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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4 (12:50:29)

원문은 http://www.perfectsoundforever.com/v/2005024/features/133 입니다

 

    1. BACKGROUND
    2. WHAT IS KRAUTROCK?
    3. THE BOOKS
       3.1. CRACKS IN THE COSMIC EGG- Steve Freeman & Alan Freeman
       3.2. KRAUTROCKSAMPLER- Julian Cope
       3.3. COSMIC DREAMS AT PLAY by Dag Asbjornsen
    4. INSIDERS' VIEWS
    5. CONCLUSIONS
    6. 촌평

 

The Real Krautrock Story
Klaus D. Mueller (June 1997)
편집자주 : 다음에 오는 진술은 KDM의 다양한 글과 기사에서 허가를 받고 가져온 것이다. 그 글들은 공통적인 하나의 주제 'Krautrock 현상이라는' 를 가지고 서술되어 질거다.

 1. BACKGROUND

1968년에서 1974년까지, 나는 이 새로운 독일음악의 발생하던 그시기와 현장에 있었다. 나는 이들 그룹의 대부분과 함께 일하기도 또는 함께 살기도 했고, 내가 페스티발에서 일하면서 그 그룹들을 보고, 듣고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 했었다. 나는 때때로 이들 그룹을 위해 오픈 하우스를 열었다. 그들은 호텔비를 아끼려고 밤새도록 머무르기도 했다.
비록 내가 거기서 전문적으로 한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나는 그 그룹들의 연주회에 갔었다. 그때보다 10에서 15년 전에 독일에는 딕시랜드를 연주하는 수천의 아마추어 연주자가 있었다. 60년대 후반인 그때, 많은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미국 웨스트 코스드밴드나 영국의 블루스 락 밴드의 곡을 카피하려고 하기 시작했었다.

그 때는 독일락 신이 탄생하려던 때였고, 나는 주요한 맴버였다. 나는 내 자신이 스스로 뮤지션도 아니었지만, 그들을 관찰하고 도우며 글을 썼다. 그때 스스로를 '독일락의 두번째 로디'라고 불렀었다. (주: roadie는 연주투어에서 매니저 역할과 엔지니어 심지어 오프닝 연주까지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뮤지션중에 유명밴드의 로디 출신이 많지요)

왜냐면 그당시에는 '로드 매니저'이라는 직업이 알려지지도 않았었다. 최초의 '로디'는 함부르크 출신의 Hans Riebesehl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 새로운 음악신을 위해 주요한 기술적 조언 및 프로모터의 주소같은 것을 싣는 Riebe's Fachblatt라 불리우는 음악잡지를 만들었었다. 나또한 거기에 글을 썼다. 물론 나도 락이나 팝, 재즈음악에 엄청난 관심이 있었고, 그것데 관한 독일이나 영국에서 나온 가능한한 모든것들을 읽었다. 나는 "독일"락 이라는 것은 그당시 매우 악의적 의미의 뻘말로 받아들여진것으로 확실히 기억한다.(암만 봐도)

나는 Nice의 베이시스트인 Lee Jackson이 영국의 유명한 Speakeasy Club(주:이게 클럽이름일까요? 아니면 걍 말그대로 무허가 클럽일까요 유명한 무허가 클럽은 좀 말이 안되는거 같아서리...-_-;;) 에 초대했던 때를 회상한다. 그 클럽에서는 그날저녁 한 독일밴드가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들에게 그들은 아무 인상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다. 거기있던 락스타들이나 그들의 친구들중 어느누구도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거기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영국인들에게는 그밴드의 BirthControl이라는 추악한 이름만이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대략 이런 상황이 아닐까 상상됩니다
락스타 : 근데 제네들은 뭐냐?
친구갑 : 몰라
친구을 : 제네들 밴드명이 '산아 제한'이래 ㅋㅋ
락스타 : 그래 존나 웃긴다. ㅋ,ㅋ,ㅋ
친구갑 : 아예 콘돔이라 그러지 그랬냐. ㅋㅋㅋ
저자 : (씨바 쉑이들...)

 

Eloy라 불리던 그룹은 독일내의 사람들과 독일의 저널리스트들에게는 비아냥거리(주: running gag가 원문입니다.)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가난한자의 핑크 플로이드 또는 게네들은 가난한자의 무디 블루스? (주 : 원문은 poor man's PinkFloyd or was it poor man's MoodyBlues? 이렇게 번역하니까 감이 잘 안오는데, 엘로이 = 아도디스, 핑크 플로이드 = 아디다스 이러면 감이 팍 오지요?) (다른 주 : Poor Man's Moody Blues는 MoodyBlues의 히트곡명입니다.)

Faust는 프로모션 프로덕트에 의한 외국 저널리스트의 발견이었으나, 실제 존재하지 않는 그룹이었기때문에 독일내에서 대중적으로도 넓게 알려진적도 없었다.(주: real 'living' group이 아니라고 합니다)

1976년 나는 이 방면의 비지니스에서 잘 알려진 베를린의 공연 프로모터로 있었다. 우리는 JerryLeeLewis, Leo Kottke, BobMarley같은 최상급 이들의 공연을 기획했었다. 한번은 Can이라는 독일밴드의 공연을 기획했었다. 우리는 가능한한 가장 쪼그만 연주장을 사용하기로 했다.(최근 TangerineDream이 같은곳에서 공연을 했었다)

거기를 빌린이유는 우리가 Can을 원치도 좋아하지도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반대가 사실이다.(주: 우리는 캔을 좋아했다는 얘긴가 봅니다) 청중들은 Can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같은시기 -70년대 중반- 의 KlausSchulze의 공연이나 TangerineDream의 공연은 베를린에서 두번째로 큰 공연장(5000에서 6000석)을 꽉 채웠었다. TangerineDream, KlausSchulze, 그리고 Kraftwerk만이 그당시의 대형 그룹이었다. 독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90년대 초반까지도, KlausSchulze와 TangerineDream은 여러종류의 영국 탑 100 레코드 리스트에서 언급되어지는 유일한 이들이었다. 70년대를 통틀어 많은 프랑스 잡지들 모두다 뒤져봐도 이 세개의 이름이외의 (때때로 AshRaTempel이 있었고) 어떤 독일 밴드도 언급된 적이 없었다.

후에 독일 락 음악과 독일안에서(홀로) 크게된 몇몇 이름들이 있었으나, 이들'크라우트락' 전문가: (그들은 이방면 매우 성공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Udo Lindenberg, Peter Maffay, Marius Mueller-Westerhagen, Herbert Groenemeier 등.. 모두가 세간에 주시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Udo Lindenberg이 했었던 것은 그당시 독일 락음악을 위한 센세이션이었다. 그는 독일어를 락에 도입했고 그걸 잘했었다. 그들의 음악이 나의 기호에 맞지 않는다 할 지라도, 그것은 독일락의 혁명이라 불릴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충격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2. WHAT IS KRAUTROCK?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단어들(keywords)을 사용하여 우리를 못살게 군다. 그건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이다. 예전에는 "NewAge"였고, 지금은 "Krautrock"이다. 더 나쁜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말을 믿는다. 우리는 우습게도 그들을 "우리의 캘리포니아인들"이라고 부른다. (주: 뭔소린지 전혀 해석이 안됩니다. 원문은 We call them funnily "our Californians".) 그들중의 다수는 25년이 지난 따분한 올드락 앨범을 "progressive"라고 부른다. 오늘날까지!
난 뭐가 해답인지 모르겠다. 수천은 아니더라도 수백의 밴드들이 독일내에서 락을 연주했었고, 영국또는 미국의 밴드(아님 다른곳?)들의 곡을 카피했었다. 여기있는 몇개의 밴드들은 모두 70년대 당시에 음반들을 남겼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밴드들의 이름이다:

Birth Control, LucifersFriend, Franz K., Chris Braun Band, Eloy, Kathago, Epsilon, Gift, Grobschnitt, Hardcake Special, Hoelderlin, Ihre Kinder, Jane, KinPingMeh, Lilac Angels, Metropolis, Missus Beastly, Mythos, Thirsty Moon, Nine Days Wonder, Novalis, Panther, Parzival, PellMell, Randy Pie, Release Music Orchestra, Sameti, Sahara, Satin Whale, Scorpions, Sixty Nine, Thirsty Moon, Harlis, Ramses, Streetmark, Breakfast, Triumvirat, Wallenstein, Wind, Bastard, Blonker, Broeselmaschine, Bullfrog, Checkpoint Charlie, City, Condor, Dirty Dogs, Duesemberg, Epitaph, Gate, Harlis, Highway, AnyonesDaughter, Message, Schocke Fuehrs Froehling, To Be, Lady, Bakmak, Caro, Michels, Lutz Rahn, Mass, Munju, Octopus, Ougenweide, Pancake, Maniacs, Eisberg, Shaa Khan, Monroe, Dirk Steffens, Straight Shooter, Subway, Tiger B. Smith, Torfrock, Tritonus, Wolfsmond, Michael Wynn Band, Alcatraz, Eulenspygel, Fritz Mueller Band, Murphy Blend...

CAN(내가 상당히 수준급이라 생각하는)이 등장했을때, 그들 역시 최초에는 앵글로-아메리칸 음악을 카피하려고 했었고, 그걸 제대로 해낼 수 없었기 때문에(특히, 대부분의 독일밴드의 전형적인 장애요인인, 그 지독한 "독일식"장단(beat)때문에) 오메,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 나오고 말았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것이란 바로 그들이 그사실을 인정하고 이것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개발시켰다는 것이다. 이런걸 감히 시행했던 그룹들이 많았던것은 아니다. 그런것을 실행했던 이들만이 오늘날까지 위대한 밴드로 남아있다.: TangerineDream, Kraftwerk. 그리고 그때,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동독락 그룹들은 서독락 그룹들이 했던 카피들을 다시 따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은 더 나빴다. 내가 기억하는 밴드는: Puhdys, Stern Combo Meissen...


 

 3. THE BOOKS

Freeman형제, Julian Cope, Dag Asbjornsen 모두 크라우트 락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을 알지 못하거나 현실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에게 있어 희귀한(rare), 외국의(foreign) 이국적인(exotic) 음반들을 통해 들었던 음악에 대해서만 안다. 하지만, 그 책들의 저자들 모두 이 음악이 실제 만들어졌던 때에 함께 있었던(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사람은 하나도 없다.

 3.1. CRACKS IN THE COSMIC EGG- Steve Freeman & Alan Freeman

Steve, Alan Freeman은 책에서 : "...거의 모든 음악의 새로운 형태라는 것의 창시는 독일에서 나온거다"(!) 또 "... 크라우트 락의 영향력은 요즘음악(modern music)의 모든 형태(form)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미지의 밴드들 수백개가 발매한 유일작의 음반들 대부분은 진짜 비범한 것들이었다..." 그들의 책전체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하면서 영향력있었던 음악적 동향(musical movement)"에 바쳐진다고 되어있다. (이런세상에, 그들은 쉔베르그나 스트라빈스키 라는 이름도 못들어 봤단 말인가? 그리고 "Jazz"의 발명과 블루스가 나중에 로큰롤을 태동한다는 사실도 모른다 말인가?...그러고 이런 말들은 한참후에 몇몇 독일의 애송이 글쟁이들에게 서툴게 카피되어진다...)
"The Crack in the Cosmic Egg"는 여전히 너무도 많은 오류와 심각한 가치판단의 잘못이 있지만, 크라우트락을 다룬 대부분의 다른책들에 비할만큼은 아니다. 나는 한 저널리스트를 만날일이 있었다. 그는 Rolf-Ulrich Kaiser에 대해 진지하게 나에게 물었었다.(독일판"Rolling Stone"때문에) 나는 그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출판업자이자 프로듀서였고, "Cosmic Egg"에 언급된 70년대의 밴드중 하나를 데리고있었다.

내가 Freeman형제가 썼던 그와 그의 그룹에 대한 찬사의 글들을 보여주자 그는 박장대소 할 뿐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실 그 밴드는 그저그런 카피를 하는 형편없는 아마추어들 떼거리였다는 거였다. 나는 Freeman형제가 일주일정도 여기서 머무를때, 내 아파트에서 함께 발전적인(friendly) 장시간의 토론을 했던적이 있다. 내가 졌다. 나는 그들은 한 뮤지션이 그들에게 했던 얘기들 모두를 전부(특히 그들의 논리와 그말이 맞아떨어질때는 더욱)믿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만일 그것이 그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않는다면, 단지 회의적으로만 그 사실에 대해 질문하였다.

어쨌든, Freeman형제는 현존하는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했다. 아쉽게도 그들은 모든 경우에서 프로모션용 멘트들(promotion talk)에서 실제 현실을 구별해내는 견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열심히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즐거운 스타일의 글을 쓴다. 난 아직도 Freeman형제를 좋아한다. 대체로 그들의 작업은 훌륭한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책을 읽으라고 추천한다. 비평적인 시각을 가지고 본다면.

 3.2. KRAUTROCKSAMPLER- Julian Cope

Cope는 괴짜 광인이다.(내가 음악어휘를 믿을 수있다면) 그는 거기있지도 않았고, 거기있는 사람들에게 질문하지도 않았었다. 그는 이름이 잘알려진 팬일뿐이다. 그렇다, Cope는 그가 사랑하는 이국적인 음악적 선호에 대해 열광적이다. 미디어는 그렇다치고, 저널리스트들과 사람들은 그것을 찬사하기에 급급했다.(great. Fine. Wonderful). 하지만 그들은 단지 JulianCope이기 때문에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다.
왜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이 믿는다는 것에 "유명한 이름"이 꼭 말해줘야만 하는 경우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 (주: JulianCope가 말하면 존니 믿는데, 지가 말하니까 존니 무시했나 봅니다. 참... 컴플렉스 하고는...-_-;;) 그들 스스로 생각할수는 없는 것인가? 그들은 스스로 음악을 듣거나, 역사의 단편을 확인하고, 그들 스스로 판단을 내릴수 없는 것인가? 이게 진짜로 질문되어지기에는 너무 많은 것인가? 어쩌면 이것을 제외한 방법이 더 쉬어서이다.

아주 예전에, 나는 영국의 음악잡지인 WIRE에서 Cope의 글을 한갠가(두개?)읽었다. 그것은 Can이나 AmonDuul아님 그런 비슷한 밴드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재능있는 독일밴드와 재능있는 독일의 "락"음악에 대한 호의적인 장문기사로 영국잡지에서는 (다른것에 비해) 상당히 일찌기 쓰여진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Cope가 "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 실렸던 다른 기사들(특히 Wire투표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EricDolphy의 "Out to Lunch" 앨범이 1등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처럼 Cope의 글 역시 좋아했다. 몇달이 한참 지나고, 이 팬(Julian Cope)에 의해 쓰여진 열광적인 글들은 책의 형태로 출판되었다.

더 후에(1996), 이 책은 독일어로 번역되어 여기에도 출판되었다. 그리고 그때, 문제가 시작되었다. 독일의 심지어 Cope보다도 더 잘 모르는것 처럼 보이는 저널리스트들이 (Cope는 여기에서는 노래하는 락스타로 보였다.) 그책에 덤벼들기 시작했고,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Amon Duul이나 Faust같의 아주오래전에 잊혀진 밴드들이 재결성되고, 새로운 앨범을 내고, 공연도 했다. 소속 레코드회사들의 판촉용 물건들도 때맞춰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옛날과 옛 밴드에 대해 다른 어느것보다도 더 악화된 더많은 글들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게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당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단, 단순한 독일 헤비락 그룹이 갑자기 "우주적(cosmic)"인 그룹으로 불려지게 되었고, 모두가 비웃었던 그들이 20년전에 시도했던 그들의 락형태는 갑자기 "역사적으로 중요한"것이 되어 버렸다. FlorianFricke(PopolVuh)같은 사람은, 지난 20년동안 일렉트로닉 장비에 손도 댄적이 없었는데, "일렉트로릭 전문가"로 불려졌다. 그리고 모든 작가들이 Cope의 책을 참조하였다. 처음에 그건 단지 보기에 흥미로운 것이었는데, 갑자기 몇몇의 진정한 발명가들 (TangerineDream, KlausSchulze, Kraftwerk)은 모두 하찮고 한물간 크라우트락으로 한대 뭉뚱그려졌다. 질(質)적 특성(내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어떤이가 나에게 물었다. Cope는 그의 책속에 탑50앨범리스트나 그와 유사한걸 싣고 있다. 그것들중에는 (전부는 아니지만) 지독하게 후진(terrible) "CosmicJoksers"의 앨범들도 있다. 이 앨범들이 단지, 미친 영국 가수가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지 비음악적인 논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일지도) 이 앨범들을 만들었던 그의 청년기에 그가 유일했었고, 그러므로 그가 그 앨범들을 자랑스러워할까?

나는 내 어린시절부터 나와 함께 해왔던 증후군을 안다. 그것은 "재즈"였다. 몇주전에, 라디오 방송자(1970년대의 초기 5년정도, 그는 독일 락씬의 일원이었다.)가 Klaus Schulze와 나에게 생방송에서 "Electronic Meditation"에 대해 Cope의 책에 쓰여진 내용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생방송중에 계속 웃었었다. 우리는 락음악의 연대기에서 더 좋고 더 중요한 앨범들이 있다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독일에서만 유일하게 나온것이 아닌, 매우 훌륭하고(very good) 없어서는 안되며(essential) 중요한(important) 락 레코드들은 많이 있다. (아주 드문 예외를 말하자면 그건 Krafwerk다) 어쨌거나, 라디오방송중에 우리는 이 책이 shit임에 틀림없다고 동의했다.

문제점은 - 이것은 Cope의 잘못이 아니다 - 모든 독일의 저널리스트들이 Cope의 개인적인 음악적 자극을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여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무슨 사실로 가득찬 역사책인것처럼 취급한다. 아니다, 그것은 단지 Cope의 사적인 의견일 뿐이다. 이 나라안에서, 그의 책은 확실히 매우 훌륭하고 정말 재미있는(exciting) 책이다. 그러나 무식한 저널리스트들과 몇몇의 팬들로 인한 결과라는 것은, 끔찍한 것이었다. 또는, 이것은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 전부가 - 결과적으로 - 그들만의 바이블을 가지는것이 될수 있었기에? 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떠오른다. 과거 7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정말로 많은 좋은 음악들이 존재했었고, 1970년대의 독일 락씬은 아마도 그러한 여정속에 잠깐의 다녀갔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징말로 "그러나".

 3.3. COSMIC DREAMS AT PLAY by Dag Asbjornsen

몇 년전에 Dag Asbjornsen은 AshRaTempel, KlausSchulze, AgitationFree, OsMundi에 대해 쓴 몇장의 페이지대한 점검을 나에게 의뢰했었고, 그의 출판예정인 책의 몇페이지를 나에게 보내왔다. 모든게 정말 심각했다. 이 노르웨이 사람은 그가 모았던 앨범의 커버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과 그가 우연히 몇몇 노르웨이 (?) 락 잡지들에서 읽었던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 교정목록은 그의 원래 텍스트보다 더 많았다. 나는 놔두는거 보다는 낫다고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이해를 못했다. 오류들은 근본적인 것이었다. 그는 문제가 뭔지를 몰랐다.
최근에 독일의 저널리스트들이 나에게 재밌는 얘기라면서 해준게 있었다. Asbjornsen은 Herman Hesse가 누군지 모르는거 같다는 얘기다("Between"앨범에 실린 그 가사를 읽었나보다) 내가 그 얘기를 기억하기로는, Asbjornsen는 Hesse가 그 밴드의 멤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를 오해하지 말라. 나는 20여년 동안 KlausSchulze, ManuelGoettsching, TangerineDream, Kraftwerk, Can, Neu!, Harmonia....등의 사람들이 가지는 그들만의 진가를 말하고 쓴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예를 들면 영국의 그것에 동조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몇몇의 광적매니아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처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Freeman형제들은 그들의 작은 샵과 메일오더 비지니스를 해왔다. 그들은 그들이 모은 Krautrock 앨범을 사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굶어죽을 뻔했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지식으로, 정말로 훌륭하게 만든, 그들의 독자적인 잡지를 가지고 있었다 -- Julian Cope의 것보다 훨씬 뛰어난 -- 그러나 그들은 겨우 몇명의 독자들만 가지고 있었다.

이 씬은 정말로 나의 기호가 되기에는 너무 작은, 하여튼 무진장 작았다. 그런데 갑자기, 정반대의 결과가 된거다. 이런것은 건강할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들 옛 독일(그리고 다른 이국적인)밴드들에게 천천히 커져가는 관심이다. 짧은 한방의 붐이 아니다.

 4. INSIDERS' VIEWS

만일 당신이 이시기에 대한 뮤지션의 칭찬을 읽는다면, 반드시 하나를 염두해 두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나의 친구인 Manuel(AshRaTempel의)과의 인터뷰과정중에서 깨달았다. 나는 Manuel이(내가 아는 당시에 활동했던 사람들(all other insiders)과 마찬가지로) "Krautrock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마음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걸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겨우 한장 내지 두장 정도의 Can LP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우리가 개인적으로 Can의 맴버들과 알고 지냈기 때문이다. Manuel은 단지 우리가 모두 연주했었고, 연주하는, 소울이나 락음악을 들었었고, 지금도 거의 그런것만 듣고 있다.(주 :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랬다는 얘깁니다. 이게 참 표현이 달라서리 적당한 한글표현이 어렵네요)
간단하게 정리하면, Manuel은, 다른 모든사람들 처럼,그가 과거에 그랬던것 만큼 "Krautrock"에 대해 더이상 관심이 없었다. 20년전의 케케묵은(cheesy) 음악이라고 말한다. 그때의 이 인터뷰는 Manuel이 마치 Krautrock의 전문가이고(주: 평론가처럼), 그는 항상 Krautrock을 사랑해왔던것처럼 하여, Krautrock에 대한 모든 질문들을 대답하는 형태로 되었었다. 그는 이 인터뷰를 했었다. 왜냐면 이것은 소문난 기삿거리중에서도 화젯거리였고, 그의 음악을 선전하기 위한 Manuel의 일중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Krautrock의 발생과 관련하여 작가가 그에게 이 주제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는 평소의 친절한 매너로 Krautrock에 대한 해답을 줄것이다. 만일 Techno에 대한 작가가 그에게 질문을 한다면, 그는 그는 그의 Techno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보여줄 것이다. Klaus Schulze도 똑같다. 내가 그들을 거짓말장이라고 부른다고? 물론 아니다. 그러나 갑자기 Dixieland의 인기나 유행이 또다시 몰아닥치면 그들이 해야할 것은 뭔가? 인기? 유행? 적어도 Krautrock의 본고장에서는 아무도 Krautrock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많은 관객과 함께 해본 적도 없었다. Krautrock은 라디오나 TV의 음악채널에서 나온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krautrock 앨범을 재발매하여 판매하는 몇몇 사람들을 알고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 판권을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라우트락에 대해서 아는게 없었다. 존니 없었다. 그래서 나는 J.Cope와 Freeman형제가 전시대를 통틀어 top100또는 top50이라고 선정한 베스트앨범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essential)앨범에 대해 얘기해 줬다. 내가 이 판매상들을 주시해 보니 , 그들은 이 앨범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아도, 영국이나 미국의 구매자들(some English and American outsiders)의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되는지를 조사한다. 몇몇에 대해서 나는 그들이 맨처음 시작할때도 그들은 고통스러웠고 메쓰꺼웠고, 20년이 지난후에도 좋아지지 않았다고 정말로 말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이란말은, 그들이 들었던 미국이나 영국의 음악을 흉내내려고 했었던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짝퉁들(copies)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거의 최악이다. 혹자는 그들을 태생이 좋다고(good-natured)부를 것이다. 나는 아직도 오히려 독창적인 것(the original)이 좋다.

 5. CONCLUSIONS

(아무튼 이번에는 확 뛰어넘어 결론이다.) 언론(비평가들)은 "Krautrock"이라는 물건이 삼빡해 보여서인지, 이번에는 거기에 달라 붙어서 안달이 났다. 나는 그 동네 인간들과 이리저리 많이 얽혀 있어왔기 때문에 내막을 알고 있다. 이미 70년대서부터 이 독일락에 대한 책들은 이것저것 넘쳐 났지만, 전문적인 콜렉터들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런 책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Julian Cope가 책을 냈고, 순식간에 모든 출판인들이 "Krautrock"에 대한 글을 써대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 체인을 갖고 있는 레코드 샵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어떤 독일 잡지는 이제 재결성된 AmonDuul의 연주 투어에 대한 기사도 싣고 있다. (레코드 회사의 잡지인쇄 행위는 당연한 일이고, 이런 사태는 그로부터 도출되는 당연한 결과이다.) 그 투어 기사를 쓴 작가는 기사 속에서 물론 Krautrock씬 전체를 한 번 "정리"해 주고 있다.

순식간에 거의 모든 70년대의 음반과 뮤지션들은 "일릭트로닉스"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TangerineDream, KlausSchulze 그리고 Kraftwerk-파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것(electronics)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 잡지에서 젤로 웃긴 사실은, 1974년이후 최근까지도 문자 그대로 일렉트로닉스를 싫어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PopolVuh의 Florian Fricke를 전자 악기의 전문가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영화 회사에서 Krautrock에 대한 TV 편을 제작하면서 우리에게 참여를 의뢰했을 때, 그 기사를 썼던 바로 그 작자가 "권위자"니 "고문"이니 하는 이름으로 올라 와 있었다. 구역질나게. 우리는 거절했다. 이 따위 인간이 소위 "권위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필름 따위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누가 거기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이름값 올리는 데만 정신팔고 있는 부류가 아닌지, 누가 단순히 (외국의) 팬 수준을 넘어 선 사람인지, 누가 꾸밈없는 진실만을 말하는지. 오늘날, 모든 뮤지션들은 지면을 통해, 그들은 70년대부터 "일렉트로닉스"를 사용했었다고 말한다. 그건 결국 "일렉트로닉스"가 승리했기 때문일 뿐이다. 누가 패배자가 되고 싶어하겠나?

지금 독일과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는 "Krautrock"이 유행의 물결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시시콜콜한 것들이나 다룰 법한 좆만한 잡지에서부터 두께도 만만치 않고 내용도 진지한 잡지들까지, 모든 잡지들이 "Krautrock"에 대해 글을 써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읽었던 것 중 95%는 걍 쓰레기(bullshit)였다. 글쓰는 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어렸고, "Krautrock"을 단지 또다른 종류의 신기한 것(novelty)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지네들이 뭘 싸갈기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 장신고 2005-3-8 7:10 pm

 6. 촌평


freeman 형제 90년대초 ultima thule이라는 작은 가게를 했을때 음반을 사곤 했죠. 디스크 나인에서 15만원 하는 pop import 80년대 초 재발매 lp를 운송료 합쳐서 15,000원에 사곤 했었죠. 대전 집에 그당시에 발매한 audion 이란 잡지도 몇십권 있답니다. ㅋㅋㅋ 크라우트 락 음반을 제대로 모을려면 노르웨이의 OHR MUSIC이라는 가게가 정말 제대로 된 콜렉터이자 장사꾼이죠. 근데 어딜가나 그 바닥 사람들이 느끼는거하곤 밖에서 보는 대중의 입장은 다르죠. 문제는 이렇게 그 바닥 사람의 의견을 참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 너만 잘난줄 알지?' 하며 듣지 않고 비아냥 해대는 사람이 더 많죠.
2류 3류를 일류라고 믿었다 한들 아니면 수정해야 된느데 끝까지 고집피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평생 2류로 살겁니다. 그건 그렇고 크라우트락이나 종이커버로 재발매 해볼까나. 500장 한정 시리즈로.. :)
-- 엥데팡당 2005-3-10 4:5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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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일하면서 짜투리 시간에 번역을 하다보니 갈수로 해석이 엉망이어서 좀 올리기가 그랬는데 깔끔하게 잘 해주셔서리 헐...
-- 장신고 2005-3-10 4:0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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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부분만 번역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똥개들 싸움에 나이 먹은 세퍼드 한 마리 크게 한 번 짖어 주는 형국인 듯 :-)
-- SonDon 2005-3-10 12:5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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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진짜 수고하셨심둥. 이 양반 전직 클라우스 슐체의 매니저이기도 했던 사람이군요. 다 읽고나니 이 양반의 말은 거의 100%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크라우트 락이라고 해봐야 어떤 관점에서 보면 독일산 B급밴드의 푸어락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물론 그렇게 폄하하기엔 너무나 빛났던 구석이 있었지만요.
특히 모두가 갑자기 일렉트로닉스로 불리게 되었다 이 말은 아주 적절한 지적입니다. 뽀뽈 부나 캔은 일렉트로닉스적인 리듬을 전자악기가 아닌 것들을 이용해 연주한 것 뿐이지 일렉트로닉스인 것은 아니었던 것이죠. 단지 미니멀한 연주였던 것인데 일렉트로닉스의 기본이 반복이었기에 이들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라프트베르크야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테크노 그룹들이 캔을 듣고 자라진 않았을 거라는거죠. 캔 트리뷰트 앨범에는 몇몇의 테크노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그넘들이 어렸을 때 캔을 들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네요. 데이빗 보위와 함께 가끔 독일에 놀러가서 녹음도 하곤 했던, 그리고 클러스터와 수차례 작업까지 했던 브라이언 에노 정도가 당대에 들었을지 모르지요.

어쨌거나 재미있는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그가 당시의 씬에 대해 그다지 폄하하는 느낌도 없어요. 버스 컨트롤 이런 애들은 진짜 쉿 뮤직이죠. ㅎㅎ 읽으면서 페이지 수정했습니다~

-- 거북이 2005-3-9 12:2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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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쓰여진 시기에 아마도 유럽, 미국일대의 음악듣는 사람들에게 '크라우트 락'이라는게 갑자기 유행하던 시기였나 봅니다. 그런 유행의 상황에서 저자가 좀 심한(?) 어감을 가지고 쓴 글입니다. 알아서 취사선택하는 슬기로움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 장신고 2005-3-8 7: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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