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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essive Rock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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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4 |
Progressive Rock 탐구 프로그레시브 매니아들에게 60년대가 낳은 또 하나의 이단아 프로그레시브는 그 시초부터 그것을 어떤 교리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노력을 배제했다. 그들은 어떤 주의를 관철시키려고 한 것이 아닐 작곡과 연주활동을 통해서 리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욕구를 충족시켰으며, 또 그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창조의 핵심이었다. 그 진보주의자들은 초현실적 사고체계와 불가사의를 이용해서 의식적인 사고과정을 분열시키고, 환상과 비현실적 가치관의 예술적 가능성을 개척함으로써 잠재의식의 활동을 해방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록과 깊은 영향력을 주고 받은 새로운 감수성의 음악 형식을 창조햇으며, 그것을 통해 광범위한 개인적 욕구와 현실을 변형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켰다. 그들의 이러한 시도가 록 사운드 안에서 하나의 미적개념으로 정착되기까지는 일종의 ‘미학적 반란’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완전한 영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대중예술 전반에 걸친 미학적 반란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독자성이 여타 대중음악과의 완벽한 격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아무리 비범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 속에서만 안주했다면 그들은 결코 새로운 가치체계를 확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진보의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하라는 자신들의 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나간 역사와 당면한 현실, 그리고 꿈 속에 등장하는 미지의 미래로부터 근원을 이끌어 내는 예리한 창조자들의 집단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진보적 음악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록의 모든 지류들과 대중음악의 역사와 함께 해온 전반적 표현양식, 그리고 수백년에 이르는 클래식의 아성을 총괄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음악 양식의 총체적 이해가 이루어진 뒤에야 비로소 섭취가 가능한 음아가이 바로 프로그레시브인 것이다. 그러면 국내 매니아들의 의식은 어떠한가? 안타깝지만 우리들 중의 대부분은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프로그레시브의 열성 팬임을 자처하면서도 진보 음악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내용물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모순에 빠져 헤매이는 매니아들이 우리의 음악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총체 음악이란 프로그레시브의 특징을 고려할 때, 이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필자는 특별한 것을 갈망하는 진취적 매니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가능한 한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편견 없이 골고루 섭취하라!’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관심이 이끄는 대로 청각을 옮겨간다면, 그리고 ‘특별’이란 존재 역시 수많은 일반적인 요소들에 의해 창조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위의 제안은 결코 무리한 노력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탈리안 록의 특징 베일에 가려져 있던 유럽의 진보 음악군들이 국내 매니아들에게 처음 소개되었던 시기는 80년대말 전으로 기억된다. 그 새롭고 신비로운 음악들에 대한 매니아들의 지지도는 실로 놀라울 정도의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그 중 특히 이태리의 아름다운 프로그레시브 사운드는 이미 국내 애청자들의 생활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 음악의 국내 수용 과정에서 비교적 몇 걸음 늦은 감이 있었던 이태리의 진보 음악이 앞서가던 록의 분파를 제치고 국내 매이아들에의 최고의 선호도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탈리안 록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태리의 진보 음악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특징은 부자연스러운 세계 지향적 망상이 아닌 소박하고 진실된 이태리인의 정서에 음악적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록 만큼 자국의 토양과 민족성에 충실한 음악이 또 있을까? 실제로 우리는 라떼 에 미엘레, 방코, 오잔나, Q.V.L.등의 음악을 들으며 유럽 문명의 빛과 영광, 발생지인 지중해 연안의 풍부한 이미지들을 어떤 책을 읽을 때보다도 선명하게 느껴 왔다. 즉 그들은 음아이라는 형식을 빌어 자신들의 역사와 감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안 록이 가지는 또 다른 특징은 대부분의 그룹들이 지역적인 특징을 표방하고 있다라는 점이다. 그 지역적인 음악 군은 이태리 제 1의 항구도시인 제노바를 비롯해서 나폴리, 로마, 밀라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각각의 도시들은 개별적인 색채의 음악성을 견지해 왔다. 이탈리안 프로그레시브의 대표적 밴드인 뉴 트롤즈(제노바), 오잔나(나폴리), 방코(로마)의 음악을 비교 분석해보면 이러한 지역적 이미지는 쉽게 노출될 것이다. 이탈리안 록의 세 번째 특징은 전통색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들이 ‘형식’을 사용하여 ‘내용’을 표출하는 과정은 이탈리아의 예술가들과 비슷한 상황 설정에 의한 것이다. 즉, 수 세시에 달하는 클래식의 권위와 전통적 음악관이 이탈리안 아트록 속에는 이상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이 이전의 이태리 음악과 구별되는 것은 형식에 대한 객관성과 그것을 파괴, 변혁시키고자 하는 아방가르드적 특성이 공통된 주제의식 속에 공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탈리안 록은 클래식의 도용을 뛰어 넘어 민족 음악의 ‘진보된 계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형식은 어디까지나 도구이고 그것이 얼마만큼 훌륭한 아름다움을 키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그들은 간과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날까지 그들의 음악이 애청되는 이유도 이탈리아의 록이 음악적 내용을 빌거나 모방한 아류가 아닌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뿌리 깊은 음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용이 알찬 음악이 화려한 외형에 치우친 음악보다 아름답다는 명확한 철칙을 우리의 매니아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같은 매니아의 한 사람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 록의 특징 프랑스의 진보 그룹들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다소 뒤늦은 감이 있었다. 영국이나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들어오던 70년대 중, 후반에도 프랑스 출신의 밴드로 국내에 알려진 것은 공, 마그마, 앙지 등이 고작이었다. 이처럼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진 프렌치 록계의 교두보로서 그 몇몇 그룹들이 일으킨 파문은 골수 매니아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흡사 이태리의 진보한 음악이 국내에 전해진 80년대의 충격과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절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내에 전파되기 시작한 프렌치 프로그레시브 시조는 이제 우리의 감성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산이 되어 있다. 프렌치 록의 국내 상륙에 뒤늦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에서 발생해 왔다. 즉, 그들은 같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다소 빈약한 록 문화를 가지고 있다. 물론 독일이나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등의 국가들 역시 빈약한 매니지먼트에 의해 희생되어 왔던 나라들이긴 하지만 프랑스의 록계는 보다 심각한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다. 그심각한 문제란 세계에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유명 그룹을 프랑스가 보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공 같은 밴드들도 리더인 데이빗 알렌이 영국의 캔터버리 출신 뮤지션이며, 소프트 머신의 결성 맴버라는 이유로 국제적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몇몇 그룹들은 국제적 레코드 메이커와 계약함으로써 미흡하나마 여러 국가에 알려질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등극 과정이 프렌치 로커들의 음악적 성숙도와 재능을 단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는 없다. 매니지먼트상의 한계와 영/미 우월주의를 뚫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까지 프렌치 로커들이 쏟은 음악에의 정렬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설정에 의해서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던 언더그라운드적 속성이 프랑스에도 불어닥쳤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고립은 뮤지션들로 하여금 자아의 음악세계로 침잠하게끔 만들었고, 세계 지향적 망상이 배제된 순수한 창작욕구들은 학구적 아티스트들에게 있어서 창조의 원동력이 되었다. 샤일록, 아라쉬노이드, 자오, 아르조위 등은 그 좋은 예이다. 그들은 재즈와 록을 바탕으로 클래식, 아방가르드, 민속음악까지의 다양한 영역들을 자신의 창조 공간으로 끌어들였으며, 다른 어떤 국가의 진보 그룹들 보다도 급진적으로 프로그레시브의 한계에 도전했다. 한편, 프랑스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멜로디 위주의 밴드들 중에서도 독자적인 스타일을 획득한 감성적 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은데, 그들은 마그마나 아라쉬노아 등과는 달리 자국의 토양과 민족성에 보다 근접해 있었다. 하지만 프렌치 록계의 골격을 형성해온 실력파 밴드들 실제로 프랑스 굴지의 기타리스트로 그룹 샤일록에서 활동했던 프레드릭 레피(Frederic L’Epee)나 그룹 아라쉬노이드에서 활동하던 니콜라스 포포우스키(Nicolas Popowski)의 연주는 모두 킹 크림슨의 발상에 기초하고 있으며,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연장선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또한, 라이트 쇼를 비롯한 여러 효과용 장비들을 스테이지 연출에 사용했던 모나리자의 시도는 넓게는 60년대 후반의 영/미 사이키델릭 사조로부터, 좁게는 제네시스 같은 영국 아트록 밴드들의 시도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뮤지션들이 독특한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창조해 냈다는 것은 그들 속에 숨쉬고 있는 프랑스인의 기질 탓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다른 여러 유난점으로 갖고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그들의 자부심은 프랑스의 록커들로 하여금 영국이나, 독일, 이태리 등에 못지 않은 진보미학을 잉태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 현재 전세계적인 록 시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독일은 이미 60년대 후반부터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록, 재즈 록, 일렉트로닉스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저먼 록의 독자성과 우월함이 세계적인 지지도를 확보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의 음악적 역사를 고려해 볼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고질적인 내향적 발전 형태, 국민들의 냉대 등은 저먼 록의 발전과 확대에 지속적인 걸림돌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들이 저먼 록의 독자성에 역설적인 플러스 요인이 되어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상업성의 부재는 뮤지션들로 하여금 보다 순수하고 학구적인 형태의 사운드를 창조하게 했으며, 외부와의 단절은 자아의 예술 혼과 음악성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독일의 록 음악은 다른 어떤 국가의 그것보다도 내향적이며, 아울러 학구성과 철학적 가치체계를 민족성으로 하는 게르만 민족의 근본에 위치해 있다. 실제로 60년대후반의 스윗 스모크(Sweet Smoke)같은 그룹들의 환각적인 레코딩 방식은 사이키델릭 강국인 미국과 영국의 애시드 밴드들에 비해 훨씬 지적이고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하드 록 밴드인 모닝(Moumin’)은 영/미의 록 밴드들이 누구의 하드 리프가 더 뛰어난가에 대해 경합을 벌이고 있을 때 실로 놀라울 만한 리프를 이펙트 처리된 색소폰을 사용하여 표출해 냈다. 또한 재즈 록 밴드인 크란(Kraan)은 와우와우 페달을 소프라노 색소폰에 연결 시켰으며, 타이거비 스미스(Tiger B. Smith)는 영국의 로드 아젠트(Rod Argent)에 필적할 만한 하몬드 올갠의 축제를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쏟아 내기도 했다. 이러한 지향 속에 성장한 가장 게르만적인 음악이 바로 이번에 소개되는 독일의 진보 음악들이다. 독일의 프로그레시브가 민족적 힘을 획득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두에 이르는 2~3년 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무렵은 오르(Ohr), 바실러스(Bacillus), 피츠(Pilz), 코스마취(Kosmiche), 브래인(Brain) 등의 마이너 레이블들이 속속 등장하던 시기였고, 기술 혁신에 의한 전자악기들이 속속 등장하던 시기였고, 기술 혁신에 의한 전자악기들의 발달이 절정에 달해 있던 혁신의 시기였다. 당시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수 많은 저먼 록 밴드들이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수용했을 때 그것은 거대한 흐름을 이루며 극히 게르만적인 진보 미학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일렉트로닉스를 필두로 포크, 재즈록, 아방가르드, 클래식, 민속음악 등의 다양한 작업들 속에서 꽃피운 그들의 사운드는 게르만 민족의 역사를 형성해온 전통과 감성, 학구성의 토대 위에서 자국의 음악적 유산을 결합시키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낭만주의, 신비주의 허무주의 등의 철학적 정신세계와 클래식, 현대음악 등의 음악적 유산들이 저먼 록 밴드들의 창조과정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해 온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러한 으미에서 보면 70년대 전체를 통해 진보주의 의자들이 이룩한 ‘독일의 동일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오늘날의 독일 음악을 형성해 왔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저먼 록을 비롯한 국제적 음악들이 세계 시장에 대한 헛된 망상 대신에 자아 내부에 흐르고 있는 민족적 자부심에 충실함으로써 값진 결실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중예술 분야에 있어서 후진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이룩해 놓은 성과는 동/서독의 통일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음악계에 중요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외국 음악의 정보와 가치에 휘말리기 보다는 그러한 기회들이 국내 음악의 발전에 하나의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간절한 바램이다.
기타 여러 나라의 프로그레시브 록 (스페인, 벨기에, 네델란드, 캐나다, 미국 기타) 프로그레시브 록의 사이드에서 비교적 소규모의 아트록 문화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 벨기에 네델란드, 캐나다, 미국,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그리스, 일본, 헝가리 등. 이러한 몇몇 국가들이 비록 수적으로는 다른 프로그레시브 열강들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했지만 음악적 성숙도와 재능에 있어서는 영국이나, 이태리, 독일, 프랑스 등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플라맹고 기타와 투우사를 연상시키는 접시의 나라 스페인 같은 경우는 로스 까나리오스(Los Canarios), 그라나다(Granada), 뜨리아나(Triana) 등이 항변해 왔듯이 성숙한 진보미학을 양산해 왔던 국가이다. 또한 네델란드, 벨기에 등도 어스 앤 파이어(Earth & Fire), 포커스(Focus), 핀치(Finch), 카약(Kayak), 트레이스(Trace), 수퍼시스터(Super-Sister), 유니버스 제로(Universe Zero), 프레센트(Present), 피타고라스(Pythagoras), 줄베르느(Julverne), 드래곤(Dragon), 코스(Cos) 등 수 많은 실력파 밴드들을 생산해 왔다. 이러한 국가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 및 미약한 록 문화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악조건 속의 고군분투가 때묻지 않은 언더그라운드를 형성하는 추진력이 된다는 것은 이미 다른 국가들의 경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Progressive In Progressive(1997. 11. 15) 글 : 오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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