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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0 (20:05:11)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6회
Progressive Rock 2부

3. 가장 성공한 Progressive Rock그룹 Pink Floyd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은 Moody Blues 그리고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 앨범은 King Crimson의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이라고 위에서 조심스럽게 언급했으나 그러한 서술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Pink Floyd 때문이다.
 Progressive Rock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라고 묻게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Pink Floyd의 음악을 거론한다. 즉, 우리들의 잠재 의식속에 Progressive Rock=Pink Floyd라는 공식이 성립되어있을 정도로 Pink Floyd는 Progressive Rock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동원 및 음반 판매 수치상으로도 Pink Floyd는 단연코 이 분야의 최고이다. 200여종이 넘는 해적음반의 비공식 판매고를 제외하고도 공식적으로 “Dark Side Of The Moon"은 2,500만장 이상을 ”The Wall"은 1,700만장 이상을, “Wish You Were Here"은 천만장 이상의 천문학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시완레코드가 타이틀당 500매를 발매하고도 판매부진으로 쩔쩔매는 것을 보면 Pink Floyd의 천만단위의 앨범판매량은 상상할 수도 없는 천문학적 수치이다. 실질적으로 Pink Floyd의 덕택으로 Progressive Rock이라는 용어가 대중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적어도 4~5천만명 이상이 Pink Floyd의 팬이며 그중의 대부분이 Progressive Rock이란느 용어를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a. Pink Floyd의 첫 번째 Progressive Rock작품
 Pink Floyd가 Progressive Rock그룹으로 출발한 것은 두 번째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부터라고 할수 있다. 초기리더 Syd Barrett이 주도했던 데뷔앨범은 확실히 Psychedelic지향의 작품이었고 Syd Barrett이 신경쇠약으로 그룹을 등지지만 않았더라도 두 번째 앨범 역시 Psychedelic앨범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A Saucerful Of Secrets"에서도 Syd Barrett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앨범 끝곡으로 “Jugband Blues"라는 그의 작품이 담겨 있으며 이곡의 마지막 가사는 Syd는 ”And What Exactly Is A Joke?"라는 달콤한 목소리를 남겼다. 또한 본래 데뷔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Rick Wright의 이런시절 향수를 담은 “Remember Day"라는 곡에서는 자극적인 그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며 Roger Water의 장난끼 넘치는 ”Corporal Clegg"에서는 다소 광적인 Syd의 기타장식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의 영향력은 V.D.G.G.의 Peter Hammill과 Rolling Stones의 Mick Jagger와 다를 바가 없었다. Syd가 그룹을 떠난후에도 오랜기간 동안 Pink Floyd의 잔여멤버들은 메스컴과 초창기 팬들이 만들어 놓은 Syd의 신화적인 이야기들과 우상화 작업의 그늘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러한 Syd의 그늘은 Roger Water가 그룹의 리더로 부상하기 시작하는 Animals앨범 이전까지 무려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계속되었다.
b. A Saucerful Of Secrets
1968년 6월 29일에 발매된 Pink Floyd의 두 번째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은 Pink Floyd의 역사상 유일하게 5인조 형태로 제작된 과도기적인 작품이다. 물론, Pink Floyd의 전신그룹 Architectural Abdabs(1965년)는 당시 Bob Close를 포함 5인조로 활동한 바 있었다. 본작은 Syd Barrett의 그룹 탈퇴와 David Gilmour의 그룹 참가라는 싸인곡선과 코싸인곡선이 맞물려 있는 사각지대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다. 즉, 새로운 멤버 David Gilmour가 작곡, 리드했던 Pink Floyd의 완벽한 Progressive 대곡인 타이틀 트랙 ‘A Saucerful Of Secrets'와 그룹을 떠난 불운의 리더 Syd Barrett의 짧고 평범한 넘버 ’Jugband Blues'가 크게 대조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 앨범이다. 두곡 길이의 비례는 4:1이며 두곡의 거리는 4분 40초(See Saw)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본작은 Pink Floyd와 함께 여러팀의 음악을 삽입했던 사운드 트랙앨범 ”Zabriskie Point"처럼 한마디로 불균형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A Saucerful Of Secrets"는 원래 ”The Massed Gadgets Of Hercules"라는 제목으로 David Gilmour에 의해서 독자적으로 작곡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곡의 크레딧에는 Pink Floyd 전멤버들의 공동작으로 잘못(?)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David Gilmour가 그룹의 새로운 멤버로 참여하면서 멤버들에 대해 예의를 나타낸 것이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하나의 선심이었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아부였던 것이다.
 “A Saucerful Of Secrets"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부에 전개되는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Meddle"의 ‘Echoes'와 맥을 잇는다. 이 부분은 긴장감과 공포감의 사운드로 전쟁의 시작을 표현하고 있다. 전쟁의 진행상황을 의미하는 Nick Mason의 토속적인 드러밍이 끝나고 잠시 등장하는 폭음은 “The Dark Side Of The Moon"까지 이어지는 Pink Floyd의 미묘한 사운드이다. 이부분부터 서서히 진혼곡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Rick Wright의 신비로운 오르간 연주와 멤버들의 Scat파트는 프로젝트그룹 Galactic Supermarket이나 Gila등 독일그룹들이 모방하는 주요테마가 되기도 했다.
 본작의 녹음을 위하여 제작자인 Norman Smith가 Pink Floyd멤버들을 이끌고 들어간 스튜디오는 EMI의 제3스튜디오였는데, 당시 첨단의 장비를 구비하고 있던 제2스튜디오는 Beatles가 사용하고 있는중이었다. Norman Smith는 스튜디오 사용법을 Pink Floyd멤버들에게 가르쳐주었고 대부분의 곡들이 녹음되는 동안 제작자로써 여러 가지 간섭을 하려했다. 결국, 그는 제작자로써의 한계를 드러내기 싲가했는데 바로 David Gimour의 작품 ‘A Saucerful Of Secrets’에 관해서는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했었다. “이 곡은 쓰레기 같아... 그러나 당신들이 원한다면 계속 해보라고...!”라고 Norman Smith는 투덜거렸고 이때부터 Pink Floyd멤버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Hurricane이라는 별명을 가진 Norman Smith는 정석만을 고집하는 프로듀서로써 진취적인 Pink Floyd멤버들과의 마찰이 심했다. 특히, David Gilmour와는 여러차례 충돌을 야기시켰다. 모든 녹음이 끝나고 스튜디오를 나왔을 때 Pink Floyd 멤버들은 이미 그의 스튜디오 선생인 Norman Smith의 제작 실력을 초월하고 있었다. 아무튼 발매된 본작의 앨범커버위에는 제작자 이름으로 Norman Smith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잘못된 “거짓” 크레딧이었다.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에는 타이틀곡이외에서 주목할만한 Progressive Rock넘버가 잇는데 바로 Roger Waters의 작품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이다. SF Sound와 Fantasy 그리고 Psychedelic요소까지 함축하고 있는 이곡은 Roger Waters가 Pink Floyd의 초창기 우주적 이미지를 보다 구체화 시킨 작품이다. 한때 Syd Barrett의 Guitar Work이 담겨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데뷔앨범의 우우적인 이미지 (Astronomy Domine와 Interstellar overdrive)와 Psychedelic요소를 그대로 계승한 작품이다. Roger Waters는 William S. Burroughs의 소설에서 곡제목을 얻었으며 그의 속삭임과 읊조리는 보컬은 중국의 시조를 읊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게되었다. 이 곡은 Pink Floyd의 두 번째 앨범에서 타이틀 곡만큼이나 신비롭게 들리는 제 2의 Progressive Rock넘버이다.

IV. Progressive Rock그룹의 유형
1. Progressive rock의rock-concerto.jpg 종류
 우리는 앨범뒷면 또는 커버안쪽에 담겨있는 크레딧(Credit)만을 보고도 그 그룹이 어떠한 부류의 음악을 행하는 그룹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아티스트의 이름이 생소할 경우 우리는 각 아티스트들의 악기구성을 보고 이 그룹이 Progressive Rock그룹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 예로, 생소한 그룹명과 아티스트일지라도 악기편성이 키보드류의 악기나 주를 이루고 있을 때 그 앨범이 Progressive Rock앨범일 확률은 90%이상이다. 그 이유는 Progressive Rock의 가장 중요한 대표적인 악기가 Keyboard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수의 멤버가 키보드류를 다루고 있다든지 그중에 Mellotron이라는 창치가 포함되어 있다면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또한 각각의 아티스트들이 여러 가지의 악기를 다루고 있다면 Progressive Rock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Progressive Rock아티스트들은 여러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나아가서 우리는 악기구성만을 보고도 Progressive Rock중에서도 그 그룹이 어떠한 성격을 지닌 그룹인지 예측할 수 있다. 즉, 악기편성만으로도 그 그룹이 Symphonic Rock그룹인지, 아니면 Chamber Rock계열인지, 아니면 Folk 또는 Jazz Rock을 행하는 그룹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지난호에서 Progressive Rock의 유형에 대해서 잠시 언급했었지만 Progressive Rock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1984년, 월간팝송이라는 음악지의 특집 “Progressive Rock 그 신비를 벗긴다!(이 제목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잡지사측에서 타이틀을 붙였다)”에 필자는 Progressive Rock의 유형에 대하여 도표와 함께 간략한 분석을 한 바 있다. 당시 필자는 Progressive Rock의 유형을, 첫째 Classic을 모티브로한 Classic(Symphonic) Rock, 둘째 Modern Jazz를 모티브한 (Free)Jazz Progressive Rock, 그리고 이 두 개의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는 세 번째 그룹들 이렇게 크게 세 개의 유형으로 분류했었다. 그 당시에는 New Trolls등 이태리 그룹들을 대표적인 예로서 제시하고 있었으나 이 지면에서는 영국 그룹들을 중심으로 그 유형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progressive style.jpgProgressive Rock의 유형은 크게 7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Classic을 모티브로한 Classic(Symphonic) Rock, Modern(Free) Jazz를 모티브로한 Jazz Progressive Rock, 민속음악-세속음악을 모티브로한 Progressive Rock, 실내악이나 전위음악을 행하는 Chamber 또는 Avant Garde Rock(독일의 경우는 전자음악을 주로하는 Electronics계의 음악을 포함한다), Hard Rock과 Psychedelic에 가까운 Heavy(Hard) Progressive Rock과 우주를 테마로한 SF식의 Space Rock 그리고 컨츄리풍에 혁신적인 악기나 사회적인 내용을 불어넣은 Progressive Country등이 있다. 이외에도 이들 일곱 부류의 요소들중 두 서너개의 특성을 함축하고 있는 그룹들도 있으며 때로는 위의 기준을 분류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그룹들도 있다.
 7개의 부류와 함께 위의 도표에는 Soul에 스트링을 도입한 영국의 Soul그룹 Hot Chocolate을 Progressive Soul그룹으로 분류해 놓았다. Progressive Soul에 대해서는 지난호에 잠시 언급이 있었지만, Hot Chocolate을 그 예로 든 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여러분들에게 스트링과 보컬의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Hot Chocolate의 곡들 ‘Put Your Love In Me'와 ’A Child's Player'을 Progressive Soul로 추천해 본다.
 이와같이 Progressive Rock그룹들을 음악의 형태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은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대부분의 그룹들이 시대적 상황과 음악적 조류 그리고 멤버의 교체등등 여러 가지 변화를 거치면서 음악적 방향을 수정해 왔기 때문이다.(우리는 후기 Yes나, 후기 Genesis 그리고 후기 Renaissance의 음악을 Progressive Rock이라고 부를 수 없다). 또한 한아티스트 또는 한 그룹의 일개 앨범속에서도 여러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류작업은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것이다. 따라서 이 지면에서 다루고 있는 분류작업은 한정되어 있으며,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a. Classic(Symphonic) Rock : Progressive Rock이 Classic의 Symphony를 모티브로 창안된 것처럼 Progressive Rock의 유형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대부분의 Progressive Rock글부들이 이부류에 속한다. 연주시간은 대체적으로 길며 내용은 대부분 주제일치의 Concept형식과 조곡형태로 되어 있다. Orchestra를 동반하기도 하며, 클래식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악기들이 도입된다. 주요악기는 키보드류와 현악기(스트링)이다. 때때로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과 코러스를 사용하며,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Synthesizer를 이용하거나 그 이외의 효과으을 통해 장엄함과 웅장함을 표현한다.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본호의 Super Group으로 소개되고 있는 The Enid이다. 또한 Renaissance의 초중반기 작품들과 Rick Wakeman의 초창기 솔로앨범들, 특히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The Myths & Legends of King Arthur..."과 같은 앨범은 전형적인 Symphonic Rock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부류에 속하는 아티스트들은 정통 클래식 수업을 받은 에술학교 출신들이 대부분이며 학창시절에 배웠던 순수예술을 Rock과 융합시키는 시도를 행했다. 또한 기존의 클래식 작품들을 Rock의 형태로 편곡 또는 변형시켜 즐겨 연주한다.
b. Jazz Progressive Rock : 1983년에 발간되었던 Underground Papyrus no. 8의 British Jazz Rock계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Jazz Progressive Rock이라는 구역은 아래의 "d. Heavy(Hard-Psyche)Progressive Rock"과 함께 Progressive Rock의 범주속으로 끌어넣는데 많은 혼란을 야기시키는 영역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이 구역에서 활동했던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1960년대 중반까지 Blues Rock을 행했었던 뮤지션들로써 1960년대말  Fusion Jazz나 Free Jazz의 영향으로 Rock의 영토까지 넘겨다 보는, Progressive Rock과 Jazz Rock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뮤지션들이었다. 이태리의 경우에는 Classic(Symphonic) Rock과 Jazz Progressive Rock그룹들은 멤버 및 악기 편성에 있어서도 다른 Progressive영역보다도 구성원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Saxophone, Flute 그리고 Trumpet등의 Wind, Brass류 악기들과 Conga드럼등 다양한 타악기들을 주로 사용하여 자극적이고 템포가 빠른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기존 Blues와 Jazz위에 매우 날카롭게 강렬한 사운드를 입혔으며 음역도 크게 확장시켰다. Jazz Progressive Rock은 성격상 Blues와 Jazz 보다는 Rock에 더 가까운 편이다. 일반적으로 Brass Rock그룹으로 일컬어지는 Brainchild나 Aquila 그리고 Walrus등은 Jazz Progressive Rock 범주보다는 Heavy(Hard-Psyche) Progressive Rock으로 분류한다.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Ian Carr의 Nucleus, John Surman의 The Trio, 두명의 Saxophone주자를 내세웠던 If, Manfred Mann Chapter III와 최대의 프로젝트 팀 Centipede등이 있다.
c. Chamber 또는 Avant Garde Rock : Chamber Rock에 대해서는 AR no.6에서 한차례 다루었고 이와 관계된 Canterbury Music에 대해서는 AR no.8부터 연재 되고 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Chamber Rock은 Chamber Music, 즉 하나의 클래식 연주형태 “실내악”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소규모의 클래식 현악기와 관악기가 Rock에 도입된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Chamber Rock은 클래식 악기들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형태는 클래식을 파괴하는, 비클래식의 형태로 진행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위의 a. Classic(Symphonic) Rock 그룹들이 즐겨 행했던 고전음악의 파괴를 선언한 현대음악과 Rock의 합성을 의미한다. 화성, 대위법에 의한 조화를 이루는 정통적인 작품구성이 아니라 불협화음이나 변칙박자 그리고 인위적인 소리를 섞어놓은 앙상블위주의 연주형태를 말한다. 영국의 경우 Henry Cow를 비롯한 Canterbury계열의 그룹들과 뮤지션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중에는 Jazz Progressive Rock 계열과도 깊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룹도 있다. (예 : Soft Machine)
d. Prgressive Folk Rock : Traditional Folk, Modern Folk, 그리고 Elecric Folk(Folk Rock)등등 Folk라는 단어의 앞뒤에 여러단어들이 붙어서 음악의 조류와 시간의 흐름을 갈라 놓는다. 여기에 Progressive Folk Rock 이란느 것까지 덧붙이면 Folk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마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그 동안 제작자들, 뮤지션들, 평론가들 그리고 청중들이 무수히 많은 음악 장르(?)들을 만들어 내었다. 점점 세분화되어 가고 있는 학문(들어보지도 못했던 학파들이 대학에 개설되고 있는 것)처럼 음악의 경우도 새롱누 장르가 탄생되고 기존의 장르가 세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Folk Music의 경우 일반적인 민속음악의 총칭으로 지칭된 후 Pete Seeger나 Woody Guthrie의 등장과 함께 사상적인 의미를 담게되면서 Mordern Folk으로 불리워졌고, 그 다음 세대인 Bob Dylan이 1965년부터 Folk Music의 표준악기인 통기타대신 Electric Guitar를 들고나와 기존 팬들에게 쇼크를 주면서부터 Folk Rock(Electric Folk)이라는 새로운 용오가 사용됙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1970년대 이전에 일어났었던 미국 Folk의 이야기이다. 영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그 외 다른 유럽국가들의 경우 Folk Music의 역사는 짧은 미국의 역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깊다. 영국의 음악평론가들은 그들의 오래된 Folk Rock을 승화시켰던 Spirogyra등에게 Progressive Folk Rock이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물론 Cello, Harmonium과 Violindmf 도입한 Fuchsia의 음악 역시 Progressive Folk이다.
e. Heavy(Hard-Psyche) Progressive Rock : 지금까지 수많은 Psychedelic, Hard Rock, Heavy Metal 그룹들의 강렬한 음악들을 접해 오면서 그속에 잠재해 있는 여러 Progressive Rock의 요소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Hard Rock그룹 Deep Purple의 초창기 앨범들 Uriah Heep의 앨범들 속에서 우리는 많은 양의 양질의 Progressive Rock을 접하게 된다 간단한 예로 Deep Purple의 ‘April'이나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그리고 Uriah Heep의 ‘July Morning'이나 ’Magician's Birthday', 'Return To Fantasy'등을 Progressive Rock이라고 부르는데 필자는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많은 Hard Rock그룹들이 초창기에는 Progressive Rock과 Hard Rock을 병행하여 연주한 것이 사실이다. 독일의 Scorpions도 데뷔당시 Progressive Rock그룹으로 출발했었다. 이렇게 우리들 머릿속 깊숙이 Hard Rock, Heavy Metal Band로 인식되었던 많은 그룹들이 Progressive Rock을 행했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고정관념속에 Progressive Rock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많은 그룹들이 역이로 Hard Rock이나 Heavy Metal성의 강렬한 연주를 그들의 작품속에 담고 있다. Aardvark, Arc, Arcadium, Gracious, Gravy Train, High Tide등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뛰어난 Hard Rock을 들려준다.
 여기에 Progressive Rock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Psychedelic Rock 그룹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영국 ART ROCK의 역사 3~4’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했기 때문에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f. Space rock : 물론, 이 분야에 있어서는 독일이 단연 으뜸이다. Space Rock에 있어서 Brain레이블과 Kosmische Musik레이블만으로도 독일은 양적으로 전유럽을 제압할 수 있었다. 독일이 이 시장을 점령하기 몇 년전부터 이미 영국에서는 Space Rock의 용트림이 있었다. 바로 Pink Floyd의 데뷔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이다. 그리고 Space Rock의 대명사로 알려진 Hawkwind가 등장한다. Hawkwind는 Space Rock그룹으로서 뿐만 아니라 Heavy Metal그룹으로서도 인기를 얻었던 Progressive Rock그룹이다.
g. Progressive Country : 우리가 영국의 Folk Rock을 듣다보면 부분적으로 미국의 Country Music과 유사한 음악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의외로 영국 Folk Rock에는 이러한 Country요소를 지는 그룹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게 된다. Fire의 동화이야기를 듣고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시골의 컨츄리음악에 깜짝놀랐던 것처럼 말이다 Blue Grass그룹인 Strawbs도 영국적인 Country Music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색적인 Progressive Rock구룹이다. 키보드파트가 약했거나, 중반기에 Mellotron의 도입이 없었다면 이들은 평범한 Folk그룹이나 Country Group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이슈, 혁신적인 악기와 장치를 도입하여 Cuntry Music을 Country Progressive로 승화시켰던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그들이외에도 Dando Shaft등 Country Music을 내세운 Folk Rock그룹들이 눈에 많이 띤다.

2. Progressive Rock그룹의 멤버구성
 Progressive Rock그룹의 멤버구성은 매우 다양하다. Mike Oldfield처럼 20여종의 악기를 다루며 더빙을 통해 홀로서기를 시도했던 뮤지션이 있었는가 하면 수십명의 아티스트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 그룹을 형성했던 Centipede(5명)나 Mandalaband등과 같은 그룹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Progressive Rock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멤버구성은 어떤 것일까? Progressive Rock의 진원지인 영국을 비롯하여 Progressive Rock의 초강대국들인 이태리와 독일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면 유난히 3인조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많았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이 이 분야에서 매우 두각을 나타냇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물론 4인조 5인조 그룹들도 많았지만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수 있는 최대공약수는 바로 정삼각형의 구조 3인조 형태였던 것이다.
a. Trio그룹의 효시
 1966년, Cream이라는 그룹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3인조 편성의 소규모그룹이 어떻게 그러한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4인조 그룹 Beatles를 모델로 적어도 4~5인조이상의 그룹만이 풍부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라는 고정관념은 Cream의 등장으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들 멤버 편성의 축소에 녹음기술, 악기의 발달등도 기여한 바가 크지만, 대중 음악인들의 연주력 향상 및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다중악기주자들의 출현도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 시켰으며 1970년대에 결국, Mike Oldfield의 등장까지 이르게 된다. 아무튼 한 연주자가 다양한 악기들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면서, 녹음, 믹싱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그 이전의 4~5인조 그룹형태의 그룹들의 작품보다도 더욱 정교하며 웅장한 사운드를 제작할 수 잇게 되었다. 이때부터 멤버들의 숫자를 헤아리며 사운드 스케일을 논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여러 음악관련 자료들로부터 “Early King Crimson 스타일”dlfkemswl "Yes 스타일“ 또는 ”EL&P type, style"이라는 간략한 해설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Early King Crimson Style이라는 해설은 Mellotron음향을 사용한 자굼들에 주로 적용되며, Yes 스타일이라 함은 Jon Anderson보컬을 흉내낸 1970년대의 많은 미국그룹들을 인용할 때 사용된다. 그리고 Nice, EL&P타입이라는 것은 키보드주자를 앞세운 베이스+보컬, 드럼+타악기 편성의 3인조 그룹을 일컫는다. 따라서 우리는 한줄의 간략한 해설만으로도 그 그룹의 성격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특히, EL&P형태의 멤버구성은 기존의 Rock그룹 편성과 매우 다른 것이다. 키보드를 으뜸음원으로하는 이러한 편성은 보다 클래식에 가까우며 1970년대중반까지 Progressive Rock의 가장 이상적인 편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우선 EL&P에 앞서서 3인조 Progressive Rock그룹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Nice에 대해서 잠시 언급해 보자. 이들에 관해서는 이미 Art Rock no. 7(EL&P)에서 다룬바 있지만 이지면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이들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창기 Nice는 3인조가 아니라 4인조 그룹으로 P.P. Arnold(Paticia Arnold)라는 미국 흑인 Soul 싱어의 Back Band로 결성되었는데, 실질적으로 Keith Emerson은 Back Band로의 출발에 대하여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P.P. Arnold역시 Ike&Tina Turner의 Backing Vocal팀인 Ikettes의 일원으로 영국으로 건너왔고 순회도중 Immediate레이블의 설립자 Andrew Loog Oldham의 권유로 영국에서 활동하게 된 신인이었다. Nice 또한 출발시점의 무명그룹이었으므로 Andrew Loog Oldham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결국 일게 Backing Group출신의 여성을 위한 Back그룹으로 나서게 되었다. 물론, 조건은 The Nice의 독립성을 인정받으며 무대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 앞에는 항상 P.P. Arnold라는 이름이 놓여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P.P. Arnold가 비자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가자 The Nice는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무대와 함께 데뷔작을 만들게 된다. 그들 데뷔작의 앨범명은 P.P. Arnold의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들의 심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잇으며 후에 Emerson Lake & Palmer의 결성을 예고하듯 그룹멤버들의 이름을 합성한 타이틀을 내세우게 된다. 그들의 이름들 즉, Emerson, O'List, Davison, Jackson을 조합시킨 “The Thoughts Of Emerlist Davjack"이 그들의 데뷔앨범 타이틀이 되었다. 이때부터 Keith Emerson은 그룹명과 앨범명에 대한 남다른 dokr을 자기게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앨범의 구상이 끝날 무렵 기타리스트였던 David O'List가 그룹을 떠나게되었고 The Nice는 첫 번째 위기를 맞게된다. 그의 탈퇴로 The Nice는 자연스럽게 트리오 그룹을 형성하게 되는데 사실, Keith Emerson은 강렬한 기타가 빠진 자신의 그룹에 대하여 부정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The Nice을 떠나 새로운 그룹을 구상할때도 항상 Lead Guitarist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이었는지 또하나의 트리오 그룹 Emerson Lake & Palmer를 이끌게 되었고 Brian Davison과 Lee Jackson 역시 후에 Refugee라는 트리오 그룹을 형성한다. 이러한 Nice, EL&P스타일의 트리오편성은 곧 영국뿐만 아니라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는데 영국에서는 Atomic Rooster, Jody Grind, Little Free Rock을 비롯 Egg 그리고 Fields와 Refugee등이 탄생했으며 특히 후자들의 경우, 비록 생명력은 짧았지만 Progressive Rock역사상 길이 남을 불후의 걸작을 하나씩 남겼다.
 영국 Progressive Rock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이태리의 경우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그룹들이 EL&P스타일을 추구했다. Latte E Miele, Le Orme, Triade, Il Ritratto Di Dorian Gray, Alluminogeni, Capsicum Red, Antonius Rex, Exploit 등이 EL&P 스타일의 편성과 음악을 행했다. 독일의 경우 Triumvirat과 Tritonus가 대표적이며 Birth Control도 멤버 편성은 달랐지만 EL&P스타일의 음악을 지향했다. 네델란드의 경우 Ekseption을 비롯 Trace가 있엇으며 그리이스에는 Aphrodite's Child, Akritas등이 그리고 체코의 Collegium, Musicum과 벨기에의 Recreation도 빼놓을 수 없는 EL&P형태의 그룹이다. 흥미로운 것은 3인조라는 것을 의미하듯 이들중 "Tri-"로 시작되는 그룹명이 많은데 스페인의 Triana도 예외는 아니다. 셋을 의미한느 이 접두어는 그리스어의 Treis 후기 라틴어의 Trias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유럽의 EL&P스타일의 그룹들은 이것을 다소 변형시켜 그룹명으로 채택했다. 이태리 그룹 Triade의 그룹명은 16세기, 초기 현대 프랑스어의 셋이라는 어원을 그대로 사용,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Progressive Rock을 행하는 3인조 그룹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키보드파트를 중심으로 Classic을 기초로한 Classical(Symphonic) Rock을 행했다는 점이다. 또한 작품속에서 솔로파트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도 4인조 또는 5인조그룹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특징중 하나이다. 즉, 이들은 대부분의 작품속에 각 멤버들의 개성을 뚜렷하게 표출시키고 있으며, 또한 키보드 솔로, 기타솔로, 그리고 드럼솔로파트를 완전하게 분리하여 기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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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2013-02-24
말은 거창하지만 별 내용은 없습니다. 무역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때 단순히 만들고 팔고가 아닌 어떤것을 어떻게 어디에 팔것인지에 관한것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일단 요즘 원정대의 주 무역품 생산지인 '초원의 띠'와 '하리하랄라야의 폐허' 이 두곳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곳에서 무역을 준비하시는분들 역시 기본적인 방법은 같으니 참고하셔도 무방합니다. 먼저 무역품에 대해서 알아보 도록하겠습니다. - 초원의 띠 환약 : 모링가 열매(10개) + 특산품 인증서 - 초원의 띠 박하사탕 : 박하(10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땅콩 잼 : 땅콩(4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요리용 잎사귀 : 연꽃(50개) + 특산품 인증서 위의 4가지 품목에 대한 집중 분석을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무역품을 만들기 위해선 재료가 필요한데 재료를 입수하는 방법에는 1. 재배, 2. 구매 이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재배를 하는부분에 있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특산물 재료구매 : 물가의 변동성 때문에 무역을 준비하는 바로 그시기에 구매하는것은 항상 변동하는 물가의 방향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두배가까이 가격이 차이나기도 하니까요. 경매장을 통한 물품 가격 변동폭 박하(100개) : 1.10골드 ~ 1.80골드 모링가나무열매(10개) : 1. 30골드 ~ 2.00골드 땅콩(100개) : 2.00골드 ~ 2.90골드 연꽃(100개) : 1.20골드 ~ 3.50골드 대략적인 경매장가격입니다. 원가기준을 잡을때 무역품 하나의 가격은 절대 2.00골드가 넘지 말아야 한다(이것은 저의 철칙입니다.) 그렇다면 특산품 인증서 가격(50실버)에 특산물의 가격은 절대 1.50골드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되죠. 땅콩과 연꽃은 가격대가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라 운반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특산품 제작에 1.50골드 이하로 까지 낮출수 있어서 나름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재료를 경매장을 통해 싼가격으로 올라올때 구매를 하고 미리 특산물을 제작한뒤 같이 무역을 할 분들을 모집하여 무역을 한다면 한결 수월할것이라 생각됩니다. *무역품 제작은 2골드 이하가 되도록 하라. 어디에 팔것인가... 이제 싼가격에 무역품을 제작하였다면 좋은가격에 팔아야겠지요? 물품을 팔곳은 5곳 정도로 정리가 되는데, 이니스테르(카오노르드), 두왕관(이즈나항구), 십자별평원(시차일드 부두),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자유도 등입니다. 이곳외에도 있습니다만 판매가가 좋지않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 이니스테르(카어 노르드) (초원의 띠) 박하사탕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환약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하리하랄라야 폐허) 땅콩 잼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요리용 잎사귀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 두왕관(이즈나 항구) 박하사탕, 환약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 십자별 평원(시차일드 부두) 박하사탕, 환약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박하사탕, 환약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8g 50s(4g 25s ~ 12g 75s) 100% 기준에 50~150% 이상 4곳의 가격정보입니다. 자유도는 위험한 곳이라 저도 가격 확인 못했습니다 ^^ 하지만 제일 높은 가격을 받을수는 있으나 털릴 확률 80%에 팔수 있는 확률 5%, 15%는 배를 돌려 철수. 자유도는 소규모무역은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한곳(카오 노르드)를 제외한 나머지 3곳은 모두 서대륙에 위치한 판매처입니다. 패치로 인해 가격변동폭이 기존 80~120%에서 현재는 50% ~ 150% 변동이 된 상태입니다. 아마도 대량으로 가지고 가서 팔면 가격 폭락이 우려되오니 원정대 무역에서는 상품군을 다양화하는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설명은 어디까지나 소규모 무역(2~4명)선을 기준으로 한것으로 무역선 한대(무역품 20개)를 판다고 할경우엔 가격변동폭이 크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리없이 마구잡이로 쓰다보니 글내용이 두서가 없긴 합니다만 물품 구입과 판매에 대한 정보만 잘 확인하신다고 해도 도움이 도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캔들무역상회--
35 no image 아답터주문
웹마스터
3223 2012-10-19
34 no image Pulsar (4)
웹마스터
4218 2012-10-18
1970년대 후반 융성의 극을 달리던 프렌치 심포닉계도 1980년대로 들어설 무렵 완전히 동면상태로 들어가 버린다. 태반의 그룹들이 해산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그룹도 사운드를 변화시키고 만다. 그러한 가운데 유일하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들의 사운드를 지켜낸 그룹이 있다. Pulsar의 역사는 오래전인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Lyon의 고등학교 밴드로 활동하고 있던 Free Sound라는 그룹에는 Phillipe Roman(b), Jacques Roman(Key), Gilbert Gandil(g, vo), Victor Bosch(ds)의 4인이 재적하고 있었다. 이 밴드는 당초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하였는데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David Gilmour의 스테이지를 보고서 사운드 정책을 프로그레시브로 전환하게 된다. 1966년 그룹 결성 이해 여러 번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1968년 전술한 4인으로 정착된 것이다 그들은 본고장 Lyon에서 정력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며 1970년 4월 Pulsar라 개명한다. 그리고 Malaval Festival, 이어서 1971년에는 그룹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에 참가한다. 이콘테스트에서 성공을 거둔 그들은 프랑스 투어를 벌이면서 차츰 인기를 모아나갔다. 또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를 수록한 옴니버스 앨범 <Groovy Pop Session>도 1972년 발매되어 Ange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곡 “Pulsar”는 후의 그들의 사운드와는 다소 다르며 약가 헤비하고 혼탁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인기.실력을 한몸에 갖춘 그들은 1974년 12월 드디어 1집<Pollen>을 발매한다. 멤버는 전술한 4인에 플루트의 Roland Richard를 가입시킨 5인 편성이다. 곳곳에 Pink Floyd로부터의 영향을 느끼게 하면서도 상상력을 풍부히 가미한 섬세하고 몽환적인 부유감이 떠도는 사운드는 충분히 독창성을 감지할수 있는 아름답고 뛰어난 것이다. 팬 사이드에서도 이 앨범을 최고작으로 손꼽는 이가 적지 않다. 판매면에서도 일단 성공을 거둔 듯하다(이 앨범은 킹덤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고 영국에서도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1집 발표후 그들은 약 1개월에 걸친 영국 투어를 행하여 호평를 얻고 대형 그룹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1976년 4월, 2월 <The Strands of the Future>를 녹음한다. 이 앨범 제작시 베이스 Phillipe Roman이 탈퇴하고 게스트 형태로 참가하고 있다. Rock’n Folk지로부터 “이것은 풍부한 감성, 정렬로 충만한 대단히 뛰어난 앨범이다. Pulsar는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최상의 완성도를 지닌 그룹이다. 위대한 인상파 작곡가 말러와 같은 서정성을 감지하게 한다”고 호평을 받은 이 앨범은 사운드 퀄리티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SF적 부유감이 있는 A면의 대작, 서정적인 B면의 소품, 모두 그들의 독창성이 십분 발휘된 걸작이다. 판매면에서도 이 앨범은 대성공을 거두어 Ange, Atoll과 나란히 대형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2집 발표후 그들은 영국, 벨기에, 스위스, 포르투갈 등 장기간에 걸친 순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다. 이 인기를 눈으로 지켜본 프랑스 CBS는 좋은 조건을 내걸고 그들과 계약한다. 1977년 12월에 3집 <Halloween>이 발매된다. 베이스로 Michel Masson을 가입시킨 이 앨범은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초한 토탈 컨셉트 앨범이며 플루트와 멜로트론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비교할 바 없는 서정성을 갖춘 최고의 걸작이다. 또 이 앨범에서 홍보용(적어도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레코드에는 Special Promotion이라 명기되어 있다) 싱글 “Sorrow In My Dream/Dawn Over Darkness”가 커트되었다. 이 앨범은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자신넘치는 작품이었는데, 홍보 부족으로 말미암에 판매면에서 실패로 끝나고 만다. 3집 발표후 그들은 CBS를 떠나고 베이스로 탈퇴하여 활동이 부진하게 된다. 록계는 바야흐로 펑크, 뉴웨이브로 이행하고 있었으며그들에게는 겨울과 같은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980~81년에 걸쳐 Le Companie Du Theatre De La Satire라는 극단의 연극 세션을 맡았으며, 그 가운데 한 작품 “Bienvenue au Conseild Administraction”은 1982년 레코드화되고 있다. 컨템포러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데 Pulsar의 사운드는 건재하다. 그리고 이후로도 그들은 산발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는등 활동을 계속하여 186년에는 Jacques Roman의 명의로 카세트 앨범 <Melodie Boreale>를 발매하였다. 릴랙스된 듯한 작품이지만 Pulsar 사운드의 아름다움만큼은 그대로 보존한 키보드워크는 그들의 사운드 정책이 지금도 불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프렌치 심포닉 역사의 정도를 걸어온 그들의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33 no image Art Zoyd (44)
웹마스터
4497 2012-10-17
프랑스의 록계에 아르 조이라는 이름의 그룹이 등장한 것은 70년대 초두의 일이다. 71년 그들은 마이너 레이블 Opaline에서 싱글 “Sangria/Something in Love”를 발매하였다. 그것은 60년대 록게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한 존재였던 크림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색소폰을 대담히 도입하는 등 독자적인 실험도 행한 의욕작이였다. 당시 그룹의 퍼스넬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상기 레코드에서 판단컨데 기타, 베이스, 드럼, 색소폰으로 구성된 5인조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싱글의 A면은 R.Fernandez의 작품, B면은 R.Frenandez와 J.P. Dulion의 공동작품이고 어레인지는 Alain Loewenguth로 되어있지만 그들의 그룹의 멤버였는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76년 창설기의 멤버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아르 조이의 흐름을 이어받은 아르 조이 트르와(Art Zoyd 3)가 첫번째 앨범 <Symphonie Pour Le Jour Ou Bruleront Les Cites>를 발매하였다. Thierry Zaboitze(b, per, vo), Jean Pierre Soarez(Tp, per), Alain Eckert(g, per, vo), Gerard Hourbette(Vln, fl)의 4인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 독창성 및 이후의 록계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70년대 프렌치 프로그레시브 록 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를 록의 테두리 내로 교묘히 끌어들인 연주를 전개하는 트럼팻과 바이올린, 변박자를 많이 사용한 곡제작 등은 챔버록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를 중심으로 다수의 라이브를 행하였다. 82년 영국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된 싱글 “Manege”는 76년 2월 19일 팔레스 드 스포르트 듀 툴루즈에서 개막된 콘서트의 일부를 수록한 것이다. 그룹명을 다시 아르 조이로 되돌린 그들의 두번째 앨범<Musigue Pour L’Odyssee>는 유니베르 제로의 다니엘 데이스(ds), 미셀 베르그망(oboe, bassoon)을 게스트로 맞아들여 벨기에의 Overjse에서 녹음, 아템 레이블에서 발표되었다. 헨리 카우를 중심으로 하는RIO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들의 앨범은 레코멘디드 레이블을 통해 일본, 미국, 유럽 각국에 소개되어 그들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80년 2월 스위스의 Kirchberg에 있는 Sunrise Studio에서 세번째 앨범 <Generation Sans Futur>를 제작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템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도 다니엘 데니스가 가세한 작품이 1곡 수록되어 있는데 그 사운드는 전작의 아르 조이로서는 다소 클래식한 것에서 재즈적인 요소를 좀더 강조한 실험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 같은 해 7월에는 자주제작 음반인 이유로 프레스 매수가 적어서 이미 입수가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린 첫번째 앨범을 재녹음하여 네번재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오리지널 음반의 멤버에 Frank Cardon(Vln), Patricia Dallio(p), Gilles Renard(sax)가 가세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 오리지널 음반을 월등히 상회하고 있다. 가장 음악적으로 충실한 시기를 맞이한 아르 조이였지만 아템 레이블이 그만 활동을 정지해 버린탓에 다섯번재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영국의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가 결정되어, 82년 4월~5월에 걸쳐서 녹음된 <Phase IV>는 더블앨범으로 재즈적 요소를 훌륭하게 승화시켜서 독자적인 챔버록으로 완성시킨, 아르 조이의 6년에 이르는 활동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작품이다. 83년에는 프랑스이 신흥 레이블 Cryonic에서 6집 <Escape Inquiets>를 발표 작품으로서의 힘이 다소 떨이지고 있지만 서서히 새로운 젙개를 추구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예상하던대로 84년 그들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였다. 우선 멤버의 한 사람인 Thierry Zaboitze가 극단 Le Collectif Theatral Du Hainaut의 <Promethee>를 위한 극장용 곡을 만들고, 그것을 솔로 앨범으로 발표하였다. 이어서 롤랑 프티의 창작 발레 “Le Mariage Du Ciel Et De L’enfant”에 그룹 차원으로 음악을 담당하여 그 일부를 7집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이들 작품은 그 성격상 음악적으로 종래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음악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2년이상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작을 내걸고 부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은 적지 않을 것이다.
32 no image 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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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1 2012-08-06
31 no image s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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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5 2011-12-13
30 no image JBL L-15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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