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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14:51:49)

제 목:아트록 10계명... !!! 관련자료:없음 [1199] 보낸이:양재성 (sagrado ) 1993-12-21 22:22 조회:414 아트록이란 무엇인가:아트록 10계명

 

제1계명 : 아트록이란 정의될수 없고, 정의되어서도 안된다.
“도대체 아트록의 정의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아트록(Art Rock)’이 라는 외래어를 정의함으로써 답해지지는 않을것 같다. 그것은 미적추구 ‘현 상’을 가능케 하는 ‘문화/반문화(Subculture)’와 그 문화를 지탱하는 토대 를 이야기 함으로써 비로소 우회적으로 대답할수 있는 물음이다. 아트록은 쉬 운 해답을 갖지 않은 문제라 생각하는 편이 아트록을 이해하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트록의 의미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열려있고, 그 내용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아트록은 사전이라는 틀에 갇히길 거부한다.
쉽게 정의될 수 있는것은 이미 아트록이 아니며 고정불변의 아트록 또한 존재 하지 않는다.

 

제2계명 : 아트록은 감상자가 만든다. 감상자만이 마지막 판결을 내릴수 있다 .
한곡의 평범한, 괴상한, 유별난, 형편없는, 또는 뛰어난 음악을 아트록으로 만드는것은 감상자의 힘이다. 아무도 예정된 아트록을 만들지는 못한다. 이미 인정된 아트록의 아류나 유사품을 만드는 일만이 가능할 따름이다. 한곡의 음악에 열광적으로 감상자들이 따를때 아트록의 싹이 튼다. 그 싹을 틔우는 토양은 음악이 수용되는 문화적 풍토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감상자들은 재해 석을 통하여, 감상경험의 ‘제의(ritual)화’에 의하여, 혹은 애증/찬탄/야유 가 뒤섞인 관심으로써 아트록을 길러낸다. 아트록은 상업음악의 생산/소비 메 커니즘 속에 관객이 능동적으로 자신들만의 자리를 확보하는 유효한 방식이다 . 감상자만이 아트록을 결정하고, 최후까지 결정권을 지니는 것이다.

 

제3계명 : 아트록의 감상자는 언제나 소수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발적이고, 열광적이며, 때로는 광신적인 소수이다.
다수의 대중에게 버림받고 외면당한 음악은 아트록이 될수있는 가능성을 가진 다. 그것이 소수의 지지자/후원자들에게 발견되면서 이 ‘미운오리새끼’는 아트록으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이들은 자신만이 그 음악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다가, 뜻을 같이하는 다른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확신’을 가 지고 아트록에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레코드 가게를 쫓아다니며, 수십번씩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주위사람들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전도’에 열 을 올리는 소수의 광들이 아트록의 진정한 주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아트록 과 맺는 관계의 모습은 아트록의 종류만큼이나 다채롭고 기발하다.

 

제4계명 : 아트록의 자격은 상업적 성공과 관계가 없다.
“음반판매”에 실패한 음악은 일단 소수만을 위한 음악이라는 아트록의 조건 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팔리지 않은 음악이 모두 아트록이 되지는 않는다. 그 것은 그 음악이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낼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 고 있을때에만 가능하다. 반대로 첫발매에서 ‘떼돈’을 벌었다고 하여 그 음 악이 아트록이 될 자격을 자동적으로 상실하게 되는것도 아니다. 음악이 상업 적으로 성공한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 대다수 감상자의 취향과는 무관하게 - 음악광들이 그 음악을 ‘재발견’할때, 그것은 ‘인기순위음악’에서 아트 록으로 다시 태어날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한 음악이 수용되는 문화의 차이라는 요소가 덧붙여진다. 한나라에서의 ‘유행’음악이 국경을 넘어가면 ‘예술’음악이 되듯,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감상자의 오해(?)가 때로는 아트 록을 낳는 근거가 된다.

 

제5계명 : 아트록은 반드시 애호가 공동체의 문화를 반영하며. 그 공동체의 대변자가 된다.
아트록을 만들고 키워가는 애호가들은 언제나 특정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 이다. (때로는 거꾸로 아트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러한 집단이 만들어지 기도 한다.) 이 집단은 공통된 기호와 취향과 나름대로의 규범을 가지며 공통 의 정서로 끈끈하게 맺어진 ‘공동체’이다. 이들은 아트록 음악속에 자신들 만이 찾을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고 확신한다. 기존의 수많은 음악들 속 에서는 찾을수 없었던 자신들의 목소리를 아트록이 대변해 줄것을 그들은 기 대한다. 그들 - 애호가 공동체라 불리울수 있는 집단 - 이 소외되고, 박해받 는 집단일수록 이러한 기대는 더욱 클수밖에 없다.

 

제6계명 : 아트록은 얌전한 음악이 아니다. 아트록은 논쟁속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아트록은 상식을 벗어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상식은 ‘음악 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충고로부터, ‘음악은 이러이러한것을 다 루어서는 안된다’는 경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는다. 그리고 이러 한 상식을 깨는 곳에서 아트록은 출발한다. 기존의 음악형식을 거부하는 음악 , 그 사회의 정치적,윤리적 금기를 건드리는 음악, 이러한 음악들은 언제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그 논쟁속에서 아트록은 다시 태어난다.

 

제7계명 : 아트록은 단순히 구경거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아트록을 감상함은 일종의 제사/의식에 참여함과 같다.
아트록과 감상자가 만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예술음악을 전문적으로 틀 어주는 감상실에서, 대학 캠퍼스 한구석에서, 변두리 어느 레코드가게에서,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불법’음반으로, 낡은 카세트 테이프로 아트록은 감 상자와 만난다. 때로는 주위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때로는 당당하게 ‘동 지’들을 확인하며 감상자는 아트록을 들으러 모여든다. 아트록은 음악 자체 로써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감상자들은 아트록을 한번 ‘소비’하고 잊어버 리는 다른 음악처럼 취급하지는 않는다. 아트록을 감상하는 시간과 공간은 마 치 일상을 벗어난 신비로운 자리와도 같다. 그것을 감상자들의 삶속에 ‘살아 숨쉬는 경험’으로 남는다. 그래서 아트록은 종교를 모르는 사람에게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게 하고, 마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마술의 신비함을 느께게 해준다.

 

제8계명 : 아트록은 비평가들을 속이고, 음악이론을 믿지 않으며, 제작자들을 배반한다. 그럼으로써 그들 모두를 구원한다.
비평가들은 대부분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의하리라고 여기는 기준으로 음악을 잰다. 그래서 아트록은 그 기준에 ‘초과’ 또는 ‘미달’됨으로써 비평가들 의 손아귀를 벗어난다. 음악이론 또한 아트록을 예상하지 못한다. 이론이 가 능하다면, 그것이 아트록을 뒤쫓아 오면서 ‘설명’하고 ‘해석’할 때뿐이다 . 제작자들은 전혀 엉뚱한 감상자들의 반응에 당황한다. 흥행의 공식을 아트 록은 여지없이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트록의 주인인 애호가들은 이렇 게 고장관념을 깸으로써 음악이 이론과 자본과 ‘여론’의 노예가 되는것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아트록은 자신이 ‘비상업적’이고 ‘어려운’음악으로 딱지를 받기 일쑤지만, 그렇게 됨으로써 음악이라는 문화현상이 사라져 버리 지 않고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 나가는데 기여한다.

 

제9계명 : 아트록은 멈추어 있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발견, 재해석, 재평가된다.
아트록은 소수의, 소수에 의한 , 소수를 위한 음악이다. 그러면서 아트록 자 체도 소수파가 된다. 아트록이라 불리울수 있는 음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 고 어렵사리(!) 아트록의 대열에 낀 음악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지킬수 있 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처음부터 아트록의 요소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던 음악 이건, ‘운명의 장난’에 의해 아트록이 된 음악이건, 애호가 집단은 언제나 그 음악에서 미처 듣지 못한것을 찾으려 하며, 혹시 자신들이 속고있는것은 아닐지 의심을 품기도 한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사회의 맥락이 바뀜에 따 라 감상자가 변화하고, 그리하여 아트록도 따라서 움직인다.

 

제10계명 : 아트록은 부정을 통하여 긍정으로 가는 음악이다. 음악 문화의 한 모퉁이에 뚫린, 미래로 가는 창이 아트록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트록은 정의 될수도 없고 정의되어서도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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