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S Powered by DNSEver.com
글 수 40
추천 수 : 0 / 0
조회 수 : 4456
2010.03.03 (03:46:55)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66번 제 목:프로그레시브 록 강좌 - 서론(배경) 올린이:crabclaw(강태승 ) 96/04/01 19:24 읽음:466 관련자료 없음

*이 글은 HiTel 변정근(blueroot)님의 글을 갈무리해 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와 [1] 서론 (배경)

몇분의 질문이 있어서 좀 구차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려 합 니다.

제가 처음 프로그레시브 락을 들은 것은, 핑크 플로이드의 (이하 핑플) 다크 사이드... 였습니다. 친구가 이거 처음 듣기는 어려울거다 했지만 저는 어려움에 앞서 그 효과음향이 대단히 좋았고, 많은 것을 연상시켜 주었기에 좋았습니다. 그 후 방송을 듣다가 클라우스 슐츠의 음악을 들 었는데 (이놈 때문에 대학교 전공을 전자공학으로 지원...) 아시다시피 거의 마약 먹은 음악입니다. 잠자리에서 잠이 들락 말락 할 때 이 음악 을 들으면 몸이 뜨는 환상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워낙 대곡인지라 (보통 20분 이상) 방송에서 항상 끝 곡으로만 취급해서 곡의 끝을 알 수가 없었더라 그 말입니다.(나중에 전곡을 트는 기회가 있었지 만) 녹음해서 듣더라도 한참 뽕맞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엘레지'와 함께 뭔 시를 자꾸 읊어서... 그래서 곡의 나머지가 뭘까 상상하는게 조 바심도 나고 신비롭기도 하고...
이탈리아까지 확장되는 이야기야 다른 사람들하고 비슷할테니 생략하고.

한가지 질문에 대해서 해명하면, 제가 현학성 이야기를 한 것은 매니아 들이 아트락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듣는다는 뜻이 아니라, 매니아들은 이해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함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의 미였었습니다.

아마 제가 '90년도에 아트락 음반 확장하기를 그만두었다' 라고 말했을 때, 많은 분들이 이놈도 희귀음반 찾는 맛에 듣다가 음반이 쏟아져 나 오니까 그만 둔 속물이군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새로운 아트락 듣 기를 그만둔 것은 음반의 라이센스화 문제와는 거의 무관합니다.
제 경우 전자 음악 활동을 하면서 신디사이저를 만지고 음색을 바꾸면서 제가 좋아하던 음악을 흉내내기 시작했는데, 그 동안 서클 선배들의 다 양한 음악관을 접하였던 것이 하나의 변화 원인이였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원인은 리얼리즘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 도 이 리얼리즘을 제가 무식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아트락에 대한 부정 적인 관점이 자리잡았고, 아트락이 지니는 장점은 '시각적 구체성을 통 한 리얼리즘의 표현' 이라는 점 이상을 인정하길 거부했었습니다. 이후 자연스레 음반 확장에 대한 욕구가 감퇴되었고 기존에 있던 음반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데에 그쳤습니다. (제가 재즈에 심취했다고 그러셨는데 이 말을 제가 한 기억도 없으며 사실과도 다릅니다.)

제가 지금부터 쓰려는 글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락은 왜 70년대에,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을까?"
"왜 그토록 좋은 음반들이 갑자기 줄어버렸을까?"
"왜 한국 뮤지션들은 왜 프로그레시브 락을 안하는 걸까?"
"프로그레시브 락을 마약 먹은 요상한 음악으로 보는데 어떻게 설명해 야 하나?"
"왜 클래식과 재즈가 락에 결합됐을까?"
......

뭐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마 외국 문헌에는 결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국내 잡지에 이 미 나와있는 내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알려주십시오. 올린 글 들을 몽창 지우겠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물론 노력 부족이겠지만). 사 회학적으로 보았다는 락 젊음의 반란에도 프로그레시브 락은 아주 미미 한 비중으로 나왔고, 예감에 나온 거의 유일한 비평은 제게 흡족한 것 이 아니었습니다. 아트록지는 창간호를 훑어본게 전부지만, 예전의 월 간 팝송에 실렸던 성시완씨의 글 몇편을 보건데 제가 원하는 성향의 글 은 없을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전공이 사학과나 사회학과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부분을 세미나해 본적도 없으므로, 다음의 글이 자신감 넘치게 실례를 통해서 입증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올린 글이 황당한 이 야기이며 전혀 상반된 상황이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이 아 니라면 뭐하러 올리느냐 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궁금하고 아직 그 궁 금증을 해소해 주는 그런 글을 못 보았기에 나름대로 제시해 보는 것이 고 다른 분들의 견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식의 접근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information = 0 bit인 글일 수도 있습니다.
*******************************************************************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정서 부분인데 70년대가 전성기였으니 70년 대 전후의 시대 상황과 정서를 살펴볼 수만 있다면 문제가 쉽게 풀리겠 습니다.

[락 젊음의 반란]이 거의 번역서라는 것은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 겁니 다. 또 사람따라 별로 재미없다 왜썼냐 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제게는 일목 요연하고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신 분은 다 아시는 이야기 이겠습니다만,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거칠게 요약하 면,

60년대는 베트남전에 반대하고 인종차별주의를 거부하는 흑인 공민권 운동이 있던 시기이다. 이때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비틀즈, 밥 딜런 등이 대표적인 음악인이었고 청년들은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사이키델릭한 락 음악을 들으며 히피생활을 하였다.

70년대에는 베트남전의 철수, 오일 쇼크 등 사회가 전반적으로 혼란스러 운 분위기였고 사람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띄었으며, 개인주의적으로 변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때 즐겨 들은 음악은 자연을 노래하는 컨트리락과 부드러운 퓨전재즈, 불안감에서의 탈출 구로서의 하드락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70년대 후반 펑크와 뉴웨 이브에 대한 언급이...

80년대는 아직 논의가 덜 되었는지, 번역한 원서에서 80년대의 분량이 적었는지 모르지만 내용이 상당히 빈약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빠진 것은 유럽의 상황입니다. 프로그레시브 락의 초창 기 시절 즉 60년대 말에 유럽은 학생운동의 도가니였다고 합니다. 68년 5월 프랑스 혁명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독일, 체코, 폴란드 등 동구 서구 할 것 없이 온 유럽에서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선 시기 였습니다. (제가 짝사랑하는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영화 '프라하의 봄 '은 68년 체코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무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이 운동 은 자본주의가 비대해지면서 관료화되고 사회조직이 개개인의 생활을 일일이 간섭하던 것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운동의 결과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읽은 글들은 대체로 이 사 회변혁의 열망과 정열이 또다시 자본주의에 포섭되고 말아서 안타깝다는 식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침체된 당시 상황을 개인에 빗대어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서클에서 공연을 한다든지, 각종 행사를 치루어 낸다든지 이렇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집 밖을 쏘다닐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일이 끝나 고 집에 쳐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컨트리 락처럼) 차분하고 여유로 와지기도 하지만, 개인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아(自我)와 철학에 대해 서 고민도 하고, 때로는 무한한 상상(환상)의 나래를 펼칠 여유도 있습 니다. 내가 이 짓을 왜했나 허탈하기도 하고, 요롱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며 머릿 속에서 공연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술을 무진장 먹기도 하고....

유럽이라는 지역은 미국에 비해서 훨씬 학구적인 성향이 강하고, 또 유 럽음악의 전통이 있었으니 위의 상황과 결부되어 음악도 만들어졌을 것 입니다. 바로 그 음악이 많은 분들이 열중해서 듣고 있는 '프로그레시 브 락' 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계속...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67번 제 목:프로그레시브 록 강좌 - 특성 올린이:crabclaw(강태승 ) 96/04/01 19:25 읽음:360 관련자료 없음

*이 글은 HiTel 변정근(blueroot)님의 글을 갈무리해 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2] 프로그레시브 락의 특성

앞 글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n'을 눌러 먼저 글 [1]을 읽어주시기 바랍 니다.

(아래에서 말하는 분위기를 설명하는 실제 음반 예는 가능한 생략하고 간략화 하였습니다. 너무 분량이 많아질 것 같아서요. 아트락 즐겨 들 으시는 분들은 구체적인 음반들이 떠오르시리라 생각합니다.)

60년대의 음악은 전반적인 사회 운동 분위기와 결부되어 내용성이 강했 습니다. 밥딜런과 같은 포크 뿐 아니라, 비틀즈처럼 산업사회에서 고독 감을 느끼는 사람들 (all the lonely people)간에 사랑을 호소하는 그룹 (만화영화 '옐로 섭머린' 참조), 성조기를 비아냥 거리는 지미 헨드릭 스, 심지어는 모택동을 추종하는 음악을 하는 인간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80년대 대학의 집회 성향의 모임에서 단순한 노래에서 일체감 같 은 것을 느껴 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이러한 음악은 외적 형식도 중요 하지만 비교적 간결한 편이며 내용성이 상당한 비중이 되기 마련이며 그 걸로도 충분한 본연의 역할을 다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70년대의 음악에 충만해있던 내용성들이 빠져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식상의 혁신 과 완결로 노력은 집중되었습니다. 물론, 반례로 로저 워터스의 사회 의 식(반전, 사회 비판)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허무주의로 끝을 맺는 경향이 있었고, 60년대를 풍미하던 락의 저항정신과 공연 문화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겠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락에서 볼 수 있는 형식 추구의 노력은 크게 두가지로 나 타나는데, 하나는 기존 형식의 파기이고, 또 하나는 형식의 완결성의 추 구였습니다.

기존 형식의 파기는 음악 각 요소에서 전위적인 실험을 행함으로써 이루 어 질 수 있었는데, 기존의 음을 전기적으로 변형시키거나 합성된 전자 음을 이용하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이미 앞글에서 이야기한 시대정서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하는 욕구가 있었는데, 시기 적절하게 태어난 미니무그와 함께 음악인들은 상상의 나 래를 펼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도피하여 또 하나의 세계(예

클라우스 슐츠)를 만들 수도 있었으며, 인간의 광기어린 내면 세계(핑

플의 Pompeii Live 참조)를 탐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실험 이라는 것이 무엇에 대한 실험인가 좀 더 세세히 나누어 살펴보면 더욱 좋겠습니다만 역부족으로... (쇤베르크의 12음열 기법이 조성 중심에 대 한 실험이었다라는 식으로) 실험정신이 결코 순간적인 아이디어만의 산 물이 아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음과 시각적 효과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 과 고민은 그들에게 새로운 언어적 감수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 며 이를 바탕으로 완결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누벨바그나 누벨이마주 등 우리가 뛰어난 작품으로 언급하는 영상들도 꾸준한 실험영화의 제작을 통하여 나왔듯이 실험정신은 기존 사고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개척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프로 그레시브 락이라는 용어가 줄어드는 것도 프로그레시브 락의 실험정신이 지금도 파격적인가 하는 의구심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형식적인 완결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유럽적 재즈와 클래식의 기법을 끌 어오는 것이 적격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럽음악의 전통적인 특성은 정교하고 계획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클래식 기법이 이용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제되고 숙련된 연주와 편곡은 클래식을 연상시킬만한 뉘앙 스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 전후(戰後)의 재즈는 예술로 간주되고 있는 데 재즈의 매력의 하나는 정제된(?) 연주력에 있습니다. 그 실례야 여러 분들이 더 잘 아실터이니 생략하겠습니다. 아트락으로 용어가 바뀌는 이 유도 결합된 쟝르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좀더 자세히 고찰한다면 지역적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이 있어야 할텐데 제가 각국의 당시 상황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여 설명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독일은 자연조건 때문에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이 며 추상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라 하는데, 음악에도 그대로 드러나서 신비적인 분위기와....] 이런 정도밖에는.

혹시나, 혹시나, '자폐적이니 환상적이니 하는 부정적으로 들리는 단어 들'을 읽으시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세상에는 양이 있어야 음이 있는 거고 음이 있어야 양이 있듯이, 양과 음을 동전의 양면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은 부정적인 것이고 양은 긍정적인 것이라는 사고도 피해 야 할 사고라고 봅니다.

계속...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68번 제 목:프로그레시브 록 강좌 - 특성 2 올린이:crabclaw(강태승 ) 96/04/01 19:26 읽음:318 관련자료 없음

*이 글은 HiTel 변정근(blueroot)님의 글을 갈무리해 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3] 프로그레시브 락의 특성2

자 이제 비평에서 흔해 빠져 버린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들추면 서 살펴보겠습니다. (앞에 나오는 일반적인 이야기들은 여기저기서 다 베낀 것입니다.)

잘 모르지만, 간단히 말하면 각종 중심으로 부터의 해체라는 것입니다.
철학적 기반이야 길고 복잡하니까 피상적인것을 살펴보면,

세계 질서가 미국:소련의 중심에서 EC,일본,동남아,미국 등으로 구역화 되었으며, 작게는 지방자치화 같은 모습 등 이전의 중앙 집중적인 모 습에서 분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흑인 공민권 운동을 시발점으로 미국에서의 소수민족들의 입김이 세져 백인중심의 사회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여성운동이 발전하여 남성중심 사회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근래의 영화만 보아도 그 변화추이는 쉽게 알수 있습니다.

이성 중심에서 감성의 포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장미의 이름] 이라는 영 화를 보시면 알지만 옛날에는 신에 대한 진지함이 최고의 가치였고, 계몽시대에는 이성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근래에 성적인 부분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들도 다 감성이 중시되는 분위기라 하겠습니 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대중매체에 일정 정도 채무를 지고있다 하 겠습니다. 이걸 음악에서 보면, 기존의 조성 중심에서 12음이 동등한 중요성을 지니는 음렬기법(물론 이건 좀 시기가 이르지만), 악식과 순 서 중심에서 벗어나 우연성에 따르는 음악, 음정 중심에서 음색으로의 확산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서사체(줄거리 중심) 구조가 해체되었습니다. 어른들일수록 영화볼 때 줄거리가 중요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어디 그렇습니까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계선에 대한 설은 분분한데 보통 2차대 전 전후를 기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몇년 사이에 후 닥닥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외적으로 모더니즘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포 스트 모더니즘으로 전환되는 시점은 60년대 말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이 이후로 다원주의가 완전히 정착되고 각 분야에서 분산이 일어나고, 한편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인정해버리는 분위기였습니다.

신서사이저의 다채로운 음색과 보코더, 이펙터, 녹음된 소리 등의 각종 음향은 음악의 시각적 효과를 배가시켜 주었고, 공연장에서의 레이저쇼 (예:핑플), 거대한 인형(예:Tarkus) 동원 등의 무대장식, 화려한 비디오 구성은 음악에 시각적 효과를 주는 단계를 넘어서 시각과 일체가 된 예 술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은 종전의 음악들이 청각에서 시각을 분리하 여 청각에만 촛점을 두는 이분적 사고로부터 탈피한 획기적인 발전이었 습니다. 이전에도 비틀즈나 지미헨드릭스에서 이러한 실험들은 찾아볼 수 있지만, 쟝르 전체가 이를 지향하여 다양한 모색을 한 일은 드물었 기에, 이 점만으로도 상당한 매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음악 특 성중 음색으로의 관심의 확대임과 동시에 청각에서 공감각으로의 분산은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경향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의 팝아트가 이전에는 금기시되던 문자나 광고사진을 그림에 삽입하여 명확하고 지시적인 의 미를 전달하는 효과를 얻은 것 처럼 프로그레시브 락도 유사한 효과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계속...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69번 제 목:프로그레시브 록 강좌 - 퇴조 올린이:crabclaw(강태승 ) 96/04/01 19:28 읽음:318 관련자료 없음

*이 글은 HiTel 변정근(blueroot)님의 글을 갈무리해 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4] 프로그레시브 락의 퇴조에 대해서

80년대의 퇴조 ***************************************************** 80년대의 사회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현실적인 가치를 모색하였고, 개인화된 정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 서 편리하고 깔끔한 그리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뉴에 이지는 개인화된 정서와 그 위에서의 편리와 행복을 추구하는 가장 대 표적인 쟝르가 아니겠습니까? (뉴에이지가 부여하는 정서는 음향에서 의 울림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70년대의 우울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성장한 프로그레시브 락은 더 이상 새롭게 자리잡는 80년대의 전반적인 정서에 적합한 것은 아니 었습니다.

또 한가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시각적 효과의 신선함입니다.
컨셉트 앨범을 통한 대작(서사적 구조 포함)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근 래에 현저하게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야 (레드제플린의) 30분에 달하는 퍼포먼스와 기나긴 애드립, 대곡으로 이루어진 앨범 한 면 등에 뿅갔지만, 지금은 전반적으로 애드립도 별로 길지 않고.... 앞 에서 언급한 서사구조도 함께 퇴색하였습니다.

81년, 미국에서 처음 MTV가 나왔고 몇년 사이에 뜻밖의 성공을 거두었 고, 음악과 결합되어진 영상의 홍수는 음악에 따라오는 시각적 효과의 신비함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예를 들면, 핑 크 플로이드의 월을 음반으로만 들을 때는 머릿속에서 영화가 만들어 지는 매력이 일품이었는데, 비디오를 본 후로 그런 효과는 상당히 감축 되었습니다) 80년대 이전의 영상 음악의 예를 들어 MTV의 중요성을 낮게 볼 수도 있지만,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영상 음악은 자체의 미학을 획득 한 수준이라기 보다는 기록의 수준이었고 양적인 면에서도 차별성이 있 습니다.

또한 영상으로 인해 음악 이외에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것은 늘어났 고, 짧은 시간에도 뮤지션은 하고픈 이야기를 다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단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나라도 MTV가 본격적인 방영을 시 작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물론 이 MTV가 프로그레시브 락이 퇴조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 것 인가는 보다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유럽에서의 MTV 방 영 시기가 언제인지도 잘 모르고 보급 상황과 영향력도 잘 모르기 때문 입니다. 영미계에서 프로그레시브 락이 퇴조한 원인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상으로 본토의 프로그레시브 락의 발생부터 퇴조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견이 있으신 분들은 이야기해주시고, 보다 나은 해석을 내리고 계신 분들의 의견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근-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