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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9 (22: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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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ART ROCK의 역사 제2회 - ART SCHOOL
 
영국 ART SCHOOL의 성격
“1960년대 영국의 문화총체는 Art School에서 비롯되었다”라고 말했던 그래픽 디자이너 Marchbank의 말처럼 1966년경 Sketch_Club_Art_Centre_1953.jpgArt School학생들과 졸업생들에 의해 ART ROCK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고, 1960년대말과 1970년대 초에 황금기를 맞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1940년대와 1950년대 당시, 단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던 예술학교 학생들은 대학가의 주를 이루고 있었던 종합대학의 학생들과는 달리 학사, 석사, 박사등의 학위(Degree)가 아닌 기술과 능력을 인정받은 졸업장(Diploma)가 아닌 기술과 능력을 인정받음 졸업장(Diploma)하나만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있었다. 이들의 대부분이 중하층의 집안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이었고 고상한 Classic을 즐길 수 없었던 반면 Jazz나 Blues는 그들의 상황과 정서에 가장 걸맞는 대중음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Rock'n'Roll이 탄생했고 젊은이들의 상징적인 음악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나, 영국 예술학교의 젊은이들은 Rock'n'Roll보다는 Jazz나, Blues에 더욱 심취해 있었다.
1950년대말, Traditional Jazz붐이 영국을 강타했을 때 Art School의 재학생들이 가장 열심이었음은 두말할 것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Art School주변에는 Jazz와 Blues를 연주하는 클럽과 연주인들로 들끓고 있었다. 대모를 벌이는 경우에도 Art School학생들은 Rock'n'Roll이 아니라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부르며 거리를 행진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음악에 있어서는 Jazz와 Blues를, 정신적으로는 프랑스의 실천주의 철학을 문학에 있어서는 미국의 Beat문학을 추종하고 있었다. 또한 1950년대 대부분의 진보적인 Art과목들은 2차세계대전 이전의 독일 “Bauhaus"학파의 이론과 강의를 따르고 있었다.
1960ss대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Art School에 대한 열기는 절정에 이른다. Art School의 설립이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기존 학교에서도 많은 새로운 과목들이 증설되기 시작했다.19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29개의 대규모 Art School과 56개의 소규모 학교가 존재햇었던 것에 반하여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런던과 그 외곽지역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많은 Art School이 건립되었다.
학생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Hornesy와 같은 Art School의 경우 1957년에는 단지 200명의 학생들이 있었던 반면 1960년대에는 약 4배에 달하는 860명이 이 학교를 드나들게 되었다. Art School의 확장으로 졸업생 수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고 시대가 요구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각계층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를 만끽하고 기술을 익혔던 반면, 학구적인 것에는 강한 적대심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부유층들이나 귀족들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전형적인 환경에 만족하는 낙천주의 성격과 젊은 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성격을 결정지워 주는데에는 역시 Art School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상적인 배움터 ART SCHOOL
머리가 우수하거나 훌륭한 예술적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노동자계급과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Art School이야말로 그들의 뜻을 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장이었다. 대부분 예술학교 초년생들은 기초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훈cream.jpg련과 실험을 거친다. 특히 독특한 여러 실험들과 프로젝트들을 통해서 “무엇이 예술인가?”를 배운다. 여기에서 폭넓은 재료들과 기술들이 제공되어지며 그들은 머리로써 예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마음 그리고 느낌(잠재된 예술적인 능력을 끌어냄)으로써 무엇인가(예술)를 창출하는 것이다. Art School의 기초과정은 학생들의 능력을 분석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써 그들이 무엇에 관심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 판단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자마자 Art School로부터 대중음악계로 진출한 뮤지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즉, 이 과정속에서 그들은 Rock음악이 그들에게 가장 커다란 관시미사이며, 자신이 그 어떤 것 보다도 Rock음악에 능력이 있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구적인 과정이나 과목들과는 달리 Fine Art는 이론이나 구조적인 과정에 없매이는 것이 아니라 방법과 기술을 익히면 곧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분야이다. 즉, 그들은 도서관이나 강의실이나 세미나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나 작업실에서 탐구의 실험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특히, 음악학교 출신들의 몇몇 젊은이들은 이때부터 정통적인 음악적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양상을 보였다. 연주실에서 악보에 그려진 기존선율, 고전음악을 연주하려하기 보다는 Club과 Cafe에서 들었던 Jazz, Blues의 즉흥성에 더욱 매료되었고, 젊음에 불타는 Rock Music에 혼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ART SCHOOL학생들의 사고와 관심사 - Liberalism(자유주의)
1977년 Jam의 데뷔앨범 “In The City"에 첫 곡으로 수록된 ‘Art School'이라는 곡은 1960년대말의 영국 Art School의 ”문langleyweb1.gif화적인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Jam의 멤버들은 Art School출신들은 아니었다.
The art college was the flaw in the British Education system, a space where both middle and working class youth could deny the implications of pass and future and live out, however briefly, a fantasy of cultural freedum.
이곡에서 Fantasy라는 단어는 자유가 예술학도들에 의해서 착각속에 즐겨지고 있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아무튼, 예술학도들에게 자유가 흘러 넘쳤음은 여러 ART ROCK그룹들의 멤버들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규율이 엄격한 다른 학교들에 비하여 예술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잇는 특권을 부여해주었다. 이러한 자유는 심리적 자유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낮에는 학교에서 면학을, 밤에는 클럽등지에서 젊음을 즐겼다. 또한, Rock이라는 젊음의 음악은 예술학교 학생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주었다. 용돈을 벌기위하여, 재료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식의 아마추어 뮤지션으로써 출발한 뮤지션들이 어느덧 Rock Star로 변신해버린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장난삼아 그렸던 음반커버가 그후 그의 직업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Egoism(자유주의) + Politics(정치)
"표현적인 자유“를 만끽하게된 1960년대의 영국 Art School의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이외에는 다른 것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의구심과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것을 배워왔던 그들에게는 너무나 팽배하게 커져버린 사회를 부정하게 되었고, 기존의 규칙과 전통에 의구심을 갖는등 위험한길, 남들이 꺼리는 다른 길을 택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러한 것은 지나친 이기주의를 유발시켜 때로는 사회에 반감을 가지며 저항적인 자세, 반항아적인 기질을 싹트게 했다. 특히, Art School출신의 뮤지션들은 당시 젊은이들을 위하여 연주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즐기기위해, 자신들을 만족시키기위해 연주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분야와 전혀 관계가 없는 정당활동에 가담하는 특이한 양상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1960년대말에 들어와서는, 정치 캠페인에 참가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정치정당을 설립하는등의 활발한 정치활동도 벌였다. 1968년에는 급기야, 이념적인 Art School학생들이 학교를 점령하는 사태(Guildford 예술대학과 Hornesey 예술대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New Media(새로운 매체)
1960년대말 미술, 조각, 인쇄 분야에서 활약하던 예술학도들은 새로운 기술과 혁신의 힘을 얻어 사진, 영화 비디오 컴퓨터 그12800w_summeroflove5.jpg래픽등의 첨단기술을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야에서 활약하다가 Rock Musican으로 전향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무대와 Cover Arts 셰계에 새로운 Media를 수용하게 되었다. 특히 Art School출신으로써 ART ROCK, Psychedelic Rock그룹들 그리고 Punk그룹들과 함께 활약하게 되는 이들이 일명 Light Show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며 조명과 Dress Style을 포함한 모든 무대예술에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Media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Hornesey Collage Of Art의 “Light/Sound Workshop(1962년 설립)”에서 연구원으로 활약하던 Mike Leonard는 초창기 Pink Floyd의 360도 원형사운드와 무대영상의 개발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다.
 
DaDaism(허무주의)
1960년대 독일의 ART ROCK그룹들은 European Avant-Garde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Berlin, Hanover, Paris, Zurich등에서 유행처럼 번져갔던 허무주의는 대중들에게 자극을 주거나 쇼크로써 일깨워주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럽의 많은 Avant-Garde Rock그룹들이 이러한 허무주의를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무주의는 영국 ART ROCK그룹들 속으로 쉽게 파고들지는 못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서 비로서 Punk Rock이라는 새로운 Rock장르에 이르러 뒤늦게 정착된다. 여기에서 허무주의는 기형적으로 발전, 확산되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Shock Rock, Theater Rock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심리학자 Arthur Brown도 이러한 DaDaism에 다소 영향을 받았음이 사실이다.
 
Surrealism(초현실주의)
영국의 ART ROCK 그룹들은 DaDaism의 성향이 결여된 반면, 초현실주의 (Surrealism)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다. 실제로, 20세기 모든 Avant-Garde운동의 초현실주의는 대중음악과 광고분야에서 일하던 많은 디자이너들속에서 크게 일기dali-poster.jpg 시작했다. 스페인을 대표했던 화가 Salvador Dali의 재치가 넘치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Soft Watch Dreamscapes는 많은 레코드 커버 아티스트들과 삽화 아티스트들을 매료시켰고 Airbrush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이것은 1960년대말, 1970년대초의 수많은 Cover 아티스트들에 의해 도입된다. 허무주의처럼, 초현실주의도 그들의 청중들을 격분케 하거나 아연실색케 하는 것을 원했다. 또한 그들을 사회가 점차적으로 변화되기를 갈망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초현실주의 아티스트들은 예술적 혁명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당시로써는 매우 충격적이고 비상업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이었지만 현시점에서는 그렇게 놀라울 것 없는 “이색적인 것의 하나”로 그 느낌이 반감된 것이 사실이며, 예상밖으로 지금까지 상업적으로도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다.
또한 초현실주의는 세계를 이상하게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는데, 그중에 Erotic, Fantastic Art가 두드러졌으며 몽환적인 작품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Art School출신의 젊은 화가들, 디자이너들은 Erotic Cover, Fantastic Cover, Psychedelic Cover, Dreamy Cover등을 1960년대말부터 ART ROCK 그룹들을 위해, ART ROCK 그룹들이 행하는 음악과 걸맞는 앨범커버를 그리기 시작한다. ART ROCK을 행하는 대부분의 초현실주의 뮤지션들도 무모한 모험을 즐겼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위해서라면 커다란 희생을 결코 아끼지 않았다. 예술성이 뛰어난 반면 상업적으로는 매우 눈이 어두웠던 그들은 오직 자신들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순수 자신들의 경비로 레코드를 제작, 그것에 만족하며 즐겼던 것이다.

Art School출신의 대표적인 뮤지션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뮤지션들중에는 Art School출신들이 의외로 많다. Daevid Allen(Gong), Syd Barrett(Pink Floyd), Jeff Beck, Eric Burdon(Animals), Brian Eno, Bryan Ferry(Roxy Music), John Foxx(Ultravox), John Lennon(Beatles), Lene Lovich, Freddie Mercury(Queen), hazel O'Conner, Jimmy Page(Led Zeppelin), keith Richard(Rolling Stones), Sade, Pete 쌔주노둥(Who) 등등...
biggrunt.jpgPete Townshend의 경우, 그는 Art School로부터 배웠던 것을 적절하게 표현해내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1960년대초반 Earling College Of Arts에서 그래픽을 전공했는데, 그의 스승은 나찌 독일에서 탈출한 Gustav Metzger로써 Auto-Creative와 Auto-Destructive Art의 대가였다. Pete 쌔주노둥sms 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고 그룹 Who의 공격적인 Sound와 기타를 부수는등의, 무대위에서의 난폭한 행위는 바로 그의 스승이 가르쳐준 Auto-Destructive Art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Pink Floyd의 경우, 멤버 전원이 예술학교와 건축학교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Syd Barrett은 Camberwell College Of Art에서 미술을 전공햇었고 Roger Waters와 Nick Mason은 Regent Street Polytechnic에서 건축을 배웠다. 후에 그들의 무대 공연이 Visual Art의 최첨단을 걷게 된다는 것이 매우 당연하게 여겨진다.
멤버들이 Art School과 강한 연결고리를 형성했던 그룹은 Bonzo Dog Doo Dah Band였다. Bonzo Dog은 1920년대 만화에 등장하는 동물이었으며 Doo Dah는 Dadaism(허무주의)를 변형시킨 단어로써 사용했는데 멤버 전원 모두 삽화(Illustration)를 전공한 Central School Of Art를 비롯한 런던 근교의 Art School출신들이었다. Brain Ferry는 1964년부터 1968년까지 New Castle대학에서 그 유명한 Pop Artist인 Richard Hamilton에게 Visual Arts를 사사받았다. 그의 예술적인 감각은 Roxy Music의 커버아트와 독특한 음악세계에서 잘 표출된다.
Brain Eno는 1971년 Roxy Music에 가담했을 때 전혀 악기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오직 Via Synthesizer와 Tape Recorder였다. 그는 원래 화가 지망생으로 John Cage와 Terry Riley등의 전위음악에 심취하면서 음악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의 은사는 화가겸 뮤지션이었던 Tom Phillips였다. Brain Eno의 솔로앨범 “Another Green World"는 바로 그의 스승 Tom Phillips의 그림 ”After Raphael"을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후 그는 음악과 미술계에서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The Quiet Man"으로 알려진 John Foxx는 Royal College Of Art에서 삽화, 미술, College를 전공하면서 디자인 그룹이자 진보적인 음악 그룹 Ultravox를 결성했다. 그는 영국의 북부 공업도시 Lancashire에서 성장, 기게와 기술세대로서의 운명을 지녔다. 그의 음악과 디자인은 바로 기계와 기술혁신을 표출하고 있는데 그의 대표작 ‘I Want To Be A Machine'이라는 곡에서 충분히 그러한 성향이 반영되고 있다.
그 외에 많은 ART ROCK그룹들이 Art School주변에서 결성되었는데 그만큼 Art School은 ART ROCK그룹들이 형서되는데 가장 이상적인 장소였다. 당시, 젊음의 음악을 사랑하고, 자유를 갈구하며 학교에서 배워왔던 순수예술과 모든 과정들이 결함되어 수많은 ART ROCK그룹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뜻을 지닌 젊은이들이 의기투합될 수 있는 장소 Art School...! Gong의 창시자 Daevid Allen도 Canterbury College Of Art를 다니며 Rober Wyatt을 만날 수 있었고 Soft Machine을 결성할 수 있었다.
-편집자 주

Art Rock Magazine No. 6 (1994년 발행)
(원문에는 1967년 The Year Of Flower Power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곳에는 옮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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