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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1 (17:03:20)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8회
V. Progressive Rock의 형식

태고때부터 다른 예술과 달리 음악에 있어서 질서라는 것은 매우 중요시 여겨져 왔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음악론이 정립되기 시작했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악을 수적신비주의에 입각해서 수적질서로 연구해왔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질서에 대한 이념은 가장 기초적인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이념의 한계를 뛰어넘어, 중세시대에는 종교적으로 장엄하고 웅대해지고 또한 그에 상응하는 질서에 대한 이념을 갖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중세적 전통을 벗어 던지고 그리스 시대로부터 비롯되었던 음악의 수적질서를 또다시 거론하게 되었다. 종교와 함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중세시대의 음악은 중세인들이 말했던 것처럼 Splendor Ordinis!.. 즉, 아름다움이란 “훌륭하고 빛나는 질서에 의해 창조된다는 것”을 입증시켰다. 물론, 이러한 질서는 음악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인 형식에 의해서 결정되어지게 된다. 그러나 엄격한 형식에 의해서 창작되었던 기존 음악과는 달리 이러한 형식을 파괴하려는 양상이 현대 전위 음악가들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되었다.

Sonata
 우리가 다루려하고 있는 Progressive Rock에 있어서의 형식이란 그렇게 중요치 않게 여겨질수 있다. 이유로 Progressive symphony.jpgRock은 민속음악으로부터 전위음악에 이르기가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음악들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Progressive Rock은 특정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기존의 음악 형식중 그 일부분만을 수용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변형시킨 상태로 도입하기 때문에 하나의 형식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을 구조적으로 심층 분석한다면 그것이 지향하고 있는 전형적인 형식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즉, 지난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6회에서 언급했었던 것처럼 Progressive Rock은 Symphony를 모티브로 탄생했기 때문에 Symphony의 부리로써 Sonata 형식과 관련된 여러 형식들을 Sample로써 발췌할 수 있다. 이러한 Sample들과 함께 우리는 어느정도 Progressive rock의 대표적인 형식의 윤곽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Sonata는 17세기 이태리 악보들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어이다. “소리를 내다(Suonare)"라는 이태리어에서 파생된 이 음악적 용어 역시 모호한 뜻을 지니고 있어 17세기 초엽에는 다른 용어들과 혼용되어 사용되어 왔으며 Sinfornia라는 용어처럼 Opera의 기악 서주부분이나 간주곡을 가르키는 용어였다. 그후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 그리고 Trio Sonata등으로 발전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Alessandro Scarlatti의 아들 Domenico Scarlatti(1685~1788)와 J.S.Bach의 세 번째 아들 Carl Philipp Emanuel Bach(1714~1788)에 의해서 정립된 Sonata는 Haydn, Mozart, Beethoven에 의해서 커다란 결실을 맺게 되었다. Haydn과 Mozart의 소나타는 보통 Allegro-Andante-Allegro의 3악장으로 이루어졌고 Beethoven은 3악장으로 미뉴엣(후에 Scherzo)을 소개한다.
 소나타의 제 1악장은 주제의 제시부(Exposition)이며, 2악장은 제시부의 테마를 새로운 모양이나 조합으로 발전시키는 전개부(Development)이다. 그리고 3악장은 제시부가 본래의 순서대로 도다시 도입되기도 하지만 으뜸음으로 모든 테마가 연주되는 재현부이다.
 그렇다면 Progressive Rock에서 이러한 소나타형식을 찾을 수 있는가? 물론, 쉽게 찾을 수 있다. 영국 뮤지션들로는 Keith Emerson, Mike Oldfield의 초창기 작품들을 비롯하여 최근 국내 최초의 Progressive Rock앨범으로 선보인 조윤의 Mobius Strip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양식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의 대표적인 형식에는 가장 안정된 소나타형식 뿐만 아니라 4악장 또는 3, 4악장으로 나누어지는 Symphony, 그리고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가지 악장들로 나우어져 있는 Suite(조곡)형태의 작품들도 찾아 볼 수 있다.
아마도 Symphony를 모르는 독자는 한명도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 고전 음악 시간에 반드시 공부하고 넘어가야될 중요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 Symphony가 Progressive Rock에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라면 그것의 고유 형식보다는, 여러 악기들의 도입과 웅장한 스케일의 오케스트레이션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Progressive rock그룹들과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스어원으로는 “소리들을 한데 모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Symphony는 17,18세기 Opera의 서곡을 의미하는 이태리어 Sinfonia로 비롯되엇으며, Orchestra를 위한 소나타를 일컫기도 했다. 원래 오페라의 서곡을 위해 쓰여졌으며 “빠르게-느리게-빠르게” 형태의 짧은 3qqnns이나 3악장으로 되어 있었다. 그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 의해서 규모가 크게 원숙한 4악장으로 이루어진 Symphony들이 작곡된다.
 Ekpseption, Trace를 비롯하여 Coda와 같은 수많은 Progressive Rock그룹들을 배출시켰던 네델란드에서는 Progressive Rock을 Symphnic Rock으로 지칭햇을 정도로, 그 만큼 Classic을 바탕으로 활동했었던 팀들이 많았다. 전세계적으로 Progressive Rock그룹들을 형성하고 있는 뮤지션들의 대부분이 Classic을 전공했었기 때문에 그들이 과거에 배웠던 순수 예술중 가장 웅장하고 종합적인 음악의 형태인 Symphony가 결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형적인 Symphnic Sound를 들려주었던 대표적인 영국 그룹으로는 The Enid는 있다. The Enid는 그들의 두 번째 앨범 “Aerie Faerie Nonsense”에서 소규모 5악장으로 구성된 Fand와 앨범 The Spell에서는 사계를 다룬 4악장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Symphony를 들려준다. 그후 이들은 Live활동을 통하여 보다 Classic에 가까운 Symphonic Rock을 선보였다.

deep purple.jpgSuite
 우리들은 Progressive Rock앨범들을 소개하고 있는 해설속에서 “조곡형식”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물론, Pop과 Semi-Classic, Rock 그리고 Jazz에 이르기까지 Suite라는 Classic적용어를 사용한 Greateful Dead의 Weater Report Suite로부터 Styx의 Suite madam Blue에 이르기까지... 수백개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Progressive Rock에 있어선느 Refugee의 Grand Canyon Suite을 비롯하여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곡형태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데, 특히 Italian Progressive Rock 작품들중에 이러한 “조곡”형태의 작품들이 많았다. Latte E Miele의 Passio Secundum Mattheum과 Il Balletto Di Bronzo의 YS그리고 Museo Rosenbach의 Zarathustra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Latte E Miele의 Papillon의 경우 Side 1은 주제테마에 의한 조곡형태를 취하고 있고, Side 2는 소나타 형식의 비창을 담고 있어 조곡과 소나타를 동시에 소개하고 있는 독특한 앨범이었다. Suite에 대해서는 다음 13호 지면에서 다루게 될 “VI. Progressive rock의 내용”dptj 보다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Concerto
 Progressive Rock작품들중에서 특히 바이올린이 강조된 곡들을 대부분 Concerto형식을 따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오케스트라를 동반하는 Concerto는 하나의 솔로 악기파트를 강조하는데, 그중 대부분이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바이올린, 첼로, 플륫 독주 뿐만 아니라 보컬과 함께 현대악기들로 대체될 수 있었다. Deep Puple의 Concerto fo Group And Orchestra로부터 이태리 그룹 New Trolls의 Concerto Grosso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Concerto를 찾아 볼 수 있으며, Bach의 Brandenburg협주곡과 비발디의 협주곡들을 Art Rock그룹들이 즐겨 연주했다는 것만으로도 Concerto형식의 비중을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Art Rock의 형식
1990년 Mt. San Antonio 단과대학의 Katherine Charlton은 그녀의 저서 “Rock Music Styles... A History(Wm.C.Brown Publushers)"에서 Rock을 각 장르별로 형식에 의하여 분류한 바 있다. 놀랍게도 그중에 ”Art Rock의 형식(PP.205~219)"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분야에 비전문가인 그녀의 분류방법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으나, 어느정도 객관성을 지니고 있어 이번 지면의 참고자료로 선택하게 되었다. 그녀의 글을 끝부분인 요약부분에서 Art Rock을 “Art” 또는 ”Classic Music"의 형식과 특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운다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Art Rock형식의 대표적인 샘플로 Moo요 Blues의 Nights In White Satin과 Yes의 Roundabout, Emerson Lake & Palmer의 Pictures at an Exhibition 그리고 Pink Floyd의 Money를 선정하고 있다.

Night In White Satin / Moody Blues
808.jpg1. 기본 리듬은 분당 52박자이며, 각 마디마디 4개의 비트를 갖는다. 그리고 각각으 비트는 세계의 동일 파트로 나누어져 있으며 12/8박자로 되어있다.
2. 두 개의 마디로된 Intro부분은 비트패턴의 주도하게되는 드럼파트가 등장하기 직전까지 String, Flute, Harp, Chimes등으로 어지럽게 시작된다.
3. 드럼파트는 녹음된 전 부분에서 매우 강하고 명쾌한 Backbeat(Rock의 전형적인 강한 비트)로 지속되지만 마지막 오케스트라 Final부분을 위해 사라진다.
4. 오케스트라와 Rock악기들을 동반하면서 솔로 싱어(Justine Hayward)는 네 마디 멜로디(악절 A)에 걸쳐 두차례 노래를 부르며, 그 멜로디는 에올리아 선법(Aeolian Mode-A부터 A까지의 자연적인 음표)을 기초로 하고 있다.
5. 오케스트라는 악절 B의 4마디에 걸쳐 점점 웅장해진다.
6. 12마디의 연주 악절에 이어 등장하는 또다른 두 개의 A 악절들과 하나의 연장된 마디를 지닌 하나의 B악절에선느 Flute과 Acoustic Guitar 그리고 Rock Drummer의 Rock특유의 강한비트가 강조되고 있다.
7. 또한번 반복되는 두 개의 A악절과 하나의 B악절에 연주로 된 간주곡이 등장한다.

Roundabout / Yes
b461.jpg1. 기본리듬은 분당 135박자이며, 각 A악절마다 다양한 박자형태를 지니고 있음에도 각 마디마다 4개의 비트를 갖는다.
2. 미리 녹음된 테이프를 거꾸로 돌린 음향으로 크레센도 악절(Crecendo)로 시작된다.
3. 그 테이프 사운드는 자유스러운 박자의 멜로디로 전개되는 클래식적으로 영향받은 Acoustic Guitar연주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4. 도입부의 끝부분에서, 기타연주는 노래의 박자를 자리잡게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매우 강력한 베이스와 드럼파트는 8마디의 즉흥반주를 동반한다. 즉흥연주 패턴은 보컬라인의 앞부분까지 지속된다.
5. 가사의 첫 번째 행은 음악의 A악절까지 노래되고 있으며 나이것은 10개의 4박자 길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박자 패턴은 첫 번째 행과 마지막 행의 두박자로써 변형된다.
6. 두 개의 A악절이 끝난 후 등장하는 B악절은 2박자에서 4박자로 또다시 바뀌면서 박자 패턴으로서는 복잡하게 변칙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7. 드럼파트는 강한 Rock비트로 지속되면서 두박자와 네박자의 패턴을 고수한다.
8. 또하나의 A악절과 B악절후에, 하나의 연주파트가 등장하는데, Bass Riff와 Synthesizer와 많은 타악기 효과를 수반하고 있다.
9. 또다시 A테마와 보컬라인이 등장햇을 때, Synthesizer파트는 Phillip Glass와 같은 작고가들, 현대 음악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반복적인 연주 패턴으로 연주된다.
10. Synthesizer의 연주 패턴은 도입부에서 주제 테마를 연주했던 Acoustic Guitar파트를 뒤쫓는다.
11. Guitar와 Bass 그리고 매우 강렬한 Drum을 배경으로 즉흥적인 오르간 연주가 A악절로 이어진다.
12. A악절과 B악절이 그룹 보컬에 이어 반복되어지고, 리드 싱어의 보컬뒤에 나머지 세명 멤버들의 보컬이 오버더빙되어 있다.
13. 가사는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곡의 제목 Roundabout은 영국에서는 회전목마라는 뜻으로 통용되지만, 여기에서의 뜻은 운전자가 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잇는 로터리, 교차로(Traffic Circle)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참고한다면 보다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14. 이 곡은 앞 부분과 마찬가지로 기타 솔로 파트의 반복으로 녹음이 끝난다. 이러한 방법은 Classic작곡가 자신의 작품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 앞부분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재도입, 반복으로 끝을 맺는 형식과 같다.

Pictures At An Exhibrtion Promenad And The Gnomes

M.Mussorgsky
ZZZZZZZ_.jpg1. 연주자에 따라서 약간 다르게 박자가 설정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Classic Pianist는 keith Emerson의 Organ보다 약간 빠른 박자로 연주한다. 아마도 피아노 측이 오르간만큼 지속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 Mussorgsky는 종종 복잡한 박자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Promenade는 하나에서 또다른 하나로 변하는 5와 6박자의 패턴을 기본으로 하고 잇으나, 듣는 사람들이 뚜렷히 구별할 수 있는 패턴은 아니다
3. Gnomes(땅의 요정들 : 작은 도깨비들)의 임무는 지하세계를 지키는 것으로 원작은 이러한 Gnomes라는 존재를 음악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4. 솔로 피아노만 사용되었다.
5. The Gnomes는 두 개의 선율로 끝을 맺는데 피아니스트의 한손은 바르게 또 다른 손은 역 방향으로 진행된다.
6. 본래 Pictures At An Exhibition은 Solo Piano용으로 작곡 되었다.
Emerson Lake & Palmer
1. Promenad의 기본 박자는 분당 96박자며, 마치 거대한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과 같은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러한 파이프 오르간 효과는 전자(Electronic)적인 것이다.
2. keith Emerson은 작곡가의 의도대로 충실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다. 단, 오르간과 베이스라인에 페달을 첨가한 부분은 그가 임의대로 형식을 고친 것이다. 그는 Rubato(속도를 점차적으로 서서히 줄이거나, 스피드를 내는 것)를 매우 많이 사용하고 있다.
3. Carl Palmer는 원작을 자신의 스타일로 맞게 적적히 편곡하고 있다. 때로는 새로운 요소를 첨가하거나, 확장시켰다.
4. 수많은 타악기들과 효과음 그리고 Fuzztone Bass등이 사용되었다.
5. keith Emerson은 두 개의 선율중 높은 선율만 연주한다.
6. EL&P가 편곡했던 The Promenade와 The Cnomes은 연주곡이었는데, 나중에 보컬파트가 첨가되었다.

Money / Pink Floyd
ELPpicts.jpg1. 박자는 분당 120비트이며 전체적으로 한 마디에 7박자(3박자 다음 4박자가 옴)로 되어 있으나, 연주파트의 한부분만이 이래적으로 한마디에 4박자로 되어 있다.
2. 이 곡은 낡은 금전등록기 소리와 동전소리를 효과음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효광므은 Bass의 등장과 함께 7박자 패턴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3. Bass가 자리를 잡은 후 곧바로 드럼파트가 등장하며, 7박자중 두 번째, 네 번째, 여섯 번째 박자에 액센트가 주어진다. Nick Mason의 이러한 연주법은 기존의 Rock그룹들이 자주 사용했던 4박자중 두 번째와 네 번째 박자에 액센트를 주었다. 방법과 크게 다르다.7박자로 이루어져 있는 이 곡에서 액센트는 4박자 형태처럼 취급되고 있다. 즉, 첫 박자와 마지막 박자인 7번째 박자는 항상 액센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액센트가 주어지지 않은 박자끼리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4. 코드의 진행박싱은 하나의 Minor Key안에 12마디의 Blues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5. 두 개의 12마디 A버스(Verse)들은 키보드, 베이스, 드럼을 동반한 Funk 스타일의 테너 섹소폰 솔로를 담고 있는 12마디가 뒤따른다.
6. 섹소폰을 동반한 연주부분이 끝나면, 박자 패턴이 7박자에서 4박자로 바뀌고 솔로 연주파트로 24마디의 기타연주가 등장한다. 24마디의 기타연주는 각마디 마다 길이가 배가되며, 브루스 진행방법으로 전개된다.
7. 베이스부분은 곡 전체에서 7박자 패턴을 반복하고 있으며 연주부분에서만 4박자로 바뀌게 된다.
8. 보컬리스트가 A악절을 반복하기 직전까지 7박자 패턴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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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영국 ART ROCK의 역사 No.8 첨부 파일 (1)
마음풍경
2410 2009-01-31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8회 V. Progressive Rock의 형식 태고때부터 다른 예술과 달리 음악에 있어서 질서라는 것은 매우 중요시 여겨져 왔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음악론이 정립되기 시작했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악을 수적신비주의에 입각해서 수적질서로 연구해왔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질서에 대한 이념은 가장 기초적인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이념의 한계를 뛰어넘어, 중세시대에는 종교적으로 장엄하고 웅대해지고 또한 그에 상응하는 질서에 대한 이념을 갖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중세적 전통을 벗어 던지고 그리스 시대로부터 비롯되었던 음악의 수적질서를 또다시 거론하게 되었다. 종교와 함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중세시대의 음악은 중세인들이 말했던 것처럼 Splendor Ordinis!.. 즉, 아름다움이란 “훌륭하고 빛나는 질서에 의해 창조된다는 것”을 입증시켰다. 물론, 이러한 질서는 음악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인 형식에 의해서 결정되어지게 된다. 그러나 엄격한 형식에 의해서 창작되었던 기존 음악과는 달리 이러한 형식을 파괴하려는 양상이 현대 전위 음악가들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되었다. Sonata 우리가 다루려하고 있는 Progressive Rock에 있어서의 형식이란 그렇게 중요치 않게 여겨질수 있다. 이유로 Progressive Rock은 민속음악으로부터 전위음악에 이르기가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음악들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Progressive Rock은 특정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기존의 음악 형식중 그 일부분만을 수용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변형시킨 상태로 도입하기 때문에 하나의 형식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을 구조적으로 심층 분석한다면 그것이 지향하고 있는 전형적인 형식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즉, 지난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6회에서 언급했었던 것처럼 Progressive Rock은 Symphony를 모티브로 탄생했기 때문에 Symphony의 부리로써 Sonata 형식과 관련된 여러 형식들을 Sample로써 발췌할 수 있다. 이러한 Sample들과 함께 우리는 어느정도 Progressive rock의 대표적인 형식의 윤곽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Sonata는 17세기 이태리 악보들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어이다. “소리를 내다(Suonare)"라는 이태리어에서 파생된 이 음악적 용어 역시 모호한 뜻을 지니고 있어 17세기 초엽에는 다른 용어들과 혼용되어 사용되어 왔으며 Sinfornia라는 용어처럼 Opera의 기악 서주부분이나 간주곡을 가르키는 용어였다. 그후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 그리고 Trio Sonata등으로 발전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Alessandro Scarlatti의 아들 Domenico Scarlatti(1685~1788)와 J.S.Bach의 세 번째 아들 Carl Philipp Emanuel Bach(1714~1788)에 의해서 정립된 Sonata는 Haydn, Mozart, Beethoven에 의해서 커다란 결실을 맺게 되었다. Haydn과 Mozart의 소나타는 보통 Allegro-Andante-Allegro의 3악장으로 이루어졌고 Beethoven은 3악장으로 미뉴엣(후에 Scherzo)을 소개한다. 소나타의 제 1악장은 주제의 제시부(Exposition)이며, 2악장은 제시부의 테마를 새로운 모양이나 조합으로 발전시키는 전개부(Development)이다. 그리고 3악장은 제시부가 본래의 순서대로 도다시 도입되기도 하지만 으뜸음으로 모든 테마가 연주되는 재현부이다. 그렇다면 Progressive Rock에서 이러한 소나타형식을 찾을 수 있는가? 물론, 쉽게 찾을 수 있다. 영국 뮤지션들로는 Keith Emerson, Mike Oldfield의 초창기 작품들을 비롯하여 최근 국내 최초의 Progressive Rock앨범으로 선보인 조윤의 Mobius Strip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양식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의 대표적인 형식에는 가장 안정된 소나타형식 뿐만 아니라 4악장 또는 3, 4악장으로 나누어지는 Symphony, 그리고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가지 악장들로 나우어져 있는 Suite(조곡)형태의 작품들도 찾아 볼 수 있다. 아마도 Symphony를 모르는 독자는 한명도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 고전 음악 시간에 반드시 공부하고 넘어가야될 중요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 Symphony가 Progressive Rock에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라면 그것의 고유 형식보다는, 여러 악기들의 도입과 웅장한 스케일의 오케스트레이션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Progressive rock그룹들과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스어원으로는 “소리들을 한데 모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Symphony는 17,18세기 Opera의 서곡을 의미하는 이태리어 Sinfonia로 비롯되엇으며, Orchestra를 위한 소나타를 일컫기도 했다. 원래 오페라의 서곡을 위해 쓰여졌으며 “빠르게-느리게-빠르게” 형태의 짧은 3qqnns이나 3악장으로 되어 있었다. 그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 의해서 규모가 크게 원숙한 4악장으로 이루어진 Symphony들이 작곡된다. Ekpseption, Trace를 비롯하여 Coda와 같은 수많은 Progressive Rock그룹들을 배출시켰던 네델란드에서는 Progressive Rock을 Symphnic Rock으로 지칭햇을 정도로, 그 만큼 Classic을 바탕으로 활동했었던 팀들이 많았다. 전세계적으로 Progressive Rock그룹들을 형성하고 있는 뮤지션들의 대부분이 Classic을 전공했었기 때문에 그들이 과거에 배웠던 순수 예술중 가장 웅장하고 종합적인 음악의 형태인 Symphony가 결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형적인 Symphnic Sound를 들려주었던 대표적인 영국 그룹으로는 The Enid는 있다. The Enid는 그들의 두 번째 앨범 “Aerie Faerie Nonsense”에서 소규모 5악장으로 구성된 Fand와 앨범 The Spell에서는 사계를 다룬 4악장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Symphony를 들려준다. 그후 이들은 Live활동을 통하여 보다 Classic에 가까운 Symphonic Rock을 선보였다. Suite 우리들은 Progressive Rock앨범들을 소개하고 있는 해설속에서 “조곡형식”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물론, Pop과 Semi-Classic, Rock 그리고 Jazz에 이르기까지 Suite라는 Classic적용어를 사용한 Greateful Dead의 Weater Report Suite로부터 Styx의 Suite madam Blue에 이르기까지... 수백개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Progressive Rock에 있어선느 Refugee의 Grand Canyon Suite을 비롯하여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곡형태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데, 특히 Italian Progressive Rock 작품들중에 이러한 “조곡”형태의 작품들이 많았다. Latte E Miele의 Passio Secundum Mattheum과 Il Balletto Di Bronzo의 YS그리고 Museo Rosenbach의 Zarathustra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Latte E Miele의 Papillon의 경우 Side 1은 주제테마에 의한 조곡형태를 취하고 있고, Side 2는 소나타 형식의 비창을 담고 있어 조곡과 소나타를 동시에 소개하고 있는 독특한 앨범이었다. Suite에 대해서는 다음 13호 지면에서 다루게 될 “VI. Progressive rock의 내용”dptj 보다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Concerto Progressive Rock작품들중에서 특히 바이올린이 강조된 곡들을 대부분 Concerto형식을 따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오케스트라를 동반하는 Concerto는 하나의 솔로 악기파트를 강조하는데, 그중 대부분이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바이올린, 첼로, 플륫 독주 뿐만 아니라 보컬과 함께 현대악기들로 대체될 수 있었다. Deep Puple의 Concerto fo Group And Orchestra로부터 이태리 그룹 New Trolls의 Concerto Grosso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Concerto를 찾아 볼 수 있으며, Bach의 Brandenburg협주곡과 비발디의 협주곡들을 Art Rock그룹들이 즐겨 연주했다는 것만으로도 Concerto형식의 비중을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Art Rock의 형식 1990년 Mt. San Antonio 단과대학의 Katherine Charlton은 그녀의 저서 “Rock Music Styles... A History(Wm.C.Brown Publushers)"에서 Rock을 각 장르별로 형식에 의하여 분류한 바 있다. 놀랍게도 그중에 ”Art Rock의 형식(PP.205~219)"을 다루고 있는데, 이 분야에 비전문가인 그녀의 분류방법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으나, 어느정도 객관성을 지니고 있어 이번 지면의 참고자료로 선택하게 되었다. 그녀의 글을 끝부분인 요약부분에서 Art Rock을 “Art” 또는 ”Classic Music"의 형식과 특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운다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Art Rock형식의 대표적인 샘플로 Moo요 Blues의 Nights In White Satin과 Yes의 Roundabout, Emerson Lake & Palmer의 Pictures at an Exhibition 그리고 Pink Floyd의 Money를 선정하고 있다. Night In White Satin / Moody Blues 1. 기본 리듬은 분당 52박자이며, 각 마디마디 4개의 비트를 갖는다. 그리고 각각으 비트는 세계의 동일 파트로 나누어져 있으며 12/8박자로 되어있다. 2. 두 개의 마디로된 Intro부분은 비트패턴의 주도하게되는 드럼파트가 등장하기 직전까지 String, Flute, Harp, Chimes등으로 어지럽게 시작된다. 3. 드럼파트는 녹음된 전 부분에서 매우 강하고 명쾌한 Backbeat(Rock의 전형적인 강한 비트)로 지속되지만 마지막 오케스트라 Final부분을 위해 사라진다. 4. 오케스트라와 Rock악기들을 동반하면서 솔로 싱어(Justine Hayward)는 네 마디 멜로디(악절 A)에 걸쳐 두차례 노래를 부르며, 그 멜로디는 에올리아 선법(Aeolian Mode-A부터 A까지의 자연적인 음표)을 기초로 하고 있다. 5. 오케스트라는 악절 B의 4마디에 걸쳐 점점 웅장해진다. 6. 12마디의 연주 악절에 이어 등장하는 또다른 두 개의 A 악절들과 하나의 연장된 마디를 지닌 하나의 B악절에선느 Flute과 Acoustic Guitar 그리고 Rock Drummer의 Rock특유의 강한비트가 강조되고 있다. 7. 또한번 반복되는 두 개의 A악절과 하나의 B악절에 연주로 된 간주곡이 등장한다. Roundabout / Yes 1. 기본리듬은 분당 135박자이며, 각 A악절마다 다양한 박자형태를 지니고 있음에도 각 마디마다 4개의 비트를 갖는다. 2. 미리 녹음된 테이프를 거꾸로 돌린 음향으로 크레센도 악절(Crecendo)로 시작된다. 3. 그 테이프 사운드는 자유스러운 박자의 멜로디로 전개되는 클래식적으로 영향받은 Acoustic Guitar연주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4. 도입부의 끝부분에서, 기타연주는 노래의 박자를 자리잡게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매우 강력한 베이스와 드럼파트는 8마디의 즉흥반주를 동반한다. 즉흥연주 패턴은 보컬라인의 앞부분까지 지속된다. 5. 가사의 첫 번째 행은 음악의 A악절까지 노래되고 있으며 나이것은 10개의 4박자 길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박자 패턴은 첫 번째 행과 마지막 행의 두박자로써 변형된다. 6. 두 개의 A악절이 끝난 후 등장하는 B악절은 2박자에서 4박자로 또다시 바뀌면서 박자 패턴으로서는 복잡하게 변칙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7. 드럼파트는 강한 Rock비트로 지속되면서 두박자와 네박자의 패턴을 고수한다. 8. 또하나의 A악절과 B악절후에, 하나의 연주파트가 등장하는데, Bass Riff와 Synthesizer와 많은 타악기 효과를 수반하고 있다. 9. 또다시 A테마와 보컬라인이 등장햇을 때, Synthesizer파트는 Phillip Glass와 같은 작고가들, 현대 음악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반복적인 연주 패턴으로 연주된다. 10. Synthesizer의 연주 패턴은 도입부에서 주제 테마를 연주했던 Acoustic Guitar파트를 뒤쫓는다. 11. Guitar와 Bass 그리고 매우 강렬한 Drum을 배경으로 즉흥적인 오르간 연주가 A악절로 이어진다. 12. A악절과 B악절이 그룹 보컬에 이어 반복되어지고, 리드 싱어의 보컬뒤에 나머지 세명 멤버들의 보컬이 오버더빙되어 있다. 13. 가사는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곡의 제목 Roundabout은 영국에서는 회전목마라는 뜻으로 통용되지만, 여기에서의 뜻은 운전자가 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잇는 로터리, 교차로(Traffic Circle)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참고한다면 보다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14. 이 곡은 앞 부분과 마찬가지로 기타 솔로 파트의 반복으로 녹음이 끝난다. 이러한 방법은 Classic작곡가 자신의 작품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 앞부분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재도입, 반복으로 끝을 맺는 형식과 같다. Pictures At An Exhibrtion Promenad And The Gnomes M.Mussorgsky 1. 연주자에 따라서 약간 다르게 박자가 설정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Classic Pianist는 keith Emerson의 Organ보다 약간 빠른 박자로 연주한다. 아마도 피아노 측이 오르간만큼 지속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 Mussorgsky는 종종 복잡한 박자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Promenade는 하나에서 또다른 하나로 변하는 5와 6박자의 패턴을 기본으로 하고 잇으나, 듣는 사람들이 뚜렷히 구별할 수 있는 패턴은 아니다 3. Gnomes(땅의 요정들 : 작은 도깨비들)의 임무는 지하세계를 지키는 것으로 원작은 이러한 Gnomes라는 존재를 음악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4. 솔로 피아노만 사용되었다. 5. The Gnomes는 두 개의 선율로 끝을 맺는데 피아니스트의 한손은 바르게 또 다른 손은 역 방향으로 진행된다. 6. 본래 Pictures At An Exhibition은 Solo Piano용으로 작곡 되었다. Emerson Lake & Palmer 1. Promenad의 기본 박자는 분당 96박자며, 마치 거대한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과 같은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러한 파이프 오르간 효과는 전자(Electronic)적인 것이다. 2. keith Emerson은 작곡가의 의도대로 충실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다. 단, 오르간과 베이스라인에 페달을 첨가한 부분은 그가 임의대로 형식을 고친 것이다. 그는 Rubato(속도를 점차적으로 서서히 줄이거나, 스피드를 내는 것)를 매우 많이 사용하고 있다. 3. Carl Palmer는 원작을 자신의 스타일로 맞게 적적히 편곡하고 있다. 때로는 새로운 요소를 첨가하거나, 확장시켰다. 4. 수많은 타악기들과 효과음 그리고 Fuzztone Bass등이 사용되었다. 5. keith Emerson은 두 개의 선율중 높은 선율만 연주한다. 6. EL&P가 편곡했던 The Promenade와 The Cnomes은 연주곡이었는데, 나중에 보컬파트가 첨가되었다. Money / Pink Floyd 1. 박자는 분당 120비트이며 전체적으로 한 마디에 7박자(3박자 다음 4박자가 옴)로 되어 있으나, 연주파트의 한부분만이 이래적으로 한마디에 4박자로 되어 있다. 2. 이 곡은 낡은 금전등록기 소리와 동전소리를 효과음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효광므은 Bass의 등장과 함께 7박자 패턴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3. Bass가 자리를 잡은 후 곧바로 드럼파트가 등장하며, 7박자중 두 번째, 네 번째, 여섯 번째 박자에 액센트가 주어진다. Nick Mason의 이러한 연주법은 기존의 Rock그룹들이 자주 사용했던 4박자중 두 번째와 네 번째 박자에 액센트를 주었다. 방법과 크게 다르다.7박자로 이루어져 있는 이 곡에서 액센트는 4박자 형태처럼 취급되고 있다. 즉, 첫 박자와 마지막 박자인 7번째 박자는 항상 액센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액센트가 주어지지 않은 박자끼리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4. 코드의 진행박싱은 하나의 Minor Key안에 12마디의 Blues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5. 두 개의 12마디 A버스(Verse)들은 키보드, 베이스, 드럼을 동반한 Funk 스타일의 테너 섹소폰 솔로를 담고 있는 12마디가 뒤따른다. 6. 섹소폰을 동반한 연주부분이 끝나면, 박자 패턴이 7박자에서 4박자로 바뀌고 솔로 연주파트로 24마디의 기타연주가 등장한다. 24마디의 기타연주는 각마디 마다 길이가 배가되며, 브루스 진행방법으로 전개된다. 7. 베이스부분은 곡 전체에서 7박자 패턴을 반복하고 있으며 연주부분에서만 4박자로 바뀌게 된다. 8. 보컬리스트가 A악절을 반복하기 직전까지 7박자 패턴으로 돌아온다.
14 영국 ART ROCK의 역사 No.6 첨부 파일 (44)
마음풍경
2863 2009-01-30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6회 Progressive Rock 2부 3. 가장 성공한 Progressive Rock그룹 Pink Floyd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은 Moody Blues 그리고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 앨범은 King Crimson의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이라고 위에서 조심스럽게 언급했으나 그러한 서술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Pink Floyd 때문이다. Progressive Rock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라고 묻게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Pink Floyd의 음악을 거론한다. 즉, 우리들의 잠재 의식속에 Progressive Rock=Pink Floyd라는 공식이 성립되어있을 정도로 Pink Floyd는 Progressive Rock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동원 및 음반 판매 수치상으로도 Pink Floyd는 단연코 이 분야의 최고이다. 200여종이 넘는 해적음반의 비공식 판매고를 제외하고도 공식적으로 “Dark Side Of The Moon"은 2,500만장 이상을 ”The Wall"은 1,700만장 이상을, “Wish You Were Here"은 천만장 이상의 천문학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시완레코드가 타이틀당 500매를 발매하고도 판매부진으로 쩔쩔매는 것을 보면 Pink Floyd의 천만단위의 앨범판매량은 상상할 수도 없는 천문학적 수치이다. 실질적으로 Pink Floyd의 덕택으로 Progressive Rock이라는 용어가 대중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적어도 4~5천만명 이상이 Pink Floyd의 팬이며 그중의 대부분이 Progressive Rock이란느 용어를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a. Pink Floyd의 첫 번째 Progressive Rock작품 Pink Floyd가 Progressive Rock그룹으로 출발한 것은 두 번째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부터라고 할수 있다. 초기리더 Syd Barrett이 주도했던 데뷔앨범은 확실히 Psychedelic지향의 작품이었고 Syd Barrett이 신경쇠약으로 그룹을 등지지만 않았더라도 두 번째 앨범 역시 Psychedelic앨범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A Saucerful Of Secrets"에서도 Syd Barrett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앨범 끝곡으로 “Jugband Blues"라는 그의 작품이 담겨 있으며 이곡의 마지막 가사는 Syd는 ”And What Exactly Is A Joke?"라는 달콤한 목소리를 남겼다. 또한 본래 데뷔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Rick Wright의 이런시절 향수를 담은 “Remember Day"라는 곡에서는 자극적인 그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며 Roger Water의 장난끼 넘치는 ”Corporal Clegg"에서는 다소 광적인 Syd의 기타장식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의 영향력은 V.D.G.G.의 Peter Hammill과 Rolling Stones의 Mick Jagger와 다를 바가 없었다. Syd가 그룹을 떠난후에도 오랜기간 동안 Pink Floyd의 잔여멤버들은 메스컴과 초창기 팬들이 만들어 놓은 Syd의 신화적인 이야기들과 우상화 작업의 그늘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러한 Syd의 그늘은 Roger Water가 그룹의 리더로 부상하기 시작하는 Animals앨범 이전까지 무려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계속되었다. b. A Saucerful Of Secrets 1968년 6월 29일에 발매된 Pink Floyd의 두 번째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은 Pink Floyd의 역사상 유일하게 5인조 형태로 제작된 과도기적인 작품이다. 물론, Pink Floyd의 전신그룹 Architectural Abdabs(1965년)는 당시 Bob Close를 포함 5인조로 활동한 바 있었다. 본작은 Syd Barrett의 그룹 탈퇴와 David Gilmour의 그룹 참가라는 싸인곡선과 코싸인곡선이 맞물려 있는 사각지대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다. 즉, 새로운 멤버 David Gilmour가 작곡, 리드했던 Pink Floyd의 완벽한 Progressive 대곡인 타이틀 트랙 ‘A Saucerful Of Secrets'와 그룹을 떠난 불운의 리더 Syd Barrett의 짧고 평범한 넘버 ’Jugband Blues'가 크게 대조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 앨범이다. 두곡 길이의 비례는 4:1이며 두곡의 거리는 4분 40초(See Saw)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본작은 Pink Floyd와 함께 여러팀의 음악을 삽입했던 사운드 트랙앨범 ”Zabriskie Point"처럼 한마디로 불균형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A Saucerful Of Secrets"는 원래 ”The Massed Gadgets Of Hercules"라는 제목으로 David Gilmour에 의해서 독자적으로 작곡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곡의 크레딧에는 Pink Floyd 전멤버들의 공동작으로 잘못(?)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David Gilmour가 그룹의 새로운 멤버로 참여하면서 멤버들에 대해 예의를 나타낸 것이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하나의 선심이었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아부였던 것이다. “A Saucerful Of Secrets"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부에 전개되는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Meddle"의 ‘Echoes'와 맥을 잇는다. 이 부분은 긴장감과 공포감의 사운드로 전쟁의 시작을 표현하고 있다. 전쟁의 진행상황을 의미하는 Nick Mason의 토속적인 드러밍이 끝나고 잠시 등장하는 폭음은 “The Dark Side Of The Moon"까지 이어지는 Pink Floyd의 미묘한 사운드이다. 이부분부터 서서히 진혼곡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Rick Wright의 신비로운 오르간 연주와 멤버들의 Scat파트는 프로젝트그룹 Galactic Supermarket이나 Gila등 독일그룹들이 모방하는 주요테마가 되기도 했다. 본작의 녹음을 위하여 제작자인 Norman Smith가 Pink Floyd멤버들을 이끌고 들어간 스튜디오는 EMI의 제3스튜디오였는데, 당시 첨단의 장비를 구비하고 있던 제2스튜디오는 Beatles가 사용하고 있는중이었다. Norman Smith는 스튜디오 사용법을 Pink Floyd멤버들에게 가르쳐주었고 대부분의 곡들이 녹음되는 동안 제작자로써 여러 가지 간섭을 하려했다. 결국, 그는 제작자로써의 한계를 드러내기 싲가했는데 바로 David Gimour의 작품 ‘A Saucerful Of Secrets’에 관해서는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했었다. “이 곡은 쓰레기 같아... 그러나 당신들이 원한다면 계속 해보라고...!”라고 Norman Smith는 투덜거렸고 이때부터 Pink Floyd멤버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Hurricane이라는 별명을 가진 Norman Smith는 정석만을 고집하는 프로듀서로써 진취적인 Pink Floyd멤버들과의 마찰이 심했다. 특히, David Gilmour와는 여러차례 충돌을 야기시켰다. 모든 녹음이 끝나고 스튜디오를 나왔을 때 Pink Floyd 멤버들은 이미 그의 스튜디오 선생인 Norman Smith의 제작 실력을 초월하고 있었다. 아무튼 발매된 본작의 앨범커버위에는 제작자 이름으로 Norman Smith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잘못된 “거짓” 크레딧이었다.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에는 타이틀곡이외에서 주목할만한 Progressive Rock넘버가 잇는데 바로 Roger Waters의 작품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이다. SF Sound와 Fantasy 그리고 Psychedelic요소까지 함축하고 있는 이곡은 Roger Waters가 Pink Floyd의 초창기 우주적 이미지를 보다 구체화 시킨 작품이다. 한때 Syd Barrett의 Guitar Work이 담겨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로 데뷔앨범의 우우적인 이미지 (Astronomy Domine와 Interstellar overdrive)와 Psychedelic요소를 그대로 계승한 작품이다. Roger Waters는 William S. Burroughs의 소설에서 곡제목을 얻었으며 그의 속삭임과 읊조리는 보컬은 중국의 시조를 읊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게되었다. 이 곡은 Pink Floyd의 두 번째 앨범에서 타이틀 곡만큼이나 신비롭게 들리는 제 2의 Progressive Rock넘버이다. IV. Progressive Rock그룹의 유형 1. Progressive rock의 종류 우리는 앨범뒷면 또는 커버안쪽에 담겨있는 크레딧(Credit)만을 보고도 그 그룹이 어떠한 부류의 음악을 행하는 그룹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아티스트의 이름이 생소할 경우 우리는 각 아티스트들의 악기구성을 보고 이 그룹이 Progressive Rock그룹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 예로, 생소한 그룹명과 아티스트일지라도 악기편성이 키보드류의 악기나 주를 이루고 있을 때 그 앨범이 Progressive Rock앨범일 확률은 90%이상이다. 그 이유는 Progressive Rock의 가장 중요한 대표적인 악기가 Keyboard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수의 멤버가 키보드류를 다루고 있다든지 그중에 Mellotron이라는 창치가 포함되어 있다면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또한 각각의 아티스트들이 여러 가지의 악기를 다루고 있다면 Progressive Rock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Progressive Rock아티스트들은 여러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나아가서 우리는 악기구성만을 보고도 Progressive Rock중에서도 그 그룹이 어떠한 성격을 지닌 그룹인지 예측할 수 있다. 즉, 악기편성만으로도 그 그룹이 Symphonic Rock그룹인지, 아니면 Chamber Rock계열인지, 아니면 Folk 또는 Jazz Rock을 행하는 그룹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지난호에서 Progressive Rock의 유형에 대해서 잠시 언급했었지만 Progressive Rock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1984년, 월간팝송이라는 음악지의 특집 “Progressive Rock 그 신비를 벗긴다!(이 제목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잡지사측에서 타이틀을 붙였다)”에 필자는 Progressive Rock의 유형에 대하여 도표와 함께 간략한 분석을 한 바 있다. 당시 필자는 Progressive Rock의 유형을, 첫째 Classic을 모티브로한 Classic(Symphonic) Rock, 둘째 Modern Jazz를 모티브한 (Free)Jazz Progressive Rock, 그리고 이 두 개의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는 세 번째 그룹들 이렇게 크게 세 개의 유형으로 분류했었다. 그 당시에는 New Trolls등 이태리 그룹들을 대표적인 예로서 제시하고 있었으나 이 지면에서는 영국 그룹들을 중심으로 그 유형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Progressive Rock의 유형은 크게 7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Classic을 모티브로한 Classic(Symphonic) Rock, Modern(Free) Jazz를 모티브로한 Jazz Progressive Rock, 민속음악-세속음악을 모티브로한 Progressive Rock, 실내악이나 전위음악을 행하는 Chamber 또는 Avant Garde Rock(독일의 경우는 전자음악을 주로하는 Electronics계의 음악을 포함한다), Hard Rock과 Psychedelic에 가까운 Heavy(Hard) Progressive Rock과 우주를 테마로한 SF식의 Space Rock 그리고 컨츄리풍에 혁신적인 악기나 사회적인 내용을 불어넣은 Progressive Country등이 있다. 이외에도 이들 일곱 부류의 요소들중 두 서너개의 특성을 함축하고 있는 그룹들도 있으며 때로는 위의 기준을 분류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그룹들도 있다. 7개의 부류와 함께 위의 도표에는 Soul에 스트링을 도입한 영국의 Soul그룹 Hot Chocolate을 Progressive Soul그룹으로 분류해 놓았다. Progressive Soul에 대해서는 지난호에 잠시 언급이 있었지만, Hot Chocolate을 그 예로 든 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여러분들에게 스트링과 보컬의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Hot Chocolate의 곡들 ‘Put Your Love In Me'와 ’A Child's Player'을 Progressive Soul로 추천해 본다. 이와같이 Progressive Rock그룹들을 음악의 형태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은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대부분의 그룹들이 시대적 상황과 음악적 조류 그리고 멤버의 교체등등 여러 가지 변화를 거치면서 음악적 방향을 수정해 왔기 때문이다.(우리는 후기 Yes나, 후기 Genesis 그리고 후기 Renaissance의 음악을 Progressive Rock이라고 부를 수 없다). 또한 한아티스트 또는 한 그룹의 일개 앨범속에서도 여러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류작업은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것이다. 따라서 이 지면에서 다루고 있는 분류작업은 한정되어 있으며,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a. Classic(Symphonic) Rock : Progressive Rock이 Classic의 Symphony를 모티브로 창안된 것처럼 Progressive Rock의 유형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대부분의 Progressive Rock글부들이 이부류에 속한다. 연주시간은 대체적으로 길며 내용은 대부분 주제일치의 Concept형식과 조곡형태로 되어 있다. Orchestra를 동반하기도 하며, 클래식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악기들이 도입된다. 주요악기는 키보드류와 현악기(스트링)이다. 때때로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과 코러스를 사용하며,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Synthesizer를 이용하거나 그 이외의 효과으을 통해 장엄함과 웅장함을 표현한다.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본호의 Super Group으로 소개되고 있는 The Enid이다. 또한 Renaissance의 초중반기 작품들과 Rick Wakeman의 초창기 솔로앨범들, 특히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The Myths & Legends of King Arthur..."과 같은 앨범은 전형적인 Symphonic Rock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부류에 속하는 아티스트들은 정통 클래식 수업을 받은 에술학교 출신들이 대부분이며 학창시절에 배웠던 순수예술을 Rock과 융합시키는 시도를 행했다. 또한 기존의 클래식 작품들을 Rock의 형태로 편곡 또는 변형시켜 즐겨 연주한다. b. Jazz Progressive Rock : 1983년에 발간되었던 Underground Papyrus no. 8의 British Jazz Rock계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Jazz Progressive Rock이라는 구역은 아래의 "d. Heavy(Hard-Psyche)Progressive Rock"과 함께 Progressive Rock의 범주속으로 끌어넣는데 많은 혼란을 야기시키는 영역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이 구역에서 활동했던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1960년대 중반까지 Blues Rock을 행했었던 뮤지션들로써 1960년대말 Fusion Jazz나 Free Jazz의 영향으로 Rock의 영토까지 넘겨다 보는, Progressive Rock과 Jazz Rock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뮤지션들이었다. 이태리의 경우에는 Classic(Symphonic) Rock과 Jazz Progressive Rock그룹들은 멤버 및 악기 편성에 있어서도 다른 Progressive영역보다도 구성원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Saxophone, Flute 그리고 Trumpet등의 Wind, Brass류 악기들과 Conga드럼등 다양한 타악기들을 주로 사용하여 자극적이고 템포가 빠른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기존 Blues와 Jazz위에 매우 날카롭게 강렬한 사운드를 입혔으며 음역도 크게 확장시켰다. Jazz Progressive Rock은 성격상 Blues와 Jazz 보다는 Rock에 더 가까운 편이다. 일반적으로 Brass Rock그룹으로 일컬어지는 Brainchild나 Aquila 그리고 Walrus등은 Jazz Progressive Rock 범주보다는 Heavy(Hard-Psyche) Progressive Rock으로 분류한다.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Ian Carr의 Nucleus, John Surman의 The Trio, 두명의 Saxophone주자를 내세웠던 If, Manfred Mann Chapter III와 최대의 프로젝트 팀 Centipede등이 있다. c. Chamber 또는 Avant Garde Rock : Chamber Rock에 대해서는 AR no.6에서 한차례 다루었고 이와 관계된 Canterbury Music에 대해서는 AR no.8부터 연재 되고 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Chamber Rock은 Chamber Music, 즉 하나의 클래식 연주형태 “실내악”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소규모의 클래식 현악기와 관악기가 Rock에 도입된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Chamber Rock은 클래식 악기들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형태는 클래식을 파괴하는, 비클래식의 형태로 진행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위의 a. Classic(Symphonic) Rock 그룹들이 즐겨 행했던 고전음악의 파괴를 선언한 현대음악과 Rock의 합성을 의미한다. 화성, 대위법에 의한 조화를 이루는 정통적인 작품구성이 아니라 불협화음이나 변칙박자 그리고 인위적인 소리를 섞어놓은 앙상블위주의 연주형태를 말한다. 영국의 경우 Henry Cow를 비롯한 Canterbury계열의 그룹들과 뮤지션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중에는 Jazz Progressive Rock 계열과도 깊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룹도 있다. (예 : Soft Machine) d. Prgressive Folk Rock : Traditional Folk, Modern Folk, 그리고 Elecric Folk(Folk Rock)등등 Folk라는 단어의 앞뒤에 여러단어들이 붙어서 음악의 조류와 시간의 흐름을 갈라 놓는다. 여기에 Progressive Folk Rock 이란느 것까지 덧붙이면 Folk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마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그 동안 제작자들, 뮤지션들, 평론가들 그리고 청중들이 무수히 많은 음악 장르(?)들을 만들어 내었다. 점점 세분화되어 가고 있는 학문(들어보지도 못했던 학파들이 대학에 개설되고 있는 것)처럼 음악의 경우도 새롱누 장르가 탄생되고 기존의 장르가 세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Folk Music의 경우 일반적인 민속음악의 총칭으로 지칭된 후 Pete Seeger나 Woody Guthrie의 등장과 함께 사상적인 의미를 담게되면서 Mordern Folk으로 불리워졌고, 그 다음 세대인 Bob Dylan이 1965년부터 Folk Music의 표준악기인 통기타대신 Electric Guitar를 들고나와 기존 팬들에게 쇼크를 주면서부터 Folk Rock(Electric Folk)이라는 새로운 용오가 사용됙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1970년대 이전에 일어났었던 미국 Folk의 이야기이다. 영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그 외 다른 유럽국가들의 경우 Folk Music의 역사는 짧은 미국의 역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깊다. 영국의 음악평론가들은 그들의 오래된 Folk Rock을 승화시켰던 Spirogyra등에게 Progressive Folk Rock이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물론 Cello, Harmonium과 Violindmf 도입한 Fuchsia의 음악 역시 Progressive Folk이다. e. Heavy(Hard-Psyche) Progressive Rock : 지금까지 수많은 Psychedelic, Hard Rock, Heavy Metal 그룹들의 강렬한 음악들을 접해 오면서 그속에 잠재해 있는 여러 Progressive Rock의 요소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Hard Rock그룹 Deep Purple의 초창기 앨범들 Uriah Heep의 앨범들 속에서 우리는 많은 양의 양질의 Progressive Rock을 접하게 된다 간단한 예로 Deep Purple의 ‘April'이나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그리고 Uriah Heep의 ‘July Morning'이나 ’Magician's Birthday', 'Return To Fantasy'등을 Progressive Rock이라고 부르는데 필자는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많은 Hard Rock그룹들이 초창기에는 Progressive Rock과 Hard Rock을 병행하여 연주한 것이 사실이다. 독일의 Scorpions도 데뷔당시 Progressive Rock그룹으로 출발했었다. 이렇게 우리들 머릿속 깊숙이 Hard Rock, Heavy Metal Band로 인식되었던 많은 그룹들이 Progressive Rock을 행했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고정관념속에 Progressive Rock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많은 그룹들이 역이로 Hard Rock이나 Heavy Metal성의 강렬한 연주를 그들의 작품속에 담고 있다. Aardvark, Arc, Arcadium, Gracious, Gravy Train, High Tide등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뛰어난 Hard Rock을 들려준다. 여기에 Progressive Rock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Psychedelic Rock 그룹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영국 ART ROCK의 역사 3~4’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했기 때문에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f. Space rock : 물론, 이 분야에 있어서는 독일이 단연 으뜸이다. Space Rock에 있어서 Brain레이블과 Kosmische Musik레이블만으로도 독일은 양적으로 전유럽을 제압할 수 있었다. 독일이 이 시장을 점령하기 몇 년전부터 이미 영국에서는 Space Rock의 용트림이 있었다. 바로 Pink Floyd의 데뷔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이다. 그리고 Space Rock의 대명사로 알려진 Hawkwind가 등장한다. Hawkwind는 Space Rock그룹으로서 뿐만 아니라 Heavy Metal그룹으로서도 인기를 얻었던 Progressive Rock그룹이다. g. Progressive Country : 우리가 영국의 Folk Rock을 듣다보면 부분적으로 미국의 Country Music과 유사한 음악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의외로 영국 Folk Rock에는 이러한 Country요소를 지는 그룹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게 된다. Fire의 동화이야기를 듣고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시골의 컨츄리음악에 깜짝놀랐던 것처럼 말이다 Blue Grass그룹인 Strawbs도 영국적인 Country Music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색적인 Progressive Rock구룹이다. 키보드파트가 약했거나, 중반기에 Mellotron의 도입이 없었다면 이들은 평범한 Folk그룹이나 Country Group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이슈, 혁신적인 악기와 장치를 도입하여 Cuntry Music을 Country Progressive로 승화시켰던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그들이외에도 Dando Shaft등 Country Music을 내세운 Folk Rock그룹들이 눈에 많이 띤다. 2. Progressive Rock그룹의 멤버구성 Progressive Rock그룹의 멤버구성은 매우 다양하다. Mike Oldfield처럼 20여종의 악기를 다루며 더빙을 통해 홀로서기를 시도했던 뮤지션이 있었는가 하면 수십명의 아티스트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 그룹을 형성했던 Centipede(5명)나 Mandalaband등과 같은 그룹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Progressive Rock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멤버구성은 어떤 것일까? Progressive Rock의 진원지인 영국을 비롯하여 Progressive Rock의 초강대국들인 이태리와 독일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면 유난히 3인조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많았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이 이 분야에서 매우 두각을 나타냇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물론 4인조 5인조 그룹들도 많았지만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수 있는 최대공약수는 바로 정삼각형의 구조 3인조 형태였던 것이다. a. Trio그룹의 효시 1966년, Cream이라는 그룹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3인조 편성의 소규모그룹이 어떻게 그러한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4인조 그룹 Beatles를 모델로 적어도 4~5인조이상의 그룹만이 풍부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라는 고정관념은 Cream의 등장으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들 멤버 편성의 축소에 녹음기술, 악기의 발달등도 기여한 바가 크지만, 대중 음악인들의 연주력 향상 및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다중악기주자들의 출현도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 시켰으며 1970년대에 결국, Mike Oldfield의 등장까지 이르게 된다. 아무튼 한 연주자가 다양한 악기들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면서, 녹음, 믹싱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그 이전의 4~5인조 그룹형태의 그룹들의 작품보다도 더욱 정교하며 웅장한 사운드를 제작할 수 잇게 되었다. 이때부터 멤버들의 숫자를 헤아리며 사운드 스케일을 논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여러 음악관련 자료들로부터 “Early King Crimson 스타일”dlfkemswl "Yes 스타일“ 또는 ”EL&P type, style"이라는 간략한 해설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Early King Crimson Style이라는 해설은 Mellotron음향을 사용한 자굼들에 주로 적용되며, Yes 스타일이라 함은 Jon Anderson보컬을 흉내낸 1970년대의 많은 미국그룹들을 인용할 때 사용된다. 그리고 Nice, EL&P타입이라는 것은 키보드주자를 앞세운 베이스+보컬, 드럼+타악기 편성의 3인조 그룹을 일컫는다. 따라서 우리는 한줄의 간략한 해설만으로도 그 그룹의 성격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특히, EL&P형태의 멤버구성은 기존의 Rock그룹 편성과 매우 다른 것이다. 키보드를 으뜸음원으로하는 이러한 편성은 보다 클래식에 가까우며 1970년대중반까지 Progressive Rock의 가장 이상적인 편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우선 EL&P에 앞서서 3인조 Progressive Rock그룹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Nice에 대해서 잠시 언급해 보자. 이들에 관해서는 이미 Art Rock no. 7(EL&P)에서 다룬바 있지만 이지면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이들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창기 Nice는 3인조가 아니라 4인조 그룹으로 P.P. Arnold(Paticia Arnold)라는 미국 흑인 Soul 싱어의 Back Band로 결성되었는데, 실질적으로 Keith Emerson은 Back Band로의 출발에 대하여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P.P. Arnold역시 Ike&Tina Turner의 Backing Vocal팀인 Ikettes의 일원으로 영국으로 건너왔고 순회도중 Immediate레이블의 설립자 Andrew Loog Oldham의 권유로 영국에서 활동하게 된 신인이었다. Nice 또한 출발시점의 무명그룹이었으므로 Andrew Loog Oldham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결국 일게 Backing Group출신의 여성을 위한 Back그룹으로 나서게 되었다. 물론, 조건은 The Nice의 독립성을 인정받으며 무대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 앞에는 항상 P.P. Arnold라는 이름이 놓여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P.P. Arnold가 비자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가자 The Nice는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무대와 함께 데뷔작을 만들게 된다. 그들 데뷔작의 앨범명은 P.P. Arnold의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들의 심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잇으며 후에 Emerson Lake & Palmer의 결성을 예고하듯 그룹멤버들의 이름을 합성한 타이틀을 내세우게 된다. 그들의 이름들 즉, Emerson, O'List, Davison, Jackson을 조합시킨 “The Thoughts Of Emerlist Davjack"이 그들의 데뷔앨범 타이틀이 되었다. 이때부터 Keith Emerson은 그룹명과 앨범명에 대한 남다른 dokr을 자기게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앨범의 구상이 끝날 무렵 기타리스트였던 David O'List가 그룹을 떠나게되었고 The Nice는 첫 번째 위기를 맞게된다. 그의 탈퇴로 The Nice는 자연스럽게 트리오 그룹을 형성하게 되는데 사실, Keith Emerson은 강렬한 기타가 빠진 자신의 그룹에 대하여 부정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The Nice을 떠나 새로운 그룹을 구상할때도 항상 Lead Guitarist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이었는지 또하나의 트리오 그룹 Emerson Lake & Palmer를 이끌게 되었고 Brian Davison과 Lee Jackson 역시 후에 Refugee라는 트리오 그룹을 형성한다. 이러한 Nice, EL&P스타일의 트리오편성은 곧 영국뿐만 아니라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는데 영국에서는 Atomic Rooster, Jody Grind, Little Free Rock을 비롯 Egg 그리고 Fields와 Refugee등이 탄생했으며 특히 후자들의 경우, 비록 생명력은 짧았지만 Progressive Rock역사상 길이 남을 불후의 걸작을 하나씩 남겼다. 영국 Progressive Rock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이태리의 경우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그룹들이 EL&P스타일을 추구했다. Latte E Miele, Le Orme, Triade, Il Ritratto Di Dorian Gray, Alluminogeni, Capsicum Red, Antonius Rex, Exploit 등이 EL&P 스타일의 편성과 음악을 행했다. 독일의 경우 Triumvirat과 Tritonus가 대표적이며 Birth Control도 멤버 편성은 달랐지만 EL&P스타일의 음악을 지향했다. 네델란드의 경우 Ekseption을 비롯 Trace가 있엇으며 그리이스에는 Aphrodite's Child, Akritas등이 그리고 체코의 Collegium, Musicum과 벨기에의 Recreation도 빼놓을 수 없는 EL&P형태의 그룹이다. 흥미로운 것은 3인조라는 것을 의미하듯 이들중 "Tri-"로 시작되는 그룹명이 많은데 스페인의 Triana도 예외는 아니다. 셋을 의미한느 이 접두어는 그리스어의 Treis 후기 라틴어의 Trias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유럽의 EL&P스타일의 그룹들은 이것을 다소 변형시켜 그룹명으로 채택했다. 이태리 그룹 Triade의 그룹명은 16세기, 초기 현대 프랑스어의 셋이라는 어원을 그대로 사용,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Progressive Rock을 행하는 3인조 그룹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키보드파트를 중심으로 Classic을 기초로한 Classical(Symphonic) Rock을 행했다는 점이다. 또한 작품속에서 솔로파트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도 4인조 또는 5인조그룹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특징중 하나이다. 즉, 이들은 대부분의 작품속에 각 멤버들의 개성을 뚜렷하게 표출시키고 있으며, 또한 키보드 솔로, 기타솔로, 그리고 드럼솔로파트를 완전하게 분리하여 기록하기도 한다.
13 영국 ART ROCK의 역사 No.5 첨부 파일 (54)
마음풍경
3779 2009-01-29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5회 PROGRESSIVE ROCK 1부 Progressive Rock의 탄생 누구나 Art Rock 또는 Progressvie Rock은 영국에서 태동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류의 음악형태가 언제, 누구에 의하여 등장하게 되었는지 또한 과연 그것들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이러한 주제를 시원하게 다루었던 평론가나 문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주제를 놓고 추상적으로 다루었던 잡지류나 사전류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으나 모두가 수박 겉핥기식이였다. 종주국인 영국마저도 이러한 주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찰하지 않았으며 불모지인 미국의 경우는 언급할 필요없이 전무후무한 상태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두터운 애호가층 덕분에 어느정도 분석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분석력이 제일 뛰어나다는 일본인들의 분석 역시 석연치 않은 단면을 보여준다. 그들도 자료빈곤에 대한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인들 특유의 음악적 취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편협적인 분성이었다. 필자 역시 15년전부터 “Progressive Rock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방송을 통하여 아니면 인쇄매채를 통하여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언급을 해왔지만 그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영국 Art Rock의 역사를 대대적으로 다루게 되면서 Progressvie Rock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다시 한번 그에 대한 가까운 해답을 찾기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게 되었다. 현시점에서 본지 Art Rock이 이분야 세계 최대 전문 음악지임을 감안한다면 그동안 어느 누구도 깊히 다루지 못했던 Progressive Rock을 가장 비중있게, 심층적으로 다루어봄직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앞으로 게재될 내용들이 자칫 논문처럼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여러분들의 넓은 이해와 끊임없는 충고를 부탁드리는 바이다. (편집자 주) I. Progressvie Rock의 태동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1. 녹음기술 발달에 의한 태동 1960년대 중반부터 녹음기술은 급속도로 개선되었따. 여기에서 말하는 개선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모두 발전된 것을 의미한다. 질적으로는 음질이 뛰어난 하드웨어가 음향기기 회사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경쟁으로 커다란 결실을 이루어 냈다. 뛰어난 스튜디오장비가 갖추어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녹음기술에 있어서는 혁명이라 할 수 있는 다채널시대가 열리게되어 뮤지션들에게 폭넓은 아이디어를, 실용화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게 되었으며, 이전의 뮤지션들이 꿈꾸지 못했던 더 많은 기회들을 부여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1960년대말 많은 뮤지션들이 다채널 시스템에 의해 새로운 음악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Progressive Rock은 이러한 체험의 하나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토마스 에디슨이 특수 왁스를 코팅한 실린더에 인류 최초의 녹음을 성공시킨 후 녹음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녹음 기술을 주도했던 곳은 독일이었다. 특히 독일의 Telefunken사는 선구자적인 녹음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독일의 녹음기술을 빌어왓고 1940년대말 Ampex사가 녹음기의 상용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세계최초의 다채널 녹음은 Gibson 기타이름으로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 Les Paul(Leslie Polfuss)에 의해서였다. 그는 열악한 녹음설비 환경속에서 1940년대에 다채널 녹음을 시도했는데 여러대의 모노녹음기를 이용, 뜯어 붙이기식의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는 이러한 다채널 개념의 녹음을 1948년에 발매한 자신의 “Lover"라는 앨범에 적용시켰다. 그 후 스테레오 녹음기가 개발되었고 1960년대초에 들어오면서 4트랙 녹음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다채널 녹음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후 1/2또는 1인치 넓이의 8트랙이 보급되었고, 오늘날의 1인치 또는 2인치 넓이의 16트랙, 24트랙, 32트랙 그리고 새로운 개념의 Digital시대까지 도래하게 된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을 등장하게 만든 시대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다채널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한 1960년대말 부터이다. 다양한 악기들을 트랙별로 담아놓고 혼합시키는 Mix-Down의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았던 1960년대말 많은 레코드사들이 이러한 새로운 체험에 대해서 결코 꺼리지 않았던 것이다. 녹음기술 뿐만 아니라 레코드 컷팅기술도 Progressive Rock의 태동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초창기 78 r.p.m의 SP레코드 시대에는 컷팅의 한계Eoans에 연주시간이 긴 클래식과 째즈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아야 햇었다. 1949년 오늘날 33 1/3 r.p.m.의 LP가 Columbia사로부터 소개되면서 Playing Time이 23분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Columbia의 경쟁사였던 Capitol과 RCA는 45 r.p.m.의 EP로 당시 연주시간이 짧았던 대중음악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결국, 1951년 RCA와 Columbia는 EP와 LP시장을 서로 공유할 수 잇는 평화협정을 맺게 되었고 EP시장은 1950년대중반 Rock 'n' Roll의 태동으로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Classic과 Jazz에 초점을 맞추었던 LP시장도 짧은 곡들을 여러 곡 즐길 수 있는 Pop Album들이 등장하면서 1960년대 초부터 서서히 Pop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중반에 들어서면서 기존 Pop음악의 연주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지고, 여기에 연주시간이 긴 Psychedelic Rock등이 등장하면서 LP시장은 황금기를 맞게된다. 연주 수록시간도 한면에 25분ㄴ에서 30분에 육박하는 혁신을 가져왓고 위에서 언급했던 다채널의 녹음방식이 채택되면서 제작진과 뮤지션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현대기술이 제공하는 장점이 점목되어 Classic에 정신을 둔 Progressive Rock의 태동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2. 악기발달에 의한 태동 Progressive Rock에 쓰이는 악기는 한계가 없다. 우리와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악기이기 때문이다. Progressive Rock에는 “진보적인 대중음악”이라는 의미와 상반된, 과거 클래식에 쓰이던 악기들도 과감하게 도입된다. 대부분의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바이올린, 첼로, 플륫등의 옛 악기들을 사용했다. 그 이유는 Progressvie Rock이 Classic 의 Symphony에서 비롯된 대중음악의 한 부류이기때문이며 또한 연주자들 역시 대부분이 고전음악을 전공한 Art School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민속음악 연주에 쓰이는 민속악기의 도입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Progressive Rock의 세속성 때문에 우리는 각나라의 음악적 특성까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악기의 사용이라는 차원에서 굳이 찾는다면, Symthesizer와 재생장치인 Mellotron, 그리고 여러 가지 전자적인 Effect의 사용등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새로운 연주도구와 재생장치등을 전격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에 “진보적이다”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Progressive Rock의 감초로 불리우는 Mellotron의 경우는 본지에서 이미 3회에 걸쳐 특집을 엮었을 정도로 Progressive Rock을 상징하는 것이다. Mellotron과 Progressive Rock과의 관계는 지면관계상 생략하며, 올려진 자료를 참조하기 바란다. 1954년까지 Electronic Music Synthesizer라는 명칭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RCA사의 도움으로 Harry Olsen박사팀에 의해서 세계최초의 신세사이저가 발명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매우 불안정했으며 여러 가지의 결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실용화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는 새롭게 디장인한 RCA MK II를 컬럼비아대학과 프린스턴대학에 설치했는데 이 신세사이저는 초기 컴퓨터구조와 흡사했다. 다만, 두 개의 동조된 마스터 디스크가 있으며 그 하나에 6개 녹음채널을 가지고 있었다. 10년후인 1964년 여름, Robert Moog박사에 의해 세계 최초로 무그 신세사이저가 상용화되었는데, 그는 전압을 조정하여 음파를 변화시키는 Electronic Music Synthesizer의 표준형을 개발한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커다란 녹음실의 작곡가들과 제작자들에게 전문가용으로 소량 보급되었다. 실질적으로 Synthesizer가 Rock Musican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말부터였으며 Emerson Lake & Palmer의 keith Emerson이 Synthesizer를 즐겨 사용한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II. Progressive Rock의 개념 1. Progressive Rock의 어원 Progressive Rock의 4대 강국이었던 영국, 이태리, 프랑스, 독일은 Progressive Rock이라는 새로운 음악적 용어를 1970년대초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종주국인 영국의 경우는 1960년대말부터 뮤지션들사이에서 이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고 그후 음악 평론가들과 대중들사이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새로운 음악적 조류라는 의미에서 New Wave(198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새로운 New Wave와는 완전히 다른)라고 불리우기도 했으며, 화려한 의상과 무대 그리고 여장을 한 뮤지션들이 부기우기 리듬으로 진행하는 Glam Rock(Glitter Rock)과 혼동되기도 했다. 또한 뮤지션 스스로나 청자의 개인적인 견해나 느낌에 따라서 Classic Rock, Symphonic Rock, Jazz Rock, Chamber Rock, Avant Garde Rock, Electronic Music, Experimental Rock, Serious Rock, Shock Rock, Theatre Rock등등 다양하게 불리웠으며, 총체적인 개념,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Art Rock이라고 자주 불리웠다. 이태리의 경우 Pop Progressive 또는 d'Avanguardia로 주로 표현했고, 프랑스는 Rock Progressif, 독일의 경우는 Progressive Popmusik라고 그래도 명칭을 부여했지만 네델란드의 경우는 오직 Symphonic Rock으로 불렀다. Progressive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전을 뒤적거리며 초기 문법(진행형)을 배울 때 만날 수 있는 이 단어는 그후 정치(진보당), 의학(진행성의), 세무(누진세)등등으로 우리들으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친숙한 단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형용사가 음악적 용어로서 사용되면서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단어가 되었다. 라틴어로부터 비롯된 이 단어는 Cicero(M. Tullius Ciero. 106-43 B.C.) 시대에는 절정(Climax)을 의미하기도 했다. 아무튼 Progressive라는 단어가 대중음악적 용어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40년대이다. 지난 8호에서도 Hipster(Progressive Jazz애호가)라는 단어를 통해 잠시 언급한바 있는 Progressive Jazz는 미국 서부에서 발생된 지적(Intellectual)이지만 감정이 거의 섞여있지 않은(Nonemotional) Jazz로서 1920년의 Hot Jazz에 대응하여 발생한 Cool Jazz를 일컫기도 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Jazz에 Classic의 대위법과 화성법이 도입되었는데 이러한 하모니를 중시한 Jazz를 Progressive Jazz라고 부르게 된다. 그후 Progressive 라는 단어는 음악용어로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한때 현대음악을 Progressive Music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아마도 Process Music과 혼동하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말에 등장하기 시작한 Progressive Rock에 이어 민속음악을 모티브로 현대감각을 불러넣은 Progressive Folk, Country Music에 사회적 주제나 혁신적인 현대악기를 사용한 Progressive Country, 여기에 Jazz와 Disco를 융합한 Soul음악을 Progressive Soul이라기까지 부르게 되었다. Progressive라는 단어는 Jazz와 Rock등 대중음악 이전 한때, Classic에 도입된 적이 있었는데, 덴마크의 작곡가 Carl Nielsen이 1892년에 완성한 자신으 교향곡 제 1번(G Minor)에서 시도한 “하나의 Key로 시작, 또다른 키로 맺는” 이른바 “Progressive Tonality(진보적인 음조)”라는 형식이 있었다. 이 형식은 말러(Mahler)도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Classic에서는 하나의 조그만 아이디어,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대중음악에 있어서 Progressive라는 용어는 차후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영역이 제한되지 않은 매우 광범위한 범주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2. Progressive Rock의 정의 우리는 여러 대중음악 사전이나 심지어 일반 영어사전에서까지 Progressive Rock에 대한 정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수십만가지의 낱말들을 풀이해 놓은 사전에서 마주치게되는 한, 두줄의 조그만 글자로 된 정의는 결코 우리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그럴듯하게 정의해놓은 한 국내 영한사전은 Progressive Rock의 정의를 “복잡한 프레이징과 즉흥이 가미된 전위적 록 음악”이라고 간결하게 풀이해 놓고 있다. 물론 영문을 그대로 번역해놓은 것이겠지만 Progressive Rock의 유형중에 소외받고 있는 Avant Garde에 가까운 Jazz Rock을 정의하고 있는 느낌이다. 대중음악 사전에서도 극소수의 사전들이 Progressive Rock을 정의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성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사전은 Rolling Stone지의 Rock 'n' Roll 백과사전일 것이다. 그전문을 요약하면, “일반적으로 Progressive라는 것은 유럽의 Classic을 모티프(motif)로,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과 전형적인 확장된 형식 그리고 복잡하고 난해한 여러 조곡형식을 취하고 있는 Electric악기류를 사용하고 있는 Rock의 한 부류를 뜻한다. Progressive Rock은 1960년대말 영국에서 비롯되었으며 Psychedelia의 모험주의로부터 파생된 산물이다. 가사의 주제는 주로 우주테마나 환상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Progressive Rock은 종종 Art Rock으로 불리우기도 한다.”(중략) 여기에서 1984년 지금은 폐간된 월간팝송에 필자가 기고했던 내용과 Underground Papyrus minus TWO에 기재된 내용을 요약해 본다. “1960년대말, Rock Music에 도입되기 시작한 Progressive는 개념은 보다 미학적인(Aesthetic)인 면을 추구하는 음악 그 자체나 연주자들을 지칭하고 있다... Pop Music이나 기존 Rock Music에 비하여 Progressive Rock은 매우 신중한 음악(Serious Music)이다. 또한 영리보다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음악적 추구를 우선한다. 즉, 탈 상업주의-비 영리주의(Anti-Commercialism)을 고수, 양(많은 판매량)보다는 질적(예술적인 측면에서 음반자체에 쏟아붙는 정열)면을 내세우고 있다... Progressive Rock은 Classic의 교향곡(Symphony)을 모티브로 조곡형식을 갖추거나 하나의 주제테마를 지닌 Total앨범 형식 또는 개념일치의 Concept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Progressive Rock은 Modern Jazz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1960년에 성행했던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즉흥적으로 연주되었던 Free Jazz는 지배적인 영향을 주었다. 연주시간이 무척 긴, 솔로연주를 돋보이게 하는 Self-Expression을 중시하는 즉흥적인 연주들은 바로 Free Jazz에서 기인한 것이다. Progressive Rock은 각 나라의 민족성을 수반하기도 하는데, 각나라의 민속악기들을 동반한 독특한 Rock들을 우리는 Progressive Rock의 부류로 분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Flamenco Rock일 것이다. 귀족적인 분위기의 Baroque Rock도 있지만 매우 세속적인, 과거 세속음악과 Rock을 접목시킨 여러 나라의 Progressive Rock이 존재한다... 한편, Progressive rock은 현대음악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소위 Avant Garde, Minimalism, Electronic Music 그리고 Process Music이라고 불리우는 20세기의 현대음악은 Progressive rock의 태동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때, 현대음악을 Progressive Music으로 부르기도 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현대음악의 영향을 과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현대음악으로부터 가장 커다란 영향은 바로 ”실험정신“일 것이다. 그 다음은 전기, 전자악기의 사용과 녹음방식 등등... 음악을 만드는 과정의 도입일 것이다... 끝으로 Progressive Rock을 간단히 정의한다면 ”Progressive Rock은 젊음의 Rock Music에 기존의 고전음악적인 요소, 민속민족적인요소, Jazz적인 요소 또는 전위적인 요소들을 융합시켜 악기의 다양화와 고급화를 통한 기술혁신으로 이루어진 진취적이고 미학적인 음악이다“...(중략) 위와같이 1984년 필자가 제시한 Progressive Rock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수정하고픈 생각은 없다. 물론, Progressive Rock의 정의는 평론가들, 뮤지션들, 애호가들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 스스로도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갖는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3. Process Music과의 관계 실질적으로 영국의 Progressive Rock그룹들의 경우는 현대음악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독일 뮤지션들에 비해 그다지 커다란 영향은 받지 않았다. 따라서 후에 다루게 될 독일 Progressive Rock특집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지면에서는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 있는 현대음악의 Process Music과 Progressive Rock과의 연관관계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아마도 Process Music(과정음악, 진행음악)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되는 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것은 음악의 한 장르, 한 부류라기보다는 음악을 만드는 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될 것 같다. Process Music은 여러방법에 의해 생성되어왔는데 주로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특별히 고안한 음악 장치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마도 대부분의 Process Music은 Tape-delay나 Feedback 장치를 사용하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Tape의 스피드를 다채롭게 변환시키거나 Tape-Loop를 이용 다채널의 효과를 내기도 했었다. Progressive Rock의 태동처럼 Process Music의 발생의 근원지는 다소 혼란을 야기 시킨다. 그러나 자세히 추적해보면 미국 전위음악가 John Cage가 이 음악을 시도한 시조임을 알 수 있다. John Cage는 1939년 주파수 녹음(Frequency Recording)이라고 불리우는 “Imaginary Landscape #"이라는 작품을 스피드를 변속시킬 수 있는 두 개의 레코드 플레이어와 음이 억제된 피아노, 그리고 심벌즈로 완성했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업적은 독일 Cologne의 Herbert Eimert와 구체음악(Musique Concrete)의 선구자인 프랑스 파리의 Pierre Schaeffer를 앞선 것이었다. 아무튼 Process Music은 독일의 Karlheinz Stockhausen과 미국 캘리포니아의 Terry Riley에 의하여 발전되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Brian Eno는 바로 Terry Riley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와 King Crimson의 Robert Fripp과의 작업은 바로 대중음악계의 대표적인 Process Music이다 여기서 우리는 Process와 Progressive라는 두 단어를 유심히 살표볼 필요가 있다. 물론 두 단어는 서로 다른 라틴어의 어원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후에 서로 혼둉되면서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현대음악을 상징하는 Process Music은 때때로 Progressive Music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것이다. 4. Progressive Rock의 형식 Progressive Rock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바로 Concept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모두가 이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Progressive Rock앨범들이 주제일치-개념일치의 Concept앨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한가지의 주제(주로 앨범타이틀이 된다)를 내세워 소제가 되는 곡과 곡들이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이른바 Total개념의 형식이다. Progressive Rock이 태동하기전까지 대중음악계는 주로 히트할 곡을 앨범제목으로 내세우는 히트곡 위주의 앨범을 제작해왔는데 Progressive Rock의 경우는 히트 곡보다는 전체적인 메시지를 보다 중요시 한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Classic의 표제음악(Program Music 또는 Tema Music)에서 빌어온 것이다. Classic에서 표제음악의 역사도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표제음악은 곡에 이름을 붙여 표제의 내용을 강하게 암시하는 음악으로 절대음악이 음악자체에 절대적 가치를 두고 오직 음악의 기존형식(음의 순수한 형식)에만 의존한 데 반해 표제음악은 특정적인 이야기나 사상 그리고 분위기등을 음악적 내용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표제음악은 베토벤이나 베를리오즈로 비롯되어 19세기 낭만파 음악가들에 의하여 발전된 음악이다. 후기 낭만파 음악가들은 현실생활의 양상인 문학작품, 회화등을 순기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qpxhqpsdml 전원 교향곡(Pastoral Symphony)이다. 재미있는 것은 표제음악의 효시격인 베토벤의 6번 교향곡 Pastoral Symphony (1807~1808)가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위에서 언급한바 있지만 Progressvie Rock은 Symphony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또한 Pastoral은 영국의 많은 음악 평론가들이 Progressive Rock그룹인 Moody Blues나 Barclay James Barvest 그리고 The Enid등의 음악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그들의 음악을 Pastoral Sound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양떼와 초목들, 지저귀는 새들을 소제로 했던 시적이며 전원적인 Pastoral은 17, 18세기에 크게 유행했었다. Progressive Rock앨범은 음악적 Concept뿐만아니라 그것을 덮고 있는 앨범커버까지 Concept사상을 확장 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Pop, Rock앨범들이 가수들이나 뮤지션의 모습을 담는 데 반하여 대부분의 Progressive Rock앨범들은 음반안에 담겨있는 내용을 음반커버에까지 표현하고자 했다. Progressive Rock의 앨범들의 또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인 커버아트의 세계와 그 음악적 소재에 대해서는 차후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III. 대표적인 작품들과 그룹들 1.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은? 지난 5호부터 Pink Floyd, King Crimson, Genesis, Yes, Emerson Lake & Palmer, Moody Blues, Gentle Giant, V.D.G.G.등등 영국의 Super Progressive Rock그룹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 중 과연 어느 그룹이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이란 말인가? Pop과 Rock계를 통털어 가장 진보적인 시도를 최초로 행했던 그룹은 역시 Beatles였다. Progressive Rock의 감초로 불리우는 재생장치 멜로트론(Mellotron)을 가장 빨리 도입했으며, 전위음악가들이 이용했던 Tape-Reverse Effect(Backward masking)를 1960년대 중반부터 시도하기 시작했다. 서구 고전음악에 동양악기를 도입시키는 아이디어등도 Pop에 가장 빠르게 응용했다. 또한 그들은 전위음악의 Drone과 Ostinato패턴을 최초로 도입한 Pop그룹이었다. Beatles를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으로 가정한다면 Progressive Rock의 태동은 1966년, 효시적인 작품은 “Revolver"가 될 것이다. Beatles의 ”Revolver"앨범은 커버아트에 있어서도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즉, 인물사진만을 내세웠던 상투적인 커버가 아니라 Montage기법을 살린 Klaus Voormann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커버로부터 Beatles의 음악이 변모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Pop에 스트링을 도입한 곡 ‘Eleanor Rigby', Tape Reverse Effect를 통해 Psychedelic Rock의 느낌을 이끌어내는 ’I'm Only Sleeping', Pop과 동양음악을 접목시킨, 인도악기 Sitar를 도입한 George harrison의 작품 ‘Love You To', 여러 가지 효과음을 구상처리한 ’Yellow Submarine', Brass와 키보드의 진보적인 코드를 사용한 ‘For No One', Brass Rock의 효시라할 수 잇는 ’Got To Get You Into My Life'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Revolver"앨범을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앨범으로 주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곡은 마지막곡으로 담겨 있는 ‘Tomorrow never Knows'라는 곡이다. 이곡은 마치 1960년대말 1970년대초의 Progressive Rock황금기의 도래를 예견하는 작품처럼 실험성과 곡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Beatles가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이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Beatles가 세계 최초의 Progressive Rock그룹이었다라는 주장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1967년에 일어난다. 바로 Moody Blues의 3번째 앨범 ”Day Of Future Passed"의 등장이었다. 물론 이 앨범이 등장하기 몇 개월전에 비틀즈 최초의 컨셉트 앨범으로 커다란 이목을 집중시켰던 화제작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가 앞서 발표되었지만 Moody Blues의 ”Day Of Future Passed"는 클래식의 심포니에서 비롯된 조곡형식을 수용했고, 표제음악에서 비롯된 완벽한 컨셉트형식(하루의 시간적흐름 새벽부터 밤까지의 시간적 흐름을 음악으로 표현)을 채택햇으며, 멜로트론 음향을 주요음원으로 사용하고,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등 Progressive Rock그룹의 효시격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따라서 Moody Blues를 Progressive Rock그룹의 효시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2.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 앨범은? Beatles의 “Revolver"앨범이 발표된 1966년, Pink Floyd 그리고 keith Emerson이 이끄는 The Nice등등 서서히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Moody Blues의 ”Day Of Future Passed"가 발매된 1967년, 그들은 데뷔앨범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Pink Floyd의 데뷔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의 경우는 전체적으로 볼 때 Progressive Rock이라기 보다는 Psychedelic Rock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물론, 오프닝곡인 ‘Astronomy Domine'과 뒷면의 오프닝 ’Interstellar Overdrive'는 Progressive Rock의 주요테마인 우주적인(Cosmic) 사운드를 담고 있다. Keith Emerson이 이끄는 The Nice의 경우 P.P. Arnold의 Back Group으로부터 독립, 새로운 출발을 하는 상황이었고 1967년말에 발표된 그들의 데뷔작 ”The Thoughts Of Emerlist Davjack"은 후에 등장하게 되는 많은 유럽의 후배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연주하게 되는 ‘Rondo'가 담겨있다. 그후 Nice는 가장 이상적인 3인조 형태로 Progressive Rock의 고전인 싱글 ’America‘(뮤지컬영화 West Side Story-Leonard Bernstein의 곡을 편곡한 작품)와 두 번째 앨범 “Ars Longa Vita Brevis"를 제작하는데 이러한 3인조 형태는 후신그룹 EL&P의 원형이 되어주었으며 영국그룹 Gun과 Refugee를 비롯 이태리의 Le Orme, Latte E Miele와 Triade, 독일의 Triumvirat와 Tritonus 네델란드의 Ekseption과 Trace, 벨기에의 Recreation 그리고 그리스의 Akritas와 Vangelis가 이끌었던 Aphrodites Child등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어 주었다. 1968년에 들어서면서 Genesis가 데뷔했지만 그들은 Progressive Rock그룹이라기 보다는 Pop그룹에 가까웠다. 그들은 두 번째 앨범 “Trespass"가 발표되는 1970년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Progressive Rock그룹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1967년에 결성되었던 Van Der Graaf Generator는 데뷔앨범을 내놓지도 못한채 해산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재결성되어 1968년 데뷔앨범 ”The Aerosol Grey Machine"을 미국 Mercury레코드사에서 영국과 독일에서는 Fontana레이블을 통해 재발매식으로 발표했다. VDGG의 데뷔작은 훌륭한 Progressive Rock작품이었지만 약간의 허전함을 남긴다. 이 앨범은 같은해에 발표되었던 그들의 희귀싱글 'Firebrand'(200파운드 이상으로 거래되는 초희귀싱글)만큼은 희귀하지 않지만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앨범이다. 아마 VDGG나 Preter Hammill의 앨범들을 열심히 수집했던 사람들을 허전하게 만드는 앨범일 것이다. 같은해 글부 Yes가 결성되었고 1969년 데뷔앨범이 발표되지만 Beatles와 ‘The Byrds'의 커버버전을 담은 이 앨범도 보다 Pop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초기 Art Rock그룹으로서 가장 성공한 그룹은 바로 Procol Harum이다. 그들은 1967년 데뷔하지마자 싱글 ’A Whiter Shade Of Pale'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 연주력의 한계는 다소 불안정한 데뷔앨범을 낳았다. 1968년말에 발표된 그들의 두 번째 앨범 “Shine On Brightly"은 뒷면의 걸작들 ‘Magda-lene'와 심오한 동양철학을 담은 Concept형식의 ’In Held Twas I'만을 놓고 본다면 확실히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이었다. 하지만 앨범의 반만을 놓고서 ”세계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Procol Harum과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Barcllay James Harvest는 데뷔앨범이 상대적으로 지연되어 1970년 6월이 되어서야 비로서 발표 된다 BJH의 데뷔작이 늦어지는 가운데 1969년 Progressive Rock 사상 가장 위대한, 가장 완벽한 작품이 등장하는데 바로 king Crimson의 데뷔앨범 ”In The Court Of Crimson"이다. King Crimson의 데뷔작 “In The Court Of Crimson”이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이라고 햇을 때 Pink Floyd의 추종자들은 1968년 6월 29일에 발매된 Pink Floyd의 두 번째앨범 “A Saucerful Of Secrets"가 아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못지 않게 Pink Floyd를 사랑하는 필자의 대답은 No!이다. ”A Saucerful Of Secrets"에는 그룹을 등진 Syd Barrett의 향취와 입김이 많이 베어 있다. 당시 Syd의 음악적 방향은 보다 Psychedelic에 가깝다. 두 번째 곡 'Remember A Day'는 원래 데뷔작에 수록될 예저의 곡이었고 Syd의 작품인 끝곡 ‘Jugband Blues'는 싱글로서 발표하려던 작품이었다. 따라서 Progressive Rock의 중요한 요소인 Concept형식이 결여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A Saucerful Of Secrets"는 Syd Barrett이 세곡에 나머지 네곡에 David Gilmour가 참가한, 기간이 매우 짧았던 5인조 편성의 Pink Floyd의 과도기적인 작품이어Te. 물론, 타이틀 트랙은 확실히 Progressive Rock의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King Crimson의 데뷔작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이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a. 배경(Background) : 클래식의 심포닉에서 비롯된 조곡형식의 수용, 표제음악에서 비롯된 완벽한 Concept Album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Rock그룹의 협연이라는 차원에서 Moody Blues의 3번째 앨범 “Day Of Future Passed"를 세계최초의 Progressive 깨차그룹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그러나 Moody Blues의 앨범 ”Day Of Future Passed"를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dlfkrh 말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은 효시격이었을뿐 그 이후에 등장하게되는 많은 Progressive Rock그룹들의 작품에 비해 즉흥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으며, 진취적인 성향과 아이디어면에서 다소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Day Of Future Passed"의 성공후 Moody Blues는 앨범 ”In Search Of Lost Chord"와 “On The Threshold Of The Dream"을 발표한후 Deram레코드사를 떠나 자신들의 독자적인 레코드사 Threshold를 설립하게 된다. 물론 레코드사명은 Deram에서의 마지막앨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Threshold의 설립과 함께 Chief Producer로 일하게된 Tony Clarke는 Thershold사의 첫작품으로 King Crimson의 데뷔작을 꿈꾸기 시작했다. 당시 음악 평론가들은 신생그룹 King Crimson의 공연을 보고 Moody Blues와 Family, Prety Things의 음악과 유사하다고 리뷰를 실었고, 프로듀서 토니 크라크는 Threshold레코드사는 Moody Blues지향의 음악만을 제작해야한다는 신념에 가득차 있었다. 따라서 당시 그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반한 King Crimson의 데뷔작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후 King Crimson은 Moody Blues의 순회공연에 오프닝그룹으로 지정되었는데, 오디션을 행하는 동안 King Crimson의 연주를 지켜보던 Moody Blues의 멤버들은 안색이 결코 좋지 않았다. 결국, 음악적 견해차이라는 이유로 Moody Blues는 King Crimson을 오프닝 그룹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아무튼 1969년 6월, Morgan 스튜디오에서 Tony Clarke을 제작자로 Andy Jones을 엔지니어로 King Crimson의 데뷔작은 Threshold라는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을 것이며 음악도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In The Court Of Crimson King"과 크게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King Crimson의 데뷔앨범이 녹음되기 시작할 무렵, 굴지의 레코드사들이 King Crimson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Island사와 Atlantic레코드사가 각각 10,000파운드이상의 계약금을 제시했고 Mercury레코드사의 경우는 15,000파운드라는 거액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 액수는 Led Zeppelin이 1968년에 받은 계약금의 두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운명이었는지 녹음개시 다음날 엔지니어인 Andy Jones가 건강악화로 녹음을 포기했고 그는 끝내 스튜디오에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King Crimson의 데뷔작 녹음은 일단 중지되었으며, Tony Clarke은 스튜디오를 Wessex스튜디오로 옮기게 된다. 녹음이 재개된 그해 7월, 재녹음 일주일만에 또다시 녹음이 중단되어 버린다. 제작자인 Tony Clarke의 음악적 한계 때문이었다. 근느 녹음된 테이프를 모두 소거한 후 제작자의 자리를 포기해 버렸다. 그는 Moody Blues의 대작이었던 ”Day Of Future Passed"를 창안해낸 인물로 과거에 높이 평가 받았던 제작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은 King Crimson을 결코 따라갈 수 없었다. King Crimsond은 Moody Blues와는 본질적으로 크게 달랐다. Moody Blues는 연주자 전원의 공통된 음악적 방향을 수렴, 각 멤버들의 균일한 음악적 배합을 추구하는, 이른바 전멤버들이 모두 리더가 되는 형식을 취했다. 그들은 뚜렷한 리더 없이 전체의 조화만을 강조한 반면, King Crimson의 경우는 카리스마적인 Robert Fripp을 리더로 내세우면서 연주자들 각자의 순간적인 민감한 반응을 그때그때 음악에 반영시키는 순발력과 즉흥성을 지니고 있었다. 프로듀서 Tony Clarke은 세계최초의 Progressive Rock앨범은 구상했었지만 결국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의 완성에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b. 커버아트 : Berry Godber가 King Crimson의 데뷔앨범 커버를 의뢰 받았ㅇ르때, King Crimson의 제작팀측은 녹음, 제작비 초과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두차례의 녹음실패후 예산이상의 지출이 있었고 따라서 Manager인 David 뚜쇞두(EG레코드사의 창업주 두사람중의 한명, EG라는 명칭 E의 주인공, G의 주인공인 그의 동업자 John Gaydon은 1971년 회사를 등졌고 그 역시 1977년 EG Records를 떠났다)은 자신의 집을 저당잡혀 돈을 빌려야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설상가상 King Crimson의 전신 그룹 Giles, Giles & Fripp의 앨범을 발매했어TEjs Decca레코드측이 계약불이행으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까지 벌어져 제작팀들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먼저 Berry Godber는 Concept Maker(작시가)이자 Lighting Director였던 Peter Sinfield와 그룹으 리더 Robert Fripp으로부터 커버디자인 착상을 얻었고 그다음 매니저인 David Enthoven과 John Gaydon의 의견을 수렴, King Crimson의 커버를 구상하게 된다. 그후 그는 Master Tape을 들으며 앨범의 이미지를 구체화시켜 나갔다. 앨범커버는 그룹명 크림즌을 상징하듯 “노여움으로 얼굴을 붉힌 심홍색” 인간의 얼굴로 가득 채웠다. 아니 노여움을 뛰어넘어서두려움에 떨고 있는 눈, 커다란 입과 코를 크게 벌리고 있는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비통함에 일그러진 얼굴을 담은 커버그림은 킹 크림즌의 첫 번째 음악세계와 잘 어우러지는 작품,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게 된다. King Crimson이전에 완성되었던 Giles Giles & Fripp당시의 (I Talk To The Wind)라는 곡만을 제외하고 모든 곡들이 단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커버아트는 King Crimson의 음악적 분위기 “단조(Minor Tone)"와 걸맞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커버의 안쪽면은 겉면과 완전히 상반된 모습의 익살스러운 그림이 담겨있는데, 마치 부처ㅓ의 손모양을 풍자한 것 같다. 아니면 ‘경제적 도움을 원합니다!’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c. 가사(Lyrics)와 주제일치(Conept) Pete Sinfield에 의해서 쓰여진 본작의 가사들은 곡마다의 연계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쉽게 스치고 넘어갈 가벼운 가사가 아니면 그렇다고 깊이 사고하는 가사도 결코 아니다. Pete Sinfield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가사전달보다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가사전달을 추구하고 있다. 굉장한 소음으로 시작되는 21세기의 어느날 밤 펼쳐지는 살벌한 광경을 은유적으로 암시한 첫곡의 가사와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며 뚱딴지 같은 두 번째 곡의 가사를 연결지어 컨셉트형식이니 주제일치니 하는 따위의 억지를 늘어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첫 번째곡은 접어두더라도, 두 번째곡부터 끝곡가지 펼쳐지는 Pete Sinfield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사상은 멜로트론 음향을 통해 신비롭게도 희미하게 불투명하게 연결되고 있다. 즉, 순수악기의 소리도 아니며 그렇다고 완전히 인위적인 소리도 아닌 멜로트론 음향을 중요한 컨셉트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앨범의 통일된 전체적인 분위기는 단조(Minor)의 우울하고 엄숙하며 장엄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광란과 고요 분노와 혼란, 그리고 꿈과 환상이다. d. 멜로트론의 대서사시(Mellotron Epic)와 함께 사용악기들 King Crimson의 데뷔작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은 앞면에 세곡, 뒷면에 두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첫곡은 King Crimson의 역사를 통털어 라이브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 간판급의 대표곡 (21st Century Schizoid Man)이다. 이곡은 Mirros라는 즉흥파트를 포함하고 있는 Heavy 한 넘버이다. Ominous Night Sound(전조한 밤의 사운드) 즉, ”굉음과 함께 밤이 시작되는 것을“ 묘사한 이곡은 즉흥성과 실험성을 지닌 Free-Jazz형식의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한 John Gage로 비롯된 Process Music을 잘 이용한 전형적 작품이다. Heavy Metal보다 더 강렬함이 느껴지는 이곡에서 Greg Lake의 천사같은 목소리는 악마처럼 가사를 절규하며 부른다. 그의 목소리는 Fuzz박스에 의해서 전기적으로 변환되어 들린다. Robert Fripp이 두 개의 기타를 오버더빙했고, Ian McDonald의 매우 자극적인 Alto Sax도 두차례에 걸쳐 녹음되어 있다. Greg Lake의 Bass도 Fuzz와 Echo Unit을 사용하고 있다. 날카로운 Michael Giles의 드러밍은 템포가 수시로 변하는 격동감을 전해준다. 강렬하고, 날카로운 멜로디 작살로 찌르는 듯한 보컬, 극심하게 변속되는 템포와 리듬 그리고 전위음악에서 비롯된 Process 녹음기법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소음뒤에 곧바로 흐르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I Talk The Wind'는 King Crimson 시대의 작품은 아니다 전신그룹 Giles, Giles & Fripp 당시의 곡으로 Remake 된 것이다 GG&F 당시 보컬은 Judy Dyble이었다. 물론, 이 곡은 여백을 메우기 위하여 일시방편으로 본 앨범에 삽입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곡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즉, 앞곡인 ’21st Century Schizoid Man'과 뒷곡인 'Epitaph'의 교량역활을 톡톡히 하고 잇는 Bridge곡이다. 서정적이고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발라드풍의 이 곡은 Ian McDonald외 순수한 플륫소리, 오른편에서는 플륫을 Tape에 담아 재생한 멜로트론음향이 이채롭게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Ian McDonald의 재능이 돋보이는 곡으로 그의 멜로트론 장치를 다루는 능숙함에 첫 번째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정적과 함께 긴장감이 감도는 첫 번째 드러밍과 하늘을 나는 플륫연주가 끝나면 폭풍우처럼 밀어 닥치는 드럼과 멜로트론의 홍수를 맞게된다. 바로 이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Epitaph'이다. Greg Lake의 보컬도 일품이지만 Ian McDonald가 힘차게 누르는 비장한 Minor Key의 멜로트론 음향은 환상의 극치를 이룬다. 왜 이 앨범을 가르켜 멜로트론의 대서사시(Mellotron Epic)라고 부르는지 과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March For No Reason'과 ’Tomorrow And Tomorrow'라는 두곡을 함축하고 있는 ‘Epitaph'에서 Ian McDonald는 멜로트론 음향뿐만 아니라 플륫, 오르간, 크라리넷, 베이스 크라리넷 연주를 마음껏 펼쳐지고 있다. 본작이후 “약보다는 선의 음악을 하겠노라”고 외치며 그룹을 떠나려 했던 Ian McDonald에게 “당신보다는 내가 이 그룹을 떠나는게 났겠어”라고 했던 Robert Fripp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Ian McDonald가 떠난 후 두 번째앨범부터 Robert Fripp은 멜로트론 파트를 맡게되지만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튼 ’Epitaph'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웅장한 하모니의 멜로트론 음향과 그것을 가르는 날카로운 Robert Fripp의 E-minor로 18차례나 연속되는 기타코드 진행도 매우 독특하다. ‘The Dream'과 ’The illusion'을 함축하고 있는 뒷면의 첫 번째 조곡 ‘Moonchild'는 제목처럼 꿈, 환상, 환각적인 분위기를 연출시키는 Jam Session형식의 실험작이다. 본 앨범중에서 가장 Robert Fripp적인 작품으로 그의 아이디어와 연주가 돌출되는 곡이다. 앞면의 첫곡 ’21st Century Schizoid Man'이 Process Music의 단면만 보여주었다면 이곡은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독일의 Progressive Rock그룹들, 특히 Popol Vuh의 음악과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곡이 끝나면 ‘Epitaph'dhk 맥을 잇는 또하나의 멜로트론의 대서사시 ’Mellotron Epic'인 타이틀 트랙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마치 멜로트론 음향을 위해 작곡된 작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멜로트론 음향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이곡 역시 Robert Fripp의 작품이 아닌, 멜로트론의 마술사 Ian McDonald의 작품이다 따라서 멜로트론과 플륫을 위한 컨체르토처럼 들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Minor Key로 진행되는 장엄한 이곡은 갑자기 Major Key로 잘못 끝난다. Fales Ending 후 Snare Drum소리가 세차례 정적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Progressive Rock그룹들이 즐겨 연주하는 Circus-Music이 흘러 나온다 그후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태고의 장엄함이 여러차례 엄습하면서 세계 최초의 완벽한 Progressive Rock앨범 ‘크림즌 왕의 궁전’은 끝을 맺는다. Art Rock Magazine No. 9 (1995년 발행)
12 영국 ART ROCK의 역사 No.10 첨부 파일
마음풍경
3035 2009-01-28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 10회 사회학 관점에서 바라 본 Progressive Rock Progressive Rock의 쇠퇴기 그동안 지루하게 (특히 필자에게) 여겨졌던 영국 ART ROCK의 역사가 이번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사실, 이 특집은 50회 정도로 에정되었으나 Art Rock Magazine이 제때 발간되지 못했기 때문에 필자가 환갑이 되더라도 이 특집이 끝날 것 같지 않고, 또한 새로운 특집의 기획으로 인하여 서둘러서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럼, 새루운 특집이란? 비밀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Art Rock에서 다루지 않았던 미지의 음악에 관한 내용들이 소개될 것이다. (편집자 주) 도서관에서 음악서적들을 열심히 뒤적거리던 학창시절, 대중음악과 사회학에 관한 책들이나 논문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중 대부분이 반항적인 Rock 'n' Roll의 탄생과 당시 사회와의 관계를 다루거나, 사회적이거나 저항적인 Mordern Folk 그리고 자유, 반전, 평화와 사랑을 슬로우건으로 내걸었던 Psychedelic Music과 당시 정치, 사회 그리고 문화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Progressive Rock과 사회학을 다루었던 책이나 논문은 결코 찾아 볼 수 없었다. 지난 여름, Edward Macan이라는 친구로부터 조그만 소포 하나가 도착되었다. 그 소포속에는 그가 오랫동안 집필해왔던 영국 Progressive Rock과 Counterculture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는데, 놀랍게되 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영국 Progressive Rock에 대한 분석은 지금까지 영국에서 발간된 책들이나 논문들 보다도 체계적이고 날카로웠다. 다소 아쉬운점은 그의 분석이 대형 그룹들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의 글들이 이 지면을 써내려가는 필자에게 적지않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사실, Progressvie Rock과 사회학에 대해서는 지난 Art Rock의 역사 제1회를 비롯한 초창기 글들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러한 음악이 발생하게 된 동기와 배경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지면에서는 보다 심층적으로 Progressive Rock과 영국사회를 다루고자 한다. 1. 영국 Progressive Rock의 사회 발상지 영국 Progressive Rock의 사회적인 뿌리는 영국 남부에서 뻗어나왔으며 중산층과 대학가 그리고 영국 성공회(영국 국교회, Anglican Church)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첫 번째 지역으로 영국 나부지방중에서도 남쪽 Norfolk으로부터 동부 Essex, Cambridgeshire와 Lincolnshiredp 이르기까지 뻗어 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지역으로는 Kent 서쪽에서 Dorset, 북쪽으로는 Warwickshire까지 확산되었다. 세 번째 지역으로는 Cheshire와 Derbyshire 북부로부터 Yorkshire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포함한 Midlands 북부지역까지이다. 그리고 끝으로 스코틀랜드와 영국 국경지역, 즉 영국 북부지역까지 분포했다. 영국 Progressive Rock의 주류는 역시 영국 남부에서 비롯되었는데, 1960년대말, 1970년에 결성된 대부분의 거물 그룹들이 이곳에서 결성되었다. 또한 1980년대 Neo-Progressive Rock 그룹들도 이곳에서 결성되어 그 맥을 이었다. 대부분의 주요 뮤지션들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며(1942년생부터 1950년생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서 자라났다. King Crimson의 리더 Robert Fripp(1946년생)을 비롯, 그동안 Art Rock의 역사에서 언급되었던 대부분의 주요 뮤지션들이 영국 남부출신들이다. 그렇다면 Progressive Rock은 왜 영국의 남부지방에서 탄생하여 그곳에서 발전하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당시 영국 남부의 사회, 역사, 문화적인 여건을 살펴보면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영국의 남, 동부 지역인들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전문적인 White-Collar들의 사회였다. 그에 반해 영국의 중부와 북부는 Working Class와 Blue Collar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실제로 Progressive Rock의 발생은 노동자층보다는 높은 교육을 받은 지식인층의 자녀들 즉, Classic 음악교육 뿐만 아니라 높은 문화의 예술과 문학을 배웠던 젊은이들로부터 발생했기 때문에 영국 남부지역이 Progressive Rock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의 기여 사회-지역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영국 Progressive Rock의 탄생에는 종교적인 영향이 적지 않았다. 미국의 R&B가 흑인 성가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면, 영국의 Progressive Rock은 영국 국교회와 카톨릭 성가에서 영향을 받았다. 특히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의 영향은 지배적이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로마 교황의 권위와 군주들간의 분쟁으로 발전했으며, 종교적인 불만으로 그 긴장감은 16세기 최고조에 이르른다. 헨리 8세의 이혼은 로마 교황과 결별을 야기(1534년) 시켰고, 영국의 교회들은 로마 카톨릭과 청교도로부터 대항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이래로 영국 성공회파(Anglican Communion)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성서와 교회의 권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운영체계는 교회 감독제이며 예배를 중시한다. 교리는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의 교리를 수용하고 있므녀 1982년부터 로마카톨릭 교회와의 교류가 재개되었다. 많은 Progressive Rock 뮤지션들이 어린시절 영국 국교회를 나갔으며, 그들중 교회 뮤지션으로 종사했었던 인물도 많다. 이러한 종교와 종교음악의 체험은 그들의 미래 음악에 무의식적으로든지 아니면 의식적으로든지 깊이 잠재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의 도입, 입체적인 코랄, 하모니 양식등등... 우리가 Progressive Rock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러한 음악적 요소들은 뮤지션들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종교적인 성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Genesis의 리더였던 Peter Gabriel은 소년시절 교회 소년합창단에 있었고, John Wetton은 자신의 형이 성가대 지휘자 및 오르간 주자로 활약하고 있을 때, 형의 보조로 일하면서 최초의 음악적 체험을 가졌다. 또한 Yes의 Chris Squire는 성 앤드류 성당의 소년 성개대에 있었으며, Soft Machine의 Mike Ratlledge는 캔터베리 성당의 오르간주자로부터 오르간 연주를 배웠다. 스위스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Patrick Moraz도 Bournrmouth지역의 교회에서 오르간 주자로 활약했었다. King Crimson의 Robert Fripp은 종종 Anglican성가 음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17세기 작곡가 Orlando Gibbons의 성가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Keith Emerson 또한 인터뷰를 통해서 이러한 종교적 배경에 대하여 여러차례 언급한 바 있다. V.D.G.G.의 Peter Hammill은 영국 국교회 보다는 카톨릭 출신으로 양쪽 Anglican과 Catholic 교회를 위한 음악들을 작곡해TEjs 영국 르네상스 성가 음악들을 작곡했던 영국 르네상스 성가 음악의 거장 Thomas Tallis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Progressive Rock Mania 모든 부류의 damdkr들에 특정팬들, 극성 팬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Progressive Rock팬들은 타 장르의 Mania와 뚜렷이 구별된다. 우선, 영국의 Progressive Rock의 탄생기와 첫 번째 황금기 (1966~1970년대초)의 매니아들은 뮤지션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뮤지션들과 같은 세대들(20대부터 30대까지)이었으며 그들 대부분이 영국 남동부에 거주했고, 사회-경제적으로 넉넉한 중산층들로 High Culture의 예술, 문학과 음악을 전공하던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Progressive Rock 매니아들 중에서 우리는 쉽게 Progressive Rock뮤지션들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매니아 자신이 여러 형태의 Contributor로, Volunteer로서 참여하고 있다. 앨범과 공연 티켓의 구입등의 경제적 공헌 뿐만 아니라, 앨범과 팜플렛 디자인, 무대디자인 더 나아가서 앨범의 가사, 그룹의 보이지 않는 멤버로도 활약했다. 당시 뮤지션들과 Mania들의 관계는 친밀한 친구 관계였고, 서로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평가하는 자연스러운 장이 열려 있었다. 실예로 1966년부터 런던 Marquee Club에서 개최도있던 “Spontaneous Underground" 씨리즈는 연주자와 청중과의 구별을 짓는 궇획선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따라서 1960년대말까지 청중들은 자연스럽게 Pink Floyd, Nice, Soft Machine 그리고 Procol Harum등의 멤버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할 수 있었다. 1960년대말부터 1970년대초까지 소수에 지나지 않았던 Progressive Rock Mania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연주자들의 무대가 영국 런던의 조그만 Club이나 Pub(클럽)등지에서 미국의 커다란 Arena나 Stadium(경기장, 큰 공연장)등지로 옮겨졌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영국 Progressive Rock그룹들의 미국시장 진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Moody Blues, Pink Floyd, EL & P, Yes 그리고 Jethro Tull등이 그 행운의 주인공들이었다. 1970년대 초반, Progressive Rock Mania들은 직접 공연장을 찾는 것 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집에 모여 음반을 감상하거나 무명그룹들의 공연장을 찾기 시작한다. 이때 제 2의 Pink Floyd, Yes, Genesis 그리고 Jethro Tull을 꿈꾸는 수많은 그룹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중에는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못보고 사라진 그룹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 자체가 Progressive Rock Mania로 출발 Progressive Rock Musican이 되었고 그리고 Progressive Rock Mania로 되돌아 가게 된다. Progressive Rock의 상업적 성공과 혼란(1970년대 중반까지) 위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행운의 그룹들(소위 수퍼그룹)은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의 조그만 클럽에서 소수의 청중들 앞에서 공연을 했던 영국 그룹들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대형 공연장에서 수천, 수만명의 청중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Progressive Rock계열의 음반 판매고도 천문학적 숫자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 1973년 3월 발매된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이 분야의 최고 판매고를 기록하며 Pink Floyd의 멤버들에게 엄청난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멤버들 모두 그리스의 섬에 휴양 빌라를 구입할 수 있었고, Roger Waters는 값비싼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을 수집할 수 있었으며, Nick Mason은 그동안 해왔던 자동차 수집에 더욱 열을 올릴 수 있었다. 쌓여가는 부와 함께 David Gilmour는 Guitar수집에, Rick Wright는 골동품 수집에 깊히 빠져들었다. 1980년대초 멤버들 간의 갈등 (Roger Waters와 나머지 멤버들 간의)으로 그들의 명예는 다소 실추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그들은 부를 누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분야에서의 대표적인 행운아이자 불운아는 Mike Oldfield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 틈틈이 작곡해왔던 Tubular Bells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Virgin Records의 창업자인 Simon Draper와 Richard Branson은 그의 데모테잎을 듣고 그를 스튜디오로 불러들였다. 그후 2,000회 이상의 오버더빙 끝에, 9개월만에 당시의 화제작 Turbular Bells는 완성되었다. 그 중 4분여되는 분량의 공포영화 엑소시스트의 테마 음악으로 사용되었고, 이 작품은 Headphone Rock으로 불리우며,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1,6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레코드회사의 게약 때문에, 지속적으로 음반을 제작해야 되었고(그는 레코드 게약은 법정에서 형을 구형받은 것과 다를바 없다라고 말한다). 잇다른 음반 판매부진과 규모가 큰 무리한 공연으로 그가 잠시 얻었던 엄청난 부는 빚으로 바뀌게 되었다. 1982년 “Five Miles Out"에 수록된 Family Man이 엉뚱하게도 Hall And Qates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히트하자 그는 ”Pop Song"을 만드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지루하다“라고 표명했고 1984년 영화 사운드 트랙 ”The Killing Fields"로 잠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의도로 20년만에 발표된 “Turbular Bells 2"는 기대이상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Progressive Rock그룹들은 활동을 중지한다. 이러한 공백기의 주요 원인은 그들 대부분의 음악적 방향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소속 멤버들은 그룹활동을 중지하고, 솔로 활동을 하거나 그룹을 완전히 떠나 버렸다. 이렇게 황혼기에 접어든 영국 Progressvie rock계와는 달리 이태리, 독일 그리고 프랑스의 Progressive Rock계는 황금기를 맞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퍼그룹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중성과의 타협을 시작한다. Peter Gabriel은 뮤지컬 스타일의 더블 앨범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의 발표와 함께 102차례의 순회 공연을 가진 후 Genesis를 떠나게 되는데, Peter Gabriel이 떠난 Genesis는 더 이상 Progressive Rock그룹이 아니라 Pop그룹에 가까웠다. 몇몇 수퍼그룹들을 제외하고대부분의 그룹들이아 아티스트들은 새롭게 불어오는 음악조류에 편승하게 된다. 1970년대 초반에는 많은 Pop Artist들도 거세게 몰아닥치는 Progressive Rock에 적지 않게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70년대 중반부터 Progressive Rock그룹과 아티스트들도 상업성에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그 이후 Punk Rock의 출현, Disco의 열풍등으로 Progressvie Rock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갔고 Progressive Rock의 주류(Mainstream)는 이때부터 1990년대 몇몇 북구 신생그룹들로부터 일어났던 ”과거로의 귀환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사실상 맥이 끊어지게 된다. 1976년부터 1970년대말까지 1975년부터 King Crimson은 활동을 중지했고, Genesis는 Phil Collins가 Peter Gabriel의 역할을 해나가면서 급작스럽게 Pop그룹으로 변모해갔다. Pink Floyd는 두 번째 휴지기를 맞으며 Roger Waters의 솔로 프로젝트 그룹으로 점차 전락하기 시작했으며, Yes 역시 공백기를 맞으며 Jon Anderson을 비롯 각 멤버들이 자신의 솔로앨범 제작에만 몰두했다. 영국 Progressive Rock의 공황기인 1975년과 1976년, 이 휴지기 동안에는 수퍼 그룹들의 Best앨범, 실황음반들만이 쏟아져 나왔고 영국 Progressive Rock의 역사를 간신히 연명해 나가는 시기였다. 다만, Jethro Tull과 V.D.G.G. 그리고 Hen교 Cow등만이 이 기간에 폭넓은 활동을 벌였을 뿐이다. 1976년 여름, Punk가 런던을 강타했고, 1976년말부터 1977년까지 Disco가 전 세계 음악시장을 휩쓸면서 Progressive Rock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되었다. 이 기간은 각 그룹의 음악적 분기점이기도 했다. Pop지향으로 돌아선 Genesis에 이어 EL & P가 “Works I"을 발표한 직후 ”Works II"와 함께 사향길을 걷기 시작한다. Renaissance는 “Novella"와 ”A Song For All Season"를 발표한 후 Pop그룹이 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 중 UK의 출현은 영국 Progressive Rock의 끈질긴 생명력을 실감하게 했다. 이에 반해, 영국 Progressive Rock의 쇠퇴기에 적절히 상업성을 띤 Pomp Rock(Symphoni Pop, Orchestral Pop)계열의 그룹들은 이 시기에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된다 Electric Light Orchestra, Supertramp, The Alan Parsons Project등은 Progressive Rock 그룹들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 상업성까지 강하게 함축하고 있었다. 1971년 버밍햄에서 결성된 E.L.O.는 Move의 후신 그룹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E.L.O.는 라이브 무대에서 시청각을 중요시하는 Progressive Rock으 전형적인 라이브 무대를 연출하기도 했고, 역시 Pop에 Classic을 도입 가벼운 Progressive Rock스타일을 유지하여 보다 쉽게 청중들에 다가 설 수 있었다. 1960년대말에 결성된 Supertramp는 1970년대 중반부터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역시 상업성이 깃든 가벼운 스타일의 Progressive Rock을 행하면서 “Even In The Quietest Moments(1977)"와 ”Breakfast In America(1979)“등의 앨범들로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엔지니어, 제작자로 유명한 Alan Parsons에 의해 결성된 프로젝트 팀 The Alan Parsons Project 역시 영국 Progressive Rock의 쇠퇴기에 결성되어 가벼운 Progressive Rock스타일로 성공한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1980년, Neo-Progressive Band의 출현 국내 FM방송에서 본격적으로 Progressive Rock이 소개되기 시작했을 때, Progressive Rock의 종주국 영국에서는 Neo-Progressive Band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The Silmarillion(후에 Marillion), IQ, Pallas, Zeus Pendragon(후에 Pendragon), Art, Solstice, Twelfth Night등등이 대표적인 그룹들이다. 이들은 영국 남부에서 대부분 결정되었던 선배 그룹들과는 달리 보다 폭넓은 지역에서 결성되었으며 주로 대학가에서만 인기를 누렸다. Twelfth Night은 Reading대학 출신들로 리딩에서 결성되었고, IQ는 Southampton에서, Zeus Pendragon은 Gloucestershire에서, Silmarillion은 옥스퍼드 근교 Aylesbury지역에서 그리고 Pallas는 스코틀랜드 수도 Glasgow에서 결성되었다. 선배들이 1960년대 말에 활약했었던 런던의 Marquee클럽이 역시 이들의 주요무대가 되어주었는데 Solstice만을 제외하고 이들의 사운드는 Peter Gabriel이 이끌었던 Genesis전성기 시절의 음악을 표방했다. 10년전 선배들과 이들의 사운드가 확연히 다른점은 보컬이 Punk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점과, 연주가 1980년대초 New Wave처럼 보다 Electric Sound가 강조되었다는 점 그리고 여러 면에서 사운드가 단순해졌다는 점이다. 가사나 스케일면에서도 간단 명료해졌으며, 사운드가 보다 기계적이며 차갑다. 선배가 아날로그라면 후배인 Neo-Progressive Rock Band는 디지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통 Progressive Rock과 Neo-Progressive Rock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다. 서로 별개의 음악 영역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11 영국 ART ROCK의 역사 No.4 첨부 파일 (37)
마음풍경
3045 2009-01-25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4회 British Psychedelia - 2부 Psychedelic Culture의 근원 Bohemians - The Lost Generation Bohemia로부터 서구유럽으로 짚시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이었으며 이들은 Bohemian으로 불리웠다. 1848년, Thackeray의 소설 "Vanity Fair"를 통해 보헤미안이라는 단어의 뜻은 순수한 짚시라는 뜻에서 “현대사회속의 짚시”를 지칭하게 되었고 1949년 Henri Murger의 작품 “Scenes De Vie De Boheme"에서 보헤미안의 뜻은 파리에서 살아가는 가난하고 정열적인 예술가들을 일컬었다. 이 단어는 1910년 들어서면서 가난하며 고집이 세고 행실이 좋지 못한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을 지칭하는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후 전위예술가도 그 범주안에 넣어 부르곤 했다. 유럽의 보헤미안들은 주로 값싼 학교 기숙사에 머물면서 생활했다. 1890년, 미국 뉴욕의 보헤미안들의 경우는 유럽의 보헤미안들이 값싼 학교 기숙사에 머물렀던 것처럼 생활비가 적게들었던 Greenwich Village에 모여 살았다. 그러나 Greenwich Village에서 생활했던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1차 세계대전후 그 곳을 떠났다. 1926년, Ernest Hemingway는 소설 “The Sun Also Rises"에서 1차 세계대전동안 젊은 성인으로 자라난,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미래가 없어 보이던 세대들을 The Lost Generation으로 표현했다. 그후 Lost Generation은 Beat Generation으로 불리우게 되는 것이다. Hep, Hip, Hipster, Beat 그리고 Hippie 1900년초 Jazz Musicans들 사이에서 hep이라는 단어의 뜻은 “세련된”이라는 의미였단. 그러난 1931년에 들어서면서 이단어는 종종 hip으로 발음되면서 결국 1945년경에 hip으로 정착되었고 당시 hipster라는 뜻은 미국 서부지역에서 탄생하기 시작했던 Progressive Jazz를 행하는 뮤지션들을 가르켰다. 1957년 새로운 타입의 젊은이들을 가르키는 말로 대문자 B로 시작되는 Beat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단어는 멋진 젊은 대학생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범위가 크게 확장되어 전후세대, 원자폭탄 세대, 그리고 부와 명예를 등지고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주장했던 젊은이들을 총칭하게 된다. 1960년대 중반에 서서히 불붙기 시작하여 1960년대말에 대폭발을 일으키게되는 사이키델릭 문화는 Beats작가들과 시인들에 의해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Jack Kerouac(1922~1969), Allen Ginsberg(1926~1997) 그리고 Gregory Corso(1930~2001)등이 Psychedelic Culture의 근원이라할 수 있는 Beats의 대표적인 문학가들이다. 그들의 추종자들은 Beatniks라고 불리웠으며, 이 단어는 1958년 4월 2일 샌프란시스코의 코로니클지 Herb Caen의 시사컬럼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1957년 10월에 발사되었던 인류최초의 러시아 인공위성 “Spuntnik"과 최고의 행복감을 뜻하는 ”Beatific"으로부터 유래되었다. Allen Ginsberg는 1955년 자신의 시 “Howl"에서, Jack Kerouac은 1957년 소설 ”On The Road"에서 Beat에 대한 언급을 시작했다. Beats작가들은 인간 내면의 평화는 사회의 인위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자신들의 작품들을 놓고 토론하거나 관심을 갖는 청중들에게 시를 낭송하거나,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등 대중들과 잦은 접촉을 가졌다. 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할때는 줄곧 Cool Jazz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Cool Jazz가 분위기를 맞추는데 가장 적절한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Cool Jazz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그들의 Beat 문화작품에 가장 걸맞는 배경음악이었다. 같은해 Beats계는 엄청나게 불어나는 수요로 Hipster들의 지지를 받게되었고, 이ㅣ러한 Hipster들은 처음으로 Hippies라고 불리우기 시작했다. 1960년대초, 모든 사람들은 사회와 결별한 문제아들을 히피라고 불렀다. 생활이 자유분방하고, 누더기 옷이나 낡은 청바지를 입고 샌달을 신고 다니며 간이 침랑속에서 잠을 자는 이른바 1960년대 길거리의 젊은이들이 바로 히피였다. 당시 기성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히피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과 신경을 곤두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기성세대들은 Hippie들의 온상지로 불리웠던 Hashbury지역에서 벗어나려했는데 이 지역는 샌프란시스코의 두 거리 이름들 “Haight"와 ”Ashbury"를 합성한 구역이름이다. 물론 이 지역의 이름으로부터 은어 Hash와 Hashish가 파생되었다. 사랑과 평화를 주장했던 히피들의 추종세력들은 히피를 가르켜 ‘Flower Children'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에 반대하는 이들은 히피를 가르켜 Beatniks라고 불렀다. 1950년대중반까지 Beats의 삼대 거목들인 Jack Kerouac, Allen Ginsberg 그리고 Gregory Corso의 활동무대는 뉴욕이었다. 그러나 1950년 중반,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게 된다. 이때 샌프란시스코에는 Kenneth Rexroth(1905~1982), Lowrence Ferlinghetti(1919~), 그리고 Gary Snyder(1930~)등이 Beat계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라나 그들의 Beat운동은 문학계로부터 지탄을 받았으며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고 폭력사태로 무너지게 된다. 이때 Allen Ginsberg만이 뉴욕으로 되돌아왔으며 나머지 작가들은 대중들과의 만남과 공연을 중지하고 샌프란시스코에 남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Beat운동은 샌프란시스코에서 1959년에 종식되었다. 그러나 Beat운동의 사상은 1960년대 히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히피들의 Flower Power는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뿐만 아니라 전유럽의 젊은이들의 음악, 패션, 언어 그리고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특히 음악의 경우 이러한 영향은 Psychedelic Music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영국런던의 Notting Hill 미국의 Psychedelic Music이 마약 병폐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고 베트남 전쟁의 반대 반전사상을 이슈로 내걸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국의 Psychedelic Music은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술적, 정신적 자유를 내세웠고 메세지보다는 사운드 전달을 중요시 여겼던 미국의 경우 대규모 집회 대형 야외 콘서트들(Woodstock, Monterey)을 통하여 넓게 확산된 반면, 영국의 경우는 소규모의 클럽, 선술집등의 조그만 공간에서 서서히 확산되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서부지역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거대한 사이키델릭 문화가 정착되었고, 동부지역에서는 규모면에서 샌프란시스코보다는 작았지만 뉴욕 East Village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영국은 런던(지난호에서 간단히 언급되었던 Carnaby Street)특히, Notting Hill 지역을 중심으로 사이키델릭 문화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지역적으로 Notting Hill은 집세가 저렴하여 가난한 뮤지션들이 생활하기에는 가장 좋은 보금자리였다. 또한 Notting Hill은 영국 흑인음악의 메카였으며 병폐문화의 지하 거래처였다. International Times 미국 뉴욕에서 발간되는 Village Voice나 East Village Other가 당시 미국의 사이키델릭과 언더그라운드 인쇄 문화의 산실이었으면 영국의 경우는 당연히 International Times(IT)가 그 역할을 해내었다. IT는 영국인 Mile Hopkins와 John Hopkins가 미국인 출판인 Jim Hayens와 함께 설립한 언더그라운드 신문이다. Jim Hayens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서점과 극장 그리고 런던에 예술연구소를 세운바있는 기업가였다. Miles형제는 그에게 Indica서점의 지하를 사무실로 사용하도록 배려를 해주었고 세명의 출판인들은 동업으로 영국 언더그라운드 세계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게될 전문지를 구상하게 된다. 그들은 새롭게 발간될 언더그라운드 신문의 이름을 찾다가 그들이 무심코 내뱉은 문장 “What Should We Call It?"의 인칭 대명사 ”IT"를 신문의 이름으로 채택했다. Psychedelic Music의 지침서 미국의 Psychedelic Music을 다른 장르와 구별짓기는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영국의 Psychedelic Music을 다른 장르로 분류하는데는 커다란 어려움이 뒤따른다. 1960년대말경에 활동했던 각 장르의 연주자들 대부분이 한번쯤은 Psychedelic Music에 접근하는 시도를 행했기 때문이다. 1984년 Vernon Joynson의 The Acid Trip "A Complete Guide To Psychedelic Music"(Babylon Books)이라는 조그만 책자가 영국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자는 미국, 영국의 사이키델릭을 구분하여 그룹별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 사이키델릭 지침서였는데, 어느정도 국가별, 지역별 분류는 잘 이루어져 있으나 서문에서 저자가 못내 아쉬워했던 것처럼 자료의 궁핍은 이 지침서의 가치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특히, 영국파트에서는 그룹선정과 해설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8년 Vernon Joynson은 첫 번째 책자에 내용을 보강시킨 After The Acid Trip “The Flashback" (Bordeline Productons)이라는 책자를 내놓았으나 역시 자료적인 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The Acid Trip "A Complete Guide To Psychedelic Music" After The Acid Trip "The Flashback" (Borderline Productons) British ART ROCK Groups Guide(Psychedelic Ear : 1967~1970) 지면관계상 Super Group과 국내에 잘 알려지 있는 그룹들 그리고 AR에서 자주 다루었던 그룹들은 부득이 본란에서 제외 되었음을 밝힌다. - 편집자 주 H-Z Hapshash And The Coloured Coat Herbal Mixture Groundhogs의 멤버들이었던 Tony Mchphee와 Peter Cruickshank가 재적했었던 그룹이다. 이들은 1966년 7월 단 두장의 싱글들을 발표하고 해산되었다. Manfredd Mann의 곡 Machine이 담겨있는 두 번째 싱글은 우수한 사이키델릭 넘버로 기록되었다. Tony T.S. McPhee (guitar, vocals) Pete Cruickshank (bass) Mike Meekham (drums) High Tide The Human Beast Gillies Buchan을 중심으로 결성된 3인조 Heavy Psychedelic Band로 이들은 Decca로부터 Volume One이라는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Gillies Buchan (guitar, vocals) Edward Jones (bass, vocals) John Romsey (drums) Album : Volume One (1970) ICE 1970년대중반에서 활약했던 Passport레코드사 소속의 동명그룹과 별개의 그룹, 1967년에 데뷔한 5인조 Psychedelic 그룹 ICE는 Decca레코드사가 크게 기대했던 그룹이었지만 레코드사측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이들의 데뷔 싱글은 강렬한 오르간연주가 돋보이며 그룹명의 싱글은 Guitar Work이 매우 뛰어나 보인다. Kevin Martin (saxophone, vocals, synthesizers), Justin Broadrick (guitar) Dave Cochrane (bass) John Jobaggy (drums) Lou Ciccotelli (drums) The Idle Race Jody Grind John's Children July Kaleidoscope Little Free Rock Magic Mixture Man 마치 Pink Floyd처럼 Psychedelic시대를 거쳤던 Progressive Rock그룹이다. 영국 웨일즈 남동부 항구도시 Swansea출신의 The Bystanders가 이들의 전신그룹이다. 이들의 초창기 사운드는 마치 미국의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를 연상시킨다. Micky Jones (lead Guitar, vocals) Clive John (keyboards, vocals) Roger Leonnard (Guitar, vocals) Jeff Jones (drums, percussions) Ray Williams (drums, vocals) Mighty Baby Nirvana The Open Mind Orange Bicycle Principal Edwards Magic Theatre Siren Skin Alley Tangerine Peel 싱어송 라이터인 Mike Chapman이 이끌었던 Nicky Chinn과 공동으로 출범시킨 듀오그룹 Tangerine Peel은 1969년 2월 MGM사로부터 데뷔싱글이자 대표작 “Never Say Never Again/Thousand Miles Away"로 데뷔했다. 이들은 2년동안 5매의 싱글과 한매의 앨범을 남겼으며 몇몇 작품들이 Psychedelic 범주에 놓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Album : Soft Delights (1970) Toby Twirl 본래 Shades Of Blue이름으로 1965년부터 1966년동안 3매의 싱글을 남겼던 5인조 그룹명을 바꾸면서 Decca레코드와 계약 1968년부터 1969년까지 또다른 3매의 싱글을 남기고 해산되었다. David Holland (vocals) John Reed (drums) Barry Sewell (organ) Stuart Sommerville (bass) Nick Thornburn (lead guitar) World Of Oz Writing On The Wall 아티스트 소개부분은 싱글앨범만 발표한 그룹외 다른그룹들은 앨범 자켓이미지와 함께 ARTIST, REVIEW에 링크하였습니다. Art Rock Magazine No. 8 (1995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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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풍경
2297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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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영국 ART ROCK의 역사 No.3 첨부 파일 (7)
마음풍경
5042 2009-01-21
영국 ART ROCK의 역사 제3회 British Psychedelia - 1부 미국-Sanfrancisco 1967년과 1968년은 미국과 더불어 영국에서도 사이키델릭 문화가 창작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미국의 경우,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The Door, The Great Society Jefferson Airplane, Big Brother & The Holdig Company, The Greatful Dead, Country Joe & The Fish, Quick Silver Messenger Service, The Electric Flag, It's A Beautiful Day, Blue Cheer, Sly And The Family Stone 등이 미국 서해안지방 특히,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배경으로 대활약을 했었다. 물론 그 외 지역에도 이러한 사이키델릭 요소를 지닌 그룹들이 존재했었다. 그들중 아마 텍사스 어스틴 출신의 13th Floor Elevator를 결코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당시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가 꽃을 피우는 문화, 에술의 도시로서 세계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1940년대, 1950년대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미동부지역에서 확산되었던 문화, 예술들이 1960년대 중반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미서부 지역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들(예술인들과 짚시들, 히피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사랑, 평화를 위해 - Flower Movements의 돌풍을 일으키며) 이 샌프란시스코로 집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대열속에서는 영국에서 Animals의 신화를 이룩했던 Eric Burdon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 Eric Burdon & Animals도 있었으며 우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룹들도 상당수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Moby Grape, Chicago에서 내려온 Charlie Musselwhite의 Blues Band와 5인조 그룹 Linn County, New York에서의 Blues Project를 그만두고 대륙횡단을 감행한 Sea Train, 역시 머나먼 뉴욕에서 달려온 The Youngbloods, Seattle에서 온 Salvation, Berkeley출신의 Notes From The Underground와 Mad River, 샌프란시스코의 초기 언더그라운드 밴드 The Charlatans,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The Mystery Trend와 Chocolate Watch Band, 스튜디오 그룹 Fifty Foot Hose, Jefferson Airplane 스타일의 Neighborhood Children, 기억속에서 어렴풋이 존재하는 Pacific Gas And Electric, 어느정도 대중적 성공을 이끌었던 Sopwith Camel, 이름이 거창한 West Coast Pop Art Experimental Band 등등... 영국-London 위와같이 미국 사이키델릭의 발상지, 중심지가 샌프란시스코였다면 영국의 경우는 확실히 런던이었다. 런던의 중심지를 기점으로 전유럽에서 밀려들어오는 젊은이들 히피들은 런던의 Carnaby Street에 모여 들었다. 그들은 런던의 중심가를 배회하며 Boutique와 Shop에 전시되어 있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화려한 의상, 환상적인 그림들을 즐겼으며, 밤에는 클럽에서 개최되는 신비로운 Psychedelic Rock을 체험하였다. 비틀즈는 이러한 새로운 사조에 편승, Baker Street에 Apple 브띠끄를 개장했고 Tottenham Court Road에 위치한 UFO클럽은 이상한 복장을 한 히피들의 모임장소가 되었다. Marquee Club과 Middle Earth Club도 UFO클럽과 다를 바 없었다. 1967년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동안 Alexandra Place에서 펼쳐진 14-Hours Technicolour Dream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펼쳐졌던 Be-In(히피들의 모임)과 유사한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는 이 행사의 타이틀 곡을 작곡했던 그룹 The Syn을 비롯, Pink Floyd, The Soft Machine, The Crazy World Of Arthur Brown, John's Children, Tomorrow, The Flies등등 모두 41개 팀들이 참가했었다. British Psychedelic 영국 사이키델릭의 출발을 역시 비틀즈의 ‘Strawberry Fields Forever'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물론 이곡이 사이키델릭 성격을 띤 첫 번째 성곡작, 대중에게 zaj다란 호응을 얻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LSD를 상징)‘와 ’A Day In The Life'등은 비틀즈가 남긴 사이키델릭 명곡으로 알려져 왔다. 물론, 두곡 모두 BBC방송으로부터 금지곡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만 했었다. 비틀즈는 인도의 Maharishi Mahesh를 방문했고, Geoge Harrison은 동양의 철학과 음악을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표햇으며, John Lennon은 이때부터 인류의 평화를 부르짖는다. 하지만 비틀즈 다음으로 영국음악계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Rolling Stones는 사이키델릭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게 주목을 받을만한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의 사이키델릭 앨범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보다는 멤버들의 약무루복용과 체포 그리고 법정시비등등 항상 좋지못한 화제만 뿌리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경우처럼 Modern Folk, Folk Rock등은 Psychedelic Rock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영국의 Folk계를 이끌었던 Donovan의 경우 사랑, 평화, 그리고 행복을 노래한, 당시 이슈에 걸맞는 많은 작품들을 히트시켰다. Folk Rock, Art Rock그룹 Traffic도 여러 사이키델릭 싱글들을, 운이 좋게도 금지곡 없이 히트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Psychedelic Rock과 영국의 Psychedelic Rock이 크게 다른 점은 미국의 것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중요시 여겼던 반면, 영국의 것은 이러한 이슈보다는 정신적, 예술적인 자유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당시 젊은이들이 가장 커다란 이슈로 내걸었던 평화와 사랑이 바로 베트남 전쟁과 직결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사이키델릭은 가사의 전달 메시지 보다는 사운드의 전달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다. British Psychelic에 영향을 준 또하나의 부류는 역시 블루스였다. Art Rock의 시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Cream도 초창기 영국의 사이키델릭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그룹이었다. 그러면 영국 사이키델릭 시대의 중요한 Art Rock 그룹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British Art Rock Groups Guide(Psychedelic Era : 1967~1970) A-Austr Aardvark AMM Andwellas's Dream Apple Arcadium ART The Attack Birds Thunderbirds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Essex 출신의 5인조그룹은 미국 Motown스타일의 R&B를 연주하다가 그룹명을 Birds로 개칭하고 Psychedelic Rock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Decca를 통해 3매의 싱글과 Reaction을 통해 Birds Birds라는 그룹명으로 한매의 싱글을 남겼다. 이들은 미국의 Folk그룹 Byrds와 그룹명에 대한 논쟁을 벌여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Alistair McKenzie (vocal) Ronnie Wood (guitar) Tony Monroe (guitar) Kim Gardner (bass) Pete McDaniels (drum) Black Widow Chords Five The Smoke 라는 그룹명으로도 활약했던 Psychedelic Group으로 오직 3매의 싱글들을 남겼다. Mick Rowley (vocals) Mal Luker (lead guitar) John "Zeke" Lund (bass) Geoff Gill (drums) The Crazy World Of Arthur Brown The Creation Dantalian's Chariot 1960년대말부터 1970년대초까지 폭넓은 세션맨으로 각광을 받게되는 Zoot Money가 The Big Roll Band를 해산시키고 결성한 Psychedelic Band이다 이 그룹은 런던의 Middle Earth Club의 무대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 그룹에서 기타파트를 맡았던 인물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Police의 Andy Summers였다. 그러나 이들은 오직 한 장의 싱글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 한매의 싱글은 아직까지도 영국의 뛰어난 사이키델릭 음반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Andy Summers (guitar) Pat Donaldson (bass) Colin Allen (drums) Zoot Money (keyboards, vocals) The Deviants Simon Dupree And The Big Sound Velvet Opera The End Fairytale 생명력이 매우 짧았던 Lancaster출신의 사이키델릭 밴드이다. 이들은 Decca로부터 단 2매의 싱글을 남겼다. Fat Mattress Fire The Fleur De Lys "Fleur De Lys라는 이국적인 매우 독특한 그룹명으로 등장한 Southampton 지역출신의 4인조그룹이다. 이들은 사이키델릭 시대에 여러 런던 클럽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던 그룹으로 레코딩 경력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앨범은 단 한 장도 발매되지 않았으나 총 10장의 싱글을 남긴 그룹이다. 특히 Brian Haworth의 훌륭한 사이키델릭 기타 사운드가 담겨있는 이들의 초창기 싱글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초메가급 희귀음반들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Rupert People이라는 또다른 그룹명으로도 3장의 싱글을 남기기도 했다. Second Guitar 파트를 담당했던 Pete Sears는 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Stoneground라는 그룹과 Jefferson Starship의 세션주자로 참가했던 인물이다. The Files 스테이지에서의 무대활약이 매우 뛰어났던 그룹 The Files는 The monkees의 ‘I'm Not Your Stepping Stone'을 사이키델릭으로 변주하여 1966년 주목을 끌기시작했다. 이들 역시 앨범은 발매하지 못했으나 영국의 사이키델릭 시대에 3장의 훌륭한 싱글들을 남겼다. The Game Surrey Micham 출신의 젊은이들로 결성된 전설적인 사이키델릭 그룹이다. 이들은 런던의 토박이 흑인 흥행가 Kenny Lynch가 메니저로 나섰던 그룹이기도 하다. 이들은 영국 사이키델릭 역사에 남을 4장의 싱글을 남겼다. 물론 이 싱글들은 현재 레코드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Terry Boyes (vocals, harmonica) Reg Charsley (vocals) Terry Spencer (lead guitar) Tony Bird (rhythm guitar) Allan Janaway (bass) Jimmy Nelson (drums) Terry Goodself (drums) Gnidrolog Grapefruit Art Rock Magazine No. 7 (1994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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