤두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기성세대들은 Hippie들의 온상지로 불리웠던 Hashbury지역에서 벗어나려했는데 이 지역는 샌프란시스코의 두 거리 이름들 “Haight"와 ”Ashbury"를 합성한 구역이름이다. 물론 이 지역의 이름으로부터 은어 Hash와 Hashish가 파생되었다.
사랑과 평화를 주장했던 히피들의 추종세력들은 히피를 가르켜 ‘Flower Children'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에 반대하는 이들은 히피를 가르켜 Beatniks라고 불렀다.
1950년대중반까지 Beats의 삼대 거목들인 Jack Kerouac, Allen Ginsberg 그리고 Gregory Corso의 활동무대는 뉴욕이었다. 그러나 1950년 중반,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게 된다. 이때 샌프란시스코에는 Kenneth Rexroth(1905~1982), Lowrence Ferlinghetti(1919~), 그리고 Gary Snyder(1930~)등이 Beat계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라나 그들의 Beat운동은 문학계로부터 지탄을 받았으며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고 폭력사태로 무너지게 된다. 이때 Allen Ginsberg만이 뉴욕으로 되돌아왔으며 나머지 작가들은 대중들과의 만남과 공연을 중지하고 샌프란시스코에 남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Beat운동은 샌프란시스코에서 1959년에 종식되었다. 그러나 Beat운동의 사상은 1960년대 히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히피들의 Flower Power는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뿐만 아니라 전유럽의 젊은이들의 음악, 패션, 언어 그리고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특히 음악의 경우 이러한 영향은 Psychedelic Music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영국런던의 Notting Hill
미국의 Psychedelic Music이 마약 병폐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고 베트남 전쟁의 반대 반전사상을 이슈로 내걸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국의 Psychedelic Music은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술적, 정신적 자유를 내세웠고 메세지보다는 사운드 전달을 중요시 여겼던 미국의 경우 대규모 집회 대형 야외 콘서트들(Woodstock, Monterey)을 통하여 넓게0p1.jpg 확산된 반면, 영국의 경우는 소규모의 클럽, 선술집등의 조그만 공간에서 서서히 확산되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서부지역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거대한 사이키델릭 문화가 정착되었고, 동부지역에서는 규모면에서 샌프란시스코보다는 작았지만 뉴욕 East Village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영국은 런던(지난호에서 간단히 언급되었던 Carnaby Street)특히, Notting Hill 지역을 중심으로 사이키델릭 문화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지역적으로 Notting Hill은 집세가 저렴하여 가난한 뮤지션들이 생활하기에는 가장 좋은 보금자리였다. 또한 Notting Hill은 영국 흑인음악의 메카였으며 병폐문화의 지하 거래처였다.
International Times
미국 뉴욕에서 발간되는 Village Voice나 East Village Other가 당시 미국의 사이키델릭과 언더그라운드 인쇄 문화의 산실이었으면 영국의 경우는 당연히 International Times(IT)가 그 역할을 해내었다. IT는 영국인 Mile Hopkins와 John Hopkins가 미국인 출판인 Jim Hayens와 함께 설립한 언더그라운드 신문이다. Jim Hayens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서점과 극장 그리고 런던에 예술연구소를 세운바있는 기업가였다. Miles형제는 그에게 Indica서점의 지하를 사무실로 사용하도록 배려를 해주었고 세명의 출판인들은 동업으로 영국 언더그라운드 세계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게될 전문지를 구상하게 된다. 그들은 새롭게 발간될 언더그라운드 신문의 이름을 찾다가 그들이 무심코 내뱉은 문장 “What Should We Call It?"의 인칭 대명사 ”IT"를 신문의 이름으로 채택했다.

Psychedelic Music의 지침서
110_L.jpg미국의 Psychedelic Music을 다른 장르와 구별짓기는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영국의 Psychedelic Music을 다른 장르로 분류하는데는 커다란 어려움이 뒤따른다. 1960년대말경에 활동했던 각 장르의 연주자들 대부분이 한번쯤은 Psychedelic Music에 접근하는 시도를 행했기 때문이다. 1984년 Vernon Joynson의 The Acid Trip "A Complete Guide To Psychedelic Music"(Babylon Books)이라는 조그만 책자가 영국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자는 미국, 영국의 사이키델릭을 구분하여 그룹별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 사이키델릭 지침서였는데, 어느정도 국가별, 지역별 분류는 잘 이루어져 있으나 서문에서 저자가 못내 아쉬워했던 것처럼 자료의 궁핍은 이 지침서의 가치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특히, 영국파트에서는 그룹선정과 해설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8년 Vernon Joynson은 첫 번째 책자에 내용을 보강시킨 After The Acid Trip “The Flashback" (Bordeline Productons)이라는 책자를 내놓았으나 역시 자료적인 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The Acid Trip "A Complete Guide To Psychedelic Music" After The Acid Trip "The Flashback" (Borderline Productons)

British ART ROCK Groups Guide(Psychedelic Ear : 1967~1970)
지면관계상 Super Group과 국내에 잘 알려지 있는 그룹들 그리고 AR에서 자주 다루었던 그룹들은 부득이 본란에서 제외 되었음을 밝힌다. - 편집자 주

H-Z
Herbal Mixture
Groundhogs의 멤버들이었던 Tony Mchphee와 Peter Cruickshank가 재적했었던 그룹이다. 이들은 1966년 7월 단 두장의 싱글들을 발표하고 해산되었다. Manfredd Mann의 곡 Machine이 담겨있는 두 번째 싱글은 우수한 사이키델릭 넘버로 기록되었다.
Tony T.S. McPhee (guitar, vocals) 
Pete Cruickshank (bass)
Mike Meekham (drums)


The Human Beast
Gillies Buchan을 중심으로 결성된 3인조 Heavy Psychedelic Band로 이들은 Decca로부터 Volume One이라는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Gillies Buchan (guitar, vocals)
Edward Jones (bass, vocals)
John Romsey (drums)
Album :
Volume One (1970)

ICE
1970년대중반에서 활약했던 Passport레코드사 소속의 동명그룹과 별개의 그룹, 1967년에 데뷔한 5인조 Psychedelic 그룹 ICE는 Decca레코드사가 크게 기대했던 그룹이었지만 레코드사측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이들의 데뷔 싱글은 강렬한 오르간연주가 돋보이며 그룹명의 싱글은 Guitar Work이 매우 뛰어나 보인다.
Kevin Martin (saxophone, vocals, synthesizers), 
Justin Broadrick (guitar)
Dave Cochrane (bass)
John Jobaggy (drums)
Lou Ciccotelli (drums)
 

Man
마치 Pink Floyd처럼 Psychedelic시대를 거쳤던 Progressive Rock그룹이다. 영국 웨일즈 남동부 항구도시 Swansea출신의 The Bystanders가 이들의 전신그룹이다. 이들의 초창기 사운드는 마치 미국의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를 연상시킨다.
Micky Jones (lead Guitar, vocals)
Clive John (keyboards, vocals)
Roger Leonnard (Guitar, vocals)
Jeff Jones (drums, percussions)
Ray Williams (drums, vocals)

 
Tangerine Peel
싱어송 라이터인 Mike Chapman이 이끌었던 Nicky Chinn과 공동으로 출범시킨 듀오그룹 Tangerine Peel은 1969년 2월 MGM사로부터 데뷔싱글이자 대표작 “Never Say Never Again/Thousand Miles Away"로 데뷔했다. 이들은 2년동안 5매의 싱글과 한매의 앨범을 남겼으며 몇몇 작품들이 Psychedelic 범주에 놓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Album :
Soft Delights (1970)

Toby Twirl
본래 Shades Of Blue이름으로 1965년부터 1966년동안 3매의 싱글을 남겼던 5인조 그룹명을 바꾸면서 Decca레코드와 계약 1968년부터 1969년까지 또다른 3매의 싱글을 남기고 해산되었다.
David Holland (vocals)
John Reed (drums)
Barry Sewell (organ)
Stuart Sommerville (bass)
Nick Thornburn (lead guitar)



아티스트 소개부분은 싱글앨범만 발표한 그룹외 다른그룹들은  앨범 자켓이미지와 함께 ARTIST, REVIEW에 링크하였습니다.
Art Rock Magazine No. 8 (1995년 발행)
번호 제목 별명 조회 등록일
36 no image 무역 이론
웹마스터
3536 2013-02-24
말은 거창하지만 별 내용은 없습니다. 무역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때 단순히 만들고 팔고가 아닌 어떤것을 어떻게 어디에 팔것인지에 관한것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일단 요즘 원정대의 주 무역품 생산지인 '초원의 띠'와 '하리하랄라야의 폐허' 이 두곳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곳에서 무역을 준비하시는분들 역시 기본적인 방법은 같으니 참고하셔도 무방합니다. 먼저 무역품에 대해서 알아보 도록하겠습니다. - 초원의 띠 환약 : 모링가 열매(10개) + 특산품 인증서 - 초원의 띠 박하사탕 : 박하(10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땅콩 잼 : 땅콩(4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요리용 잎사귀 : 연꽃(50개) + 특산품 인증서 위의 4가지 품목에 대한 집중 분석을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무역품을 만들기 위해선 재료가 필요한데 재료를 입수하는 방법에는 1. 재배, 2. 구매 이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재배를 하는부분에 있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특산물 재료구매 : 물가의 변동성 때문에 무역을 준비하는 바로 그시기에 구매하는것은 항상 변동하는 물가의 방향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두배가까이 가격이 차이나기도 하니까요. 경매장을 통한 물품 가격 변동폭 박하(100개) : 1.10골드 ~ 1.80골드 모링가나무열매(10개) : 1. 30골드 ~ 2.00골드 땅콩(100개) : 2.00골드 ~ 2.90골드 연꽃(100개) : 1.20골드 ~ 3.50골드 대략적인 경매장가격입니다. 원가기준을 잡을때 무역품 하나의 가격은 절대 2.00골드가 넘지 말아야 한다(이것은 저의 철칙입니다.) 그렇다면 특산품 인증서 가격(50실버)에 특산물의 가격은 절대 1.50골드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되죠. 땅콩과 연꽃은 가격대가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라 운반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특산품 제작에 1.50골드 이하로 까지 낮출수 있어서 나름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재료를 경매장을 통해 싼가격으로 올라올때 구매를 하고 미리 특산물을 제작한뒤 같이 무역을 할 분들을 모집하여 무역을 한다면 한결 수월할것이라 생각됩니다. *무역품 제작은 2골드 이하가 되도록 하라. 어디에 팔것인가... 이제 싼가격에 무역품을 제작하였다면 좋은가격에 팔아야겠지요? 물품을 팔곳은 5곳 정도로 정리가 되는데, 이니스테르(카오노르드), 두왕관(이즈나항구), 십자별평원(시차일드 부두),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자유도 등입니다. 이곳외에도 있습니다만 판매가가 좋지않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 이니스테르(카어 노르드) (초원의 띠) 박하사탕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환약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하리하랄라야 폐허) 땅콩 잼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요리용 잎사귀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 두왕관(이즈나 항구) 박하사탕, 환약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 십자별 평원(시차일드 부두) 박하사탕, 환약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박하사탕, 환약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8g 50s(4g 25s ~ 12g 75s) 100% 기준에 50~150% 이상 4곳의 가격정보입니다. 자유도는 위험한 곳이라 저도 가격 확인 못했습니다 ^^ 하지만 제일 높은 가격을 받을수는 있으나 털릴 확률 80%에 팔수 있는 확률 5%, 15%는 배를 돌려 철수. 자유도는 소규모무역은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한곳(카오 노르드)를 제외한 나머지 3곳은 모두 서대륙에 위치한 판매처입니다. 패치로 인해 가격변동폭이 기존 80~120%에서 현재는 50% ~ 150% 변동이 된 상태입니다. 아마도 대량으로 가지고 가서 팔면 가격 폭락이 우려되오니 원정대 무역에서는 상품군을 다양화하는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설명은 어디까지나 소규모 무역(2~4명)선을 기준으로 한것으로 무역선 한대(무역품 20개)를 판다고 할경우엔 가격변동폭이 크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리없이 마구잡이로 쓰다보니 글내용이 두서가 없긴 합니다만 물품 구입과 판매에 대한 정보만 잘 확인하신다고 해도 도움이 도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캔들무역상회--
35 no image 아답터주문
웹마스터
3223 2012-10-19
34 no image Pulsar (4)
웹마스터
4218 2012-10-18
1970년대 후반 융성의 극을 달리던 프렌치 심포닉계도 1980년대로 들어설 무렵 완전히 동면상태로 들어가 버린다. 태반의 그룹들이 해산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그룹도 사운드를 변화시키고 만다. 그러한 가운데 유일하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들의 사운드를 지켜낸 그룹이 있다. Pulsar의 역사는 오래전인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Lyon의 고등학교 밴드로 활동하고 있던 Free Sound라는 그룹에는 Phillipe Roman(b), Jacques Roman(Key), Gilbert Gandil(g, vo), Victor Bosch(ds)의 4인이 재적하고 있었다. 이 밴드는 당초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하였는데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David Gilmour의 스테이지를 보고서 사운드 정책을 프로그레시브로 전환하게 된다. 1966년 그룹 결성 이해 여러 번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1968년 전술한 4인으로 정착된 것이다 그들은 본고장 Lyon에서 정력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며 1970년 4월 Pulsar라 개명한다. 그리고 Malaval Festival, 이어서 1971년에는 그룹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에 참가한다. 이콘테스트에서 성공을 거둔 그들은 프랑스 투어를 벌이면서 차츰 인기를 모아나갔다. 또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를 수록한 옴니버스 앨범 <Groovy Pop Session>도 1972년 발매되어 Ange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곡 “Pulsar”는 후의 그들의 사운드와는 다소 다르며 약가 헤비하고 혼탁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인기.실력을 한몸에 갖춘 그들은 1974년 12월 드디어 1집<Pollen>을 발매한다. 멤버는 전술한 4인에 플루트의 Roland Richard를 가입시킨 5인 편성이다. 곳곳에 Pink Floyd로부터의 영향을 느끼게 하면서도 상상력을 풍부히 가미한 섬세하고 몽환적인 부유감이 떠도는 사운드는 충분히 독창성을 감지할수 있는 아름답고 뛰어난 것이다. 팬 사이드에서도 이 앨범을 최고작으로 손꼽는 이가 적지 않다. 판매면에서도 일단 성공을 거둔 듯하다(이 앨범은 킹덤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고 영국에서도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1집 발표후 그들은 약 1개월에 걸친 영국 투어를 행하여 호평를 얻고 대형 그룹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1976년 4월, 2월 <The Strands of the Future>를 녹음한다. 이 앨범 제작시 베이스 Phillipe Roman이 탈퇴하고 게스트 형태로 참가하고 있다. Rock’n Folk지로부터 “이것은 풍부한 감성, 정렬로 충만한 대단히 뛰어난 앨범이다. Pulsar는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최상의 완성도를 지닌 그룹이다. 위대한 인상파 작곡가 말러와 같은 서정성을 감지하게 한다”고 호평을 받은 이 앨범은 사운드 퀄리티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SF적 부유감이 있는 A면의 대작, 서정적인 B면의 소품, 모두 그들의 독창성이 십분 발휘된 걸작이다. 판매면에서도 이 앨범은 대성공을 거두어 Ange, Atoll과 나란히 대형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2집 발표후 그들은 영국, 벨기에, 스위스, 포르투갈 등 장기간에 걸친 순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다. 이 인기를 눈으로 지켜본 프랑스 CBS는 좋은 조건을 내걸고 그들과 계약한다. 1977년 12월에 3집 <Halloween>이 발매된다. 베이스로 Michel Masson을 가입시킨 이 앨범은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초한 토탈 컨셉트 앨범이며 플루트와 멜로트론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비교할 바 없는 서정성을 갖춘 최고의 걸작이다. 또 이 앨범에서 홍보용(적어도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레코드에는 Special Promotion이라 명기되어 있다) 싱글 “Sorrow In My Dream/Dawn Over Darkness”가 커트되었다. 이 앨범은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자신넘치는 작품이었는데, 홍보 부족으로 말미암에 판매면에서 실패로 끝나고 만다. 3집 발표후 그들은 CBS를 떠나고 베이스로 탈퇴하여 활동이 부진하게 된다. 록계는 바야흐로 펑크, 뉴웨이브로 이행하고 있었으며그들에게는 겨울과 같은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980~81년에 걸쳐 Le Companie Du Theatre De La Satire라는 극단의 연극 세션을 맡았으며, 그 가운데 한 작품 “Bienvenue au Conseild Administraction”은 1982년 레코드화되고 있다. 컨템포러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데 Pulsar의 사운드는 건재하다. 그리고 이후로도 그들은 산발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는등 활동을 계속하여 186년에는 Jacques Roman의 명의로 카세트 앨범 <Melodie Boreale>를 발매하였다. 릴랙스된 듯한 작품이지만 Pulsar 사운드의 아름다움만큼은 그대로 보존한 키보드워크는 그들의 사운드 정책이 지금도 불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프렌치 심포닉 역사의 정도를 걸어온 그들의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33 no image Art Zoyd (44)
웹마스터
4497 2012-10-17
프랑스의 록계에 아르 조이라는 이름의 그룹이 등장한 것은 70년대 초두의 일이다. 71년 그들은 마이너 레이블 Opaline에서 싱글 “Sangria/Something in Love”를 발매하였다. 그것은 60년대 록게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한 존재였던 크림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색소폰을 대담히 도입하는 등 독자적인 실험도 행한 의욕작이였다. 당시 그룹의 퍼스넬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상기 레코드에서 판단컨데 기타, 베이스, 드럼, 색소폰으로 구성된 5인조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싱글의 A면은 R.Fernandez의 작품, B면은 R.Frenandez와 J.P. Dulion의 공동작품이고 어레인지는 Alain Loewenguth로 되어있지만 그들의 그룹의 멤버였는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76년 창설기의 멤버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아르 조이의 흐름을 이어받은 아르 조이 트르와(Art Zoyd 3)가 첫번째 앨범 <Symphonie Pour Le Jour Ou Bruleront Les Cites>를 발매하였다. Thierry Zaboitze(b, per, vo), Jean Pierre Soarez(Tp, per), Alain Eckert(g, per, vo), Gerard Hourbette(Vln, fl)의 4인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 독창성 및 이후의 록계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70년대 프렌치 프로그레시브 록 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를 록의 테두리 내로 교묘히 끌어들인 연주를 전개하는 트럼팻과 바이올린, 변박자를 많이 사용한 곡제작 등은 챔버록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를 중심으로 다수의 라이브를 행하였다. 82년 영국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된 싱글 “Manege”는 76년 2월 19일 팔레스 드 스포르트 듀 툴루즈에서 개막된 콘서트의 일부를 수록한 것이다. 그룹명을 다시 아르 조이로 되돌린 그들의 두번째 앨범<Musigue Pour L’Odyssee>는 유니베르 제로의 다니엘 데이스(ds), 미셀 베르그망(oboe, bassoon)을 게스트로 맞아들여 벨기에의 Overjse에서 녹음, 아템 레이블에서 발표되었다. 헨리 카우를 중심으로 하는RIO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들의 앨범은 레코멘디드 레이블을 통해 일본, 미국, 유럽 각국에 소개되어 그들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80년 2월 스위스의 Kirchberg에 있는 Sunrise Studio에서 세번째 앨범 <Generation Sans Futur>를 제작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템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도 다니엘 데니스가 가세한 작품이 1곡 수록되어 있는데 그 사운드는 전작의 아르 조이로서는 다소 클래식한 것에서 재즈적인 요소를 좀더 강조한 실험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 같은 해 7월에는 자주제작 음반인 이유로 프레스 매수가 적어서 이미 입수가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린 첫번째 앨범을 재녹음하여 네번재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오리지널 음반의 멤버에 Frank Cardon(Vln), Patricia Dallio(p), Gilles Renard(sax)가 가세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 오리지널 음반을 월등히 상회하고 있다. 가장 음악적으로 충실한 시기를 맞이한 아르 조이였지만 아템 레이블이 그만 활동을 정지해 버린탓에 다섯번재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영국의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가 결정되어, 82년 4월~5월에 걸쳐서 녹음된 <Phase IV>는 더블앨범으로 재즈적 요소를 훌륭하게 승화시켜서 독자적인 챔버록으로 완성시킨, 아르 조이의 6년에 이르는 활동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작품이다. 83년에는 프랑스이 신흥 레이블 Cryonic에서 6집 <Escape Inquiets>를 발표 작품으로서의 힘이 다소 떨이지고 있지만 서서히 새로운 젙개를 추구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예상하던대로 84년 그들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였다. 우선 멤버의 한 사람인 Thierry Zaboitze가 극단 Le Collectif Theatral Du Hainaut의 <Promethee>를 위한 극장용 곡을 만들고, 그것을 솔로 앨범으로 발표하였다. 이어서 롤랑 프티의 창작 발레 “Le Mariage Du Ciel Et De L’enfant”에 그룹 차원으로 음악을 담당하여 그 일부를 7집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이들 작품은 그 성격상 음악적으로 종래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음악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2년이상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작을 내걸고 부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은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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