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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2443
2009.12.04 (20:50:22)

Progressive Rock 탐구

프로그레시브 매니아들에게
60년대가 낳은 또 하나의 이단아 프로그레시브는 그 시초부터 그것을 어떤 교리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노력을 배제했다. 그들은 어떤 주의를 관철시키려고 한 것이 아닐 작곡과 연주활동을 통해서 리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욕구를 충족시켰으며, 또 그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창조의 핵심이었다. 그 진보주의자들은 초현실적 사고체계와 불가사의를 이용해서 의식적인 사고과정을 분열시키고, 환상과 비현실적 가치관의 예술적 가능성을 개척함으로써 잠재의식의 활동을 해방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록과 깊은 영향력을 주고 받은 새로운 감수성의 음악 형식을 창조햇으며, 그것을 통해 광범위한 개인적 욕구와 현실을 변형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켰다.
그들의 이러한 시도가 록 사운드 안에서 하나의 미적개념으로 정착되기까지는 일종의 ‘미학적 반란’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완전한 영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대중예술 전반에 걸친 미학적 반란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독자성이 여타 대중음악과의 완벽한 격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아무리 비범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 속에서만 안주했다면 그들은 결코 새로운 가치체계를 확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진보의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하라는 자신들의 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나간 역사와 당면한 현실, 그리고 꿈 속에 등장하는 미지의 미래로부터 근원을 이끌어 내는 예리한 창조자들의 집단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진보적 음악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록의 모든 지류들과 대중음악의 역사와 함께 해온 전반적 표현양식, 그리고 수백년에 이르는 클래식의 아성을 총괄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음악 양식의 총체적 이해가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섭취가 가능한 음아가이 바로 프로그레시브인 것이다. 그러면 국내 매니아들의 의식은 어떠한가?
안타깝지만 우리들 중의 대부분은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프로그레시브의 열성 팬임을 자처하면서도 진보 음악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내용물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모순에 빠져 헤매이는 매니아들이 우리의 음악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총체 음악이란 프로그레시브의 특징을 고려할 때, 이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필자는 특별한 것을 갈망하는 진취적 매니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가능한 한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편견 없이 골고루 섭취하라!’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관심이 이끄는 대로 청각을 옮겨간다면, 그리고 ‘특별’이란 존재 역시 수많은 일반적인 요소들에 의해 창조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위의 제안은 결코 무리한 노력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탈리안 록의 특징
베일에 가려져 있던 유럽의 진보 음악군들이 국내 매니아들에게 처음 소개되었던 시기는 80년대말 전으로 기억된다. 그 새롭고 신비로운 음악들에 대한 매니아들의 지지도는 실로 놀라울 정도의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그 중 특히 이태리의 아름다운 프로그레시브 사운드는 이미 국내 애청자들의 생활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 음악의 국내 수용 과정에서 비교적 몇 걸음 늦은 감이 있었던 이태리의 진보 음악이 앞서가던 록의 분파를 제치고 국내 매이아들에의 최고의 선호도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탈리안 록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태리의 진보 음악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특징은 부자연스러운 세계 지향적 망상이 아닌 소박하고 진실된 이태리인의 정서에 음악적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록 만큼 자국의 토양과 민족성에 충실한 음악이 또 있을까? 실제로 우리는 라떼 에 미엘레, 방코, 오잔나, Q.V.L.등의 음악을 들으며 유럽 문명의 빛과 영광, 발생지인 지중해 연안의 풍부한 이미지들을 어떤 책을 읽을 때보다도 선명하게 느껴 왔다. 즉 그들은 음아이라는 형식을 빌어 자신들의 역사와 감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안 록이 가지는 또 다른 특징은 대부분의 그룹들이 지역적인 특징을 표방하고 있다라는 점이다. 그 지역적인 음악 군은 이태리 제 1의 항구도시인 제노바를 비롯해서 나폴리, 로마, 밀라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각각의 도시들은 개별적인 색채의 음악성을 견지해 왔다. 이탈리안 프로그레시브의 대표적 밴드인 뉴 트롤즈(제노바), 오잔나(나폴리), 방코(로마)의 음악을 비교 분석해보면 이러한 지역적 이미지는 쉽게 노출될 것이다.
이탈리안 록의 세 번째 특징은 전통색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들이 ‘형식’을 사용하여 ‘내용’을 표출하는 과정은 이탈리아의 예술가들과 비슷한 상황 설정에 의한 것이다. 즉, 수 세시에 달하는 클래식의 권위와 전통적 음악관이 이탈리안 아트록 속에는 이상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이 이전의 이태리 음악과 구별되는 것은 형식에 대한 객관성과 그것을 파괴, 변혁시키고자 하는 아방가르드적 특성이 공통된 주제의식 속에 공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탈리안 록은 클래식의 도용을 뛰어 넘어 민족 음악의 ‘진보된 계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형식은 어디까지나 도구이고 그것이 얼마만큼 훌륭한 아름다움을 키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그들은 간과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날까지 그들의 음악이 애청되는 이유도 이탈리아의 록이 음악적 내용을 빌거나 모방한 아류가 아닌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뿌리 깊은 음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용이 알찬 음악이 화려한 외형에 치우친 음악보다 아름답다는 명확한 철칙을 우리의 매니아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같은 매니아의 한 사람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 록의 특징
프랑스의 진보 그룹들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다소 뒤늦은 감이 있었다. 영국이나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들어오던 70년대 중, 후반에도 프랑스 출신의 밴드로 국내에 알려진 것은 공, 마그마, 앙지 등이 고작이었다. 이처럼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진 프렌치 록계의 교두보로서 그 몇몇 그룹들이 일으킨 파문은 골수 매니아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흡사 이태리의 진보한 음악이 국내에 전해진 80년대의 충격과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절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내에 전파되기 시작한 프렌치 프로그레시브 시조는 이제 우리의 감성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산이 되어 있다.
프렌치 록의 국내 상륙에 뒤늦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에서 발생해 왔다. 즉, 그들은 같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다소 빈약한 록 문화를 가지고 있다. 물론 독일이나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등의 국가들 역시 빈약한 매니지먼트에 의해 희생되어 왔던 나라들이긴 하지만 프랑스의 록계는 보다 심각한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다. 그심각한 문제란 세계에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유명 그룹을 프랑스가 보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공 같은 밴드들도 리더인 데이빗 알렌이 영국의 캔터버리 출신 뮤지션이며, 소프트 머신의 결성 맴버라는 이유로 국제적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몇몇 그룹들은 국제적 레코드 메이커와 계약함으로써 미흡하나마 여러 국가에 알려질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등극 과정이 프렌치 로커들의 음악적 성숙도와 재능을 단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는 없다.
매니지먼트상의 한계와 영/미 우월주의를 뚫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까지 프렌치 로커들이 쏟은 음악에의 정렬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설정에 의해서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던 언더그라운드적 속성이 프랑스에도 불어닥쳤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고립은 뮤지션들로 하여금 자아의 음악세계로 침잠하게끔 만들었고, 세계 지향적 망상이 배제된 순수한 창작욕구들은 학구적 아티스트들에게 있어서 창조의 원동력이 되었다. 샤일록, 아라쉬노이드, 자오, 아르조위 등은 그 좋은 예이다. 그들은 재즈와 록을 바탕으로 클래식, 아방가르드, 민속음악까지의 다양한 영역들을 자신의 창조 공간으로 끌어들였으며, 다른 어떤 국가의 진보 그룹들 보다도 급진적으로 프로그레시브의 한계에 도전했다. 한편, 프랑스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멜로디 위주의 밴드들 중에서도 독자적인 스타일을 획득한 감성적 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은데, 그들은 마그마나 아라쉬노아 등과는 달리 자국의 토양과 민족성에 보다 근접해 있었다.
하지만 프렌치 록계의 골격을 형성해온 실력파 밴드들 실제로 프랑스 굴지의 기타리스트로 그룹 샤일록에서 활동했던 프레드릭 레피(Frederic L’Epee)나 그룹 아라쉬노이드에서 활동하던 니콜라스 포포우스키(Nicolas Popowski)의 연주는 모두 킹 크림슨의 발상에 기초하고 있으며,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연장선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또한, 라이트 쇼를 비롯한 여러 효과용 장비들을 스테이지 연출에 사용했던 모나리자의 시도는 넓게는 60년대 후반의 영/미 사이키델릭 사조로부터, 좁게는 제네시스 같은 영국 아트록 밴드들의 시도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뮤지션들이 독특한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창조해 냈다는 것은 그들 속에 숨쉬고 있는 프랑스인의 기질 탓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다른 여러 유난점으로 갖고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그들의 자부심은 프랑스의 록커들로 하여금 영국이나, 독일, 이태리 등에 못지 않은 진보미학을 잉태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
현재 전세계적인 록 시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독일은 이미 60년대 후반부터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록, 재즈 록, 일렉트로닉스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저먼 록의 독자성과 우월함이 세계적인 지지도를 확보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의 음악적 역사를 고려해 볼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고질적인 내향적 발전 형태, 국민들의 냉대 등은 저먼 록의 발전과 확대에 지속적인 걸림돌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들이 저먼 록의 독자성에 역설적인 플러스 요인이 되어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상업성의 부재는 뮤지션들로 하여금 보다 순수하고 학구적인 형태의 사운드를 창조하게 했으며, 외부와의 단절은 자아의 예술 혼과 음악성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독일의 록 음악은 다른 어떤 국가의 그것보다도 내향적이며, 아울러 학구성과 철학적 가치체계를 민족성으로 하는 게르만 민족의 근본에 위치해 있다. 실제로 60년대후반의 스윗 스모크(Sweet Smoke)같은 그룹들의 환각적인 레코딩 방식은 사이키델릭 강국인 미국과 영국의 애시드 밴드들에 비해 훨씬 지적이고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하드 록 밴드인 모닝(Moumin’)은 영/미의 록 밴드들이 누구의 하드 리프가 더 뛰어난가에 대해 경합을 벌이고 있을 때 실로 놀라울 만한 리프를 이펙트 처리된 색소폰을 사용하여 표출해 냈다. 또한 재즈 록 밴드인 크란(Kraan)은 와우와우 페달을 소프라노 색소폰에 연결 시켰으며, 타이거비 스미스(Tiger B. Smith)는 영국의 로드 아젠트(Rod Argent)에 필적할 만한 하몬드 올갠의 축제를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쏟아 내기도 했다.
이러한 지향 속에 성장한 가장 게르만적인 음악이 바로 이번에 소개되는 독일의 진보 음악들이다. 독일의 프로그레시브가 민족적 힘을 획득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두에 이르는 2~3년 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무렵은 오르(Ohr), 바실러스(Bacillus), 피츠(Pilz), 코스마취(Kosmiche), 브래인(Brain) 등의 마이너 레이블들이 속속 등장하던 시기였고, 기술 혁신에 의한 전자악기들이 속속 등장하던 시기였고, 기술 혁신에 의한 전자악기들의 발달이 절정에 달해 있던 혁신의 시기였다. 당시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수 많은 저먼 록 밴드들이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수용했을 때 그것은 거대한 흐름을 이루며 극히 게르만적인 진보 미학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일렉트로닉스를 필두로 포크, 재즈록, 아방가르드, 클래식, 민속음악 등의 다양한 작업들 속에서 꽃피운 그들의 사운드는 게르만 민족의 역사를 형성해온 전통과 감성, 학구성의 토대 위에서 자국의 음악적 유산을 결합시키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낭만주의, 신비주의 허무주의 등의 철학적 정신세계와 클래식, 현대음악 등의 음악적 유산들이 저먼 록 밴드들의 창조과정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해 온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러한 으미에서 보면 70년대 전체를 통해 진보주의 의자들이 이룩한 ‘독일의 동일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오늘날의 독일 음악을 형성해 왔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저먼 록을 비롯한 국제적 음악들이 세계 시장에 대한 헛된 망상 대신에 자아 내부에 흐르고 있는 민족적 자부심에 충실함으로써 값진 결실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중예술 분야에 있어서 후진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이룩해 놓은 성과는 동/서독의 통일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음악계에 중요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외국 음악의 정보와 가치에 휘말리기 보다는 그러한 기회들이 국내 음악의 발전에 하나의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간절한 바램이다.

기타 여러 나라의 프로그레시브 록
(스페인, 벨기에, 네델란드, 캐나다, 미국 기타)

프로그레시브 록의 사이드에서 비교적 소규모의 아트록 문화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 벨기에 네델란드, 캐나다, 미국,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그리스, 일본, 헝가리 등. 이러한 몇몇 국가들이 비록 수적으로는 다른 프로그레시브 열강들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했지만 음악적 성숙도와 재능에 있어서는 영국이나, 이태리, 독일, 프랑스 등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플라맹고 기타와 투우사를 연상시키는 접시의 나라 스페인 같은 경우는 로스 까나리오스(Los Canarios), 그라나다(Granada), 뜨리아나(Triana) 등이 항변해 왔듯이 성숙한 진보미학을 양산해 왔던 국가이다. 또한 네델란드, 벨기에 등도 어스 앤 파이어(Earth & Fire), 포커스(Focus), 핀치(Finch), 카약(Kayak), 트레이스(Trace), 수퍼시스터(Super-Sister), 유니버스 제로(Universe Zero), 프레센트(Present), 피타고라스(Pythagoras), 줄베르느(Julverne), 드래곤(Dragon), 코스(Cos) 등 수 많은 실력파 밴드들을 생산해 왔다. 이러한 국가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 및 미약한 록 문화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악조건 속의 고군분투가 때묻지 않은 언더그라운드를 형성하는 추진력이 된다는 것은 이미 다른 국가들의 경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Progressive In Progressive(1997. 11. 15)
글 : 오수석

번호 제목 별명 조회 등록일
36 no image 무역 이론
웹마스터
3536 2013-02-24
말은 거창하지만 별 내용은 없습니다. 무역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때 단순히 만들고 팔고가 아닌 어떤것을 어떻게 어디에 팔것인지에 관한것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일단 요즘 원정대의 주 무역품 생산지인 '초원의 띠'와 '하리하랄라야의 폐허' 이 두곳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곳에서 무역을 준비하시는분들 역시 기본적인 방법은 같으니 참고하셔도 무방합니다. 먼저 무역품에 대해서 알아보 도록하겠습니다. - 초원의 띠 환약 : 모링가 열매(10개) + 특산품 인증서 - 초원의 띠 박하사탕 : 박하(10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땅콩 잼 : 땅콩(40개) + 특산품 인증서 - 하리하랄라야 요리용 잎사귀 : 연꽃(50개) + 특산품 인증서 위의 4가지 품목에 대한 집중 분석을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무역품을 만들기 위해선 재료가 필요한데 재료를 입수하는 방법에는 1. 재배, 2. 구매 이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재배를 하는부분에 있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특산물 재료구매 : 물가의 변동성 때문에 무역을 준비하는 바로 그시기에 구매하는것은 항상 변동하는 물가의 방향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두배가까이 가격이 차이나기도 하니까요. 경매장을 통한 물품 가격 변동폭 박하(100개) : 1.10골드 ~ 1.80골드 모링가나무열매(10개) : 1. 30골드 ~ 2.00골드 땅콩(100개) : 2.00골드 ~ 2.90골드 연꽃(100개) : 1.20골드 ~ 3.50골드 대략적인 경매장가격입니다. 원가기준을 잡을때 무역품 하나의 가격은 절대 2.00골드가 넘지 말아야 한다(이것은 저의 철칙입니다.) 그렇다면 특산품 인증서 가격(50실버)에 특산물의 가격은 절대 1.50골드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되죠. 땅콩과 연꽃은 가격대가 상당히 안정적인 편이라 운반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특산품 제작에 1.50골드 이하로 까지 낮출수 있어서 나름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재료를 경매장을 통해 싼가격으로 올라올때 구매를 하고 미리 특산물을 제작한뒤 같이 무역을 할 분들을 모집하여 무역을 한다면 한결 수월할것이라 생각됩니다. *무역품 제작은 2골드 이하가 되도록 하라. 어디에 팔것인가... 이제 싼가격에 무역품을 제작하였다면 좋은가격에 팔아야겠지요? 물품을 팔곳은 5곳 정도로 정리가 되는데, 이니스테르(카오노르드), 두왕관(이즈나항구), 십자별평원(시차일드 부두),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자유도 등입니다. 이곳외에도 있습니다만 판매가가 좋지않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 이니스테르(카어 노르드) (초원의 띠) 박하사탕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환약 : 4g 67s(2g 33s ~ 7g ) 100% 기준에 50~150% (하리하랄라야 폐허) 땅콩 잼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요리용 잎사귀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 두왕관(이즈나 항구) 박하사탕, 환약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5g 05s(2g 52s ~ 7g 57s) 100% 기준에 50~150% - 십자별 평원(시차일드 부두) 박하사탕, 환약 : 5g 80s(2g 90s ~8g 7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 긴모래톱(황금 혀 항구) 박하사탕, 환약 : 7g 07s(3g 53s ~ 10g 60s) 100% 기준에 50~150% 땅콩 잼, 요리용 잎사귀 : 8g 50s(4g 25s ~ 12g 75s) 100% 기준에 50~150% 이상 4곳의 가격정보입니다. 자유도는 위험한 곳이라 저도 가격 확인 못했습니다 ^^ 하지만 제일 높은 가격을 받을수는 있으나 털릴 확률 80%에 팔수 있는 확률 5%, 15%는 배를 돌려 철수. 자유도는 소규모무역은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한곳(카오 노르드)를 제외한 나머지 3곳은 모두 서대륙에 위치한 판매처입니다. 패치로 인해 가격변동폭이 기존 80~120%에서 현재는 50% ~ 150% 변동이 된 상태입니다. 아마도 대량으로 가지고 가서 팔면 가격 폭락이 우려되오니 원정대 무역에서는 상품군을 다양화하는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설명은 어디까지나 소규모 무역(2~4명)선을 기준으로 한것으로 무역선 한대(무역품 20개)를 판다고 할경우엔 가격변동폭이 크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리없이 마구잡이로 쓰다보니 글내용이 두서가 없긴 합니다만 물품 구입과 판매에 대한 정보만 잘 확인하신다고 해도 도움이 도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캔들무역상회--
35 no image 아답터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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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3 2012-10-19
34 no image Pulsa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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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8 2012-10-18
1970년대 후반 융성의 극을 달리던 프렌치 심포닉계도 1980년대로 들어설 무렵 완전히 동면상태로 들어가 버린다. 태반의 그룹들이 해산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그룹도 사운드를 변화시키고 만다. 그러한 가운데 유일하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들의 사운드를 지켜낸 그룹이 있다. Pulsar의 역사는 오래전인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Lyon의 고등학교 밴드로 활동하고 있던 Free Sound라는 그룹에는 Phillipe Roman(b), Jacques Roman(Key), Gilbert Gandil(g, vo), Victor Bosch(ds)의 4인이 재적하고 있었다. 이 밴드는 당초 리듬 앤 블루스를 연주하였는데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David Gilmour의 스테이지를 보고서 사운드 정책을 프로그레시브로 전환하게 된다. 1966년 그룹 결성 이해 여러 번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1968년 전술한 4인으로 정착된 것이다 그들은 본고장 Lyon에서 정력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며 1970년 4월 Pulsar라 개명한다. 그리고 Malaval Festival, 이어서 1971년에는 그룹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에 참가한다. 이콘테스트에서 성공을 거둔 그들은 프랑스 투어를 벌이면서 차츰 인기를 모아나갔다. 또 Golf Druout에서의 콘테스트를 수록한 옴니버스 앨범 <Groovy Pop Session>도 1972년 발매되어 Ange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곡 “Pulsar”는 후의 그들의 사운드와는 다소 다르며 약가 헤비하고 혼탁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인기.실력을 한몸에 갖춘 그들은 1974년 12월 드디어 1집<Pollen>을 발매한다. 멤버는 전술한 4인에 플루트의 Roland Richard를 가입시킨 5인 편성이다. 곳곳에 Pink Floyd로부터의 영향을 느끼게 하면서도 상상력을 풍부히 가미한 섬세하고 몽환적인 부유감이 떠도는 사운드는 충분히 독창성을 감지할수 있는 아름답고 뛰어난 것이다. 팬 사이드에서도 이 앨범을 최고작으로 손꼽는 이가 적지 않다. 판매면에서도 일단 성공을 거둔 듯하다(이 앨범은 킹덤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고 영국에서도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1집 발표후 그들은 약 1개월에 걸친 영국 투어를 행하여 호평를 얻고 대형 그룹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1976년 4월, 2월 <The Strands of the Future>를 녹음한다. 이 앨범 제작시 베이스 Phillipe Roman이 탈퇴하고 게스트 형태로 참가하고 있다. Rock’n Folk지로부터 “이것은 풍부한 감성, 정렬로 충만한 대단히 뛰어난 앨범이다. Pulsar는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최상의 완성도를 지닌 그룹이다. 위대한 인상파 작곡가 말러와 같은 서정성을 감지하게 한다”고 호평을 받은 이 앨범은 사운드 퀄리티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SF적 부유감이 있는 A면의 대작, 서정적인 B면의 소품, 모두 그들의 독창성이 십분 발휘된 걸작이다. 판매면에서도 이 앨범은 대성공을 거두어 Ange, Atoll과 나란히 대형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2집 발표후 그들은 영국, 벨기에, 스위스, 포르투갈 등 장기간에 걸친 순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다. 이 인기를 눈으로 지켜본 프랑스 CBS는 좋은 조건을 내걸고 그들과 계약한다. 1977년 12월에 3집 <Halloween>이 발매된다. 베이스로 Michel Masson을 가입시킨 이 앨범은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초한 토탈 컨셉트 앨범이며 플루트와 멜로트론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비교할 바 없는 서정성을 갖춘 최고의 걸작이다. 또 이 앨범에서 홍보용(적어도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레코드에는 Special Promotion이라 명기되어 있다) 싱글 “Sorrow In My Dream/Dawn Over Darkness”가 커트되었다. 이 앨범은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자신넘치는 작품이었는데, 홍보 부족으로 말미암에 판매면에서 실패로 끝나고 만다. 3집 발표후 그들은 CBS를 떠나고 베이스로 탈퇴하여 활동이 부진하게 된다. 록계는 바야흐로 펑크, 뉴웨이브로 이행하고 있었으며그들에게는 겨울과 같은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980~81년에 걸쳐 Le Companie Du Theatre De La Satire라는 극단의 연극 세션을 맡았으며, 그 가운데 한 작품 “Bienvenue au Conseild Administraction”은 1982년 레코드화되고 있다. 컨템포러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데 Pulsar의 사운드는 건재하다. 그리고 이후로도 그들은 산발적으로 콘서트를 행하는등 활동을 계속하여 186년에는 Jacques Roman의 명의로 카세트 앨범 <Melodie Boreale>를 발매하였다. 릴랙스된 듯한 작품이지만 Pulsar 사운드의 아름다움만큼은 그대로 보존한 키보드워크는 그들의 사운드 정책이 지금도 불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프렌치 심포닉 역사의 정도를 걸어온 그들의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33 no image Art Zoyd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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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7 2012-10-17
프랑스의 록계에 아르 조이라는 이름의 그룹이 등장한 것은 70년대 초두의 일이다. 71년 그들은 마이너 레이블 Opaline에서 싱글 “Sangria/Something in Love”를 발매하였다. 그것은 60년대 록게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한 존재였던 크림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색소폰을 대담히 도입하는 등 독자적인 실험도 행한 의욕작이였다. 당시 그룹의 퍼스넬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는데 상기 레코드에서 판단컨데 기타, 베이스, 드럼, 색소폰으로 구성된 5인조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싱글의 A면은 R.Fernandez의 작품, B면은 R.Frenandez와 J.P. Dulion의 공동작품이고 어레인지는 Alain Loewenguth로 되어있지만 그들의 그룹의 멤버였는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76년 창설기의 멤버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아르 조이의 흐름을 이어받은 아르 조이 트르와(Art Zoyd 3)가 첫번째 앨범 <Symphonie Pour Le Jour Ou Bruleront Les Cites>를 발매하였다. Thierry Zaboitze(b, per, vo), Jean Pierre Soarez(Tp, per), Alain Eckert(g, per, vo), Gerard Hourbette(Vln, fl)의 4인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 독창성 및 이후의 록계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점에서 70년대 프렌치 프로그레시브 록 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를 록의 테두리 내로 교묘히 끌어들인 연주를 전개하는 트럼팻과 바이올린, 변박자를 많이 사용한 곡제작 등은 챔버록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를 중심으로 다수의 라이브를 행하였다. 82년 영국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된 싱글 “Manege”는 76년 2월 19일 팔레스 드 스포르트 듀 툴루즈에서 개막된 콘서트의 일부를 수록한 것이다. 그룹명을 다시 아르 조이로 되돌린 그들의 두번째 앨범<Musigue Pour L’Odyssee>는 유니베르 제로의 다니엘 데이스(ds), 미셀 베르그망(oboe, bassoon)을 게스트로 맞아들여 벨기에의 Overjse에서 녹음, 아템 레이블에서 발표되었다. 헨리 카우를 중심으로 하는RIO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들의 앨범은 레코멘디드 레이블을 통해 일본, 미국, 유럽 각국에 소개되어 그들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80년 2월 스위스의 Kirchberg에 있는 Sunrise Studio에서 세번째 앨범 <Generation Sans Futur>를 제작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템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도 다니엘 데니스가 가세한 작품이 1곡 수록되어 있는데 그 사운드는 전작의 아르 조이로서는 다소 클래식한 것에서 재즈적인 요소를 좀더 강조한 실험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시, 같은 해 7월에는 자주제작 음반인 이유로 프레스 매수가 적어서 이미 입수가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린 첫번째 앨범을 재녹음하여 네번재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오리지널 음반의 멤버에 Frank Cardon(Vln), Patricia Dallio(p), Gilles Renard(sax)가 가세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 오리지널 음반을 월등히 상회하고 있다. 가장 음악적으로 충실한 시기를 맞이한 아르 조이였지만 아템 레이블이 그만 활동을 정지해 버린탓에 다섯번재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영국의 레코멘디드 레이블에서 발매가 결정되어, 82년 4월~5월에 걸쳐서 녹음된 <Phase IV>는 더블앨범으로 재즈적 요소를 훌륭하게 승화시켜서 독자적인 챔버록으로 완성시킨, 아르 조이의 6년에 이르는 활동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작품이다. 83년에는 프랑스이 신흥 레이블 Cryonic에서 6집 <Escape Inquiets>를 발표 작품으로서의 힘이 다소 떨이지고 있지만 서서히 새로운 젙개를 추구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예상하던대로 84년 그들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였다. 우선 멤버의 한 사람인 Thierry Zaboitze가 극단 Le Collectif Theatral Du Hainaut의 <Promethee>를 위한 극장용 곡을 만들고, 그것을 솔로 앨범으로 발표하였다. 이어서 롤랑 프티의 창작 발레 “Le Mariage Du Ciel Et De L’enfant”에 그룹 차원으로 음악을 담당하여 그 일부를 7집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이들 작품은 그 성격상 음악적으로 종래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음악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2년이상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작을 내걸고 부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은 적지 않을 것이다.
32 no image 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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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no image JBL L-15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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