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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21:23:59)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5회
PROGRESSIVE ROCK  1부

Progresstudio4_1.jpgsive Rock의 탄생
 누구나 Art Rock 또는 Progressvie Rock은 영국에서 태동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류의 음악형태가 언제, 누구에 의하여 등장하게 되었는지 또한 과연 그것들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이러한 주제를 시원하게 다루었던 평론가나 문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주제를 놓고 추상적으로 다루었던 잡지류나 사전류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으나 모두가 수박 겉핥기식이였다. 종주국인 영국마저도 이러한 주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찰하지 않았으며 불모지인 미국의 경우는 언급할 필요없이 전무후무한 상태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두터운 애호가층 덕분에 어느정도 분석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분석력이 제일 뛰어나다는 일본인들의 분석 역시 석연치 않은 단면을 보여준다. 그들도 자료빈곤에 대한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인들 특유의 음악적 취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편협적인 분성이었다. 필자 역시 15년전부터 “Progressive Rock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방송을 통하여 아니면 인쇄매채를 통하여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언급을 해왔지만 그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영국 Art Rock의 역사를 대대적으로 다루게 되면서 Progressvie Rock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다시 한번 그에 대한 가까운 해답을 찾기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게 되었다. 현시점에서 본지 Art Rock이 이분야 세계 최대 전문 음악지임을 감안한다면 그동안 어느 누구도 깊히 다루지 못했던 Progressive Rock을 가장 비중있게, 심층적으로 다루어봄직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앞으로 게재될 내용들이 자칫 논문처럼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여러분들의 넓은 이해와 끊임없는 충고를 부탁드리는 바이다. (편집자 주)

I. Progressvie Rock의 태동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1. 녹음기술 발달에 의한 태동
 1960년대 중반부터 녹음기술은 급속도로 개선되었따. 여기에서 말하는 개선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발전된 것을 의미한다. 질적으로는 음질이 뛰어난 하드웨어가 음향기기 회사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경쟁으로 커다란 결실을 이루어 냈다. 뛰어난 스튜디오장비가 갖추어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녹음기술에 있어서는 혁명이라 할 수 있는 다채널시대가 열리게되어 뮤지션들에게 폭넓은 아이디어를, 실용화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게 되었으며, 이전의 뮤지션들이 꿈꾸지 못했던 더 많은 기회들을 부여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1960년대말 많은 뮤지션들이 다채널 시스템에 의해 새로운 음악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Progressive Rock은 이러한 체험의 하나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토마스 에디슨이 특수 왁스를 코팅한 실린더에 인류 최초의 녹음을 성공시킨 후 녹음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녹음 기술을 주도했던 곳은 독일이었다. 특히 독일의 Telefunken사는 선구자적인 녹음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독일의 녹음기술을 빌어왓v02.jpg고 1940년대말 Ampex사가 녹음기의 상용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세계최초의 다채널 녹음은 Gibson 기타이름으로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 Les Paul(Leslie Polfuss)에 의해서였다. 그는 열악한 녹음설비 환경속에서 1940년대에 다채널 녹음을 시도했는데 여러대의 모노녹음기를 이용, 뜯어 붙이기식의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는 이러한 다채널 개념의 녹음을 1948년에 발매한 자신의 “Lover"라는 앨범에 적용시켰다. 그 후 스테레오 녹음기가 개발되었고 1960년대초에 들어오면서 4트랙 녹음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다채널 녹음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후 1/2또는 1인치 넓이의 8트랙이 보급되었고, 오늘날의 1인치 또는 2인치 넓이의 16트랙, 24트랙, 32트랙 그리고 새로운 개념의 Digital시대까지 도래하게 된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을 등장하게 만든 시대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다채널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한 1960년대말 부터이다. 다양한 악기들을 트랙별로 담아놓고 혼합시키는 Mix-Down의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았던 1960년대말 많은 레코드사들이 이러한 새로운 체험에 대해서 결코 꺼리지 않았던 것이다.
 녹음기술 뿐만 아니라 레코드 컷팅기술도 Progressive Rock의 태동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초창기 78 r.p.m의 SP레코드 시대에는 컷팅의 한계Eoans에 연주시간이 긴 클래식과 째즈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아야 햇었다. 1949년 오늘날 33 1/3 r.p.m.의 LP가 Columbia사로부터 소개되면서 Playing Time이 23분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Columbia의 경쟁사였던 Capitol과 RCA는 45 r.p.m.의 EP로 당시 연주시간이 짧았던 대중음악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결국, 1951년 RCA와 Columbia는 EP와 LP시장을 서로 공유할 수 잇는 평화협정을 맺게 되었고 EP시장은 1950년대중반 Rock 'n' Roll의 태동으로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Classic과 Jazz에 초점을 맞추었던 LP시장도 짧은 곡들을 여러 곡 즐길 수 있는 Pop Album들이 등장하면서 1960년대 초부터 서서히 Pop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중반에 들어서면서 기존 Pop음악의 연주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지고, 여기에 연주시간이 긴 Psychedelic Rock등이 등장하면서 LP시장은 황금기를 맞게된다. 연주 수록시간도 한면에 25분ㄴ에서 30분에 육박하는 혁신을 가져왓고 위에서 언급했던 다채널의 녹음방식이 채택되면서 제작진과 뮤지션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현대기술이 제공하는 장점이 점목되어 Classic에 정신을 둔 Progressive Rock의 태동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2. 악기발달에 의한 태동
Progressive Rock에 쓰이는 악기는 한계가 없다. 우리와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악moog.jpg기이기 때문이다. Progressive Rock에는 “진보적인 대중음악”이라는 의미와 상반된, 과거 클래식에 쓰이던 악기들도 과감하게 도입된다. 대부분의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바이올린, 첼로, 플륫등의 옛 악기들을 사용했다. 그 이유는 Progressvie Rock이 Classic 의 Symphony에서 비롯된 대중음악의 한 부류이기때문이며 또한 연주자들 역시 대부분이 고전음악을 전공한 Art School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민속음악 연주에 쓰이는 민속악기의 도입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Progressive Rock의 세속성 때문에 우리는 각나라의 음악적 특성까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악기의 사용이라는 차원에서 굳이 찾는다면, Symthesizer와 재생장치인 Mellotron, 그리고 여러 가지 전자적인 Effect의 사용등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새로운 연주도구와 재생장치등을 전격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에 “진보적이다”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Progressive Rock의 감초로 불리우는 Mellotron의 경우는 본지에서 이미 3회에 걸쳐 특집을 엮었을 정도로 Progressive Rock을 상징하는 것이다. 124815.jpgMellotron과 Progressive Rock과의 관계는 지면관계상 생략하며, 올려진 자료를 참조하기 바란다.
 1954년까지 Electronic Music Synthesizer라는 명칭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RCA사의 도움으로 Harry Olsen박사팀에 의해서 세계최초의 신세사이저가 발명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매우 불안정했으며 여러 가지의 결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실용화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는 새롭게 디장인한 RCA MK II를 컬럼비아대학과 프린스턴대학에 설치했는데 이 신세사이저는 초기 컴퓨터구조와 흡사했다. 다만, 두 개의 동조된 마스터 디스크가 있으며 그 하나에 6개 녹음채널을 가지고 있었다. 10년후인 1964년 여름, Robert Moog박사에 의해 세계 최초로 무그 신세사이저가 상용화되었는데, 그는 전압을 조정하여 음파를 변화시키는 Electronic Music Synthesizer의 표준형을 개발한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커다란 녹음실의 작곡가들과 제작자들에게 전문가용으로 소량 보급되었다. 실질적으로 Synthesizer가 Rock Musican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말부터였으며 Emerson Lake & Palmer의 keith Emerson이 Synthesizer를 즐겨 사용한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II. Progressive Rock의 개념
1. Progressive Rock의 어원

 Progressive Rock의 4대 강국이었던 영국, 이태리, 프랑스, 독일은 Progressive Rock이라는 새로운 음악적 용어를 1970년대초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종주국인 영국의 경우는 1960년대말부터 뮤지션들사이에서 이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고 그후 음악 평론가들과 대중들사이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새로운 음악적 조류라는 의미에서 New Wave(198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새로운 New Wave와는 완전히 다른)라고 불리우기도 했으며, 화려한 의상과 무대 그리고 여장을 한 뮤지션들이 부기우기 리듬으로 진행하는 Glam Rock(Glitter Rock)과 혼동되기도 했다. 또한 뮤지션 스스로나 청자의 개인적인 견해나 느낌에 따라서 Classic Rock, Symphonic Rock, Jazz Rock, Chamber Rock, Avant Garde Rock, Electronic Music, Experimental Rock, Serious Rock, Shock Rock, Theatre Rock등등 다양하게 불리웠으며, 총체적인 개념,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Art Rock이라고 자주 불리웠다. 이태리의 경우 Pop Progressive 또는 d'Avanguardia로 주로 표현했고, 프랑스는 Rock Progressif, 독일의 경우는 Progressive Popmusik라고 그래도 명칭을 부여했지만 네델란드의 경우는 오직 Symphonic Rock으로 불렀다.
 Progressive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전을 뒤적거리며 초기 문법(진행형)을 배울 때 만날 수 있는 이 단어는 그후 정치(진보당), 의학(진행성의), 세무(누진세)등등으로 우리들으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친숙한 단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형용사가 음악적 용어로서 사용되면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단어가 되었다. 라틴어로부터 비롯된 이 단어는 Cicero(M. Tullius Ciero. 106-43 B.C.) 시대에는 절정(Climax)을 의미하기도 했다. 아무튼 Progressive라는 단어가 대중음악적 용어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40년대이다. 지난 8호에서도 Hipster(Progressive Jazz애호가)라는 단어를 통해 잠시 언급한바 있는 Progressive Jazz는 미국 서부에서 발생된 지적(Intellectual)이지만 감정이 거의 섞여있지 않은(Nonemotional) Jazz로서 1920년의 Hot Jazz에 대응하여 발생한 Cool Jazz를 일컫기도 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Jazz에 Classic의 대위법과 화성법이 도입되었는데 이러한 하모니를 중시한 Jazz를 Progressive Jazz라고 부르게 된다. 그후 Progressive 라는 단어는 음악용어로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한때 현대음악을 Progressive Music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아마도 Process Music과 혼동하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말에 등장하기 시작한 Progressive Rock에 이어 민속음악을 모티브로 현대감각을 불러넣은 Progressive Folk, Country Music에 사회적 주제나 혁신적인 현대악기를 사용한 Progressive Country, 여기에 Jazz와 Disco를 융합한 Soul음악을 Progressive Soul이라기까지 부르게 되었다. Progressive라는 단어는 Jazz와 Rock등 대중음악 이전 한때, Classic에 도입된 적이 있었는데, 덴마크의 작곡가 Carl Nielsen이 1892년에 완성한 자신으 교향곡 제 1번(G Minor)에서 시도한 “하나의 Key로 시작, 또다른 키로 맺는” 이른바 “Progressive Tonality(진보적인 음조)”라는 형식이 있었다. 이 형식은 말러(Mahler)도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Classic에서는 하나의 조그만 아이디어,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대중음악에 있어서 Progressive라는 용어는 차후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영역이 제한되지 않은 매우 광범위한 범주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2. Progressive Rock의 정의
우리는 여러 대중음악 사전이나 심지어 일반 영어사전에서까지 Progressive Rock에 대한 정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수십만가지의 낱말들을 풀이해 놓은 사전에서 마주치게되는 한, 두줄의 조그만 글자로 된 정의는 결코 우리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그럴듯하게 정의해놓은 한 국내 영한사전은 Progressive Rock의 정의를 “복잡한 프레이징과 즉흥이 가미된 전위적 록 음악”이라고 간결하게 풀이해 놓고 있다. 물론 영문을 그대로 번역해놓은 것이겠지만 Progressive Rock의 유형중에 소외받고 있는 Avant Garde에 가까운 Jazz Rock을 정의하고 있는 느낌이다. 대중음악 사전에서도 극소수의 사전들이 Progressive Rock을 정의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성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사전은 Rolling Stone지의 Rock 'n' Roll 백과사전일 것이다. 그전문을 요약하면, “일반적으로 Progressive라는 것은 유럽의 Classic을 모티프(motif)로,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과 전형적인 확장된 형식 그리고 복잡하고 난해한 여러 조곡형식을 취하고 있는 Electric악기류를 사용하고 있는 Rock의 한 부류를 뜻한다. Progressive Rock은 1960년대말 영국에서 비롯되었으며 Psychedelia의 모험주의로부터 파생된 산물이다. 가사의 주제는 주로 우주테마나 환상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Progressive Rock은 종종 Art Rock으로 불리우기도 한다.”(중략)
 여기에서 1984년 지금은 폐간된 월간팝송에 필자가 기고했던 내용과 Underground Papyrus minus TWO에 기재된 내용을 요약해 본다. “1960년대말, Rock Music에 도입되기 시작한 Progressive는 개념은 보다 미학적인(Aesthetic)인 면을 추구하는 음악 그 자체나 연주자들을 지칭하고 있다... Pop Music이나 기존 Rock Music에 비하여 Progressive Rock은 매우 신중한 음악(Serious Music)이다. 또한 영리보다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음악적 추구를 우선한다. 즉, 탈 상업주의-비 영리주의(Anti-Commercialism)을 고수, 양(많은 판매량)보다는 질적(예술적인 측면에서 음반자체에 쏟아붙는 정열)면을 내세우고 있다... Progressive Rock은 Classic의 교향곡(Symphony)을 모티브로 조곡형식을 갖추거나 하나의 주제테마를 지닌 Total앨범 형식 또는 개념일치의 Concept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Progressive Rock은 Modern Jazz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1960년에 성행했던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즉흥적으로 연주되었던 Free Jazz는 지배적인 영향을 주었다. 연주시간이 무척 긴, 솔로연주를 돋보이게 하는 Self-Expression을 중시하는 즉흥적인 연주들은 바로 Free Jazz에서 기인한 것이다. Progressive Rock은 각 나라의 민족성을 수반하기도 하는데, 각나라의 민속악기들을 동반한 독특한 Rock들을 우리는 Progressive Rock의 부류로 분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Flamenco Rock일 것이다. 귀족적인 분위기의 Baroque Rock도 있지만 매우 세속적인, 과거 세속음악과 Rock을 접목시킨 여러 나라의 Progressive Rock이 존재한다... 한편, Progressive rock은 현대음악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소위 Avant Garde, Minimalism, Electronic Music 그리고 Process Music이라고 불리우는 20세기의 현대음악은 Progressive rock의 태동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때, 현대음악을 Progressive Music으로 부르기도 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현대음악의 영향을 과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현대음악으로부터 가장 커다란 영향은 바로 ”실험정신“일 것이다. 그 다음은 전기, 전자악기의 사용과 녹음방식 등등... 음악을 만드는 과정의 도입일 것이다... 끝으로 Progressive Rock을 간단히 정의한다면 ”Progressive Rock은 젊음의 Rock Music에 기존의 고전음악적인 요소, 민속민족적인요소, Jazz적인 요소 또는 전위적인 요소들을 융합시켜 악기의 다양화와 고급화를 통한 기술혁신으로 이루어진 진취적이고 미학적인 음악이다“...(중략)
 위와같이 1984년 필자가 제시한 Progressive Rock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수정하고픈 생각은 없다. 물론, Progressive Rock의 정의는 평론가들, 뮤지션들, 애호가들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 스스로도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갖는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3. Process Music과의 관계
 실질적으로 영국의 Progressive Rock그룹들의 경우는 현대음악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독일 뮤지션들에 비해 그다지 커다란 영향은 받지 않았다. 따라서 후에 다루게 될 독일 Progressive Rock특집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지면에서는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 있는 현대음악의 Process Music과 Progressive Rock과의 연관관계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아마도 Process Music(과정음악, 진행음악)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되는 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것은 음악의 한 장르, 한 부류라기보다는 음악을 만드는 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될 것 같다. Process Music은 여러방법에 의해 생성되어왔는데 주로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특별히 고안한 음악 장치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마도 대부분의 Process Music은 Tape-delay나 Feedback 장치를 사용하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Tape의 스피드를 다채롭게 변환시키거나 Tape-Loop를 이용 다채널의 효과를 내기도 했었다. Progressive Rock의 태동처럼 Process Music의 발생의 근원지는 다소 혼란을 야기 시킨다. 그러나 자세히 추적해보면 미국 전위음악가 John Cage가 이 음악을 시도한 시조임을 알 수 있다. John Cage는 1939년 주파수 녹음(Frequency Recording)이라고 불리우는 “Imaginary Landscape #"이라는 작품을 스피드를 변속시킬 수 있는 두 개의 레코드 플레이어와 음이 억제된 피아노, 그리고 심벌즈로 완성했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업적은 독일 Cologne의 Herbert Eimert와 구체음악(Musique Concrete)의 선구자인 프랑스 파리의 Pierre Schaeffer를 앞선 것이었다. 아무튼 Process Music은 독일의 Karlheinz Stockhausen과 미국 캘리포니아의 Terry Riley에 의하여 발전되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Brian Eno는 바로  Terry Riley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와 King Crimson의 Robert Fripp과의 작업은 바로 대중음악계의 대표적인 Process Music이다
 여기서 우리는 Process와 Progressive라는 두 단어를 유심히 살표볼 필요가 있다. 물론 두 단어는 서로 다른 라틴어의 어원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후에 서로 혼둉되면서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현대음악을 상징하는 Process Music은 때때로 Progressive Music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것이다.

4. Progressive Rock의 형식
 Progressive Rock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바로 Concept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모두가 이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Progressive Rock앨범들이 주제일치-개념일치의 Concept앨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한가지의 주제(주로 앨범타이틀이 된다)를 내세워 소제가 되는 곡과 곡들이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이른바 Total개념의 형식이다. Progressive Rock이 태동하기전까지 대중음악계는 주로 히트할 곡을 앨범제목으로 내세우는 히트곡 위주의 앨범을 제작해왔는데 Progressive Rock의 경우는 히트 곡보다는 전체적인 메시지를 보다 중요시 한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Classic의 표제음악(Program Music 또는 Tema Music)에서 빌어온 것이다. Classic에서 표제음악의 역사도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표제음악은 곡에 이름을 붙여 표제의 내용을 강하게 암시하는 음악으로 절대음악이 음악자체에 절대적 가치를 두고 오직 음악의 기존형식(음의 순수한 형식)에만 의존한 데 반해 표제음악은 특정적인 이야기나 사상 그리고 분위기등을 음악적 내용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표제음악은 베토벤이나 베를리오즈로 비롯되어 19세기 낭만파 음악가들에 의하여 발전된 음악이다. 후기 낭만파 음악가들은 현실생활의 양상인 문학작품, 회화등을 순기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qpxhqpsdml 전원 교향곡(Pastoral Symphony)이다. 재미있는 것은 표제음악의 효시격인 베토벤의 6번 교향곡 Pastoral Symphony (1807~1808)가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위에서 언급한바 있지만 Progressvie Rock은 Symphony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또한 Pastoral은 영국의 많은 음악 평론가들이 Progressive Rock그룹인 Moody Blues나 Barclay James Barvest 그리고 The Enid등의 음악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그들의 음악을 Pastoral Sound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양떼와 초목들, 지저귀는 새들을 소제로 했던 시적이며 전원적인 Pastoral은 17, 18세기에 크게 유행했었다.
 Progressive Rock앨범은 음악적 Concept뿐만아니라 그것을 덮고 있는 앨범커버까지 Concept사상을 확장 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Pop, Rock앨범들이 가수들이나 뮤지션의 모습을 담는 데 반하여 대부분의 Progressive Rock앨범들은 음반안에 담겨있는 내용을 음반커버에까지 표현하고자 했다. Progressive Rock의 앨범들의 또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인 커버아트의 세계와 그 음악적 소재에 대해서는 차후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III. 대표적인 작품들과 그룹들
1.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은?
 지난 5호부터 Pink Floyd, King Crimson, Genesis, Yes, Emerson Lake & Palmer, Moody Blues, Gentle Giant, V.D.G.G.등등 영국의 Super Progressive Rock그룹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 중 과연 어느 그룹이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이란 말인가?
 Pop과 Rock계를 통털어 가장 진보적인 시도를 최초로 행했던 그룹은 역시 Beatles였다. Progressive Rock의 감초로 불리우는 재생장치 멜로트론(Mellotron)을 가장 빨리 도입했으며, 전위음악가들이 이용했던 Tape-Reverse Effect(Backward masking)를 1960년대 중반부터 시도하기 시작했다. 서구 고전음악에 동양악기를 도입시키는 아이디어등도 Pop에 가장 빠르게 응용했다. 또한 그들은 전위음악의 Drone과 Ostinato패턴을 최초로 도입한 Pop그룹이었다. Beatles를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으로 가정한다면 Progressive Rock의 태동은 1966년, 효시적인 작품은 “Revolver"가 될 것이다. Beatles의 ”Revolver"앨범은 커버아트에 있어서도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즉, 인물사진만을 내세웠던 상투적인 커버가 아니라 Montage기법을 살린 Klaus Voormann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커버로부터 Beatles의 음악이 변모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Pop에 스트링을 도입한 곡 ‘Eleanor Rigby', Tape Reverse Effect를 통해 Psychedelic Rock의 느낌을 이끌어내는 ’I'm Only Sleeping', Pop과 동양음악을 접목시킨, 인도악기 Sitar를 도입한 George harrison의 작품 ‘Love You To', 여러 가지 효과음을 구상처리한 ’Yellow Submarine', Brass와 키보드의 진보적인 코드를 사용한 ‘For No One', Brass Rock의 효시라할 수 잇는 ’Got To Get You Into My Life'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Revolver"앨범을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앨범으로 주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곡은 마지막곡으로 담겨 있는 ‘Tomorrow never Knows'라는 곡이다. 이곡은 마치 1960년대말 1970년대초의 Progressive Rock황금기의 도래를 예견하는 작품처럼 실험성과 곡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Beatles가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이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Beatles가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이었다라는 주장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1967년에 일어난다. 바로 Moody Blues의 3번째 앨범 ”Day Of Future Passed"의 등장이었다. 물론 이 앨범이 등장하기 몇 개월전에 비틀즈 최초의 컨셉트 앨범으로 커다란 이목을 집중시켰던 화제작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가 앞서 발표되었지만 Moody Blues의 ”Day Of Future Passed"는 클래식의 심포니에서 비롯된 조곡형식을 수용했고, 표제음악에서 비롯된 완벽한 컨셉트형식(하루의 시간적흐름 새벽부터 밤까지의 시간적 흐름을 음악으로 표현)을 채택햇으며, 멜로트론 음향을 주요음원으로 사용하고,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등 Progressive Rock그룹의 효시격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따라서 Moody Blues를 Progressive Rock그룹의 효시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2.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 앨범은?
 Beatles의 “Revolver"앨범이 발표된 1966년, Pink Floyd 그리고 keith Emerson이 이끄는 The Nice등등 서서히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Moody Blues의 ”Day Of Future Passed"가 발매된 1967년, 그들은 데뷔앨범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Pink Floyd의 데뷔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의 경우는 전체적으로 볼 때 Progressive Rock이라기 보다는 Psychedelic Rock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물론, 오프닝곡인 ‘Astronomy Domine'과 뒷면의 오프닝 ’Interstellar Overdrive'는 Progressive Rock의 주요테마인 우주적인(Cosmic) 사운드를 담고 있다. Keith Emerson이 이끄는 The Nice의 경우 P.P. Arnold의 Back Group으로부터 독립, 새로운 출발을 하는 상황이었고 1967년말에 발표된 그들의 데뷔작 ”The Thoughts Of Emerlist Davjack"은 후에 등장하게 되는 많은 유럽의 후배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연주하게 되는 ‘Rondo'가 담겨있다. 그후 Nice는 가장 이상적인 3인조 형태로 Progressive Rock의 고전인 싱글 ’America‘(뮤지컬영화 West Side Story-Leonard Bernstein의 곡을 편곡한 작품)와 두 번째 앨범 “Ars Longa Vita Brevis"를 제작하는데 이러한 3인조 형태는 후신그룹 EL&P의 원형이 되어주었으며 영국그룹 Gun과 Refugee를 비롯 이태리의 Le Orme, Latte E Miele와 Triade, 독일의 Triumvirat와 Tritonus 네델란드의 Ekseption과 Trace, 벨기에의 Recreation 그리고 그리스의 Akritas와 Vangelis가 이끌었던 Aphrodites Child등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어 주었다.
 1968년에 들어서면서 Genesis가 데뷔했지만 그들은 Progressive Rock그룹이라기 보다는 Pop그룹에 가까웠다. 그들은 두 번째 앨범 “Trespass"가 발표되는 1970년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Progressive Rock그룹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1967년에 결성되었던 Van Der Graaf Generator는 데뷔앨범을 내놓지도 못한채 해산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재결성되어 1968년 데뷔앨범 ”The Aerosol Grey Machine"을 미국 Mercury레코드사에서 영국과 독일에서는 Fontana레이블을 통해 재발매식으로 발표했다. VDGG의 데뷔작은 훌륭한 Progressive Rock작품이었지만 약간의 허전함을 남긴다. 이 앨범은 같은해에 발표되었던 그들의 희귀싱글 'Firebrand'(200파운드 이상으로 거래되는 초희귀싱글)만큼은 희귀하지 않지만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앨범이다. 아마 VDGG나 Preter Hammill의 앨범들을 열심히 수집했던 사람들을 허전하게 만드는 앨범일 것이다. 같은해 글부 Yes가 결성되었고 1969년 데뷔앨범이 발표되지만 Beatles와 ‘The Byrds'의 커버버전을 담은 이 앨범도 보다 Pop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초기 Art Rock그룹으로서 가장 성공한 그룹은 바로 Procol Harum이다. 그들은 1967년 데뷔하지마자 싱글 ’A Whiter Shade Of Pale'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 연주력의 한계는 다소 불안정한 데뷔앨범을 낳았다. 1968년말에 발표된 그들의 두 번째 앨범 “Shine On Brightly"은 뒷면의 걸작들 ‘Magda-lene'와 심오한 동양철학을 담은 Concept형식의 ’In Held Twas I'만을 놓고 본다면 확실히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이었다. 하지만 앨범의 반만을 놓고서 ”세계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Procol Harum과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Barcllay James Harvest는 데뷔앨범이 상대적으로 지연되어 1970년 6월이 되어서야 비로서 발표 된다 BJH의 데뷔작이 늦어지는 가운데 1969년 Progressive Rock 사상 가장 위대한, 가장 완벽한 작품이 등장하는데 바로 king Crimson의 데뷔앨범 ”In The Court Of Crimson"이다.
 King Crimson의 데뷔작 “In The Court Of Crimson”이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이라고 햇을 때 Pink Floyd의 추종자들은 1968년 6월 29일에 발매된 Pink Floyd의 두 번째앨범 “A Saucerful Of Secrets"가 아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못지 않게 Pink Floyd를 사랑하는 필자의 대답은 No!이다. ”A Saucerful Of Secrets"에는 그룹을 등진 Syd Barrett의 향취와 입김이 많이 베어 있다. 당시 Syd의 음악적 방향은 보다 Psychedelic에 가깝다. 두 번째 곡 'Remember A Day'는 원래 데뷔작에 수록될 예저의 곡이었고 Syd의 작품인 끝곡 ‘Jugband Blues'는 싱글로서 발표하려던 작품이었다. 따라서 Progressive Rock의 중요한 요소인 Concept형식이 결여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A Saucerful Of Secrets"는 Syd Barrett이 세곡에 나머지 네곡에 David Gilmour가 참가한, 기간이 매우 짧았던 5인조 편성의 Pink Floyd의 과도기적인 작품이어Te. 물론, 타이틀 트랙은 확실히 Progressive Rock의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King Crimson의 데뷔작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이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a. 배경(Background) : 클래식의 심포닉에서 비롯된 조곡형식의 수용, 표제음악에서 비롯된 완벽한 Concept Album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Rock그룹의 협연이라는 차원에서 Moody Blues의 3번째 앨범 “Day Of Future Passed"를 세계최초의 Progressive 깨차그룹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그러나 Moody Blues의 앨범 ”Day Of Future Passed"를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dlfkrh 말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은 효시격이었을뿐 그 이후에 등장하게되는 많은 Progressive Rock그룹들의 작품에 비해 즉흥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으며, 진취적인 성향과 아이디어면에서 다소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Day Of Future Passed"의 성공후 Moody Blues는 앨범 ”In Search Of Lost Chord"와 “On The Threshold Of The Dream"을 발표한후 Deram레코드사를 떠나 자신들의 독자적인 레코드사 Threshold를 설립하게 된다. 물론 레코드사명은 Deram에서의 마지막앨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Threshold의 설립과 함께 Chief Producer로 일하게된 Tony Clarke는 Thershold사의 첫작품으로 King Crimson의 데뷔작을 꿈꾸기 시작했다. 당시 음악 평론가들은 신생그룹 King Crimson의 공연을 보고 Moody Blues와 Family, Prety Things의 음악과 유사하다고 리뷰를 실었고, 프로듀서 토니 크라크는 Threshold레코드사는 Moody Blues지향의 음악만을 제작해야한다는 신념에 가득차 있었다. 따라서 당시 그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반한 King Crimson의 데뷔작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후 King Crimson은 Moody Blues의 순회공연에 오프닝그룹으로 지정되었는데, 오디션을 행하는 동안 King Crimson의 연주를 지켜보던 Moody Blues의 멤버들은 안색이 결코 좋지 않았다. 결국, 음악적 견해차이라는 이유로 Moody Blues는 King Crimson을 오프닝 그룹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아무튼 1969년 6월, Morgan 스튜디오에서 Tony Clarke을 제작자로 Andy Jones을 엔지니어로 King Crimson의 데뷔작은 Threshold라는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을 것이며 음악도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In The Court Of Crimson King"과 크게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King Crimson의 데뷔앨범이 녹음되기 시작할 무렵, 굴지의 레코드사들이 King Crimson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Island사와 Atlantic레코드사가 각각 10,000파운드이상의 계약금을 제시했고 Mercury레코드사의 경우는 15,000파운드라는 거액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 액수는 Led Zeppelin이 1968년에 받은 계약금의 두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운명이었는지 녹음개시 다음날 엔지니어인 Andy Jones가 건강악화로 녹음을 포기했고 그는 끝내 스튜디오에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King Crimson의 데뷔작 녹음은 일단 중지되었으며, Tony Clarke은 스튜디오를 Wessex스튜디오로 옮기게 된다. 녹음이 재개된 그해 7월, 재녹음 일주일만에 또다시 녹음이 중단되어 버린다. 제작자인 Tony Clarke의 음악적 한계 때문이었다. 근느 녹음된 테이프를 모두 소거한 후 제작자의 자리를 포기해 버렸다. 그는 Moody Blues의 대작이었던 ”Day Of Future Passed"를 창안해낸 인물로 과거에 높이 평가 받았던 제작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은 King Crimson을 결코 따라갈 수 없었다. King Crimsond은 Moody Blues와는 본질적으로 크게 달랐다. Moody Blues는 연주자 전원의 공통된 음악적 방향을 수렴, 각 멤버들의 균일한 음악적 배합을 추구하는, 이른바 전멤버들이 모두 리더가 되는 형식을 취했다. 그들은 뚜렷한 리더 없이 전체의 조화만을 강조한 반면, King Crimson의 경우는 카리스마적인 Robert Fripp을 리더로 내세우면서 연주자들 각자의 순간적인 민감한 반응을 그때그때 음악에 반영시키는 순발력과 즉흥성을 지니고 있었다. 프로듀서 Tony Clarke은 세계최초의 Progressive Rock앨범은 구상했었지만 결국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의 완성에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b. 커버아트 : Berry Godber가 King Crimson의 데뷔앨범 커버를 의뢰 받았ㅇ르때, King Crimson의 제작팀측은 녹음, 제작비 초과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두차례의 녹음실패후 예산이상의 지출이 있었고 따라서 Manager인 David 뚜쇞두(EG레코드사의 창업주 두사람중의 한명, EG라는 명칭 E의 주인공, G의 주인공인 그의 동업자 John Gaydon은 1971년 회사를 등졌고 그 역시 1977년 EG Records를 떠났다)은 자신의 집을 저당잡혀 돈을 빌려야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설상가상 King Crimson의 전신 그룹 Giles, Giles & Fripp의 앨범을 발매했어TEjs Decca레코드측이 계약불이행으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까지 벌어져 제작팀들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먼저 Berry Godber는 Concept Maker(작시가)이자 Lighting Director였던 Peter Sinfield와 그룹으 리더 Robert Fripp으로부터 커버디자인 착상을 얻었고 그다음 매니저인 David Enthoven과 John Gaydon의 의견을 수렴, King Crimson의 커버를 구상하게 된다. 그후 그는 Master Tape을 들으며 앨범의 이미지를 구체화시켜 나갔다. 앨범커버는 그룹명 크림즌을 상징하듯 “노여움으로 얼굴을 붉힌 심홍색” 인간의 얼굴로 가득 채웠다. 아니 노여움을 뛰어넘어서두려움에 떨고 있는 눈, 커다란 입과 코를 크게 벌리고 있는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비통함에 일그러진 얼굴을 담은 커버그림은 킹 크림즌의 첫 번째 음악세계와 잘 어우러지는 작품,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게 된다. King Crimson이전에 완성되었던 Giles Giles & Fripp당시의 (I Talk To The Wind)라는 곡만을 제외하고 모든 곡들이 단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커버아트는 King Crimson의 음악적 분위기 “단조(Minor Tone)"와 걸맞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커버의 안쪽면은 겉면과 완전히 상반된 모습의 익살스러운 그림이 담겨있는데, 마치 부처ㅓ의 손모양을 풍자한 것 같다. 아니면 ‘경제적 도움을 원합니다!’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c. 가사(Lyrics)와 주제일치(Conept)
Pete Sinfield에 의해서 쓰여진 본작의 가사들은 곡마다의 연계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쉽게 스치고 넘어갈 가벼운 가사가 아니면 그렇다고 깊이 사고하는 가사도 결코 아니다. Pete Sinfield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가사전달보다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가사전달을 추구하고 있다. 굉장한 소음으로 시작되는 21세기의 어느날 밤 펼쳐지는 살벌한 광경을 은유적으로 암시한 첫곡의 가사와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며 뚱딴지 같은 두 번째 곡의 가사를 연결지어 컨셉트형식이니 주제일치니 하는 따위의 억지를 늘어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첫 번째곡은 접어두더라도, 두 번째곡부터 끝곡가지 펼쳐지는 Pete Sinfield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사상은 멜로트론 음향을 통해 신비롭게도 희미하게 불투명하게 연결되고 있다. 즉, 순수악기의 소리도 아니며 그렇다고 완전히 인위적인 소리도 아닌 멜로트론 음향을 중요한 컨셉트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앨범의 통일된 전체적인 분위기는 단조(Minor)의 우울하고 엄숙하며 장엄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광란과 고요 분노와 혼란, 그리고 꿈과 환상이다.
d. 멜로트론의 대서사시(Mellotron Epic)와 함께 사용악기들
King Crimson의 데뷔작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은 앞면에 세곡, 뒷면에 두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첫곡은 King Crimson의 역사를 통털어 라이브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 간판급의 대표곡 (21st Century Schizoid Man)이다. 이곡은 Mirros라는 즉흥파트를 포함하고 있는 Heavy 한 넘버이다. Ominous Night Sound(전조한 밤의 사운드) 즉, ”굉음과 함께 밤이 시작되는 것을“ 묘사한 이곡은 즉흥성과 실험성을 지닌 Free-Jazz형식의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한 John Gage로 비롯된 Process Music을 잘 이용한 전형적 작품이다. Heavy Metal보다 더 강렬함이 느껴지는 이곡에서 Greg Lake의 천사같은 목소리는 악마처럼 가사를 절규하며 부른다. 그의 목소리는 Fuzz박스에 의해서 전기적으로 변환되어 들린다. Robert Fripp이 두 개의 기타를 오버더빙했고, Ian McDonald의 매우 자극적인 Alto Sax도 두차례에 걸쳐 녹음되어 있다. Greg Lake의 Bass도 Fuzz와 Echo Unit을 사용하고 있다. 날카로운 Michael Giles의 드러밍은 템포가 수시로 변하는 격동감을 전해준다. 강렬하고, 날카로운 멜로디 작살로 찌르는 듯한 보컬, 극심하게 변속되는 템포와 리듬 그리고 전위음악에서 비롯된 Process 녹음기법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소음뒤에 곧바로 흐르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I Talk The Wind'는 King Crimson 시대의 작품은 아니다 전신그룹 Giles, Giles & Fripp 당시의 곡으로 Remake 된 것이다 GG&F 당시 보컬은 Judy Dyble이었다. 물론, 이 곡은 여백을 메우기 위하여 일시방편으로 본 앨범에 삽입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곡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즉, 앞곡인 ’21st Century Schizoid Man'과 뒷곡인 'Epitaph'의 교량역활을 톡톡히 하고 잇는 Bridge곡이다. 서정적이고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발라드풍의 이 곡은 Ian McDonald외 순수한 플륫소리, 오른편에서는 플륫을 Tape에 담아 재생한 멜로트론음향이 이채롭게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Ian McDonald의 재능이 돋보이는 곡으로 그의 멜로트론 장치를 다루는 능숙함에 첫 번째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정적과 함께 긴장감이 감도는 첫 번째 드러밍과 하늘을 나는 플륫연주가 끝나면 폭풍우처럼 밀어 닥치는 드럼과 멜로트론의 홍수를 맞게된다. 바로 이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Epitaph'이다. Greg Lake의 보컬도 일품이지만 Ian McDonald가 힘차게 누르는 비장한 Minor Key의 멜로트론 음향은 환상의 극치를 이룬다. 왜 이 앨범을 가르켜 멜로트론의 대서사시(Mellotron Epic)라고 부르는지 과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March For No Reason'과 ’Tomorrow And Tomorrow'라는 두곡을 함축하고 있는 ‘Epitaph'에서 Ian McDonald는 멜로트론 음향뿐만 아니라 플륫, 오르간, 크라리넷, 베이스 크라리넷 연주를 마음껏 펼쳐지고 있다. 본작이후 “약보다는 선의 음악을 하겠노라”고 외치며 그룹을 떠나려 했던 Ian McDonald에게 “당신보다는 내가 이 그룹을 떠나는게 났겠어”라고 했던 Robert Fripp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Ian McDonald가 떠난 후 두 번째앨범부터 Robert Fripp은 멜로트론 파트를 맡게되지만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튼 ’Epitaph'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웅장한 하모니의 멜로트론 음향과 그것을 가르는 날카로운 Robert Fripp의 E-minor로 18차례나 연속되는 기타코드 진행도 매우 독특하다. ‘The Dream'과 ’The illusion'을 함축하고 있는 뒷면의 첫 번째 조곡 ‘Moonchild'는 제목처럼 꿈, 환상, 환각적인 분위기를 연출시키는 Jam Session형식의 실험작이다. 본 앨범중에서 가장 Robert Fripp적인 작품으로 그의 아이디어와 연주가 돌출되는 곡이다. 앞면의 첫곡 ’21st Century Schizoid Man'이 Process Music의 단면만 보여주었다면 이곡은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독일의 Progressive Rock그룹들, 특히 Popol Vuh의 음악과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곡이 끝나면 ‘Epitaph'dhk 맥을 잇는 또하나의 멜로트론의 대서사시 ’Mellotron Epic'인 타이틀 트랙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마치 멜로트론 음향을 위해 작곡된 작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멜로트론 음향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이곡 역시 Robert Fripp의 작품이 아닌, 멜로트론의 마술사 Ian McDonald의 작품이다 따라서 멜로트론과 플륫을 위한 컨체르토처럼 들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Minor Key로 진행되는 장엄한 이곡은 갑자기 Major Key로 잘못 끝난다. Fales Ending 후 Snare Drum소리가 세차례 정적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즐겨 연주하는 Circus-Music이 흘러 나온다 그후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태고의 장엄함이 여러차례 엄습하면서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 ‘크림즌 왕의 궁전’은 끝을 맺는다.

Art Rock Magazine No. 9 (1995년 발행)

번호 제목 별명 조회 등록일
36 no image 무역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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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2013-02-24
말은 거창하지만 별 내용은 없습니다. 무역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때 단순히 만들고 팔고가 아닌 어떤것을 어떻게 어디에 팔것인지에 관한것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일단 요즘 원정대의 주 무역품 생산지인 '초원의 띠'와 '하리하랄라야의 폐허' 이 두곳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곳에서 무역을 준비하시는분들 역시 기본적인 방법은 같으니 참고하셔도 무방합니다. 먼저 무역품에 대해서 알아보 도록하겠습니다. - 초원의 띠 환약 : 모링가 열매(10개) + 특산품 인증서 - 초원의 띠 박하사탕 : 박하(10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땅콩 잼 : 땅콩(4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요리용 잎사귀 : 연꽃(50개) + 특산품 인증서 위의 4가지 품목에 대한 집중 분석을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무역품을 만들기 위해선 재료가 필요한데 재료를 입수하는 방법에는 1. 재배, 2. 구매 이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재배를 하는부분에 있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특산물 재료구매 : 물가의 변동성 때문에 무역을 준비하는 바로 그시기에 구매하는것은 항상 변동하는 물가의 방향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두배가까이 가격이 차이나기도 하니까요. 경매장을 통한 물품 가격 변동폭 박하(100개) : 1.10골드 ~ 1.80골드 모링가나무열매(10개) : 1. 30골드 ~ 2.00골드 땅콩(100개) : 2.00골드 ~ 2.90골드 연꽃(100개) : 1.20골드 ~ 3.50골드 대략적인 경매장가격입니다. 원가기준을 잡을때 무역품 하나의 가격은 절대 2.00골드가 넘지 말아야 한다(이것은 저의 철칙입니다.) 그렇다면 특산품 인증서 가격(50실버)에 특산물의 가격은 절대 1.50골드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되죠. 땅콩과 연꽃은 가격대가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라 운반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특산품 제작에 1.50골드 이하로 까지 낮출수 있어서 나름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재료를 경매장을 통해 싼가격으로 올라올때 구매를 하고 미리 특산물을 제작한뒤 같이 무역을 할 분들을 모집하여 무역을 한다면 한결 수월할것이라 생각됩니다. *무역품 제작은 2골드 이하가 되도록 하라. 어디에 팔것인가... 이제 싼가격에 무역품을 제작하였다면 좋은가격에 팔아야겠지요? 물품을 팔곳은 5곳 정도로 정리가 되는데, 이니스테르(카오노르드), 두왕관(이즈나항구), 십자별평원(시차일드 부두),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자유도 등입니다. 이곳외에도 있습니다만 판매가가 좋지않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 이니스테르(카어 노르드) (초원의 띠) 박하사탕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환약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하리하랄라야 폐허) 땅콩 잼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요리용 잎사귀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 두왕관(이즈나 항구) 박하사탕, 환약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 십자별 평원(시차일드 부두) 박하사탕, 환약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박하사탕, 환약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8g 50s(4g 25s ~ 12g 75s) 100% 기준에 50~150% 이상 4곳의 가격정보입니다. 자유도는 위험한 곳이라 저도 가격 확인 못했습니다 ^^ 하지만 제일 높은 가격을 받을수는 있으나 털릴 확률 80%에 팔수 있는 확률 5%, 15%는 배를 돌려 철수. 자유도는 소규모무역은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한곳(카오 노르드)를 제외한 나머지 3곳은 모두 서대륙에 위치한 판매처입니다. 패치로 인해 가격변동폭이 기존 80~120%에서 현재는 50% ~ 150% 변동이 된 상태입니다. 아마도 대량으로 가지고 가서 팔면 가격 폭락이 우려되오니 원정대 무역에서는 상품군을 다양화하는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설명은 어디까지나 소규모 무역(2~4명)선을 기준으로 한것으로 무역선 한대(무역품 20개)를 판다고 할경우엔 가격변동폭이 크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리없이 마구잡이로 쓰다보니 글내용이 두서가 없긴 합니다만 물품 구입과 판매에 대한 정보만 잘 확인하신다고 해도 도움이 도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캔들무역상회--
35 no image 아답터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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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3 2012-10-19
34 no image Pulsa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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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8 2012-10-18
1970년대 후반 융성의 극을 달리던 프렌치 심포닉계도 1980년대로 들어설 무렵 완전히 동면상태로 들어가 버린다. 태반의 그룹들이 해산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그룹도 사운드를 변화시키고 만다. 그러한 가운데 유일하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들의 사운드를 지켜낸 그룹이 있다. Pulsar의 역사는 오래전인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Lyon의 고등학교 밴드로 활동하고 있던 Free Sound라는 그룹에는 Phillipe Roman(b), Jacques Roman(Key), Gilbert Gandil(g, vo), Victor Bosch(ds)의 4인이 재적하고 있었다. 이 밴드는 당초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하였는데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David Gilmour의 스테이지를 보고서 사운드 정책을 프로그레시브로 전환하게 된다. 1966년 그룹 결성 이해 여러 번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1968년 전술한 4인으로 정착된 것이다 그들은 본고장 Lyon에서 정력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며 1970년 4월 Pulsar라 개명한다. 그리고 Malaval Festival, 이어서 1971년에는 그룹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에 참가한다. 이콘테스트에서 성공을 거둔 그들은 프랑스 투어를 벌이면서 차츰 인기를 모아나갔다. 또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를 수록한 옴니버스 앨범 <Groovy Pop Session>도 1972년 발매되어 Ange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곡 “Pulsar”는 후의 그들의 사운드와는 다소 다르며 약가 헤비하고 혼탁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인기.실력을 한몸에 갖춘 그들은 1974년 12월 드디어 1집<Pollen>을 발매한다. 멤버는 전술한 4인에 플루트의 Roland Richard를 가입시킨 5인 편성이다. 곳곳에 Pink Floyd로부터의 영향을 느끼게 하면서도 상상력을 풍부히 가미한 섬세하고 몽환적인 부유감이 떠도는 사운드는 충분히 독창성을 감지할수 있는 아름답고 뛰어난 것이다. 팬 사이드에서도 이 앨범을 최고작으로 손꼽는 이가 적지 않다. 판매면에서도 일단 성공을 거둔 듯하다(이 앨범은 킹덤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고 영국에서도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1집 발표후 그들은 약 1개월에 걸친 영국 투어를 행하여 호평를 얻고 대형 그룹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1976년 4월, 2월 <The Strands of the Future>를 녹음한다. 이 앨범 제작시 베이스 Phillipe Roman이 탈퇴하고 게스트 형태로 참가하고 있다. Rock’n Folk지로부터 “이것은 풍부한 감성, 정렬로 충만한 대단히 뛰어난 앨범이다. Pulsar는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최상의 완성도를 지닌 그룹이다. 위대한 인상파 작곡가 말러와 같은 서정성을 감지하게 한다”고 호평을 받은 이 앨범은 사운드 퀄리티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SF적 부유감이 있는 A면의 대작, 서정적인 B면의 소품, 모두 그들의 독창성이 십분 발휘된 걸작이다. 판매면에서도 이 앨범은 대성공을 거두어 Ange, Atoll과 나란히 대형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2집 발표후 그들은 영국, 벨기에, 스위스, 포르투갈 등 장기간에 걸친 순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다. 이 인기를 눈으로 지켜본 프랑스 CBS는 좋은 조건을 내걸고 그들과 계약한다. 1977년 12월에 3집 <Halloween>이 발매된다. 베이스로 Michel Masson을 가입시킨 이 앨범은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초한 토탈 컨셉트 앨범이며 플루트와 멜로트론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비교할 바 없는 서정성을 갖춘 최고의 걸작이다. 또 이 앨범에서 홍보용(적어도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레코드에는 Special Promotion이라 명기되어 있다) 싱글 “Sorrow In My Dream/Dawn Over Darkness”가 커트되었다. 이 앨범은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자신넘치는 작품이었는데, 홍보 부족으로 말미암에 판매면에서 실패로 끝나고 만다. 3집 발표후 그들은 CBS를 떠나고 베이스로 탈퇴하여 활동이 부진하게 된다. 록계는 바야흐로 펑크, 뉴웨이브로 이행하고 있었으며그들에게는 겨울과 같은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980~81년에 걸쳐 Le Companie Du Theatre De La Satire라는 극단의 연극 세션을 맡았으며, 그 가운데 한 작품 “Bienvenue au Conseild Administraction”은 1982년 레코드화되고 있다. 컨템포러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데 Pulsar의 사운드는 건재하다. 그리고 이후로도 그들은 산발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는등 활동을 계속하여 186년에는 Jacques Roman의 명의로 카세트 앨범 <Melodie Boreale>를 발매하였다. 릴랙스된 듯한 작품이지만 Pulsar 사운드의 아름다움만큼은 그대로 보존한 키보드워크는 그들의 사운드 정책이 지금도 불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프렌치 심포닉 역사의 정도를 걸어온 그들의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33 no image Art Zoyd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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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7 2012-10-17
프랑스의 록계에 아르 조이라는 이름의 그룹이 등장한 것은 70년대 초두의 일이다. 71년 그들은 마이너 레이블 Opaline에서 싱글 “Sangria/Something in Love”를 발매하였다. 그것은 60년대 록게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한 존재였던 크림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색소폰을 대담히 도입하는 등 독자적인 실험도 행한 의욕작이였다. 당시 그룹의 퍼스넬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상기 레코드에서 판단컨데 기타, 베이스, 드럼, 색소폰으로 구성된 5인조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싱글의 A면은 R.Fernandez의 작품, B면은 R.Frenandez와 J.P. Dulion의 공동작품이고 어레인지는 Alain Loewenguth로 되어있지만 그들의 그룹의 멤버였는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76년 창설기의 멤버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아르 조이의 흐름을 이어받은 아르 조이 트르와(Art Zoyd 3)가 첫번째 앨범 <Symphonie Pour Le Jour Ou Bruleront Les Cites>를 발매하였다. Thierry Zaboitze(b, per, vo), Jean Pierre Soarez(Tp, per), Alain Eckert(g, per, vo), Gerard Hourbette(Vln, fl)의 4인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 독창성 및 이후의 록계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70년대 프렌치 프로그레시브 록 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를 록의 테두리 내로 교묘히 끌어들인 연주를 전개하는 트럼팻과 바이올린, 변박자를 많이 사용한 곡제작 등은 챔버록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를 중심으로 다수의 라이브를 행하였다. 82년 영국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된 싱글 “Manege”는 76년 2월 19일 팔레스 드 스포르트 듀 툴루즈에서 개막된 콘서트의 일부를 수록한 것이다. 그룹명을 다시 아르 조이로 되돌린 그들의 두번째 앨범<Musigue Pour L’Odyssee>는 유니베르 제로의 다니엘 데이스(ds), 미셀 베르그망(oboe, bassoon)을 게스트로 맞아들여 벨기에의 Overjse에서 녹음, 아템 레이블에서 발표되었다. 헨리 카우를 중심으로 하는RIO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들의 앨범은 레코멘디드 레이블을 통해 일본, 미국, 유럽 각국에 소개되어 그들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80년 2월 스위스의 Kirchberg에 있는 Sunrise Studio에서 세번째 앨범 <Generation Sans Futur>를 제작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템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도 다니엘 데니스가 가세한 작품이 1곡 수록되어 있는데 그 사운드는 전작의 아르 조이로서는 다소 클래식한 것에서 재즈적인 요소를 좀더 강조한 실험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 같은 해 7월에는 자주제작 음반인 이유로 프레스 매수가 적어서 이미 입수가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린 첫번째 앨범을 재녹음하여 네번재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오리지널 음반의 멤버에 Frank Cardon(Vln), Patricia Dallio(p), Gilles Renard(sax)가 가세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 오리지널 음반을 월등히 상회하고 있다. 가장 음악적으로 충실한 시기를 맞이한 아르 조이였지만 아템 레이블이 그만 활동을 정지해 버린탓에 다섯번재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영국의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가 결정되어, 82년 4월~5월에 걸쳐서 녹음된 <Phase IV>는 더블앨범으로 재즈적 요소를 훌륭하게 승화시켜서 독자적인 챔버록으로 완성시킨, 아르 조이의 6년에 이르는 활동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작품이다. 83년에는 프랑스이 신흥 레이블 Cryonic에서 6집 <Escape Inquiets>를 발표 작품으로서의 힘이 다소 떨이지고 있지만 서서히 새로운 젙개를 추구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예상하던대로 84년 그들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였다. 우선 멤버의 한 사람인 Thierry Zaboitze가 극단 Le Collectif Theatral Du Hainaut의 <Promethee>를 위한 극장용 곡을 만들고, 그것을 솔로 앨범으로 발표하였다. 이어서 롤랑 프티의 창작 발레 “Le Mariage Du Ciel Et De L’enfant”에 그룹 차원으로 음악을 담당하여 그 일부를 7집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이들 작품은 그 성격상 음악적으로 종래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음악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2년이상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작을 내걸고 부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은 적지 않을 것이다.
32 no image 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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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no image JBL L-15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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