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S Powered by DNSEver.com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eTc

글 수 7
마음풍경
추천 수 : 33 / 0
조회 수 : 22342
2003.07.28 (09:47:44)
ETC
ARTIST:  Trubrot 
COUNTRY:  Iceland 
GENRE:  Punk Rock, Prog/Artrock 
ALBUM:  1.Trubrot(EMI/Falkinn, 1969)
2.<Starlight/Hr.Hvita Skyrta Og Bindi/A Little Song Of Love>(Falkinn/Parlophone, 1970, Single)
3.Undir Ahrifum(Falkinn 1970)
4.<Eg Se/Eg Veit A kemur>(Falkinn, 1971, Single)
5.Lifun(Tonautgafan, 1971)
6.Mandala(Trubrot, 1972)
7.Brot Af Pvi Besta(Steinar, 2LP, Best Album, 1979) 
MEMBER:  Shady Owens - vocals
Gunnar Þórðarson - guitar, flute, vocals
Karl J. Sighvatsson - organ, piano
Rúnar Júlíusson - vocals, bass
Gunnar Hákonarson - drums, vocals
Magnús Kjartansson - piano, organ, vocals
Ólafur Garðarsson - drums 
원본출처:  http://koreanrock.com/wiki.pl?Trubrot 

49_trubrot.jpg

한 2년전의 일인것으로 기억하는데, 우연치 않게 아이슬랜드에서 펑크를 연주하는 그룹의 엠버랑 펜팔을 한 적이 있다. Gunni라는 친구였는데 자신이 펑크를 하는 음악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의 펑크 그룹을 소개해달라는 편지를 보내왔었다. ‘아니, 아트록 그룹도 없는 마당에 펑크 그룹이 있을리 만무하지…’ 라는 생각으로 국내에 그런류의 그룹들이 등장할 수 없는 이유를 되지도 않는 영어 실력을 발휘해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더니, 그 친구는 마치 우리나라를 미개한 아프리카의 나라쯤으로 여기는 느낌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필자가 펑크에 관한 무지를 눈치챈듯 그는 녹음 테이프를 하나 보내 왔는데, 자기네 나라에서는 전설적인 그룹이라면서 편지에 장황한 칭찬 때문에 튄 침이 느껴질 정도였다. ‘으 자존심 상해!!! 왜 우리나라에는 아트록 그룹도 없는거야’ 라고 툴툴거리며 카세트 테크에 그 테이프를 걸었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들리는 사운드는 그야말로 숨을 멎게하는 충격으로 다가섰다. 바로 그 테이프의 내용물은 Trubrot의 세번째 작품인 [Lifun(Living)]이었다. 그 뒤로 이들의 음반은 필자의 Want List에 오르게 되었고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해 구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들의 오리지널 음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고가이다. 이들은 총 네장의 앨범을 공개햇는데, 데뷔 앨범이 제일 구하기 힘든만큼 비싸며 나머지 석장의 음반들은 그것에 미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2년전에 4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CD화 되었으며 조만간에 국내에도 1집에서 3집까지가 모두 라이센스화 될 예정으로 있어 자못 기대가 된다. 뒤에서도 아이슬랜드의 아트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여기서는 Trubrot을 집중 조명하는 기회를 마련해볼까 한다.
Trubrot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간단하게 아이슬랜드의 록 음악에 관한 역사를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뒤에 좀더 자세한 언급이 있겟지만, 대략 아이슬랜드 록의 역사는 여섯개로 시대 구분을 할 수 있다. 즉, 여명기라 할 수 있는 1956년에서부터 63년까지, 도약의 시기인 69년부터 73년까지, 전성기인 74년부터 79년까지, 쇠퇴기인 80년부터 83년까지 그리고 새로운 사운드 시대인 83년부터 현재까지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록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70년대에 아이슬랜드 록 역시 그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보면 적절할 듯 하다.
6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주로 6인조 이상의 빅밴드들이 활약하다가 영국에서 록 음악이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의 기선을 장악할 무렵, 그 물결은 아이슬랜드도 넘어와 최초의 록 그룹의 형태를 갖춘 팀이 등장하기에 이르는데, 다름아닌 “화음”이라는 뜻을 지닌 Hljomar라는 그룹이었다. 아이슬랜드의 비틀즈라고 불리웠던 이들의 초창기는 주로 영국 가수나 그룹들의 곡을 아이슬랜드어로 버전해서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Hljomar 이후 등장하는 Loger, Ponik, Rio, Tonar, Flowers 같은 그룹들은 당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도입해보다 혁신적인 음악을 구사하면서 70년대의 전성기로 가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Trubrot은 이런 발판 위에서 탄생하기에 이르는데, Hljomar의 리더이자 아이슬랜드 록계의 마당발인 Gunnar Porarsson(베이스, 보컬), 홍일점인 보컬리스트인 Shady Owens 그리고 Flowrer에서 나온 Gunnar Jokull Hakonarson(드럼), Karl Sighvatsson(건반)과 규합해 새로운 팀을 만들었다. 당시 유명 그룹의 멤버들로 구성되었던 이유로 인해 매스컴으로부터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적당한 그룹 이름을 찾던중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Ami Johnsen이 붙여준 “믿음(신뢰)의 파괴” 라는 뜻을 지닌 Trubrot을 그룹명으로 채택하고, 69년 7월 초 아이슬랜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위치한 Sigtun 클럽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다. 다음날 이들은 곧장 미국으로 건너가 The Midnight Sun이라는 공연에 참가하는 등 국제적 그룹으로서의 명성을 쌓아나갔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들은 레코드 계약을 맺고 69년 10월 영국의 런던으로 건너가 Trident스튜디오에서 데뷔 앨범의 녹음 작업에 들어가 그해 말 동명 타이틀의 데뷔작을 공개했다. 이 음반은 아이슬랜드 초유의 베스트 셀러로 69년 12월까지 불과 몇 달 안 되는 기간동안 무려 3천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해 “올해의 레코드로서 비평가 상”을 수상하였다. 70년 3월 이들은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건너가 데니쉬(Danish)록의 메카로 불리웠던 “Revolution” 클럽에서 라이브 무대를 가졌다. 이 공연은 각종 매체로부터 대서특필 될 정도로 성공적인 무대였다. 이로 인해 나중에 이들이 덴마크 출신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어 4월 21일부터 이틀에 걸쳐 Metronome스튜디오에서 다섯 곡을 녹음해 봄에 두장의 싱글에 담아 공개했다. (이 곡들은 데뷔 앨범의 CD에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 되어 있다.) 하지만 곧 홍일점 보컬리스트였던 Shady가 탈퇴하고, 건반 주자였던 Karl 역시 6월에 오스트리아 음악 공부를 하러가기 위해 그룹을 탈퇴하고 만다. 또한 드러머인 Gunnar도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그룹을 등지기에 이른다. 하지만 Odmenn출신의 드러머 Olafur Gardarsson과 Judas출신의 건반주자인 Magnus Kjartansson을 영입해 팀을 정비한후 2집앨범인 [Under Ahrifum(Under An Influence)]의 작곡과 리허설ㅇ르 끝내고 10월 코펜하겐으로 다시 떠났다. 두번째 앨범인 [Undir Ahrifum]은 70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발표되어 데뷔작에서의 성공을 이어나갔다.
71년 초, 드러머 Olafur가 Nattura에 가입하게 되자 그의 빈 자리를 창단 멤버인 Gunnar가 다시 들어와 메꾸었으며 건반 주자였던 Karl도 다시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Kjartansson은 피아노로 파트를 바꾸었다. 이러는 와중에 국립 국장으로부터 괴테의 “파우스트”연극에 음악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아들이고, 리허설을 위한 창고를 얻어 새앨범 작업을 병행해 나갔다. [Lifun(Living)]이라는 타이틀의 콘셉트 앨범의 구상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 앨범은 8각형의 변형커버로 되어 있으며 인간의 삶은 콘셉트화 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71년 3월 13일 “Haskolabio(Universal Theatre)”에서 열린 콘써틍는 매진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성황리에 끝마친 공연 이후 이들은 런던으로 건너가 3집 앨범의 녹음을 끝마쳤다. 71년 여름은 이들에게는 아이슬랜드 전국을 순회하는 강행군을 통해 돈과 명성을 한꺼번에 얻으면서 아이슬랜드 최고의 밴드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호사다마격으로 오르간 주자였던 Karl이 아무런 통보없이 그룹을 떠나면서 서서히 그 끝을 예고했다. 72년초 코펜하겐의 Rosenberg스튜디오에서 새 앨범인 [Mandala]의 작업을 마치고 발매했지만 이 작품은 이제 이들의 영광이 서서히 그 빛을 다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음반이었다. 드러머 Gunnar가 다시 탈퇴하고 후임으로 Roof Tops의 멤버였던 Ari Jonsson으로 대체되고, 싱어이자 퍼쿠션 주자인 Engilbert Jensen, 기타리스트인 Vignir Bergman등이 가입하는 등 6개월 동안 수 차례의 멤버 교체를 단행하지만 옛 명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결국 이들은 지지부진한 활동을 보이다가 73년 3월 그룹을 해산하고 만다.
왠만한 해외의 음반 콜렉터들은 이들의 앨범을 한두개 정도는 가지고 있음을 이 글을 준비하면서 알 수 있었다. 단지 소장 가치에 비중을 두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좋은 작품이라는 질적 가치에 의해 그 소장 음반의 빛이 더하는 것이 있다. Trubrot의 앨범, 아마도 후자쪽의 가치 기준의 적용이 더 타당할 듯싶다.



Trubrot : 고려바위

아이슬랜드 록의 자존심 TRUBROT - Undir Ahrifum 아이슬랜드 록의 자존심 TRUBROT "팝 음악 내지 비트(Beat) 음악은 감정의 도취에 빠져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의 싸구려 감상주의에 대해 극심한 혐오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볼 때 현대의 아방가르드와 공통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팝 음악 내지 비트 음악은 전반적으로 무목적적인 음악의 추상적인 아카데미즘 뿐만 아니라 실용음악의 조아한 기능주의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고 있으며, 또 전형ㅈ거인 청년운동으로 이미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예술의 사회학, 아놀드 하우저著)

60년대의 록 음악으로 대변되는 대중음악은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하나의 단위집단화시켰다. 이들에게 있어서 록 음악은 그들 내부 에너지의 분출 공간으로 훌륭한 역할을 해내었으며 저급 문화로 낙인 찍힌 대중음악을 한 단계 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에 대해 사회학자 아놀드 하우저는 대중음악에 있어서 장식음이 지니는 내면성과 달콤함, 가수들이 외치는 히스테리컬한 절규와 과시적인 열정 및 이러한 소요에 참여하고 있는 관중들의 고함과 몸부림 등, 과도한 과정 자체가 낭만주의적 사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현대의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행해지는 폭력 및 제어할 수 없는 분방함과 관련된 것이라고 언급했으며, 어러한 영향을 평가할 때 제일 중요한 요인은 바로 세대라는 것을 지적했다. 언젠가부터 세대(Generation)라는 개념은 이데올로기화 되어 있으며, 이 개념은 그들이 즐기는 문화에서 극명하게 표출된다. 버르장머리 없고 철없던 세대들은 드디어 록음악이라는 깃발 아래 모였으며, 록 음악은 그들만의 영역이었다. 그것은 당시의 모든 것을 일순간 잠식시킬만큼 하이 레벨의 에너지 그 자체였다. 아이슬랜드, 그곳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특히 60년대 말부터 불어닥친 일련의 조류는 아이슬랜드의 음악계를 뒤흔들었다.

60년대 중반 아이슬랜드 록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룹이 등장하게 되는데 다름아닌 "화음"이라는 뜻을 지닌 Hljooomar와 히피 문화에 영향을 받아 싸이키델릭을 연주했던 Flowers라는 팀이 있었다. 아이슬랜드의 비틀즈라고 불리웠던 Hljomar팀에서는 기타리스트였던 Gunnar Poroarsson과 베이시스트 Ronar Joliusson, 홍일점 싱어였던 Shady Owens 그리고 Flowers에서는 Gunnar J.Hakonarsson(드럼), Karl Sighvatsson(키보드)이 가세한 5인조의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당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Ami Johnson(현재는 아이슬랜드의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이 붙여준 TRUBROT(진실의 파괴)이라는 그룹명으로 69년 7월 아이슬랜드의 수도인 레이캬 비크에 위치한 Sigtun 클럽에서 데뷔했다.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공연을 가졌으며 몇주 후에 본국으로 돌아와 레코드 계약을 맺고 그해 10월 영국의 런던에 있는 유명한 스튜디오인 Trident에서 녹음 작업을 끝낸다. 12월에 발매된 동명 타이틀의 데뷔작은 본국에서 3천장이 넘는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였으며, 비평가들이 수여하는 "그해의 레코드" 상을 받기도 하였다.
데뷔작에서의 고무적인 반응에 힘입어 이들은 70년 3월 덴마크로 건너가 코펜하겐에 위치한 덴마크 록의 메카였던 Revolution 클럽을 비롯한 여러군데에서 라이브 무대를 가졌다. 이들의 공연은 각종 매스컴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70년 봄 두 장의 싱글을 공개한 이들은 2집을 위해 아이슬랜드로 건너왔지만 Shady가 그룹을 등지게 되었고 건반 주자였던 Karl은 70년 6월 오스트리아로 음악공부를 하러가기 위해 부득이 팀을 떠나기에 이르렀다. 그의 후임으로 Judas 출신의 키보디스트 Magnus Kjartansson이 들어왔다. 그러나 8월에는 드러머 Gunnar가 음악적 견해 차이로 그룹을 탈퇴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들은 곧 하드록 그룹인 Odmenn 출신의 드러머 Olafur Gardarsson을 영입시키고 전열을 가다듬은 뒤, 그해 크리스마스 직전에 [Undir Ahrifum(Under An Influence)]를 공개했다.

Gunnar의 자극적인 기타 리프로 전개되는 첫 곡 (Going)을 들어보면 마치 60년대말 영국그룹의 음반을 듣고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국제적인 그룹으로서의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후반부에서의 타악기 리듬은 그러한 것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멤버들의 하모니가 감미로운 발라드 스타일의 (Everything's Alright)에서의 압권은 호소력 짙은 Runar의 보컬과 새로 가입한 Magnus의 선명한 피아노 선율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평범한 록 사운드의 (In The Country)에 이어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플롯과 해몬드 오르간의 리드가 인상적인 (Relax)가 등장한다. Gunnar의 기타 사운드를 접할 수 있는 (Sunbath), 텁텁한 인상을 전해주는 (Tracks)가 이어진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의 최대 명곡인 (Feel Me)가 가슴 졸이며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낸다. 사실 이 곡 때문에 2집이 평가를 받는다고 할만큼 이들이 발표했던 곡 가운데 단연코 돋보이는 트랙이다. 대곡임에도 불구하고 성시완 선배님이나 필자에 의해 방송에서도 소개되었던 곡이기도 했다. 점점 고조되는 전반부의 구성에 이어 Gunnar의 싸이키델릭풍의 기타 연주와 반전되는 타악기 리듬이 중반부를 구성하며, 끝으로 전위적인 패시지로 끝맺음한다. 그리고 마치 (Feel Me)와 한곡처럼 이어지는 (Stjornuryk)가 앨범을 마감한다.

수려한 앨범 커버에 어울리는 곡들로 가득차 있는 이들의 2집은 앞서 공개되었던 데뷔작과 곧이어 나올 예정인 3집 앨범 [Lifun...]을 연결하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아이슬랜드라는 지역적인 한계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뛰어난 실력이 담긴 이들 작품이 매니어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Feel Me)의 감흥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글/이춘식



Trubrot : 고려바위

아이슬랜드의 전설 TRUBROT ART ROCK의 천국은?
국내 ART ROCK애호가들의 꿈은 해외 레코드 숍에 가서 마음껏 음반을 고르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 곳 레코드 숍에서 대부분의 애호가들은 좀처럼 이러한 음반들을 구경할 수 없다는 것에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ART ROCK - Progressive Rock 전문점들이 고작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극히 적기 때문이다.

만약 한 곳을 찾았을 경우에도 아이템이 다양하지 않으며 판매가격에 혀를 내두르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우리 국내에서 발매된 앨범을 고가로 사게될런지도 모른다. 현재 레코드 수집가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이 계열의 음반이 가장 많은 곳으로 한국과 일본을 손꼽는다. ART ROCK의 재발매 현황도 우리 한국이 압도적(?)이다.
ART ROCK의 종주국인 영국의 경우도 자신들만의 음악을 고집하고 있으며, 많은 양의 CD를 방출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대부분이 영국 음반을 재발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태리의 경우는 자국의 옛 앨범들만을 발굴하고 있으며 그나마 프랑스만이 자국뿐만 아니라 여러 유럽 국가들의 작품을 소량 발굴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매우 다양한 앨범들을 1980년대에 소개한 바 있었지만 지금은 그 열기가 완전히 사그라들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의 경우 부끄러울 정도로 국내 뮤지션의 ART ROCK작품이 거의 없는 반면, 세계 여러 국가들의 매우 다양한 음반들이 소개되고 있다. 발매된 앨범들을 보면 이태리,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를 비롯 불모지인 미국의 작품과 본작의 주인공인 Trubrot과 같은 아이슬랜드 그룹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또한 그리이스의 Socrates, Akritas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Eela Craig 작품들도 곧 발매될 예정이다.

너무나 생소한 나라 아이슬랜드 얼마전 TV를 통해 아이슬랜드라는 조그만 나라에 대한 프로그램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혜로서 에너지를 극복하는 아이슬랜드인들의 강한 생활력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한 나라 아이슬랜드...!

아이스(Ice-얼음) 랜드(Land-땅) ... 얼음의 나라! 나라 이름이 상징하는 것처럼 우춘나라이긴 하지만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의 Greenland보다는 따뜻하고 살만한 나라이다. 가장 더울때가 7월로 영상 9도에서 14도 정도로 선선한 편이다. 따라서 여름에도 Heating 장치가 잘되어 있는 풀장에서 수영을 즐긴다. 걸프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때문에 가장 추운 겨울인 1월에도 영하 2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다.
1944년 덴마크로 부터 독립된 아이슬랜드는 국토면적은 우리 남한의 반 정도지만 인구는 2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의 한 구역 인구에도 못 미치는 인구이다. 이들은 지하로부터 얻은 뜨거운 수증기로부터 열자원을 얻으며 북극해와 북대서양에서 얻는 해양자원 이외의 특별한 자원은 없다. 그외의 것들은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수준과 교육수준은 세계 정상에 가깝다. 99%의 사람들이 아이슬랜드에서 태어났으며 그들 모두가 루터교회를 믿는다. 또한 고유의 아이슬랜드어만을 사용한다.
이정도가 교과서에 실려있는 아이슬랜드에 대한 자료이지만 언젠가 한 번쯤 가고 싶은 커다란 북극섬이다. 이 때문에 Trubrot의 한국 라이센스 추진 과정에서 알게된 아이슬랜드 친구에게 "그곳은 살기 좋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는 마치 "달에서 사는 기분이지요!"라고 답했다. 아마도 아이슬랜드라는 나라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TRUBORT : 배신, 배반 - 신뢰의 파괴

ART ROCK5호의 원고마감일날 필자는 뿌듯한 마음으로 Trubrot의 리뷰를 마지막으로 넘기고 해방감을 만끽하며 뜨거운 커피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정과정에서 나의 조그만 실수가 후배들에 의해 드러나면서 그 뜨거운 커피는 쓰디쓴 사약으로 변해 버렸다.

나는 후배들의 날카로운 지적후 그 원고를 쓰레기통속으로 던져버렸다. 본인은 그 순간까지도 TRUBROT이라는 그룹을 그저 Savage Rose나 Burnin Red Ivanhoe 등에 버금가는 덴마크 그룹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동안 신뢰하고 있었던 Nick Hamlyn의 자료 때문에 일본 친구들의 카다로그나 그외의 자료를 무시하고 리뷰에 올리려했던 본인의 무책임한 글에 얼굴이 붉어졌으며, 무엇보다도 신뢰했던 자료에 대한 불신에 화가 치밀었다. 이 사건이후로 좀더 신중하게 책임감있게 일에 임해야겠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문제의 리뷰가 활자화되기 직전, 잘못을 지적해준 후배들에게 이 해설지를 통해 고마움을 전한다. 얼마전 아이슬랜드에서 날아온 자료에 따르면 TRUBORT이라는 그룹명의 의미가 바로 "배신, 배반 - 신뢰의 파괴"라는 뜻이어서 더욱 본인을 각성하게 만든다.

TRUBROT의 역사 지면과제상 본 해설지에서는 데뷔앨범이전까지의 TRUBEOR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곧 발매될 TRUBROT의 두 번째 앨범 [Undir Ahrifun]과 세 번째 앨범 [Lifun]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아이슬랜드 역시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미국, 영국으로부터 확산된 젊은이들의 음악 Rock Music이 1960년대 초부터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곧 아이슬랜드 태생의 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랜드 수도 Reykjavik으로부터 남서쪽에 위치한 인구 6000명의 소도시 Keflavik(아이슬랜드의 인천)에서 1963년에 결성된 Jljomar은 TRUBROT의 전신그룹으로 아이슬랜드의 선구자격인 Best 그룹이었다.
1964년에는 수도 Reykjavik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아이슬랜드 제2의 도시 Kopavogur에서 3인조 그룹 Rio Trio가 결성되었고, 1965년에는 5인조 그룹 Manar가 1966년에는 Hljomar가 활동하고 있는 Keflavik에서 4인조 그룹 Odmenn이 등장했다. 이들이 바로 아이슬랜드를 대표하는 비트그룹들이었으며 1967년부커 미, 영국으로부터 불어온 Flower Movement에 강하게 영향을 받으면서 사이키델릭그룹과 Progressive Rock 그룹으로 변모하게 된다.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반전을 외치며 평화를 부르짖었던 1967년, Flower Power에 힘입어 아이슬랜드에 Flowers라는 그룹이 탄생하는데 바로 이들이 해산되면서 아이슬랜드의 전설 TRUBROT이 탄생되는 것이다.

1968년말, 아이슬랜드의 노장 Beat 그룹 Hljomar이 해산된 후, 리드 기타리스트 Gunnar Thordarson과 베이스와 보컬에 Runar Juliusson 그리고 여성 리드 보컬리스트 Shady Owens는 신생그룹 Flowers 출신의 키보드주자 Karl Sighvatsson과 드러머 Gunnar Jokull Hakonarson과 함께 새로운 그룹을 결성할 것이라고 1969년 공표했다. 당시 아이슬랜드의 음악계는 노장 Hljomar과 신진 Flowers가 서로 경쟁이 치열한 쌍두마차로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소식은 커다란 쇼크를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곧 리허설에 들어갔으며, 그들이 새로운 그룹명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때 많은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당시 신문기자로 활약하던 Ami Johnsen(현재 아이슬랜드 국회의원)이 제시한 단어 TRUBROT(배신, 배신-신뢰의 파괴)이 최종적으로 그룹명으로 채택되었다.

1969년, 가장 무더웠던 여름날 TRUBROT은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건너가서 공연을 가졌고 덴마크의 신문들로부터 공연에 대한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그해 4월, 그들은 이틀동안 Metronome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5곡을 녹음했으며 이 곡들은 두매의 싱글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온 TRUBROT은 곧 분열의 위기에 도달한다. 그룹의 홍일점이었던 여성 보컬리스트 Shady Owens가 음악계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1970년 6월에는 오르간주자였던 Karl Sighvatsson마저 음악대학 진학을 위해 오스트리아로 건너갔다.

TRUBROT - Trubrot TRUBROT의 데뷔작에는 모두 11곡의 작품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CD에는 앨범 컷팅시 제외되었던 한 작품(Breyttu Bara Sjalfum)을 비롯, 두매의 싱글에 담겨있었던 5곡 등을 첨가 모두 6곡의 보너스트랙을 담았다. 현재 본작 LP를 세계 중고 음반 시장에서 찾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발견된다하더라도 그 가격은 1,000파운드(한화로 130여만원) 이상을 지불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2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좋은 음질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깨끗한 음질과 함께 보너스 트랙까지 들을 수 있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래의 LP의 앞면은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소품위주의 평범한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앨범의 뒷면은 Art Rock계열의 긴 곡들로 배열되어 있다. 여러분들이 처음 본작을 접할 때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곡은 역시 첫곡일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생소한 언어와 흐트러지는 리듬과 사운드 그리고 거칠은 보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첫곡의 제목 I Don't Care(상관 안해요)처럼 오프닝에 개의치 말기 바란다. 곧 우리는 두 번째 곡에서 환상적인 TRUBROT의 Rain에 흠뻑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Jose Feliciano의 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Rain의 가사를 다소 변형시킨 TRUBROT의 (Rain)은 마치 Pink Floyd의 Julia Dream을 듣고 있는듯한 진한 감동을 전달한다. 반향되어 퍼지는 강렬한 훌륫과 스트링 그리고 진한 오르간이 공간을 가득 채운후, 왼쪽에서는 조용히 읊조리는 Shady Owens의 달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더욱 우리를 황홀하게 만드는 곡이다.

두 번째 곡이후 Art Rock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은 8번째 곡부터이다. 리하트르 바그너의 탄호이져를 원곡에 충실하게 Art Rock으로 재창조한 Love Your Fellow Man(당신의 이웃을 사랑하라)이다. 이 곡의 내용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후에 여러나라의 후배 그룹들이 이 곡을 연주했지만 TRUBROT만큼 훌륭한 보컬과 연주를 들려주었던 그룹은 나타나지 않았다. 예로 탄호이져는 이태리의 Rustichelli E Bordini, 프랑스의 Parallele, 헝가리의 Mihaly Tamas 등이 도입한 바 있다. Shady Owens...! 또 한 번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와 Karl Sighvatsson의 오르간 연주를 만끽할 수 있는 (Without You)(당신 없이)라는 곡은 이국으로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쾌한 타악기와 기타리듬으로 전개되는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지켜보면서"라는 곡을 뛰어넘으면 뮤지컬형식의 대곡 Remainders(유물, 유산)이란 코믹한 곡을 만나게 된다. 이 곡은 Stebbi Studkall이라는 청년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미있게 엮은 뮤지컬이다.

1970년대 후반에 한 때 인기를 끌었던 Rick Dees( & His Cast Of Idiots)의 Disco Duck을 기억하는 분들은 13번째 곡에서 디즈니의 도날드 덕의 목소리를 도입한 TRUBROT의 위트에 즐거워 할 것이다. 물론 Rick Dees보다 한참 앞선 아이슬랜드인들의 유머감각이다. TRUBROT은 영어권의 시장을 의식, 영어로 부르는 모두 세곡이 담긴 (Starlight)이라는 싱글을 발표했는데 타이틀 곡은 전반부에 아름다운 하프연주와 여성보컬, 기타, 드럼의 단순함을 담았고 후반부에는 속삭이는 Whisper Effect와 다소 전위적인 분위기를 연출시키고 있다.

글/성시완



Trubrot : 고려바위

아이슬랜드 록의 자존심 TRUBROT - Lifun 아이슬랜드 최고의 아트록 그룹인 TRUBROT이 발표한 앨범을 들어보면 많은 아트록 그룹들의 변천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즉, 싸이키델릭 팝 그룹으로 시작해 아트록 그룹으로 발전되는 모습을 가장 스탠다드하게 보여주고 있다. 뭔가 덜 익은 과일처럼 풋풋한 맛을 보여준 데뷔 앨범에 이어 오르간 록의 전형을 제시한 2집, 그리고 아이슬랜드 최초의 콘셉트 앨범으로 기록되는 3집,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4집이자 마지막 앨범 등 기승전결식의 완결구조를 앨범을 통해 이루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초기 활동에 대해서는 이미 아트록지나 1~2집의 라이센스를 통해 언급되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2집 앨범인 [Undir Ahrifum]이후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겠다. 70년대 크리스마스 직전에 발매되었던 2집 앨범의 성공에 이어 71년 초 이들은 멤버 교체를 하게 되는데, 드러머였던 Olafur Gardarsson이 탈퇴하고 후일에 초반기 멤버였던 Gunnar Jokuli Hakonarson이 가입하였으며 또한 창단 멤버였던 건반주자 Sighvatsson이 새로 들어오기에 이른다.

새로운 라인업은 Gunnar Poraasson(기타), Runar Jullusson(베이스, 보컬), 피아노로 파트를 바꾼 Magnus Kjartansson,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두명 등 총 다섯 명으로 제3기의 TRUBROT이 출범했다. 이런 와중에 이들에게 국립극장으로부터의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다름아닌 괴테의 "파우스트" 연극의 음악을 맡아달라는 제의였다. 이들은 리허설을 위해 창고를 얻어 새 앨범 작업과 병행해 나갔다. [...Lifun(Life)]의 콘셉트 앨범의 구상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팔각형의 변형 커버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을 주제화 시켰던 앨범으로, 71년 3월 13일 "Haakolabio(Universal Theatre)"에서 열린 콘서트는 매진 사태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성황리에 끝마친 이 공연 이후 이들은 영국 런던의 Morgan 스튜디오로 날아가 녹음 작업을 끝마쳤다. 그리고 그해 말 본 작품을 공개했다.
둔탁하면서 무거운 인트로에 이어 "Life Constantly Repeats Itself But Where Does It Begin Where Goes It End..."로 이어지는 의미심장한 나레이션이 (I, Forleikur(Clrculation))의 첫 부분의 서막을 알린다.

아참, 여기 CD에 나와 있는 곡의 순서를 살펴보면 조금 틀린 부분이 있는데, 나레이션에 등장하는 곡의 제목인 (Margfold Er Lifun, Er Lifun Vis Ein)이 빠져있다.(그러므로 12곡이 아니라 총 13곡이 실려있음) 브리티쉬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도입부에 이어 부드러운 멜로디를 가진 발라드 성향의 (Hush-A-Bye)가 뒤따른다.

이 앨범의 최고 백미라 할 수 있는 (To Be Grateful) 은 우리를 한없이 옛생각에 젖게 한다. 피아노의 반주에 마치 어린아이가 노래 부르듯 조심스럽게 그리고 차분하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고 있는 이 곡은 언제 들어도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한다. 2분 33초 정도의 짧은 서정이 끝나게 되면 다시 한 번 이들의 힘을 느낄 수 있는 (School Complex)가 등장한다. 1~2집에 비해 이번 3집을 듣고 있으면 진짜 이들이 TRUBROT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 앨범을 구입한 팬들로 하여금 아깝지 않은 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자 친구에 대한 은근한 짝사랑을 표현한 (Tangerine Girl), 전반부의 마지막인 (Am I Really Livin?)은 엄지 손가락을 펼치는데 주저함을 전혀 보일 수 없는 구성의 완벽함과 연주의 탁월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단아한 플롯 사운드와 해몬드 오르간의 주고 받는 연주로 시작되는 (Il Forleikur)이 두 번째 파트의 시작을 알린다. "역시 대단한 그룹이야"라는 탄성을 지르게 하는 (What We Believe In)에 이어 잠시 쉬어가는 (Is There A Hope For Tomorrow) 2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곡 (Just Another Face), 어린 아이의 해맑음이 이젠 나이가 들어 "젊은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회상을 하는 (Old Man)의 쓸쓸함을 뒤로 하고 이젠 죽음이라는 최후의 순간을 대비해야 하는 삶의 덧없음을 표현하고 있는 (Death And Finale)으로 이 앨범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ARM.....

Tag List